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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영호남 지역 감정은 없어져야합니다
글쓴이: 작가 노숙 김영진
영호남 지역감정은 1971년 4월27일 대한민국
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김대중후보가
전라도 광주 군중 4만명을 모아 놓고
"경상도 출신 박정희가 대통령하면서
경부고속도로를 놓고 박정희 고향 경상도에 공장을
집중적으로 짓고 전라도에는 고속도로는 켜녕 양선 철도마져도
놓아주지 않고 우리 전라도인을 물로 보고
박정희가 경상도 사람끼리 다해쳐먹고 홀대하고 있습니다 .
경상도 국힘당 (공화당 )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고
전라도 대표선수 이 김대중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5.18 광주 사태 희생자들에게 보상도 충분히 해주고
경상도에 집중된 경제시설 못지 않게 전라도를
황금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여러분 "
하여 전라도 군중들은 "김대중 선생 만세 !
전라도 만세 !"를 부른게 지역 감정의 시초입니다
이 광경을 텔레비젼으로 본 공화당 (현국힘당) 박정희후보
측에서는 "전라도 김대중 저거 뭐꼬 ?
빨갱이 시키 영호남 지역 감정 일으키고 있잖아 ~~ 십발
각하를 당선 시키고 빨갱이들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서는 관권선거든 뭐든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뛰는수 밖에 없어 에이 밥맛없는 빨갱이 시키 ! "
라고 하자 전라도 김대중 측에서는
"아따 보리문디 경상도 시키 허벌나게 느자구 (싸가지 없다 )하당게
솔찬히(위대한 ) 우리 김대중 선생에게 시방(지금 ) 빨갱이라고 했당가
일베시키들 눈구녕을 어따두고 씨부린당게 ~~십발
전라도 대표선수 김대중 선생을 당선시키고
박쥐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려 전라도가 살기위해서는
전라도인구가 경상도 인구보다 째간(좀모자라도)해도 뭉쳐야 한당게 !"
하고 경상도와 전라도는 한치도 물러섬이 없이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지역감정이 최고조에 다르게 됩니다 .
7대 대통령 선거는 돈주고 유권자를 매수하는
부정 관권 선거가 성행하였고 투표결과
민주 공화당 박정희후보 634만 2828표 (53.19%)
신민당 김대중후보 539만 5900표로 (45.25%)로
민주당 박정희후보가 94만 5928표 차이로 당선되었습니다
선거에 패배한 김대중 전대통령은 회고록에에서
" 관권 부정선거만 없었다면 공화당(현 국힘당)
박정희후보에게 100만표 차이로 이겼을 것이다 "
라고 아쉬워하였습니다 .
당시는 군사정권 암흑기여서 제가 아는 경상도
정치인이나 지인들도 관권선거가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고 아무리 경상도 사람이라
팔이 안으로 굽는다하여도 양심을 속일수는 없습니다
군사정권시절 여당 후보 선거운동원이 돈봉투를
동네 이장에게주면 동네 이장은 반은 딱아넣고
반만 동네 친한 사람에게만 5만원씩 나누어 주는데
농촌 동네 저의 이모도 받았다고 하는데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없습니다 .
문민정부 들어서면서 관권 부정선거는 사라지기
시작하여 현대 대통령 선거 혹은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지방 선거는 관건 부정선거가
거의 사라졌다고 보면되고 선거법이 엄하여
선거법 위반하여 100만원이상 벌금 나오면
당선 무효이기에 과거 군사 정권 선거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입니다
호남인중에는 영호남 지역감정은 김대중이가 시초가 아니라
경상도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할때라고 주장하는데
안동 김씨 세도정치는 1804년 (순조4년)부터 1864년
(고종 1년)까지 안동김씨 김조순 , 김조순의 장남 김유근,
김조순의 3남 김좌근까지 60년간 이루어지며
영의정 김좌근때에는 전라도 나주 기생 양씨를 첩으로
들이면서 경상도와 전라도가 백성들에게 뇌물을
받고 벼슬을 주어 영호남이 사이가 좋았습니다 .
안동김씨 세도정치는 1800년 8월 18일 조선의 22대왕
정조가 죽은후 조선의 23대왕 어린 순조가 11살
1800년 8월 23일 에 즉위하면서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과
순조의 친정이 시작되고 1804년 순조가 15살이 되던해
순조의 장인 안동김씨 영안부원군 김조순 외척 세력이 그의딸
순원왕후를 중심으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비변사등 핵심 기관을 장악하게됩니다 .
김조순의 장남 김유근은 1785년 (정조9년)에 태어나
810년 식년시에 급제, 사서를 거쳐 검상(檢詳)이 되었다.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가 여동생이고,
남동생 중 세도정치의 마지막 집권자격인 김좌근이 있다.
1817년 순조때 이조 참의를 시작으로 대사성, 이조 참판,
대사헌 ,한성판윤 ,병조판서,판돈녕부사 등의 고위 관직을 지냈고
1832년 (순조 33년)아버지 김조순이 사망후 안동 김씨
실권자가되어 1834년 순조가 죽고 조선 24대왕 헌종이
즉위하게되었고 1836년에 중풍으로 쓰러졌고 실어증까지
와서 병마와 싸우다가 1840년(헌종 6년)에 죽었습니다 .
김좌근은 1797년 (정조21년)에 김조순의 3남으로 출생하여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의 남동생이고 급제는 1838년 (헌종 4년)
늦은 나이에 하였고 벼슬길을 시작한 지 4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부교리, 규장각 직각, 이조참의, 이조참판 등등
요직등을 두루 거친 끝에 오늘날의 장관에 해당하는
공조판서와 형조판서와 병조판서와 예조판서와
호조판서와 이조판서까지 오르게 됩니다 .
