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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BS 우리말 겨루기 원문보기 글쓴이: 박혜순 230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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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생초 작약 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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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http://cafe.daum.net/cafeeos/3sDB/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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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약(芍藥)/함박꽃
작약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원예종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홍약(紅藥), 적약,백약,작약화(芍藥花)라고도 부르며, 함지박처럼 크고 푸짐하게 꽃이 핀다고 하여 함박꽃이라 부른다.
줄기는 여러 개가 한 포기에서 나와 곧게 서고 높이 60cm 정도이며 잎과 줄기에 털이 없다. 뿌리는 여러 개가 나오지만 가늘고 양끝이 긴 뾰족한 원기둥 모양으로 굵다.
꽃은 5∼6월 줄기 끝에 1~2,3개가 피는데 크고 아름다우며 재배한 것은 지름 10cm 정도로 크게 핀다. 꽃색은 붉은색, 흰색, 연분홍 등 다양하며 많은 원예 품종이 있다. 꽃받침은 5개로 녹색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끝까지 붙어 있는데 가장 바깥쪽의 것은 잎 모양이다. 꽃잎은 보통 10개 정도이나 개량종은 겹꽃으로 아주 많은 것도 있다.
수술은 매우 많고 노란색이며 암술은 3∼5개로 암술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달걀 모양의 씨방에는 털이 없거나 약간 있다. 열매는 달걀 모양으로 끝이 갈고리 모양으로 굽으며 내봉선을 따라 갈라지고 종자는 구형이다.
꽃이 아름다워 원예용으로 많이 쓴다. 뿌리는 진통·복통·월경통·무월경·토혈·빈혈·타박상 등의 약재로 쓰이며, 중국에서는 진(晉)과 명(明)시대에 이미 관상용으로 재배되어 그 재배 역사는 모란(木丹)보다 오래되었다.
송(宋)을 거쳐 청(淸)시대에는 수십 종류의 품종이 기록되어 있다. 꽃말은 누가 붙였는지 “수줍음”, “부끄러움”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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妖絶 ! 그 色彩의 玲瓏함 !
그 姿態의 아름다움 !
楊貴妃 꽃 ! ( ** ?粟花- 앵속
아토피누(김진철) 조회 2716 http://cafe.daum.net/dkxhvlsn/83ss/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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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꽃 양귀비, 잘못 알고 키우면 큰일 납니다
요즘 도농을 불문하고 양귀비를 키우다가 단속반에 걸려 피해를 입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어 널리 알릴 필요가 있어 이 글을 올립니다. 최근 우리 마을과 이웃 00마을에서만도 여섯 집에서 모두 67그루의 양귀비가 적발됐는데, 단속을 지휘한 00지검00지청 박아무개(43) 수사관은 “법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일부러 심거나 저절로 난 것을 뽑지 않은 채 기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위험한 꽃” 양귀비를 찾아라. ~~!! 양귀비(앵속)가 꽃이 피어 눈에 쉽게 띄는 시기를 맞아 검·경행정 기관이 합동 단속을 하고 있는데, 현행 마약류관리법은 양귀비를 대량으로 재배하는 것은 물론 꽃을 감상하기 위해 한두 그루를 기르는 것도 모두 금지하고 있습니다.
▷ 왜 기르나 = 00시 이아무개(71)씨는 집 앞 텃밭에 양귀비 40여 그루를 재배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는데, 이씨는 양귀비를 숨기기 위해 상추 등 밭작물과 함께 길렀으며, 경찰 조사에서 “복통 등 몸이 아파 병원에 가기 어려울 때 상비약으로 사용하려고 재배했다”고 말했습니다.
양귀비의 아편은 설사를 멎게 하고 통증을 덜어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옛날부터 의약품이 귀한 시골과 섬 등에서 가정상비약을 마련하기 위해 길러 왔습니다. 가축의 약으로 쓰고자 재배하기도 하는데, 이웃 마을에서는 24그루를 심었다가 단속에 걸린 김아무개(76)씨는 “소가 설사하거나 기력이 없을 때 양귀비를 삶아 먹이면 효과가 좋다"고 말했습니다.
