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 집에 들어온 늙은 개 - 아버지,
내 얼굴은 어디서도 팔지 않는 한 장의 도화지
이곳에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해요
내 눈과 입과 코를 잘못 그렸잖아요 기회는 한 번뿐인데
그렇게 눈을 감고 나를 그리면 어떻게 해
이제 사과 - 배 - 딸기 같은 건 내 얼굴에 올 수 없어요
그런데 엄마? 엄마는 왜 자꾸만 미끄러져요?
박연준 - 캐러멜의 말
나는 더 이상 아버지와 장난감 트럭을 들고 목욕탕에 가지 않고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악어 벨트를 허리에 차고 밖에 나갈 수 없고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속주머니를 뒤져
오락실에 갈 수도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 30년 넘게 혼자 목욕탕에 가시고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 복권의 숫자를 고민하며 혼자 씩 웃는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 나와 같은 THIS를 산다
김경주 - 아버지의 귀두
나는 엄마, 생각을 했다. 나는 방향을 틀기 위해 잠시 후진을 해야 한다.
천천히 핸들에 손을 얹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김행숙 - 삼십세
어머니가 묻는다. 바람이 불고 있니?
세제로 립스틱을 닦으며 내가 대답한다. 아뇨, 내가 만드는 바람만 있습니다.
이이체 - 화장일기
시인은 덜 새로운 시를 쓰기 위해 담배를 끊었고, 그제야 우리의 아픈 엄마가 더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박성준 - 대학문학상
나는 빗소리의 애청자란다, 지붕에는 양철슬레이트를 얹었지.
아버지, 시끄러워서 잠이 안와요. 지붕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음악은 지붕을 필요로 하지 않지.
저는 받침도 필요치 않아요.
보세요! 이렇게 지붕 위에서 내달리면……
전 지붕적으로 기록할 만한 폭우였다.
밤새도록 두들겼다.
이설빈 - 폭넓은 지붕
큰 소리가 모두 사라진 검은 방
나는 식어빠진 미역국을 그릇 가득 퍼 담으며 생일 축하해……
스무 살이 된 더벅머리 사내아이가 나의 머리통을 겨누고 있었다
황병승 - 사냥철
상처도 밥이고
가난도 밥이고
눈물도 밥이고
아픔도 열리면
아픔도 열매란다, 얘야
까치발을 딛고 나 엄마를 따먹는다
내 몸속에는 까치밥처럼 눈물 겨운 엄마가 산다
안현미 - 우리 엄마 통장 속에 까치가 산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 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 눈물은 왜 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