이 무렵은 김좌근의 누나인 순원왕후가 어린 헌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하던 시기였는데 순원왕후는
오빠인 김유근이나 김유근의 6촌 김홍근 등을
대표로 하는 친정 형제들의 자문에 의지하여
수렴청정을 펼쳤고 김좌근 역시 순원왕후의
자문역을 맡아서 중용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형 김유근은 헌종 재위 중에 중풍에 걸려
2년 후 죽을 때까지 자리를 보전하게 되었고
김유근 대신 6촌형인 김홍근이 뒤를 이어 실세로 자리잡나
싶더니 김유근이 1840년에 죽고 김홍근도 2년 뒤인
1842년에 죽게 되면서 그 뒤를 이어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리더가 돠었습니다
1849년 헌종이 21세에 후사없이죽고 철종이
18세에 즉위하자 순원왕후는 수렴정정을 하였으며
철종의비 철인왕후도 안동권씨 가문에서 나왔습니다
김좌근은 가문에 반대하는 신하들을 숙청하고
1853년 (철종 4년)에서 1864년 (고종 1년)
까지 영의정을 3번이나 하게됩니다 .
안동김씨의 전성기로, 김좌근의 집은 눈도장을
찍으려고 벼슬 청탁을 꾀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며 매관매직까지 공공연히 행해지고
그의 세도기에는 국가 경제와 민생이 파탄나
삼정의 문란으로 각지에서 민란이 많이 일어났고
조선은 국가 멸망의 길을 을 본격적으로 걷게 되었습니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순조4년 1804년부터 고종1년
1864년까지 60년간 세도정치를 누렸습니다 ,
김좌근에게는 전라도 나주 기생 출신 양씨가 있었는데
김좌근이 없을때는 양씨에게 뇌물을 주면 양씨가
김좌근에게 이야기하면 벼슬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1964년 고종이 12살에 조선 26대왕으로 즉위하면서
고종의 아버지 흥선 대원군이 1873년 11월까지
섭정을 하게되면서 안동김씨의 세도 정치는
끝이나게 되고 흥선 대원군은 안동 김씨의
절대 권력을 빼앗게되고 명예는 보존해 주었고
70세가 되면 물러나야하는데 궤장을 하사하여
4년간 총재관 ,영삼군부사 ,영돈녕 부사를 하다가
1869년 고종6년 74세로 죽었습니다 .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현대까지도 영호남 지역 감정이 없어지지 않는것은
전라도는 민주당 텃밭이고 경상도는 국힘당 텃밭이기에
상대후보가 서로 자기 지역구에서 당선되지 못하게
내로 남불로 지역 갈등을 부축이기 때문입니다
국힘당후보가 전라도에서 국힘당 간판달고 최고 성적을 낸것은
이정현 (3선)후보이고 민주당 후보가 경상도에서 민주당 간판
달고 2026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에서는 민주당 전재수후보가
부산시장에 당선이되고 울산에서는 김상욱후보가 민주당
간판달고 울산 시장 당선되고 김천에서는 민주당 시의원후보가
4명 당선되고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 안동에서는
민주당 시의원 후보가 7명이나 당선되었데
안동시의회는 경북 최초로 이재갑 전반기의장을
민주당에서 맡았는데 현대정치는 국힘당 간판달고 전라도에서
당선되는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보다 단결이 더잘되고
국힘당 정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하여
경상도 보수 강세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빌미를 제공하였습니다
호남사람중에는
"국힘당 이정현(3선)은 전라도 곡성사람인데
국힘당 간판달고 전라도에서 국회의원 되었지만
민주당 이수인은 경상도 칠곡 출신인데 전라도에
국회의원 출마하여 당선된것을 보면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보다 더 마음이
착하고 포용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이수인은 일제 강점기 1941년 4월29일 평양 복심법원
판사를 지낸 아버지 이충녕과 어머니 강금복사이의
4남 5녀중 차남으로 태어 났고 형 이수성은 1995년
20대 서울대학교 총장, 김영삼 정권때는 29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고향은 경북 칠곡이고 서울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 대학교 문리과 대학 정치학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졸업후 영남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역임하던중
1980년 5월 17일 광주 사태 내란이 일어나면서
해고되었고 1988년 한겨레 민주당에
입당하여 회계 책임자와 총무위원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하였습니다 .
한겨레 민주당이 1988년 13대 국회의원선거에
대거 낙선하면서 많은 한겨레 인사들이 김대중이 만든
평화 민주당에 입당합니다 .
1990년 11월 전남 함평군 영광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고향이 경북 칠곡군 이수인을 평화 민주당 후보로
공천을 주어 김대중 총재는 영호남 지역 감정을 없애는
이유라고 당에서 밀어주어 13대 국회의원이 되는데
경상도 출신으로 전라도에서 당선된 첫사례인데
결자해지 차원일것입니다 .
국힘당 경상도 대통령 출신으로
박정희대통령은 총맞아죽고 ,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내란혐으로 사형 , 무기징역을 1심에서 선고 받고
김영삼 대통령때는 IMF 외환위기가 왔고
이명박 대통령은 다스횡령 ,삼성뇌물 받은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7년 벌금 130억원 선고받고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과 국정농단하여 대통령 파면되었고
국힘당 소속 윤석열은 비상 계엄 선포로 헌법을
위반하여 대통령직 파면되었습니다 .
경상도 김영삼 대통령의 IMF 외환위기는 민주당
전라도 김대중후보에게 15대 대통령에 오르게하고
국힘당 이회창후보의 아들 병력문제로 경상도
민주당 노무현에게 16대 대통령에 오르게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은 민주당 문재인후보
에게 19대 대통령에 오르게하고
국힘당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으로
경상도 민주당 이재명에게 21대 대통령에
오르게 합니다 .
지역 감정을 없애라면 지역 균형 발전을위하여
전라도 호남에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이
아주 화끈하게 전남 광주에 800조원이라는 반도체
클러스트를 조성한다고 합니다
영호남을 떠나 전라도 호남이든 경상도 영남이든
우리 대한 민국의 땅이기에 지역이 균형 발전되면 좋겠죠
다만 전라도 광주가 민주당 심장이고
걍상도 대구가 국힘당 심장이기에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인하여 영호남
지역 감정은 완전히 없어지기는 어렵습니다 .
민주당은 당대표를 선출하기위하여 민주당 권리당원
투표를위하여 전국을 순회 경선을 하는데
정청래 후보(현당대표)는 8일 전당 대회
대구 경북 순회 경선 합동연설회에서
" 이명박 임기내 반도체 출시를 하겠습니다 "
하여 말실수로 많은 사람들이 웃었고
이명박이 아니라 이재명입니다 ,
앞서 유세도중 정청래 후보는
" 감방 갖다온 이재명"으로 말실수하다가
이명박으로 수정하는 헤프닝이 있었습니다 .