꽃을 즐기기 위해 관상용으로 심었다가 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는 사람 또한 적지 않습니다. 지방경찰청 마약수대 이아무개 경위는 “노인들이 죄의식 없이 조금씩 기르는 경우가 많아 강력한 처벌은 어렵지만, 마약의 싹을 자른다는 차원에게 소량 재배도 단속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양귀비 재배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습니다. 그러나 대검찰청은 전과가 있는 경우 등을 빼곤, 20그루 이하는 입건하지 않고 20~50주 미만은 기소유예 처분을 하고 있습니다. 50그루 이상 재배한 경우만 기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 개양귀비(Corn Poppy)는 남유럽이 원산지이며 중국에서는 虞美人草(우미인초)라고도 부르죠. 개량종은 빨강, 분홍, 흰색 등이 있고 화형은 천엽, 반천엽등의 변화를 볼 수 있으며, 19세기 말엽에 개량된 것이 현재 원예용으로 재배되고 있는 철리포피(Chirly Poppy)랍니다.
4월 하순에서 5월에 꽃이 피고 씨앗이 잘 영글어 저절로 떨어져 다음 해에도 같은 장소에서 꽃을 볼 수가 있으며, 중독성이 없어 재배해도 법에 저촉됨이 없으니 혹 단속을 받더라도 개양귀비 또는 꽃양귀비 임을 잘 설명하거나, 팻말을 세워 오해가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 두메양귀비는 백두산 같은 고산지대에서 볼 수 있으며, 조선앵속·산양귀비·두메아편꽃라고도 합니다. 높은 산의 중턱 이상에서 높이 5∼10cm정도 자랍니다. 전체에 퍼진 털이 있으며 7∼8월에 노란빛을 띤 녹색 꽃이 꽃줄기 끝에 1송이가 피고 열매는 삭과로 달걀 모양 구형이고 퍼진 털이 있습니다.
■ 양귀비(앵속)는 아편의 원료이기 때문에 양귀비를 재배하는 것은 마약원료공급자로 다루어 법률에 의거, 엄벌하고 있습니다. 아편원료가 되는 일반양귀비는 꽃색깔(흰색, 분홍색, 빨간색 등)에 관계없이, 그 재배 목적(관상용, 화초용, 가축치료 등)을 불문하고 처벌되며 집 주위나 텃밭 등에 자생하는 양귀비를 무단 방치하는 경우에도 처벌 될 수 있습니다.
★☆ 재배 금지된 모르핀 있는 양귀비는 키가 80cm 이상 크고 줄기와 꽃봉오리가 튼튼하고 맨들맨들하여 털이 없고 꽃이 지고 나면 씨방이 둥글고 크게 하늘을 보며 자라나서 아편채취가 가능합니다.
★☆ 그러나 재배 가능한 모르핀이 없는 원예용 양귀비는 키가 작고 가늘며 줄기와 꽃봉오리에 털이 많이 나 있으며 잎 모양도 작고 꽃이 지고 나면 씨방이 계란모양의 타원형으로 자그마하며 여기에도 털이 나 있어 아편양귀비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 01.오늘낮 우연히 만난 단속대상 양귀비꽃 입니다.
▼ 02.팔순할아버지께서 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것을 키우고 계시더군요.
▼ 03.할아버지 꽃밭에는 양귀비가 모두 6포기 있었는데..단속대상이 된다고 하였더니...
▼ 04.아편채취하는 양귀비는 흰꽃피는 것이고, 이건 화훼용 아니냐고 우기시는데...
▼ 05.나중에 잘못되어 벌 받는것 보다는 뽑는게 좋지 않느냐고 했더니...
▼ 06.지난해에도 키웠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하면서 뽑아내는 것을 아까워 하는데...
▼ 07.그래도 연세 높으신 어르신이라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에는 쉽게 이해를 하시고...
▼ 08.아까움을 무릅쓰고 기꺼이 뽑아주신 우리 할아버지 파이팅~~!!
▼ 09.원예용 꽃양귀비(개양귀비). 꽃봉오리에 가시가 많은 등 전체적으로 다르죠?
