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부터 2 천 여년 전에 쓰여진 신농본초경에 보면 ”영지주이롱(靈芝主耳聾), 이관절(利關節), 보신(保神), 익정기(益精氣), 견근골(堅筋骨), 호안색(好顔色), 구복경신불노연년(久服輕身不老延年)”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영지는 이롱을 치료해 주고 관절에 이롭고 정신력을 도와 주고 정기를 더해 주며 근골을 튼튼하게 해주고 안색을 곱게 만들어 주며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연년익수한다.” 는 뜻이다. 그러나 역대 의가에서 영지를 별로 사용하지 않했으며 영지에 대하여 냉담(冷淡)했고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명 나라 때 약학가 이시진은 본초강목에 ”영지료허로(靈芝療虛勞), 치치(治痔).” 라고 기록해 놓았다. 다시 말하면 ”영지는 허로를 치료해 주고 치창을 치료해 준다.” 는 뜻이다. 실제로 이시진 자신도 질병 치료에 영지를 별로 사용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민간에서 영지는 노년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속어에 ”영지능치백병(靈芝能治百病), 시신초선약(是神草仙藥).” 이란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영지는 백 가지 질병을 치료해 주는 신선약이다.” 는 뜻이다.
영지는 역대 문인들의 총애를 받았다. 전국(戰國) 시대 초(楚) 나라의 저명한 시인 굴원(屈原 : 서기 전 343 년 – 서기 전 299 년)이 호남성(湖南省)의 상강(湘江)과 소수(瀟水)에서 귀양살이 할 때 읊은 시(詩) “구가(九歌)-산귀(山鬼)”에 ”채삼수어산간(采三秀於山間)” 이라고 읊었다. 다시 말하면 ”산 기슭에 돋아 난 영지를 뜯네!” 란 뜻이다. 또 한(漢) 나라 때 동방삭(東方朔 : 서기 전 154 년 – 서기 전 93 년)의 “칠간(七諫)-류간(謬諫)” 중에 ”발건현지혜(拔搴玄芝兮)”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검은 영지를 채취하네!” 란 뜻이다. 조식(曹植)의 구영(九咏)에도 ”심상한지장류(尋湘漢之長流), 채방안지영지(采芳岸之靈芝).”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장강의 한 줄기 상강(湘江)을 찾아가서 향기나는 강 기슭에서 영지를 뜯세!” 라는 뜻이다. 역대 시인들, 예를 들면 양(梁) 나라 때 유견오(庾肩吾)와 진(晉) 나라 때 혜강(嵇康)과 당(唐) 나라 때 맹호연(孟浩然)과 이태백(李太白)과 두보(杜甫)와 장적(張籍)과 송 나라 때 소동파(蘇東坡)와 황정견(黃庭堅)과 매요신(梅堯臣)과 육유(陸游)와 김호원(金好元) 등은 모두 영지에 관한 시를 읊은 시인들이다. 영지에 관한 기록들이 고대 문헌 중에도 적지않게 수록되어 있다.
근대 임상 실험 연구에 의하면 영지는 만성병의 치료에 일정한 효과가 있다고 나타났다. 예를 들면 만성기관지염의 치료에 영지액(靈芝液)과 영지정(靈芝酊)과 영지편(靈芝片) 등을 사용하고 있으며 영지는 천식(喘息)에도 효과가 있고 해(咳), 천(喘), 담(痰) 등 3 종(種) 증상에도 효과가 있다. 2 주 동안 만 영지로 치료하면 흉부에 편안한 감각을 느끼고 해천(咳喘)이 경감됨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 영지를 복용한 후 대부분의 환자들은 식욕이 증진됨은 물론 수면의 질이 좋아지고 체력이 증강됨을 느낀다. 인체에 해로운 화학 성분과 약물 중독과 만성병 질환이 있는 환자들의 백혈구 감소증에 영지를 사용하여 치료한 결과 84.6% 의 유효율을 나타냈다는 보고가 있다. 또 관심병 환자에게 영지를 복용시킨 결과 병증의 감소율이 71.7% 였다는 보고도 있다. 또 심계항진과 기단(氣短) 환자들에게 영지를 복용시킨 결과 증상의 호전율이 64.5% 였다는 보고도 있다. 민간에서 영지를 사용하여 간염 환자를치 료했는데 일정한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영지는 항병능력을 증가시켜 줌으로써 간세포의 회복을 촉진시켜 준다고 한다. 영지는 신경쇠약과 관절염의 치료에도 일정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영지는 보중기(補中氣), 보간기(補肝氣), 익심기(益心氣), 보폐기(補肺氣), 양신기(養腎氣), 익정기(益精氣) 등 자양강장(滋養强壯) 효과가 있다. 영지는 일정한 질병의 치료 작용이 있지만 효과가 완만하여 불노장생약(不怒老長生藥)이나 기사회생(起死回生)의 신단(神丹)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영지의 성미(性味)는 감평(甘平)이며 주로 보허(補虛) 작용과 수면의 질을 높여주고 식욕을 증진시켜 주며 평천(平喘)과 지해(止咳) 등 작용이 있다.
현대 명의 하시희(何時希)는 남송(南宋) 이래로 세전(世傳) 850여 년간 28 대(代) 유의(儒醫)인데 현재 86 세로써 매일 3000여 자의 글씨를 써서 하씨역대의학총서(何氏歷代醫學叢書) 42 종(種)을 집필하고 있다. 그는 영지가 건뇌(健腦) 작용이 있음으로 자신의 기억력을 증진시켜 준다고 말했다. 하시희(何時希)는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와 호북성(湖北省) 한구(漢口)에서 생산되는 적영지(赤靈芝)와 황영지(黃靈芝) 또 복건성(福建省) 복주(福州)와 고랑서(鼓浪嶼)에서 생산되는 적영지(赤靈芝)와 강서성(江西省) 응담(鷹潭)에서 생산되는 흑영지(黑靈芝)가 최상품이다고 말했다. 또 안휘성(安徽省) 황산(黃山)에서 생산되는 석영지(石靈芝)는 사이즈가 작으면서 단단하다. 그래서 석영지란 이름을 얻었다. 하노인의 영지 복용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매차 복용량은 5g 내지 6g 인데 차(茶)를 만들기 전에 하룻밤 물속에 담그어 둔다. 그 이튿 날 물 두 대접과 함께 끓인 후 공복에 차(茶) 대신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