민주당 전당대표는 2026년 8월 17일 충남
대전 컨벤션 센타에서 개최 되는데
기호1번 송영길(전 당대표) .기호2번 정청래(현 당대표)
기호3번 김민석 ( 민주당 이재명 정부 전 국무총리 )
이 출마하였는데 권리당원 ,대의원 투표 70% ,
국민여론조사 30%로 당대표 ,최고위원 선출한다고합니다 .
전국 순회결과 누적 득표율은 김 후보(49.91%),
정 후보(41.51%), 송 후보(8.58%) 순이었습니다.
최종 결과는 권리당원·대의원 투표 70%,
국민여론조사 30%를 합산해 발표합니다 .
김민석 후보가 권리 당선 60%를 차지하는 호남에서
57.54%를 얻어 정 후보(32.65%)를 24.90% 포인트
차이로 따돌리고 있고 이재명 대통령을 등에 업고 있기에
사실상 민주당 당대표 당선은 확실합니다 .
경상도 당은 변천하여 국힘당이되었고
전라도 당은 변천하여 민주당이되었기에
민주공화당을 국힘당으로 표기하고
평화민주당을 민주당으로 표기합니다
국힘당 박정희 대통령때 남북 적십자 회담은
1971년 9월 20일 1차 예비 회담이
열렸고 1972년 8월 29일 1차 본회담이 열렸습니다 .
남북 적십자회담은 육이오사변으로 인하여
남북으로 갈라져 알수 없는 이산 가족의 생사를
알아보고 상봉하기 위함입니다 .
남한은 북한이 같은 민족이라 손자병법에서
응급했듯이 전쟁하지 않고 서로 비방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려고 하는데 북한 공산당은
두얼굴을 갖고 있어 앞에서는 웃으며 대화하고
뒤에서는 땅굴을 파서 남한을 공산화하려는것입니다
북한이 휴전선 비무장 지대에서 파내려온
제1 땅굴은 1974년 11월 5일 연천군 고랑포에서
발견되었고 제2땅굴은 1975년 3월 19일 철원군
북방 13킬로미터 비무장 지대에서 발견되었고
제3땅굴은 1978년 10월 17일 판문점 남방
4킬로미터 지점에서 발견되었고 제4땅굴은
1990년 3월 3일 강원도 양구군 동북방
26킬로미터 비무장 지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
북한 김일성은 북한 유치원 교과서에
" 남한의 박정희는 박쥐다 ,
박쥐는 모간지를 틀어 죽여야한다 "
고가르치고 있었습니다 .
대한 민국 15대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13일부터 2000년 6월 15일까지 북한 김정일과
만나 남북 정상 회담을 합니다 .
민주당 김대중 정부는 남북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기위하여 북한 김정일에게 4억 5천만 달러
송금과 5천만 달러어치의 현물을 제공하였는데
노무현 정부때 특검이 열였으며 현대그룹 정몽헌
2000년 3월 현대그룹 회장이되었고
2002년 9월 대북 송금의혹이 불거지면서
경찰의 수사압박이 가해지자 2003년 8월 4일
서울 종로구 사옥에서 투신 자살을 하였고
대북 송금에 적극 관여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실형을 살다가 복권되었습니다 .
2002년 6월29일 제2 연평 해전이 있었는데
북한 경비정이 연평도 서쪽 7마일 해상에서
NLL을 침범하여 경고 방송을 했으나
오전 10시 25분 갑짜리 우리 해군 경비정
참수리 357호에 85mm포를 쏘며 공격하여
양측 함정에서 교전이 일어났고 고속 경비
초계함이 합류하여 북한 경비정을 향하여
기관총과 포로 대응하였습니다
북한 경비정은 북한으로 퇴각하면서
외부 갑판이 반파되었고 북한군 13명이
죽었고 15명이 부상을 입었고
남한측 피해는남한 해군 윤영하대위를
비롯하여 6명이 죽고 19명이 부상 당했고
참수리호는 침몰당하였습니다 .
2000년 6월 13일 남북한 정상 회담하려고
남한이 피같은 돈 4만 5천달러와 5천만
달러의 현물도 북한에 주었는데
6,15 남북한 공동선을 위반하고 은혜를
원수를 갚는 북한 김정일에게 항의하였으나
소용없었고 돈주고 귀빵맹이 맞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
국힘당 14대 이명박 대통령때는 남북한
관계가 경색되어 북한 김정일은 유치원 교과서에
"남한의 이명박은 쥐명박이다
유치원 어린이는 쥐새끼를 때려 잡자"
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처해상에서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하여 천안함이
침몰하여 우리 해군 40명이 죽었고 6명이 실종되었습니다 .
2010년 11월23일 오후 2시24분 북한은
선전포고도 없이 NLL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연평도에 80여발의 포를 쏘아
해병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부상했으며
민간이 2명도 사망하고 3명이 부상 당했고
남한의 해병도 K-9자주포로 100여발의
대응 사격을 하여북한군 10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민주당은 "북한이 같은 민족이기에 북한
신경건드리지말고 평화롭게 경제에만 신경 쓰자"
는것이고 남북 정상 회담도 하고 싶은데
북한에서 방북 비용을 요구하기에나중에
문제가 생길까봐 두렵고 북한에 돈을 주면
그돈을 굶주린 북한 인민에게사용하면 좋은데
우리 남한을 위협하는 핵무기 만드는데 사용하니
그게 국힘 보수주의자들이 염려하는것입니다 .
국힘당은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간사한 공산주의자들이기에
반공으로 맞서자 "는 것입니다 .
1971년 4월27일 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김대중후보는 전라도 광주에서
4만 관중을 모아놓고 공화당 박정희대통령이
경부 고속 도로를 놓고 경남을 발전시킨것에
대하여 전라도 사람들을 자극시키지 말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전라도를 발전시키
겠습니다 "라고 하였으면 좋았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농업중심에서
경공업 중심으로 경제의 기초를 다지려고
부산이 무역항이기에 수출 물류 수송을 원활하게
하기위하여 경부 고속도로를 놓았고
부산이 발전하다가보니 경남이 발전한것입니다 .