▼ 10.원예용 개양귀비는 잎, 줄기, 꽃 등등 모두가 아평체취용 양귀비와 다릅니다.
▼ 11.원예용 꽃양귀비(개양귀비).
▼ 12.원예용 꽃양귀비(개양귀비).
▼ 13.원예용 꽃양귀비(개양귀비).
▼ 14.원예용 꽃양귀비(개양귀비).
▼ 15.원예용 꽃양귀비(개양귀비).
▼ 16.원예용 꽃양귀비(개양귀비).
출처 :화가 연두님의 플래닛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 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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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의 양귀비와 57세의 현종과의 사랑
장한가(長恨歌)...............백거이(白居易)
중국 당(唐)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서사시, 작가가 806년에 120행으로 지었다.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사랑을 다룬 작품으로,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인하여 양귀비는 죽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결말을 맺었다.
당 현종과 온천목욕하며 지내던 화청지 앞 양귀비의 상
漢皇重色思傾國 여색을 중히 여긴 천자께서 나라를 기울일 만한 미인을 그리워하셔
御宇多年求不得 천하를 다스리며 오랜 세월 찾았으나 구할 수 없었네.
楊家有女初長成 마침,양씨 집안에 갓 성장한 여식이 있어
養在深閨人未識 깊은 규중에서 자라 아무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몰랐네.
天生麗質難自棄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一朝選在君王側 어느날 갑자기 뽑혀 천자를 모시게 되었네.
回眸一笑百媚生 머리 돌려 한 번 웃으매 백 가지 교태가 생겨나
六宮粉黛無顔色 육궁의 화장한 미녀들 낯빛을 잃고 말았네.
春寒賜浴華淸池 봄 추위 안 가셔 화청지에서 목욕하길 천자께서 허락하니
溫泉水滑洗凝脂 기름처럼 매끄러운 그녀의 살 온천물에 씻겨졌네.
侍兒扶起嬌無力 시녀들에게 부축받은 그녀의 모습,아리따움이 지나쳐 바로 설 힘마져 없는 듯했으니
始是新承恩澤時 그 때가 바로 천자의 새로운 은총이 내려진 때였네.
云빈花顔金步搖 구름같은 머리,꽃같은 얼굴,걸을 때마다 한들거리는 금 머리 장식,
芙蓉帳暖度春宵 연꽃 수 놓은 휘장 안은 따뜻하고 봄밤은 깊어갔네.
春宵苦短日高起 봄밤의 짧음을 한탄하여 해가 높이 뜬 뒤에야 천자께서 일어나셨으니
從此君王不早朝 그 때부터 천자께선 조회를 거르셨네.
承歡侍宴無閑暇 천자의 총애입은 그녀 한가할 틈이 없었으니
春從春游夜專夜 봄따라 봄에 놀고 밤마다 천자를 독차지했네.
後宮佳麗三千人 후궁에 미녀가 삼천 명이나 있었지만
三千寵愛在一身 삼천 명에게 내려질 사랑 그녀 혼자 받았네.
金星粧成嬌侍夜 금옥에서 곱게 치장하고 천자의 밤 시중 들었고
玉樓宴罷醉和春 옥루에서 잔치 끝나면 취한 마음 봄기운에 녹아 들었네.
姉妹弟兄皆列士 그녀의 자매 형제들 그녀 덕에 보지를 나눠 받아
可憐光彩生門戶 아아,그들의 집 문에서 광채가 빛나게 되어,
遂令天下父母心 아침내 천하의 부모들 마음은
不重生男重生女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하게 여기게 되었네.
驪宮高處入靑云 여산의 화청궁은 구름타고 솟았고
仙樂風飄處處聞 선계의 음악이 바람에 실려와 곳곳에서 들렸네.
緩歌慢舞凝絲竹 느린 가락의 노래와 고요한 춤이 음악과 어울어지니
盡日君王看不足 천자는 하루 종일 넋 잃고 바라 보았네.
漁陽비鼓動地來 느닷없이 땅을 흔드는 전고소리 어양에서 들려 오더니
驚破霓裳羽衣曲 연주되던 예상우의곡 멎게 하였네.
