마음 챙기기 김호정의 콘서트홀 1열
임윤찬, 이 자유를 놓칠리가! 바흐가 판 깔아준 ‘충격 연주’
카드 발행 일시2025.02.05
에디터
김호정
김호정의 콘서트홀 1열
관심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본격 탐구
🔹도돌이표 해석
🔹꾸밈음과 자유
🔹신체적인 변주
🔹슬픔의 오아시스
임윤찬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공연을 예고하고 있는 뉴욕 카네기홀의 홈페이지. 사진 홈페이지 캡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16마디까지 연주했습니다. 이제 악보에는 도돌이표가 있고요. 악보에 따라 마디 1로 돌아갔을 때, 기대하지 않았던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확히는 한 옥타브 높았습니다. 임윤찬은 악보와 달리 위쪽의 건반에서 연주했습니다. 그다음 도돌이표(32번째 마디)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아니스트들에게 하나의 경전과도 같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지난해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전곡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도무지 평범하게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모든 부분에 자신의 이야기가 있었죠. 오늘은 그의 해석을 중심으로 골드베르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잘 알려졌듯,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2025년 임윤찬의 키워드입니다.
김영희 디자이너
‘옥타브 올라간’ 연주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7번 변주였습니다. 설명을 조금 해보겠습니다. 바흐는 골드베르크의 모든 변주(30개)를 각각 둘로 나뉘도록 작곡했습니다. A+B죠. 그런데 모두 도돌이표를 붙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모든 변주는 A+A´+B+B´로 연주하게 됩니다. 피아니스트들은 보통 A와 A´를 큰 차이 없이 연주합니다. 하지만 임윤찬은 A´와 B´를 한 옥타브 높여 연주했습니다. 악보에는 그런 지시가 당연히 없는데 말입니다.
대부분은 악보대로 연주하지만, 임윤찬처럼 연주한 피아니스트도 있긴 합니다. 안드라스 쉬프(71)가 7번 변주에서 도돌이표 이후 한 옥타브 높였습니다. 들어볼까요.
7번 변주는 춤곡입니다. 2박의 영국 춤곡 ‘지그(Gigue)’인데요. 이건 미뉴에트나 왈츠처럼 귀족적인 춤이 아닙니다. 선원들이 추는 장난스럽고 재미있는 춤이죠. 임윤찬의 지그는 한 옥타브 위로 올라가면서 보다 흥미로운 움직임이 됐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이렇게 연주해도 되나? 악보에 그렇게 쓰여있지 않은데? 이렇게 질문하면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핵심을 만나게 됩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클래식 음악의 유례없는 히트곡이지만, 사실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선 악보를 보세요. 여기에는 어떤 지시도 없습니다. 셈여림(p, f 같은 지시), 속도(안단테? 알레그로?), 페달을 밟을 것인가 뗄 것인가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바흐 시대의 음악가들은 기본적으로 잘 훈련된 즉흥 연주자였습니다. 그들은 악보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훌륭한 음악을 연주했고, 바흐는 연주자들의 취향과 해석을 신뢰했습니다.
심지어 바흐가 이 곡을 작곡한 이유도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연습곡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으로 출판됐죠. 바흐는 ‘두 단의 건반이 있는 하프시코드용 아리아와 여러 개의 변주’라고만 이름 붙였습니다. 주제 선율 또한 그의 두 번째 부인 안나 막달레나를 위해 작곡한 것인지, 아니면 동갑내기 작곡가 헨델에게서 빌려온 것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런 만큼 피아니스트마다 골드베르크는 천차만별로 해석ㆍ연주할 수 있습니다.
자유입니다. 작곡가가 악보에 깨알같이 잔소리를 적어놓은 베토벤 ‘황제’ 같은 작품에서도 자유를 주장하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이를 놓칠 리 없습니다. 바흐가 선사한 자유를 임윤찬은 마음껏 누립니다.
모든 것을 넣은 바흐
무엇보다 모든 도돌이표 이후의 연주가 기상천외할 정도로 변화합니다. 임윤찬에게 도돌이표는 ‘다시 한번’이 아니고, ‘완전히 새롭게’ 정도일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부분에 많은 꾸밈음을 자의로 넣습니다. 꾸밈음, 즉 장식은 즉흥 연주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바흐 시대의 즉흥 음악가들이 장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임윤찬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의 화려한 장식적 취향을 선택했습니다.
이처럼 반복할 때 장식음을 붙여 연주한 대표적 피아니스트는 미국의 머레이 페라이어입니다.
🔊머레이 페라이어, 1번 변주
임윤찬의 스승인 손민수에게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이 왜 그렇게 위대한가요?” 손민수는 잠시 고민했지만, 늘 생각해 왔던 듯 답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있어서요.”
바흐가 이 작품을 무엇 때문에 썼는지는 모르지만, 무엇으로 썼는지는 명백합니다. 건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넣어서 썼습니다. 변주곡 30개의 음악 형식, 리듬, 멜로디, 화성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이는 인간이 경험하는 거의 모든 감정이 들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임윤찬도 JTBC ‘고전적하루’ 인터뷰에서 “제 인생에서 경험한 많은 감정을 느끼며 연주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죠.
임윤찬이 변주마다, 그리고 반복할 때마다 놀랄 정도로 다르게 연주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겁니다. 바흐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거의 모든 것을 다 했고, 임윤찬은 모든 감각과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김영옥 기자
'신체적인' 변주들의 놀라움
가장 인상적이었던 변주들은 아무래도 '3n+2'입니다. 어렵게 보여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바흐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30개 변주를 3개씩 묶이도록 작곡했습니다. (1ㆍ2ㆍ3), (4ㆍ5ㆍ6) 이런 식으로 말이죠. 여기에 규칙 몇 개가 더 있습니다. 3ㆍ6ㆍ9ㆍ12 이런 식으로 3의 배수 변주들은 ‘캐논’, 즉 ‘돌림노래’입니다.
