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야기 소스의 천국, 정조
정조 시대
영조와 함께 조선 중기의 르네상스라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영조와 정조는 모두 성군이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정조 시대 왕과 신하, 특히 정조와 노론 벽파 사이의 대립은
서로 살얼음을 걷는 그런 기분이었다.
상대방이 아니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런 정조시대의 상황은 역사 교양서와 역사소설의 소재로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이 책도 남인 세력의 한 가공인물은 이인몽을 중심으로
당시 정조와 노론 벽파 사이의 긴장된 권력 싸움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책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던 시절에 한 번 읽었는데,
재미있었다는 기억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
이 소설은 당시 큰 인기를 얻었고,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그 당시 재미있었다는 기억만 갖고 이 책을
헌책방에 갔다가 만나 다시 집어 들게 되었다.
군대있을 때 읽었던 책이라 그런지
읽는 내내 그 시절 생각이 간혹 나기도 하였다.
그 시절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던 그 동료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으려나.
1. 정조와 노론벽파의 원한
지금까지 다른 역사교양서나 역사소설 속에서 얻은 어설픈 지식으로
당시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당파 싸움에 진력이 난 영조는 이를 타파해 보기 위해
탕평책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정책은 시도로써 의의를 두어야 했다.
역모사건에 남인과 소론이 연루되면서
탕평책은 유명무실해지고, 노론은 권력을 장악한다.
당시 세자로 책봉된 사도세자는 노론의 권력을 옳지 않다고 판단하고
개혁 세력인 남인 세력을 지지하였다.
이대로 사도세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노론은 지금의 자리는 물론, 모가지가 남아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방법은 단 하나.
사도세자를 없애는 길이다.
노론은 작전에 들어간다. 사도세자 제거 작전.
결국 노론에 꾀임에 넘어간 영조는 자신의 아들을
찌는 듯한 무더위가 계속되는 어느 날 뒤주에 넣게 된다.
그리고 수일 뒤 사도세자는 그렇게 허망하게 뒤주 안에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이때 사도세자에 대한 처신에 노론 내부에서도 분열이 이루어졌다.
사도세자를 즉각 제거하자고 하던 강경파, 이들을 벽파로 부른다.
사도세자의 제거를 반대했던 온건파, 이들을 시파로 부른다.
이때 노론은 벽파와 시파로 나뉘고, 이 모략이 성공한 이후 노론 벽파는 정권을 휘어잡게 된다.
뒤늦게 영조는 노론의 모함을 눈치채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실에 후회를 하게 된다.
그렇다고 노론을 제거하기에는 노론의 힘이 너무 강했다.
그런 사도세자에 대한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서인지
노론 벽파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정조)을 세손로 책봉한다.
정조는 열한 살의 나이에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죽어간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에 노론 벽파는 사도세자의 아들의 세손책봉은
사도세자를 제거한 것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세손시절의 정조도 제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영조가 운명을 달리한 후 정조는 왕위에 오르게 된다.
...
아참,
대비를 잃은 영조는 아주 어린 정순왕후(정조보다 두살 위라던가?)를 얻게 되는데,
이 정순왕후는 노론벽파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그녀는 정조가 죽은 후에 남인 숙청에 앞장섰고,
의문의 정조독살설에 깊이 관여되기도 한다.
....
정조가 왕위에 즉위하면서, 한 첫 번째 말...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 한마디가 노론 벽파에게는 아마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혔었을 것이다.
사도세자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정조가 말은 그리 했지만,
노론 벽파를 그냥 없애기에는 그들의 권력과 세력의 크기는 만만치 않았다.
결국은 그들을 안고 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회를 보는 수 밖에..
이것은 노론 벽파에서도 정조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정조는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필요했다.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지지했던 남인세력이다.
그리고 규장각을 두어 규장각 검서관들에 자신의 세력을 포진시켰다.
또 영조가 실행했던 탕평책을 철저하게 실행하여
남인세력이 등용하여 드디어 힘의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문체반정을 이용하여 노론벽파의 세력을 약하시키기도 하였다.
이런 정조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렇게 물러날 노론벽파가 아니었다.
당시 금지시 되어 있던 천주학(서학)을 남인과 교묘하게 엮어
정조는 남인세력을 탄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들이 반복되던 시기가 바로 정조시대였다.
...
정조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노론 벽파를 몰아낼 최후의 준비를 하게 된다.
바로 수원 화성과 장용영이라는 왕의 친위 부대이다.
물론 수원 화성과 장용영이 직접 노론 벽파를 제거하기 위함이라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당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들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조의 그런 자신의 계획은 실행하지 못한 채
노론 벽파의 둘러싸여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특히 정조의 임종하는 자리에는
노론 벽파의 핵심인 정순왕후 혼자만이 자리를 지켰으니,
그 죽음은 더욱 의문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의문의 죽음에 독살에 대한 여러 가지 근거가 나오면서
정조독살설이 퍼지게 된 것이다.
...
이 소설은 남인의 바람막이이자 영수 채제공이 죽은 지 1년이 되던 어느 겨울날,
그리고 정조가 의문의 죽음을 맞던 몇 달 전
하룻동안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간략히 이야기하면
노론의 세력을 몰아내고, 왕권을 강화하려던 정조의 계획이 실패하고,
결국은 그것이 빌미가 되어 얼마 뒤 정조가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다.
아니 노론에 의한 시해라고 이 소설의 지은이는 보고 있다.
2. 잇단 의문의 죽음
규장각 대교로 숙직을 서던 이인몽은
규장각 검서관 장종오가 밤샘 일을 하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이인몽은 현승헌이라는 자를
형조참의 정약용에게 보냈는데, 그 곳에서도 또 의문의 죽음의 소식을 접한다.