九重城闕煙塵生 천자의 궁에도 전화의 연기와 먼지가 피어 올랐으니
千乘萬騎西南行 천자의 일행은 촉으로 피난길에 올랐네.
翠華搖搖行復止 천자의 깃발 흔들흔들 나아가단 멎고,멎었다간 다시 나아가다
西出都門百餘里 장안 서쪽 백여리 되는 마외파에 이르렀네.
六軍不發無奈何 호위병들은 하나같이 발걸음 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宛轉蛾眉馬前死 갸름한 눈썹의 미인 병사들의 발 앞에서 자결하고 말았네.
花鈿委地無人收 꽃비녀 떨어져도 아무도 주워 들지 않았고
翠翹金雀玉搔頭 취교,금작,옥소두 모두 땅에 흩어졌네.
君王掩面救不得 천자는 얼굴 가린 채,그녀를 구하지 못하여
回看血淚相和流 머리돌려 피눈물을 비오듯 흘렸네.
黃埃散漫風蕭索 누런 먼지 흩어지고 바람 쓸쓸히 부는데
云棧영紆登劍閣 구름에 걸린 잔도 따라 구불구불 검산에 올랐네.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 아래엔 오가는 사람마저 없었고
旌旗無光日色薄 천자의 깃발은 빛을 잃고 해마저 저물었네.
蜀江水碧蜀山靑 촉강도 푸르고 촉산도 푸르건만
聖主朝朝暮暮情 천자의 마음은 자나깨나 귀비를 그리는 정으로 가득찼네.
行宮見月傷心色 행궁에서 달을 보니 절절로 마음 상했고
夜雨聞鈴腸斷聲 밤비 속에 들려 오는 말방울 소리는 천자의 애를 도려냈네.
天旋地轉回龍馭 천하의 정세가 바뀌어 천자께서 돌아오시게 되었는데
到此躊躇不能去 마외역에 이르렀을 때엔 차마 발걸음 뗄 수가 없었네.
馬嵬坡下泥土中 귀비가 쓰러졌던 흙더미 속에는
不見玉顔空死處 옥같은 귀비의 얼굴 보이지 않고 죽은 곳만 남아 있었네.
君臣相顧盡沾衣 군신이 서로 돌아보며 눈물만 흘리며
東望都門信馬歸 동쪽 장안을 향해 말이 걷는 대로 몸을 맡겼네.
歸來池苑皆依舊 궁중에 돌아오니 못도 뜰도 예모습 그대로였고
太液芙蓉未央柳 태액의 연꽃도 미양궁의 버들도 예모습 그대로였네.
芙蓉如面柳如眉 연꽃은 귀비의 얼굴 같고 버들은 그녀의 눈썹 같았으니
對此如何不淚垂 그것들은 마주대하고 어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었으리,
春風桃李花開日 봄바람에 복숭아꽃 살구꽃 흐드러지게 피는 밤,
秋雨梧桐葉落時 가을비에 오동잎 소리없이 떨어질 때면 그리움 더욱 사무쳤네.
西宮南內多秋草 서궁과 남원에 가을 풀 무성하고
落葉滿階紅不掃 어전 섬돌에 낙엽 쌓여도 쓸어 낼 사람 없었네.
梨園子弟白發新 이원의 학생들 백발이 성성해졌고
椒房阿監靑娥老 귀비를 모시던 군녀들도 모두 늙었네.
夕殿螢飛思초然 밤의 어전에 반딧불 날아들 때면 더욱 처량해지고
孤燈挑盡未成眠 외로이 등불 심지 돋우며 잠못 이루니,
遲遲鍾鼓初長夜 종소리와 북소리가 느리게만 느껴지고,밤이 깊다는 것 비로서 알게되었네
耿耿星河欲曙天 은하수 희미해지며 새벽 다가오는데,
鴛鴦瓦冷霜華重 원앙 기와에 꽃같은 서리 무겁게 내리고
翡翠衾寒誰與共 비취 이불 싸늘한 채 함께 덮을 사람 없었네.