박대통령은 달러가 있어야 경제를 일으킬수 있기에
베트남 파병도하여 달러를 벌어들이고
곡물가도 낮추어야 농산물 수출을하여 타국가와
수출 경쟁력에서 이겨 외화를 많이 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
남한이 북한에 돈퍼다가 주면
북한 공산당이 그돈으로 핵무기를 만들어
우리 남한을 위협하지만 경상도든 전라도든
남한땅이기에 지역 균형 발전을 하면 좋고
이재명 대통령이 개발이 덜된 전라도에
투자한다고 한들 남한 재산이이게 괜찮습니다 .
다만 2026년 6월3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김부겸후보는 대구시장에 출마하면서
"낙후된 대구를 살리려면 민주당 정부의 국비가
필요합니다 . 민주당 김부겸을 밀어주어
대구 시장이되면 대구를 발전시키겠습니다"
라고 하였는데 민주당 김부겸후보는 낙선하였고
국힘당 추경호후보가 대구 시장이 되었습니다 .
국힘당 유승민 전의원은 대구와 광주를 비교하면서
"왜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은
광주에 800조나 되는 돈을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드는데 몰빵하느냐 ?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은 영호남 지역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고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
우리 김천도 2017년 김천 율곡동에 혁신도시가
완성되면서 김천시 인구는 14만2천명을
정점으로 조금씩 줄어들어 김천시 인구는
2023년 4월 기준 13만 8877명,
2024년 9월기준 13만 5767명
2025년 8월 기준13만 3537명
2026년 6월30일 기준 13만 2740명으로
배낙호 김천시장은 제2 공공기관 유취로
일자리 창출을 하여 인구를 증가시키려고 합니다
김천시는 김천 종합 스포트타운 보조경기장서
2026년 8월 14일 부터 2026년 8월 16일
까지 포도축제를 한다고 방송에도 홍보하여
대성황리에 끝났다만 김천 보은 청주
철도를 놓아 청주공항을 통하여 물류 수송,
관광객유취를 하면 큰 시너지효과를 낼수
있다고 판단하고 배낙호시장은 추진하고 있습니다 .
배낙호 김천시장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은
"배낙호김천시장이 김천 시장 1년 6개월
하면서 아무것도 한게 없다 "고하는데
김천 시내와 공원을 다녀보면 달라진게많고
시민들의 민원처리도 아주 잘하고 있고
제2 공공기관 유치하면 업적이 됩니다 .
옥에티라고 김천 대신동 김천 제일 교회앞
근린공원등산로에 벌이 등산객을 쏘아
출입금지 라인을 붙여 놓았던데 등산로가
출입금지되면 운동하려는 시민에게는
무용지물이 되기에 시청 민원실은
119에 연락하여 벌집을 퇴치하여 우리
시민들이 건강을 위하여 자유롭게
산책을 하도록 하여야합니다 .
타김천 시장할때는 환경 미화원이 근무시간에
술도 먹어 간경화로 짤리기도하고 직무정지를
당하는 징계도 받기도 하였는데
배낙호 김천 시장이 되고 부터는 환경 미화원이
쉬지도 않고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인증샷을 상부에 보내기도하고
특히 이마트 근처에서 근무하는 최모 환경미화원은
고참답게 아주 열심히 빗자루질하여 후배에게
귀감이되는것을 보면 박수를 보내고
혁신도시에 근무하는 김모 환경미화원은
대학에서 체육학과를 나왔는데 학교 선생은
안되고 거리 청소하는데 환경 미화원중에
가장 몸이 튼튼하여 일명 헤라 클레스라 부르는
데 동작도 빠르고 힘도 세고 차에다가
일반쓰레기와 재활용 실고 처리하는 수준이
프로급이라 감동 받았고 고참이라
후배들의 귀감이 되어 돈이라도 있으면
빵이라도 한개 사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
나도 내가 살고 있는 목련 아파트에서
하루 3시간 (일요일 제외) 21년째
빗자루질 하고 있다만 김천시 환겅 미화원들이
김천 거리를 깨끗하게해주어 거리 운동하러
나가면 기분이 상쾌하고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하니 큰 박수를 보냅니다
김천 독자들을 거리서 만나면 비렁뱅이 영감 작가보고
"글 잘읽고 있습니다 , 기억력이 대단한 천재입니다 "
라고 칭찬을 하는데 착각입니다 .
저는 머리는 좋은데 대가리가 나쁘고
낫놓고 기억자는 아는데
니은자는 아무리 보아도 모르고
모른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는 백치입니다 .
김천 모중년 여성독자가 " 작가님 ,저는 독해력이 약해서
이제 그만 카톡글 읽으렵니다 "하여
"아네 , 그렇게 하십시요 "하고
독자에서 제외시켜 주었는데 얼마후
치매가 걸려 안타까웠습니다 .
치매는 혈관성 치매도 있지만 알츠하이머
치매도 있기에 혈관성 치매는 고혈압약을
잘챙겨먹고 혈관을 관리해야하고
알츠하이머치매는 독서 ,화토 ,글쓰기 , 바둑 ,
그림그리기 ,등등을 하여 뇌를 자극시켜
예방하여야합니다 .
성경에 보면
"오른손이 하는일을 왼손이 모르게하라 (마태복음 6장 3절)"
는 성경 귀절이 있습니다 .
저는 누군가 크든 작든 은혜를 베풀면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
저는 남에게 은혜를 베풀면 봉사라
생각하고 절대로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인간마다 성격은 다른데 동료 성도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절대 대가를 바라지 말기바랍니다
내가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남이 나에게 은혜를 갚으면 다행이고
안갚으면 그냥 잊어 버리고
은혜를 원수로 안갚으면 천만
다행이라 생각하십시요
말은 혀를 베는 칼이니
함부러 말을 내뱉지 마십시요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면 친구가
없어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됩니다
아무리 잘난사람도
아무리 돈많은 사람도
아무리 높은 권력자도
세월을 이길수 없고 운명이 다하여
죽음을 맞이하면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됩니다 .
김천 제일 교회 목련 아파트
작가 노숙 김영진
서울 대학교 나온 나의형은
독해력이 강하여 책한권도 잠깐이면 읽는데
독해력이 부족한 독자는 장문의글을 읽으려면
지겨워 중간에 포기하기도 합니다 .
