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사29:1~13)
1. 성경은 인간을 영 혼 육을 성전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성전은 지성소와 성소, 그리고 성전뜰로 나누는데 지성소에 해당하는 부분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부분인 우리의 영과 같고, 성전의 성소는 우리의 혼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성전의 뜰과 같은 것이 우리의 육체로 볼 수 있지요.
그리고 성전 안의 지성소 법궤안에는 늘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지요. 즉 하나님이 계신곳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혼에 해당하는 부분은 성전의 분향단과 떡상과 등대로서 우리가 소원을 아뢰는 기도 그리고 배부름과 만족을 상징하는 떡상과 불밝히는 등대(판단)가 있지요.
그래서 마음의 지성소에 뭐가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혼과 육체가 따라 행하는 것이지요. 내 마음의 지성소에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면 하나님을 소원하고 갈망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게 되어 지고, 하나님의 뜻이 뭔가를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성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돈이 들어가 있다면, 내 혼과 육체는 뭘 갈망하는가하면 돈을 갈망해 하고 돈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하고 돈을 벌기 위한 방법이 뭔가를 구하게 되는 것이지요.
2.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뭘 뜻할까요?
그것은 내 영에 속한 지성소에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계시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신앙의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돈이나 자식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그 사람의 신앙을 대신한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신앙대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의 대상을 생각할 때 항상 신적 존재 초월적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 어떤 것도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자신이 신 대상이고,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권력이 신앙 대상일 수 있고, 물질이나 학문이나 업적들이 그 사람의 신앙 대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 29장1절 말씀을 보면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예루살렘의 별명입니다. 즉, ‘아리엘’은 ‘사자중의 사자’라는 의미인데 아리엘 즉 ‘예루살렘이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이 세우신 도시’이기 때문에 도시 중의 왕이라는 뜻으로 아리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리엘의 ‘아리’는 타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파생어입니다. 그 어원이 번제단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2절에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즉 ‘아리엘이 아리엘 같이 된다’는 것은 수사적인 기교로 기억하기 쉽게 하기 표현입니다. 이 뜻은 각주에 표현대로 ‘아리엘이 번제단의 표면같이 된다’는 말은 ‘아리엘이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번제단과 같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번제단은 제물을 잡아 태워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그 때 짐승을 태울 때는 불이 붙고 연기가 나고 나중에 재가 된다는 것인데 즉 ‘예루살렘이 번제단과 같이 된다’는 것은 ‘예루살렘 전체가 불이 붙고 연기가 나고 재가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3절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싸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라는 뜻은 적들이 와서 성을 공격해서 번제단 처럼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3. 여기서 질문이 생기는데, 그럼 왜 예루살렘이 이런 고난을 당해야만 합니까?
사실 예루살렘이 예루살렘 될 수 있는 것은 “아리엘“ 즉 번제단 때문이었습니다. 즉 번제단의 기능이 제대로 될 때에 예루살렘은 예루살렘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스라엘백성이 번제단에 와서 뭘 했느냐하면 짐승을 잡아 바치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요. 예를 들면 ‘하나님! 저희들이 이 세상에 나가 살면서 세상의 가치관에 오염되어 내 마음의 지성소안에 하나님만 계셔야하는데 내 마음에 세상에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다보니 하나님을 몰아내고 세상이 좋아하는 것을 내 영에 담았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하나님만이 있어야 할 곳에 하나님이 아닌 것을 신앙의 대상으로 내 마음에 두었던 까닭으로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으로 내 마음을 꽉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번제단에서 할 일이지요. 그런데 지금 그 기능을 못하는 것입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성전의 기능은 예배기능입니다. 우리가 예배당에 나오서 예배하는 목적이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내 마음에 들어온 세상의 가치를 몰아내고 하나님으로 우리마음을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나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번제단이 제대로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함께하는 성이고, 예루살렘이 될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가치관으로 채워질 때 제 기능이 상실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 성을 변질시켰습니다.
해서 1절에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했습니다. 사실 ‘너희들은 해마다 절기를 지켜서 의식을 거창하게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겼던 것 같이 하지만 너희들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걸 못견디시는 것입니다. 왜? 우리 마음의 주인이 하나님이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주인이 될수 없는 것을 모셔놓고 주인보고 그것을 내게 줄 수 있는 도구역할을 하라시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이런 짓을 이스라엘이 했다는 겁니다. 저들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고 전쟁이 없는 자신들의 평안과 안락을 추구하는 안전에 대한 욕구, 미래에 대한 대책 그것이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고 강한 적이 처들어오면 그것을 잃을까봐서 전전긍긍하며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더 큰 군대를 가진 나라를 의지하고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아니라 안전과 평안을 저들의 신앙의 대상으로 살아갔다는 것이지요.
4. 여러분 ! 누가 이 세상에서 평안을 주실 수 있나요?
하나님만이 참 평안을 주십니다. 저들은 하나님께 돌아오면 될 일을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강한 군대를 의지하고 저들의 도움을 받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것이 가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번제단의 기능이 사라진 예루살렘을 적들에게 내어 주어서 예루살렘 전체가 번제단처럼 연기가 나고 피가 나고 불로 태워지는 재가 되리라. 3절에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 이 얼마나 무서운 메시지입니까?
그래서 본문은 신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구약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봉독한 29:13에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내 백성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전부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멀다. 너희들의 마음 가운데 내가 들이있지 않고 엉뚱한 것이 신앙의 대상으로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그런 계명이 주어졌지만 그것을 인간의 계명으로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13절 “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다시 말해.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을 요구했다’. 그러니까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지 말고 너희들 마음 중심, 지성소 한 가운데 하나님을 모신 진정한 신앙인이 되라는 것이지요.
5. 여러분 ! 왜 사람들이, 우리인생이 허무함을 느낍니까?
우리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우리 마음은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 있을 만큼 크다‘고 했어요.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다 고 했지요 그런데 아닌 것으로 채우려다보니까 허무 하다 느끼는 것이지요. 아무리 집어 놓어도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남아 있어요.r 공간이 우리를 허무하게 만듭니다.
허무를 채우려고 애쓴믄 그 건강 물질, 명예 자시, 재산 다 지나가고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허무하지요
사람이 ‘허무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이 보다 더 나은 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게 뭐가있어요. 돈 때문에 허무하면 돈이 전부가 아니라 돈보다 더 나은 것을 찿으면 되요. 자식 때문에 허부하면 자식보다 더 나은 것을 찾으면 되구요. 그게 뭐냐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채우면 충만해져요. 하나님으로만 우리 인간은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안 하고 엉뚱한 것을 찾고 있으니 하나님은 이 예루살렘이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돌이키라고, 우리 마음의 지성소 안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뽑아내시는 작업이시지요. 그것이 하나님의 열심이십니다. 이게 우리 편에서는 영적인 싸움이구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지성소에 모시고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있어요. 그리고 그 걸과로 거기에는 허무와 공허가 아닌 충만이 임하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