悠悠生死別經年 아득하여라,생사를 달리한지 몇 년이나 지났나,
魂魄不曾來入夢 귀비의 혼백 꿈속에마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네.
臨공道士鴻都客 임공의 도사는 선계에서 내려온 사람으로
能以精誠致魂魄 정신을 집둥하여 죽은이의 혼백을 불러낸다고.
爲感君王輾轉思 그는 천자께서 귀비를 그려 잠못 이룬다는 말에 감동하여
遂敎方士殷勤覓 마침내 방사로 하여금 귀비의 혼을 찾게 하였네.
排空馭氣奔如電 바람을 가르고 구름을 타 번개처럼 달려가
升天入地求之遍 하늘 끝 땅 속까지 남김없이 살펴
上窮碧落下黃泉 위로는 벽락,아래로는 황천까지 뒤졌으나
兩處茫茫皆不見 두곳 모두 망망할 뿐 귀비의 혼백 찾지 못했네.
忽聞海上有仙山 그때 갑자기 들려 온 말이 있었느니, "바다 가운데에 선산이 있어
山在虛無표묘間 아득한 허공 먼 곳에 있고,
樓閣玲瓏五云起 누각은 목처럼 빛나고 오색 구름 피어 오르는 곳으로,
其中綽約多仙子 그곳에는 아름다운 선녀들이 모여 사는데,
中有一人字太眞 그중 한 선녀의 이름이 옥진으로,
雪膚花貌參差是 눈같은 살결 꽃 같은 얼굴이 귀비인 것 같다"고
金闕西廂叩玉경 선산의 황금 대궐 서쪽 방에 이르러 옥문을 두드리고
轉敎小玉報雙成 소옥으로 하여금 쌍성에게 알리도록 말 전했네.
聞道漢家天子使 천자의 사자가 한나라에서 왔다는 말 전해 듣고
九華帳里夢魂驚 화려한 장막 안에서 잠들어 꿈을 꾸던 옥진의 혼이 놀라 깨었네.
攬衣推枕起徘徊 옷을 들고 베개 밀치며 일어나 잠시 서성이는 것 같더니
珠箔銀屛이이開 구슬 발은 병풍 차례로 열리고 그녀의 모습 나타났네.
云빈半偏新睡覺 구름 같은 머리 반쯤 흐트러진 채 이제 막 깨어난 모습으로
花冠不整下堂來 머리장식 매만지지도 않고 당에서 내려왔네.
風吹仙袂飄飄擧 바람 부는 대로 소맷자락 나부끼니
猶似霓裳羽衣舞 옛날 예상우의무를 추던 그녀를 보는 듯했고,
玉容寂寞淚欄干 옥같은 얼굴 수심에 젖어 비오듯 눈물 흘리니
梨花一枝春帶雨 활짝핀 배꽃 한 가지가 비에 젖는 듯했네.
含情凝제謝君王 그녀는 그윽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더니 천자께 전할 감사의 말 했네.
一別音容兩渺茫 "헤어진 뒤 옥음,용안 듣고 뵙지 못하여
昭陽殿里恩愛絶 소양전에서 받던 은총과 사랑 모두 잃은 채
蓬萊宮中日月長 이곳 봉래궁에서 긴 세월 보내고 있읍니다.
回頭下望人환處 머리 돌려 저 아래 세상 바라보아도
不見長安見塵霧 장안은 보이지 않고 번지와 안개만이 보일 뿐입니다.
唯將舊物表深情 간직하고 있는 물건으로 저의 깊은 정 나타내고자 하니
鈿合金釵寄將去 여기 자개 상자와 금비녀 가져다 천자께 보여드리십시오.
釵留一股合一扇 비녀는 반 쪽씩,상자는 한 쪽씩 간직하고자
釵擘黃金合分鈿 황금 비녀 토막내고 자개 상자 둘로 나누었읍니다.
但敎心似金鈿堅 우리의 마음 이것들처럼 굳고 변하지 않는다면,
天上人間會相見 천상에서건 인간 세상에거건 꼭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臨別殷勤重寄詞 헤어질 무렵,간곡히 다시금 전할 말 부탁했는데
詞中有誓兩心知 그 말에는 두 사람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네.