저의글은 가명 "제갈공명"으로 인터넷에 올리면
다움 (Daum)운영자가 인기 신문과 동등하게
주요 페이지에 올려주는데
글이 너무 길어 요약하여 600명 독자에게
카톡으로 보내고 상세내용은 인터넷에서 볼수 있습니다 .
전북 전남 호남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영호남 지역감정의 발생원인을 4가지의해 요약할수 있습니다
1. 과거 조선시대부터 국가적 대역죄인 및
누명 및 각종 오명은 쓴체로 많은이들이
전라도 지역 섬으로 유배를 보내어졌다.
2.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발언
(호남 출신 사람들은 뽑지 말며 뽑더라도 절대 요직에 앉히지 말라)
3. 전북 전남 지역에서의 김대중에 대한 너무나도 과도한 신격화 작업
4. 지역발전의 불균형
고이병철 삼성그룹회장은 1910년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
일제 강점기 1938년부터 이승만 정부 , 윤보선정부,
박정희정부 , 전두환정부 1987년까지
상성그룹 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
고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 경북 구미 선산에서
출생하였으며 박정희장군은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테타를 성공하여 1963년12월 17일부터
1978년12월 26년까지 18년간
대한민국 5대 6대 7대 8대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서울을 관할하는 전 6관구 사령관이었던 박정희 소장은
이승만 독재정부시절에도 군사쿠테타를 일으키려
하였지만 자유당 정부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1960년 4,19 학생의거에의하여 무산되었고
박정희는 사회 혼란을 막기위하여 여러번 군사
쿠테타를 시도하려하였고 수차례 상부에 보고되었지만
묵살되었고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소장은
육군참모총장 장도영대장과 김종필 예비역 대령과
함께 사단 병력 포병단 , 해병대와 육군 제1 공수부대
를 동원하여 군사 혁명 (쿠테타)를 성공시키게됩니다 .
박정희는 윤보선 대통령을 회유하여 장면 국무총리를
사퇴시키고 국가 군사 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육군대장 장도영을 1기 의장으로 박정희는 부의장이
되어 국가 재건 최고회의를 만들어 자유당 이승만
독재 정권시절 정치 깡패 이정재와 일당들을
사형시키고 박정희는 장도영의장도 밀어내고
의장이되고 윤보선 대통령도 하야시키고
대통령 권한대행및 육군대장을 승진으로
예편하여 민정이양을 앞두고 1963년에는 민주 공화당
을 창당하여 초대 총재가 되어 5대 대통령선거 후보가됩니다 .
당시 여권으로는 민주공화당 박정희 총재 ,
야권으로는 민정당 윤보선 전대통령 , 민주당
박순천 전의원 , 신정당 허정전 대통령 권한대행겸 국무총리
,민우당 이범석 전국무총리 ,자유당 장택상 전국무총리
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
1963년 10월 15일 5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민주공화당 박정희후보,민정당 윤보선 후보 ,
신정당 허정후보 ,민우당등 소수 정당이 참여하여
7명의 후보가 출마하였습니다 .
선거 결과 민주공화당 박정희후보는 경상도가
고향이지만 전라남도에서 여권 민주공화당
박정희후보 57.22%야권 민정당 윤보선후보
38.31%, 전라북도 여권 민주공화당 박정희후보 49.43%
야권 민정당 윤보선후보 44.65%로 전국
투표결과 민주공화당 박정희후보가 470만 2640표,
민정당 윤보선후보 454만 6614표로 박정희후보가
윤보선후보보다 15만 6026표차이로 이겼는데
전라도에서 표를 많이 이겨 당선된것입니다 .
박정희후보는 여당이었지만 기호 3번을 받았고
기호 1번은 신흥당 장이석(5위) ,기호2번은
자유민주당 송요찬 기권 , 기호4번은 추풍회 오재영후보 (3위),
기호5번은 민정당 윤보선 (2위) ,기호6번 국민의당 허정후보 사퇴,
기호7번 정민회 변영태후보(4위)가되었고
이때 글을 배우지 못한 문맹자도 있었는데
박정희는 기호 1번도 아니었고 군부재자투표도
윤보선이 더많은 표를 얻어 정당하게 국민의
투표로 국민의 심판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된것입니다 .
5대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는 경제 개발
5계년 계획을 수립하고 수출 주도형 제도업 육성
경제 개발을 시작하고 미국과 일본에 크게 의존하던
대한민국은 부산항을 비롯하여 부산 경남지역에
투자를 집중하고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수출로 돈을 벌기위해서는 경쟁력이 필요한데
"저곡가 정책"을 시행하여 쌀값이 오르지
못하게하여 국내 최대 곡창지대
전라도가 피해를 크게 입었습니다 .
1967년 5월 3일 6대 대통령 선거는
기호1번 정의당 이세진후보 , 기호2번 한국 독립당 전진한후보,
기호3번 신민당 윤보선후보 ,기호4번 대중당 서민호후보 사퇴,
기호5번 민중당 김준연후보 ,기호6번 민주 공화당 박정희후보 ,
기호7번 통한당 우재영후보가 출마하였습니다 .
5대 대통령선거에서 전라도 호남에서 박정희에게
15만표로 진것을 억울해하던 신민당 윤보선후보는
호남 유세에서 "민주공화당 박정희후보는
경제 개발을 부산 경남에 집중하고 저곡가 정책으로
곡창지대 전라도가 큰피해를 보았습니다 ."
라고 호소하여 무식한 전라도 농민들은
윤보선에게 호응을 보냈고 무식한 전라도 공장뺑이들도
"왜 박정희는 부산 경남 경제만 살리고 호남을 홀대하냐 ?"
며 윤보선의 유세에 박수를 많이 쳤습니다 .
호남에서 선거 결과를 보니전라남도는 유식한
농민과 유식한 공장뺑이가 약간 더 많은지
전라남도 민주공화당 박정희후보 46.61%,
신민당 윤보선후보 45.82%
전라북도는 무식한 농민과 공장뺑이가 약간더많은지
민주 공화당 박정희후보 47.28%,
신민당 윤보선후보 48.74%로 전라도에서
윤보선후보가 박정희후보보다 눈꼽만큼 앞서갔습니다 .