그런데 3의 배수 바로 앞의 변주들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놀랄 만큼 어렵다는 겁니다. 5ㆍ8ㆍ11번 같은 3의 배수 앞의 변주(3n+2)들은 손가락이 꼬일 정도로 어렵습니다. 두 단의 건반을 위한 곡인데 현대 피아노에서는 한 단으로 연주해야 돼 양손이 부딪치기도 하고요.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하기 때문에 안드라스 쉬프가 “신체적인 변주”라 부른 곡들입니다.
용맹하고 과감한 임윤찬의 특징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특히 20번 변주 같은 경우는 균형이 거의 무너질 듯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고, 왼손으로 같은 음을 네 번 내려칠 때는 두려울 만큼 커다란 소리를 냈습니다. 그 와중에도 장식음을 즉흥적이고 정교하게 덧대는 솜씨에 허를 찔렸습니다.
20번 변주에서 임윤찬이 강조해 소리 낸 부분.
임윤찬의 20번 변주와 비슷한 연주를 거의 떠올릴 수 없지만, 그래도 가장 거침없고 뚜렷한 연주인 글렌 굴드의 젊은 시절 해석을 들어보겠습니다. 도돌이표는 전혀 지키지 않는 개성 넘치는 연주입니다.
🔊글렌 굴드, 20번 변주
'보석' 단조에 대한 해석
미국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80분 전체를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슬픔의 오아시스 세 곳이 있는 행복의 사막.” 이 곡 전체는 ‘솔(G)’ 음을 중심으로 하는 G장조입니다. 주제 아리아부터 30개의 변주 대부분이 장조인데, 그 와중에 딱 세 곡의 변주만 단조입니다. 따뜻한 햇볕도 온종일 쬐면 삭막합니다. 그늘과 슬픔이 깃든 단조가 필요하죠. 음악 애호가들은 단조 변주(15ㆍ21ㆍ25번)를 애틋하게 사랑합니다.
그중에서도 25번 변주는 새로운 녹음이 나올 때마다 청중이 신경을 곤두세워 듣는 부분입니다. 피아니스트 랑랑은 2020년 골드베르크를 녹음하고 25번 변주에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매달리며 처량하게 군다고 뉴욕타임스 비평가 앤서니 토마시니의 철퇴를 맞았습니다. 랑랑의 25번은 10분이 넘습니다. 보통 피아니스트들은 7분입니다.
임윤찬이 어두운 단조를 대하는 해석은 감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일단 속도가 느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높은 음에서 소리를 줄이고 낮은음은 무겁게 강조하면서 25번 변주의 장면을 강렬하게 묘사했습니다. 그 그림은 아마도 땅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죽음이었을 겁니다. 마지막 하강 음계가 그만큼 강렬했습니다. 역시 감정 과잉이 없는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의 연주로 25번 변주를 들어보겠습니다.
🔊알렉상드르 타로, 20번 변주
뉴욕 카네기홀의 공연 소개 페이지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당시 기자들은 놀라움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임윤찬이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기자회견에서 “골드베르크를 연주하겠다”고 했던 장면에 대한 묘사입니다. 갓 데뷔한 피아니스트의 엄청난 야심이었죠.
임윤찬은 4월 25일 카네기홀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합니다. 수백 년 전 연주자들처럼 뛰어노는 자유, 관습을 의식하지 않는 용감함, 또 마지막 30번 변주가 끝나고 페달을 꾹 밟아 모든 소리를 합친 다음 다시 명상적으로 시작하는 주제 아리아. 임윤찬은 충격적 골드베르크를 들려줄 겁니다. 3년 전 놀라움에 미소를 지었던 세상이 이번엔 크게 한 번 뒤집어질 듯합니다.
굴드의 골드베르크
글렌 굴드가 1955년 녹음하고 56년 발매한 첫번째 골드베르크 앨범.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82)의 골드베르크 녹음은 어떻게 전설이 됐을까.
굴드의 골드베르크는 충격이자 정본이고 미래였다. 1955년 23세에 처음 녹음할 때 음반사 컬럼비아 레코드는 그를 예의 바르게 말렸다. 첫 음반으로 80분짜리 골드베르크라고? 굴드는 악보의 모든 도돌이표를 하나도 따르지 않고, 이전의 해석도 전혀 따르지 않은 채 쾌속질주 해 38분 대에 완주 해버렸다.
속도만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하고 강한 골드베르크였다. 굴드 이전에는 옛 악기인 하프시코드로 연주되곤 하던 이 오래된 음악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쾌속정에 태웠다. 낭만 같은 것은 없었다.
“너무 빨라서 불편했다.” “25번 변주가 쇼팽의 야상곡 같아 마음에 안든다.” 굴드는 젊은 시절 녹음에 대해 스스로 비판하며 49세가 된 1981년 이 곡을 다시 한 번 녹음했다. 일부 변주(4ㆍ10ㆍ22ㆍ30번)에서 도돌이표를 따랐고, 총 연주 시간은 51분 대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굴드의 해석은 강력했다. “이 작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지는 하나의 박이 있다.” 비평가 팀 페이지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강력한 박동이 곡 전체를 연결한다. 이번에도 화제였다. 굴드의 해석을 받아적은 골드베르크 변주곡 악보까지 판매됐고, 이듬해 굴드가 50세에 사망하면서 앨범은 전설의 조건을 갖췄다. 굴드는 골드베르크로 스타가 됐고, 골드베르크는 굴드를 거쳐 최고의 지위를 얻었다.
에디터
김호정
관심
중앙일보 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1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