七月七日長生殿 칠석날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 밤 깊어 사람 없자 은밀히 속삭였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선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땅에선 연리지가 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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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두지육(鷄頭之肉) ]
[요약] (鷄: 닭 계. 頭: 머리 두. 之: 갈 지. 肉: 고기 육)
'맨드라미 열매의 과육'이라는 뜻으로, 여성의 젖가슴을 비유하는 말.
[출전]《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
[내용] 이 말은 당(唐)나라 황제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고사(故事)에서 유래한다.
하루는 양귀비가 화청궁(華淸宮)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나서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몸에 두르고 있던 수건이 떨어지면서 곤혹스럽게도 양귀비의 알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때 그녀의 양쪽 젖가슴도 봉긋하게 드러났는데, 이 모습을 본 현종이 감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드럽고 따듯한 것이 계두의 과육을 막 벗겨 놓은 것 같도다(軟溫新剝鷄頭之肉).”
여기서 계두(鷄頭)는 닭대가리가 아니라 맨드라미의 별칭으로, 꽃줄기 윗부분의 주름진 모양이 수탉의 볏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또는 가시연밥(가시연꽃의 열매:芡)의 생김새가 닭 머리와 같다고 하여 계두실(鷄頭實)이라고 하는데, 땅 속에서 자라는 뿌리는 식용하고, 열매와 씨는 약용한다.
현종은 양귀비의 드러난 젖가슴이 맨드라미 열매(또는 가시연밥)를 막 까놓은 것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 고사는 성당(盛唐) 시기의 풍문과 설화를 담은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개원·천보는 현종이 사용한 연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계두지육은 여성의 젖가슴을 비유하는 일종의 육두문자(肉頭文字)이다.
[출처] 계두지육(鷄頭之肉) |작성자 몽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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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와 현종황제의 사랑이야기 민초
텔레비전에 나오는 젊은 여성들을 보면 하나같이 미인들이다. 늘 예쁜 얼굴만 보다보면 예쁘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도 있다. 밭에서 일하는 시골 아낙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어 비교를 해야 비로소 그들의 뛰어난 미모가 돋보인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은 칼을 대서 얼굴을 다듬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렇더라도 본바탕의 미인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미인의 양산에는 치장의 기술도 한몫한다. 옛날 미인들도 치장에 있었을까. 현대와 같은 과학적인 정형외과술은 논외이고 메이크업 화장 재료로 미미했을 옛날 미인은 그러기에 더욱 이상적인 미인의 모델이었을 것이다. 서양에서 클에오파트라를 내세울 때 동양에서는 양귀비로 당당하게 맞선다.
당나라 시대의 대시인 이백(李太白)은 양귀비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고, 백낙천(白居易)은 현종과의 비극적 사랑을 시로 지어 장한가(長恨歌)를 후세에 남겼다. 동양사는 경국지색이라 하여 역사상 가인(佳人) 네 미녀를 꼽는다. 춘추전국시대의 서시(西施), 전한의 왕소군(王昭君), 항우의 애첩 초선(貂嬋), 그리고 현종의 양귀비(楊貴妃)이다. 이들은 단순이 예쁘게 생겼다는 정도가 아니라 가무와 음률이 뛰어났으며 총명하면서도 용모가 절세가인이었다. 경국국색(傾國之色) 곧 나라의 운명을 좌우했던 역사상의 미모를 특징적으로 비유한 시가 전해온다.