6대 대통령선거 선거결과는
민주공화당 박정희후보 568만 8666표
신민당 윤보선후보 452만 6541표로
기호6번 민주공화당 박정희후보가
116만 2125표로 신민당 윤보선후보를 이기고
민주주의 선거에의해 국민의 심판을 받아 당선되었습니다 .
1971년 4월 27일 7대 대통령선거때 신민당
윤보선은 더이상 박정희를 이길수 없어 정계은퇴하고
신민당 전라도 출신 김대중후보가 출마하였습니다 .
이번에는 여권 야권 구분하여
여권 기호 1번 민주공화당 박정희후보 ,
야권 제1당 기호2번 신민당 김대중후보 ,
기호3번 국민당 박기출후보 ,
기호 4번 민중당 성보경후보 사퇴 ,
기호5번 자민당 이종윤후보,
기호6번 정의당 진복기후보 ,
기호7번 통일 사회당 깁철후보 사퇴 가
출마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영호남 지역 감정이 생겼으며
전라도와 경상도의 자존심 대선이었습니다 .
전라도 출신 김대중은 1969년 10월 13일
4만명이 모여든 전라도 광주에서 김대중을
포함한신민당의원 6명이
" 박정희는 경상도만 발전시키고 경부
고속도로까지 개설하면서 전라도는
복선마져도 제대로 하지 않는 전라도를
홀대하고 있으니 우리 전라도는
경상도 정권을 타도해야합니다 !"
라고 주장했던것이 영호남 지역
감정이 생겨난 시초가 되었습니다 .
이제 맞서 경상도는
"전라도 김대중은 북한 빨갱이다 ,
빨갱이 김대중이 대통령되면 북한
김일성에게 남한을 드러 바치어 공산화되어
아오지 탄광에 가서 디지게된다 "
고 소문이 퍼져
"전라도 빨갱이 김대중 그놈에게
속아서는 안되재 !"
라고 반공정신으로 뭉치자고 하였습니다 .
북한 공산당이 얼마나 악랄한가하면
1968년 울진 삼척 지구로 침투한 무장공비
5명은 북한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이승복 어린이 (당시 9세)집에서
배가 너무 고파 이승복의 어머니가 삶은 옥수수를
주었는데 잘쳐먹어 놓고는 가족 5명을 안방에 몰아 넣고
" 남조선(남한)이 더 좋으냐 ? 북조선이 더 좋으냐 ?"
고 묻자 이승복 어린이가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
라고 소리치자무장공비는 이승복의 입에
자갈을 쳐넣고 입을 찢어 죽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 독사입니다 .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 124군부대
김신조일당 무장 공작원31명은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 모간지를 딴다고 침입하였으나 군경에의해
30명이 사살되고 김신조는 사로 잡았는데
박정희 대통령 모간지를 따러 남한에 왔다는게
악랄한 독사이고남한도 평양 만경봉에 있는
김일성 모간지를 따갖고 오려고 실미도에서
특수 훈련까지 받았으나 1971년 9월 1일
납북 적십자 회담사무국설치로 실미도
특수훈련을 받던 특수요원들은
북한 김일성귀에 이사실이 들어가면
안되기에 전원 사살되었습니다 .
7대 대통령 선거는 돈주고 유권자를 매수하는
부정 관권 선거가 성행하였고 투표결과
민주 공화당 박정희후보 634만 2828표 (53.19%)
신민당 김대중후보 539만 5900표로 (45.25%)로
민주당 박정희후보가 94만 5928표 차이로 당선되었습니다
신민당 김대중이 대통령 선거에 패배후
김대중을 지지하는 누군가가 경상도 장날만 되면 나타나
" 박쥐 (박정희)는 김대중 선생을 빨갱이로 몰아
장기집권하러하는데 박쥐 모간지를 틀어 지기야 한다 "
고 헛소리를 5일장 열릴때마다 나와 큰소리로
떠들더니만 경찰에 잡혀 갔는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져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이 여기까지는 민주주의에의하여
선거를 통하여 국민의심판을 받아 대통령이되어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 난이제 대통령 직선제 안할거야 ,
김대중에게 대선에서 질까봐 가슴이 조마 조마했지 "
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1972년 5월초부터 개헌작업은 구체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여 같은 해 10월 17일 비상계엄령의 선포,
국회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의 금지, 헌법의 일부 효력정지와
비상국무회의에 의한 대행, 새 헌법개정안의 공고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통령 특별선언'이 발표되었으며,
10월 27일 평화적 통일지향,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표방한 개헌안이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공고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1월 21일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투표율 92.9%에 91.5%의 찬성으로 확정되었고
박정희는 1972년 12월 23일 8대 대통령에 혼자 출마하여
직선제가 아닌 간선제거 도입되어 통일 주최 국민회의에서 투표하여
북한 김일성은 100% 투표에 100% 찬성을 얻어
북한 주석직에 올랐는데 박정희 후보는
2357명이 찬성하여 99.92%로 8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
유신헌법은 장기 집권을 위한 포석이며
바둑으로 말하면 국민의 저항을 가져오는
장고끝에 악수를 둔것입니다 .
1978년 7월6일 9대 대통령 선거에도
혼자 출마하여 통일 주체 국민회의 대의원
2577명 99.75%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
이때부터 유신헌법에 제정이후로
학생 ,시민 운동이 많이 일어 났으며
지미 카터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의
정치 탄압으로 인한 인권문제를 심히 압박
비판하는 한미관계는 최악이었습니다 .
1차 오일 쇼크로 경제위기가 봉착하고 물가도
폭등했으나 중동 건설 수주로 인하여 수십억 달러
수출자금이 들어와 중공업 정책을 펴면서
부산 마산의 경공업이 심한 타격을 받아
큰피해를 보았고 물가는 무려 18.3%나 되었고
제2 오일 쇼크, YH 사건이 일어났고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창원 등지에서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것이 유신체제의 종말을 초래하였던
부마항쟁으로서 이 지역은 김영삼 총재의 근거지이기도 하였고
부마사태는 강경진압하여 해결되었으나
대응방식을 둘러싼 집권층 내부의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김재규 정보부장의 정보력이
부족하여 데모진압이 늦어지고 있다며
김재규 정보부장의 책임론을 들고 나왔고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 정보부장의
갈등은 평소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차지철 경호실장에 대한
인내가 한계가 다다르자 1979년 10월 26일에는
밤 7시40분경 김재규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 정보부
안가에 박정희대통령을 안가로 초청하여
만찬을 하였고 중앙정보부원은 무장하고 경호원들은
무장해제하고 중앙정보부 안가로 들어오라하였습니다 .
