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칙[芭蕉주杖(파초주장)/파초의 주장자]
芭蕉和尙 示衆云, 爾有주杖子, 我與爾주杖子, 爾無주杖子, 我奪爾주杖子.
파초화상 시중운 이유주장자 아여이주장자 이무주장자 아탈이주장자
파초 혜청 선사가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너희에게 주장자가 있으면 내 주장자를 주리라. 너희에게 주장자가 없으면 주장자를 빼앗으리라”
[評唱]
無門曰, 扶過斷橋水, 伴歸無月村. 若喚作주杖자 入地獄如箭.
무문왈 부과단교수 반귀무월촌 약환작주장자 입지옥여전
의지해 다리가 끊긴 물을 건넜고, 벗삼아 달 없는 마을을 찾아들었다네. 만약 주장자라 부르면 지옥에 화살같이 들어가리라.
[頌]
頌曰. 諸方深與淺, 都在掌握中, 撑天幷 地, 隨處振宗風.
송왈 제방심여천 도재장악중 탱천병주지 수처진종풍
이 모두가 내 손안에 있다
하늘을 괴고 땅을 떠받쳐
이르는 곳마다 종풍을 휘날린다
[蛇足]
파초선사는 백제사람으로 일찌기 당나라에 들어가 위앙종을 창설한 앙산의 법손이다. 중국선종의 四祖 道信의 법을 이은 신라의 법랑 선사가 650년에 선종을 신라에 도입했는데 파초선사는 그 이전에 중국에 들어갔지만 국내에 다시 돌아온 기록이없다.
파초선사가 대중들에게 말한 이 공안은 한마디로 숨통을 그대로 조여버린 형색이다. 앞선 칙에도 언급되었지만 진퇴유곡의 언구다. 어떻게 수습할까? 우리의 상식은 없는자는 필요하고 있는자는 불필요한데 이건 완전히 역행이다. 이것이 바로 言語道斷이 아닌가.
여기서도 언구는 즉 상식은 일호의 가치도 없다. 언구를 초월한 절대적 경지, 禪旨에서 보면 우선 주장자의 정체다. 이 주장자는 그냥주장자가 아니다. 여기엔 나를여읜 일체의 절대적인 경지의 대상이다. 즉 진리의 당체인 것이다. 다만 나툼자체를 편의상 주장자란 虛名을 사용하였을 뿐이다. 그러니 있고 없고의 분별이 있을수 없고 주고 빼앗을 분별이 어디있겠는가....
禪이란 自我의 否定속에서 그를 초월(절대 평등지)하고 그 부정을 부정함, 즉 초월을 현상계에 재 비춤으로서 현상계의 당체를 꿰뚫어 보는 것이다. 이것이 평상심시도이다. 그래서 그 주장자라는 것은 가명이니 차별지(현상계)의 주장자가 아니고 초월된 절대평등지의 當體이니 다리없는 강물 건널땐 다리요 그믐밤엔 횃불이되고 하는 것은 자유자재다. 물론 이것도 편의상 표현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상황이니 이 주장자의 정체를 모르면 바로 지옥이다. 지옥 천당은 어떤곳인가. 心外無法이라 禪에선 다 내안에있다. 즉 모든법은 내안에 있는 것이니 주장자의 정체를 알면 천당이요 모르면 바로 현상계의 無明속이니 생노병사우비뇌고에 허덕이는 지옥인 것이다.
천하를 좌지우지하는 이러한 상황을 주장자 하나로서 결정을 지우니 파초선사의 위력은 정말로 대단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 칙에선 언설을 많이 할애하였는데 조금만 觀하면 알음알이로도 충분히 得할수 있으리라. 하지만 진실로 체험하지 못하면 독이 될 수 도있으니 여러분은 꼭 가부좌를 틀고 앉아 이 일어나는 허상의 의 정체를 파악하시기 바람니다. 이것이 뭣 인고!!!
첫댓글 법 밖에서 법을 구하니 무슨 소용이랴! 붓다는 평생 주장자가 없었다. 중국불교화 되면서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 중의 하나가 주장자다. 주장자 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