물가에 서 있는 청초한 서시
비파 소리에 지나가던 새도 내려앉은 왕소군
달도 부끄러워 숨어버린 초선
꽃잎도 스스로 시들은 양귀비
양귀비가 후세에 더 유명해진 까닭은 현종과의 사랑행각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현종(玄宗 李隆基 재위712-756)은 중국 당나라 제6대 황제이다. 현종은 측천무후(則天武后)와 위후(韋后) 2대에 걸친 빈계사신(牝鷄司辰)을 구데타로 종식시킴으로써 사서(史書)에서의 이른바 개원의 성세(開元盛世)를 이룩한 걸출한 황제이다. 축천무후는 우리나라에서도 아는 사람은 안다. 원래 당태종의 후궁이었다. 고종(高宗)은 아비의 후궁이었던 여인을 취하여 황후를 내치고 그녀를 황후로 삼았다. 고종이 일찍 죽자 측천무후는 소생인 아들들을 물리치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 역사상 유일하하고도 최초의 여황제가 되었던 여걸이다. 축천무후의 철권정치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백성의 원성도 많이 샀던 것 같다. 위후(韋后)는 시어머니인 측천무후를 본 따 지아비인 황제 중종(中宗)을 젖혀놓고 정권을 전단했다. 이 일을 사가들이 빈계사신이라고 빈정댔다.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牝鷄司辰)은 자연을 거스름이다. 부인이 남편의 할 일을 가로막고 마음대로 하는 것 또한 안 될 일이다. 무후와 위후가 바로 그짝이라는 것이다.
현종은 성정이 총명할 뿐 아니라 다재(多才)한데다가 특히 음률에 통했으며 글씨를 잘 썼고 의례범절이 분명하여 비범한 품격을 갖추었다고 구당서(舊唐書)는 전하고 있다. 주변 이민족들이 이미 당(唐)의 그늘아래 귀속되고 치세의 태평성세는 학예를 번창케 했으며 불교도 흥륭하여 대당(大唐)의 위용과 찬란한 문화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세계를 현혹하고도 남았다. 당태종이 당의 기초를 확립했다면 현종의 치세는 당의 최난숙기였다고 할 수 있다. 신라 성덕왕(聖德王)의 부음에 즈음하여 조문사절을 파견할 때 바둑 고수를 부사로 하여 보낸 사람이 바로 현종으로, 역사상 최초의 애교넘치는 국제바둑 외교였다.
이렇듯 영명한 현종도 만년에는 정치에 싫증이 난데다가 총애하던 반려(伴侶) 무혜비(武惠妃)를 잃고는 가무연락에 빠져드는 일이 잦았다. 이때 현종 앞에 나타난 여인이 양귀비였다. 양귀비는 현종의 18번 째 왕자 수왕(壽王)의 아내였다. 현종 56세, 양귀비 22세 때이다. 여염집으로 치면 며느리지만 황도에는 자고로 윤리가 적용되지 않았던가. 고종도 아비인 태종의 후궁을 취하여 측천무후를 만들지 않았는가. 아무튼 양귀비는 자실이 풍염(豊艶)한데다가 재지명민(才智明敏)하고 가무와 음악에 능했으며 특히 빈계사신의 자리를 탐내지 않았다. 예술가 기질인 현종이 그러잖아도 정치에서 멀어지고 싶은 차에 양귀비의 존재는 구원이었을 것이다. 황제가 거동할 때마다 양귀비가 따르고 어가에도 같이 탔으며 연회석이나 침상에도 양귀비밖에 없다고 당나라의 문인 진홍(陳鴻)이 장한전(長恨傳)에 묘사하고 있다.
어느 날 현종이 바둑을 두는데 그때도 양귀비가 시립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양귀비가 바둑을 알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패세가 짙은 황제의 바둑을 감지하고 짐짓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트려 바둑판을 허틀었다. 황제가 패배를 면하여 좋아했음은 말할 나위없다. 서양잡조(西陽雜俎)라는 고문헌에 나오는 얘기이다. 현종은 중국 역대 황제중 무류의 바둑 애호가였을 뿐 아니라 바둑을 중흥시켰고 왕적신(王積薪)이라는 명수를 배출했다. 왕적신은 널리 알려진 고사로 해서 더 유명하다.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 현종이 수도인 장안을 버리고 백관을 거느려 서쪽의 촉(蜀) 지방으로 피난을 갈 때 왕적신도 하급관원의 일원으로 수행했다. 길은 험난하고 날은 저문데 인가도 별로 없고 그나마 비바람을 피할만한 집은 고관들이 차지하여 왕적신이 의탁할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늙은 노파가 사는 허름한 집 툇마루에 하룻밤 신세를 질 수 있었다. 그 집은 과부 고부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피난길의 밤은 깊어도 잠을 들 수가 없었다. 문득 고부간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오지 않으니 바둑이나 한 수 할까’
‘예에 그러지요 어머님’
바둑이라는 소리에 왕적신이 귀가 번쩍했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오밤중인데 바둑을 두자고 하니 말이 되는가.