박정희대통령 , 김계원 비서실장 , 차지철 정보부장,
은 초정받고 중앙정보부 안가로 들어왔고
경호원은 중앙 정보부 빈방에서 머물게 하였고
안가에는 만찬의 흥을 돋구기위하여 가수 심수봉 ,
심재순도 초청되었습니다
양주를 마시며 만찬이 무르익어갈즈음
김재규 정보부장은 부하들을 시켜 경호원을
모두 사살하라 명령하였고 김재규는 권총을
갖고 만찬장에 나타나 권총을 빼들고 박정희
대통령을 향하여 " 각하 저런 버러지 인간(차지절 경호실장)
하고 정치를 하니 잘되십니까 ? "하며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총을 쏘아 부상을 입혔고
박정희 대통령은 " 김부장 지금 뭐하는거야 ? "
라고 말하자 권총으로 박정희대통령 가슴을
향하여 쏘았고 가수 심수봉은 겁에 딜려
" 각하 , 괜찮습니까 ?"라고 말하자 박대통령은
" 나는 괜찮아 !"하며 피를 흘리며 쿨럭 쿨럭하였고
차지철 경호실장은 "경호원 ! 경호원 !"하고
애타게 불렀으나 이미 경호원은 사살당하고 없었습니다 .
차지철이 안가로 다시 들어오자 김재규는
권총으로 차지철을 쏘아 죽이고
확인 사살로 박정희대통 머리에 권총을 대고
쏘아 박대통령은 쓰러졌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은 1972넌 유신헌법 만들기전에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대통령되었고 잘해오다가
장기집권을 위하여 유신헌법에의한 독재를 하다가
고향 사람 김재규에게 1979년 10월 26일
총맞아 죽는 비참함을 맞았습니다 .
고전두환 대통령은 1931년 경남 합천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전두환 장군은 1979년 12월 12일
군사 쿠테타에 성공하여 1980년 8월 27일부터
1988년 2월 24일까지 대한 민국 11대
12대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대한 애착심을 갖고 있고 박정희 ,전두환
군사 정권시절에 삼성이 살아 남아 발전하려면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의중을 헤아려야하며
경상도에 공장을 많이 짓고 전라도 사람들은
지역 균형 발전이 되지 않아 먹고 살기위하여
서울에 많이 올라 왔다고 합니다 .
전두환 정권때는 기업이 정치 자금을
상납하지 않으면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였고
기업 규모에 비례하여 정치자금을 상납받고
부산의 국제그룹 양정모회장은 정치자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 전두환 대통령은
"권력이란게 묘하단 말이야 .
나의 말한마디로 기업하나 살릴수도 있고
기업 하나 공중분해시켜 죽일수도 있단말이야 "
라면서 기업총수들을 청와대에 모아놓고
엄포를 놓았는데 부산의 국제 그룹 양정모회장은
기업이 정치 자금을 낼 형편이 아니라며
버티다가 결국 전두환은 은행장을 불러
대출내준것을 모두 거두어 들이라고하여
국제그룹은 공중분해되어 아주 헐값에
동국제강에 매각되고 부도가 났습니다
삼성 그룹 이병철 회장도 박정희 대통령 ,
전두환 대통령 그늘에서 기업을 이끌어
나갈려면 권력 총수의 마음을 헤아려야하기에
삼성 그룹은 대구를 비롯하여 경상도에
공장이 짓게되고 당시 군사 정권의 경상도
전라도지역 감정에의하여 이병철 삼성 그룹회장은
"될수있으면 호남 사람들을 직원으로 뽑지말고
뽑더라도 절대로 주요 요직에 앉히지말라"
고 발언한것으로 추증합니다 .
과거 군사 정권때는 지역 감정이 아주 심하여
경상도 사람들은 전라도 사람들보고
" 종북 빨갱이 , 깽깽이 "라고 말하고
전라도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보고
" 일베 , 보리 문디 "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영호남 지역 감정은 문민정부시대에도 되물림되어
영호남 지역 감정이 심하여
김영삼 정부시절 내가 김천 대기업 근무할때
서울에 연수를 갔는데 직원 동료끼리 아침밥을 먹으려고
서울에 있는 식당에 들어 갔는데 식당 주인이
전라도 사람인지 우리 직원이 경상도
말투로 이야기하는것을 보고
"경상도 사람에게는 밥팔고 싶지 않으니
찬밥이라도 먹으라면 먹고 먹기 싫으면 말랑껭 "
하여 홀대 당하는 기분이 들어 다른 식당 으로
가서 밥을 먹은 슬픈 기억이 있습니다 .
박정희 군사 정권때 전방부대에서 군대생활했던
경상도 모선배의 말을 들어보면 전방에는
경상도 신병 기수가 들어면 다음에는
전라도 신병 기수가 들어오는데
"너거들 어디서 왔어 ? "
고참이 물어보아 신병이 전라도 경상도사람에
따라 창고로 끌고가서 개패듯이
몽둥이 찜질을 구타 하는게 당시
군대 신고식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군사 정권시절 전방에서 군생활을
하였는데 군대 신체검사에서 너무 몸이 허약하고
세상에 불만이 많은것을 군의관이 알았는지
"군대 안가도되어 , 방위병으로 가도 되고 "
하였는데 사람구실을 하려면 군대 갖다오는게
맞다고 생각하여 "군대 가겠습니다 "하여
논란 훈련소에 갔는데 고문관 문제사병으로 찍혔고
조교가 마지막 사격훈련에서
" 총알 한발도 못맞히면 너는 자대 못가고 유급된다 "
고 경고하였는데 실제로 사격 결과 총알을
표적지에 한발도 맞추지 못하여
"십발 , 도저히 안되겠다 .표적지 종이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어 한발 맞추었다"
고 조교에게 이야기하니
" 거참이상하다 이인간 내가 분명히
보았는데 허공에다가 총을 쏘아 한발도 포적지에
못맞추었는데 "혼자말로 지껄이더니 표적지
에 구멍이 나있는 증거를 보더니
사격하여 표적지 맞힌것으로 인정해주었습니다 .
