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포 일출을 보러
갑진년 새해 첫날이다. 일찍 잠드는 밤이기에 새벽에 잠을 깸은 여전했다. 다섯 시가 되기 전 떡국으로 아침을 들고 이른 시간 산책 차림으로 현관을 나섰다. 대방동을 출발해 본포를 거쳐 북면으로 가는 첫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날씨가 예년에 비해 포근한 편이라 새해 해맞이 나선 걸음은 추위를 탈 정도는 아니었다. 본포 강가로 나가 새해 첫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을 생각이다.
어둠 속 가로등이 켜진 반송 소하천을 따라 원이대로 버스 정류소로 나가니 앳된 티의 소년 셋이 나타났다. 녀석들은 예비 고1인데 주남저수지를 말로만 듣고 무작정 그곳으로 해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길 안내를 해주길 나와 같은 30번 버스를 타서 용잠삼거리에서 1번을 갈아타 가라고 일러줬다. 저수지 들머리 가월마을에서 떡국 나눔 행사가 있을 터이니 챙겨 먹고 오라 했다.
정한 시각 다가온 30번 버스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용강고개를 넘어 주남삼거리를 지났다. 아까 소년들이 내리고 나니 나 혼자 본포마을 회관 앞에서 내렸다. 기사는 어둠을 뚫고 마금산 온천장을 향해 가고 나는 강둑으로 올라섰다. 서녘 하늘엔 보름달에서 기우는 동짓달 스무날 하현이 걸려 있었다. 사방은 새벽이 깊어갈수록 어둠이 더 짙다는 말을 실감한 칠흑 같은 세상이었다.
여섯 시 반에서 일곱 시가 되어가자 서서히 동이 트는 기미를 보였다. 강둑에 서성이다 학포로 건너는 본포교로 가니 자동차를 몰아와 난간으로 바싹 붙여 세우는 이가 보였다. 잠시 사이 하나둘씩 늘더니 갓길 주차처럼 나란히 이어졌다. 나는 혼자만이 본포교에서 일출을 보려는가 싶었는데 해마다 새해 첫날 아침이면 다수의 사람들이 자동차를 몰아와 해돋이를 보는 장소였다.
어둠이 물러가는 강심으로 유장한 물줄기가 흘렀다. 학포와 반월의 습지에는 무성한 갯버들 숲이 드러났다. 강물이 흘러가는 수산 방향으로는 겹겹이 둘러친 산에는 엷은 안개가 번져 몽환적 분위기였다. 다리 위에서 해가 솟을 방향은 주남저수지와 가까운 강 건너편 죽동마을 뒷산으로 헤아려졌다. 동녘에 번지던 서기가 야트막한 산등선에서 더욱 붉어져 모두 숨을 죽여 기다렸다.
강심을 가로지른 허공으로 한 무리 기러기가 날아감이 우연한 신호였는지 일순간 붉은 해가 봉긋 솟았다. 다리 위에서 해를 맞던 이들은 마음속으로 한 해 소원을 빌며 손에 쥔 폰으로 사진에 담았다. 아침 해가 솟아오르자 일출을 보려 차를 몰아온 이들은 곧바로 시동을 켜 흩어지니 바람 빠진 풍선 같았다. 나는 본포교를 건너 학포에서 강변 따라 노리를 거쳐 부곡으로 향했다.
노리를 앞둔 휴게소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벼랑길을 따라 일출 광경을 폰 메모장에 남기면서 걸었다. 그때 지나쳤던 길을 되돌아 차를 세운 한 처자가 인도가 없는 벼랑길을 걷는 노인이 걱정된다면서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는 나를 뒷자리에 태웠다. 나는 이십 리가 더 될 부곡까지 걸어서 갈 요량이었는데, 편히 가서 고마웠고 처자는 부곡에서 차를 돌려 창원으로 되돌아갔다.
가끔 본포에서 수다로든지 임해진으로든지 온정리를 지나 부곡 온천장 대중탕을 이용한다. 몇 차례 찾았던 호텔 사우나는 혼잡해 이웃한 대중탕으로 들어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묵은 때를 씻고 종아리 근육을 풀고 나왔다. 영신교통에서 드물게 운행하는 북면으로 가는 차편 시간은 맞지 않아 중국집에서 점심을 요기하고 수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더니 승객은 나와 한 할머니뿐이었다.
수산에서 제1 수산교를 걸어서 건너니 아침에 봤던 본포 일출 못지않은 탁 트인 강변 풍경이었다. 다리를 건너 대산 들녘 신전 종점에서 오는 1번 마을버스를 타고 가술을 거쳐 주남저수지를 둘러 시내로 들어왔다. 집 근처 왔더니 빙상장에서 하루를 보낸 꽃대감 친구가 동네 카페에 자리를 잡아 놓고 기다렸다. 새해를 맞은 덕담을 나누는 사이 첫날 하루가 저물어 집으로 돌아왔다. 24.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