‘동의 5 남의 9에 두었습니다’
며느리가 선번인 모양이다.
‘나는 동의 5 남의 12에 두겠다.
‘서의 8 남의 10에 두겠습니다’
‘그럼 난 서의 9 남의 10...........................
고부간의 운석은 신중했다. 왕적신은 머릿속으로 돌의 진행을 하나하나 복기했다. 그리하여 36수 째에 이르러 시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졌지? 내가 9집 이겼다’
날이 새자 왕적신은 의관을 정제하고 간곡하게 한 수 배움을 간청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손님이 바둑을 좀 아는 것 같으니 몇 가지 일러드리라고 했다. 며느리는 공격과 수비, 사는 수 잡는 수 등의 수법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왕적신이 계속 더 지도해주기를 요청했으나 시어머니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만하면 인간계에서 무적일 것이다’
왕적신이 정중히 사례하고 헤어져 몇 발작 걷다 아쉬운 나머지 뒤돌아보니 고부의 집은 흔적도 없었다. 이로부터 왕적신의 바둑은 천하무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매도 고부간의 36수 9집승의 바둑을 아무리 검토해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 기보가 등애개촉세(鄧艾開蜀勢)라 이름하여 후세에 전해진다(古事類苑).
그런데 당국사보(唐國史補)라는 문헌에 실려 있는 고부전설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왕적신이 천하무적을 과시하며 서울로 가는 도중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여주인 노파가 며느리와 벽을 사이에 둔 각방에서 바둑을 말로 두는 것을 목격하고 거기서 따로 가르침을 받아 진정한 명수가 됐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원형인지 알 수 없으나 요컨대 귀신에게 전수를 받아 일반인으로서는 이룰 수 없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으로 바둑을 신격화하려는 전설이라 하겠다.
안록산의 반란은 천하 고수 왕적신도 만들어냈지만 양귀비와 현종의 사랑을 비극으로 끝나게 한 요인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현종이 양귀비를 가까이 하여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양귀비가 황비 자리를 노리거나 권세를 탐하지 않았던 점이다. 그게 현종의 마음에 들었고 안심사항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역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양귀비의 오라비 양국충(梁國忠)이 재상(宰相)의 지위까지 올랐는데 그 집정이 인심을 얻지 못하여 안록산의 반란을 자초하는 도화선이 됐다. 편안하던 수도가 순식간에 반군의 수중에 들어가 황제를 비롯한 조정이 도망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피난길에서 양국충은 부하들의 손에 개죽음을 당하고, 마침내는 원성이 양귀비에까지 이르러 “양귀비를 죽여 만백성의 분노를 진정시켜야 한다”는 병사들의 아우성에 현종도 더는 살려낼 수 없음을 깨닫고 소매로 앞을 가리고 양귀비를 내줌으로써 길갓 잡초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현종은 이윽고 숙종에게 양위하고 태상황으로 효도를 받았으나 그렇게 좋아하던 바둑도, 연회도 모두 멀리한 채 쓸쓸히 지내다가 양귀비의 뒤를 따라갔다.
(검찰동우회지 2010년 상번기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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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내용이 어수선하여 실례많습니다만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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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들려 장문의 지식을 알려주시니 감사 감사 ..그리고 양귀비 꽃 시흥시에 오시면 지천으로 있지요 열매에 칼집을 내면 흰액 고것이 아편 이라니 ,,봉봉 가는게라는 거지요
~~~ 모란꽃두 아름답구 작약꽃두 아름답 ,,, 또 다른 꽃인들 아름답지 않으리 ㅠㅠㅠ 잠시, 꽃잎 위에 나비 되었다가 감상 잘 하고 물러갑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