며칠 전 서학쟁이로 잡혀 온 채이숙(채제공의 아들)이 감옥에서 동사한 것이다.
정약용이 그를 살리려고 방으로 데리고 왔지만, 이미 늦었고
죽기 전 옆을 지키고 있던 현승헌을 정약용으로 착각한 채이숙은
<선대왕마마의 금등지사>에 대한 비밀을 이야기한다.
이 사실을 접한 현승헌은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가 고민에 빠지지만,
정약용에게 장종오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 더욱 시급하였다.
한편, 이인몽은 장종오의 죽음을 정조에게 알리자,
정조는 몹시 당황하며 장종오 주변에 있었던
<시경천견록>이란 책을 얼른 가지고 오라고 명령한다.
이인몽은 다시 사건 현장으로 오다가 수상한 행동을 보인 내시부 사람을 만나 추궁하자,
그는 이인몽에 공격을 가해 이인몽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정신을 수습한 뒤 이인몽은
자신을 공격했던 내시부 관속이 잘못이 있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엇인가 엄청난 음모를 눈치챈다.
장종오에 대한 부검이 이루어지지만, 정확한 사인을 알아낼 수 없었는데,
정약용은 석탄에 의한 질식사라고 이인몽에게만 조심스럽게 알려주었다.
3. 선대왕마마의 금등지사
이 책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선대왕마마의 금등지사>라는 의문의 책이다.
이 책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그 존재여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이 소설에서 나온 <선대왕마마의 금등지사>는 이렇다.
선대왕마마는 영조를 의미한다.
즉 영조가 쓴 <금등지사>인데,
그 내용인즉, 아들 사도제자가 노론의 모략에 의해 죽은 것을 알게 되고
아들을 잃은 비통한 심정을 시와 기록으로 남긴 것으로,
영조는 이 책을 채제공에 맡겼다는 내용이다.
이 <금등지사>를 이용하여 정조는 아비의 원한을 풀고
노론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이에 <금등지사>는 정당한 자료, 증거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노론의 거두 심환지를 비롯하여
노론파는 이 책이 정조 손에 들어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게 된다.
정조가 장종오에게 시킨 일도 이 책과 관련된 일이었고,
채이숙이 죽은 이유도 이 책 때문이었다.
<금등지사>란 책을 채제공이 보관하고 있던 걸 알게 된 노론은
채제공이 죽으면서 당연 이 책이 채이숙에게 전달되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서학을 했다는 이유로 채이숙과 다른 서학한 이들을 감금하게 된 것이다.
그 속에 이인몽의 전처 윤상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윤상아는 독실한 천주교도이기 때문에
수년 전에 이인몽은 어쩔 수 없이 윤상아를 내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둘 사이에는 애틋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
아무튼 죄없이 채이숙과 윤상아 등이 갇혀 있는 것을
알게 된 정약용은 석방조치를 취했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채이숙은 그만 동사하고 만다.
감옥에 오기 전에 채이숙은 이미 <금등지사>를 윤상아에게 전달한다.
..
노론에서도 현승헌을 협박 회유하여 채이숙이 죽기 전 한 말을 전해 듣고,
<금등지사>란 책을 윤상아가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윤상아를 찾게 된다.
윤상아는 석방된 뒤 몸을 피신하여,
친분이 있었던 유치명에게 부탁하여
<금등지사>를 채제공의 부인 정경부인을 통해서
정조에게 전하려고 계획한다.
하지만 정경부인은 아들의 사망소식에 혼절한 상태라 그 계획도 실패하게 된다.
...
이 사건이 있던 날이 바로 채제공이 죽인 지 일년 되는 날로 소상이 있는 날이다.
그래서 남인의 무리들 뿐만 아니라 노론들...
그리고 정조도 친위부대 장용영을 이끌고 신분을 숨기고 채제공 집에 왔다.
한편 윤상아가 <금등지사>를 가져간 소식을 알게 되고,
노론은 이인몽을 협박하게 된다.
노론의 협박에 이끌려 온 이인몽도 채제공의 집에 오게 되고,
여기서 유치명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혼란한 틈을 타서 와룡폭포에서 따로 만나
유치명은 <금등지사>를 이인몽에 전해주고,
이인몽이 정조에게 직접 전해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따돌린 줄만 알았던 노론의 무관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인몽과 유치명은 그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금등지사>는 결국 노론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
이것으로 정조가 꿈꾸던 영원한 제국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이 있고 몇달 후
정조는 노론에 의해 시해되고,
다음해 노론은 남인세력을 천주교박해에 얽어
사형이나 유배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 때 정약용도 18년간 강진 유배를 가게 된 것이다.
...
정조가 시도했던 개혁은 모두 묻히고....
조선은 후퇴일로를 걷다가....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그렇게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오늘날 두 쪽으로 나뉘어진 우리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얼마나 분통한 일이 아니던가....
4. 주의사항.
이 책은 단순히 소설이다. 허구다.
<금등지사>가 실존했는지도 모르고,
그것이 정조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점은 지은이도 맺는말에서 강조하고 있다.
사실 팩션이라는 장르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혼돈되는데,
그래서 독자들은 가끔 허구를 사실로 받아들여 작가들의 의도와는 달리
역사 왜곡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의 지은이는 명백하게 선을 그어주고 있어 다행이다.
....
군대시절 재미있었던 기억 그대로
다시한번 그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책제목 : 영원한 제국
지은이 : 이인화
출판사 : 세계사
독서기간: 2007.1.26 - 2007.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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