논산 훈련소 4주 교육을 마치고 재수 더럽게도
최전방 동부 전선에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
소문에 최전방 휴전선 비무장지대에는
육이오때 심어 놓은 지뢰가 많아
여름에 풀이 우거지면 풀베기 작업하다가
죽거나 중상입는 골치 아픈 곳이라
들었기 때문입니다 .
최전방 부대 자대에 신병 3명이 갔는데
두사람은 군기가 바짝들어 침상에 앉아 바짝
쫄고 있는데 나는 대학 다닐때 바둑을 잘두어
우승한 경험도 있기에 고참 말년 병장하고
바둑두고 있는데 상병 고참이
"이야 군대 썩었다 , 금방 들어온 신병이
병장하고 바둑이나 두고 ! "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
당시 전방은 기름 보일러를 사용하였는데 전라도 일병
고참하고 신병 이등병 저하고 기름통에 기름 받으러
유류 장고에 갔는데 내가 몸이 약하여 기름을 조금
흘렀는데 전라도 일병 고참이
" 보리 문디 이년이 기름 다흘리네 ! "
하고 욕설을 하여
"뭐 보리 문디 이년 ?"
하면서 고참 대갈통을 빈철기름통으로 후려지니
고참이 쓰러지면서
" 어이쿠 .이놈이 고참을 구타하는구나 !"
혼자 지껄이더니 대가리에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
부상당한 일병 고참이 고자질을 하여
집합당하였고 상병 전라도 고참들에게 기싸대기를
맞았는데 복수를 하려고 내부반 회식할때 술을
잔뜩먹고 취하여 전라도 상병 고참 팔을 담배불로 지지었습니다 .
전라도 상병 고참은
"이시발 보리문디 새끼가 고참을 담배불로 지지고
어휴 군대 생활 못하겠다 "
면서 화를 내었고 군대생활하면서 이런 인간은
처음 보았다면서 기가 막히다고 하였습니다 .
일병고참이 정문 초장 보초근무를 서고
다음에 내차례인데 병장보고
" 술이취해 근무 못서겠습니다
제일 마직막으로 바꾸어 주십시요 !"
라고 말하니 병장이
" 에이십발 , 이등병 갖들어온 새끼가
보초 근무 바꾸어 달라지는 않나
군대생활 엿같아서 못해먹겠다 "
면서 내대신 병장이 보초 근무하러 갔습니다 .
군대생활 적성에도 안맞고
이판 사판 공사판이라생각하고
차라리 군대 영창 (감방)에서 콩밥
먹는게 낫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상병 식기조장이 날보고
"김이병 , 너는 매일 밥 늦게 먹고
식기도 안딱고 너 오늘 죽어봐라 !"
면서 개발을 올려 차려고 하여
나도 모르게 감각으로 모두 피했는데
상병 군종병이 "김이병 , 한대 맞아주어 .
식기조장 상병이 너가 피하니까 약이
올라 더저러잖아 !"
하여도 듣지도 않았습니다 .
병장 말년에게 기어 오르다가
귀싸대기를 한대 맞았는데 병장보고
" 나 고막 터졌다 , 하나도 안들린다 .
너 제대 못하고 감방에 쳐넣을끼다 "
라고 엄포를 놓으니
말년 병장이 "김이병 내가 잘못했다 .
제발 제대좀 하게 해주어 !"
라고 무릎꿇고 빌어 용서해 주었고
중대장에게 이야기하고 의무대에
가서 "고참에게 맞아서 귀가 하나도 안들린다 !"
고 하였더니 연대 의무실에 가라고 하였습니다 .
연대 의무실에 가서 "고참에게 맞아서
고막이 나가서 귀가 하나도 안들린다 "
고 하였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귀가 안들린다며
"내가 묻는것을 어떻게 대답하지 ?"하면서
의심을 하다가도 군대도 돌팔이 의무병이
있기에 사단 병원에 가보라고 하였습니다 .
사단병원에 갔더니 가자마자
신고식한다면서 환자복을 입은 병장 상병 병사들이
각 연대에서 올라온 신입 환자들을 줄로 서라더니
두발 옆차기가 날아와 맞고 바닥에 쓰러지는 병사도 있고
나는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사단병원
환자 고참에게 발차기를 당하지 않았는데
군병원에 환자들이 전입온 환자를 발로
차는것이 신고식이라는것도 이상하고
니이롱 환자(가짜 환자)가 많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
자대의 밥은 보리밥 짬밥을 먹는데 군병원은
흰쌀밥에 반찬도 괜찮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
오래 대기하고 잘쉬고 있는데 사단 군의관이
귀검사 해보더니 고막도 이상 없고 날보고
"재대 시켜 줄까 ?"
하여 한참을 생각하다가
자대로 돌아가겠습니다 "
하였고 3개월을 잘놀다가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
자대가니 문제 사병이라며 휴전선 근무하면
사고치고 북한으로 넘어갈것 같고 병사들과
싸움질을 하니 도저히 내무반 생활은 어렵고
취사장에 가서 밥이나 하든지 군대 영창 (감방)
스스로 들어가 콩밥먹든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라 하였습니다 .
이등병 졸병 5호봉에 취사병이 되었는데
취사병 8명이 독립 생활이고 취사장에서
맛있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 말라깽이가
살찐 돼지가 되었습니다 .
당시 군사정권시절 고참과 졸병간의 갈등으로
휴전선에는 고참이 졸병을 구타하면 앙심을
품고 고참을 졸병이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우리 옆사단에는 구타당한 졸병이 앙심을 품고 내무반에
수류탄을 까넣고 북한으로 도망다려고 철책을
넘다가 근무자에의하여 사살되기도 하였습니다 .
군대는 사고가 나면 사단장은 진급도
못하고 옷벗어야하고 나머지 하급
지휘관도 문책을 당하니 문제 사병관리를 하는것입니다
전방 휴전선에는 당시 남북한 군인들이
확성기 비방 방송을 많이 하였고 남북한
비무장지대를 지나 북한과 거리가 뛰면
오분밖에 안걸리는 가깝고 북한 방송에서는
" (김일성 생일날 ) 남반부 국방부 병사들들어시요 ,
우리는 북조선은 오늘 아침에 이밥(쌀밥)에
고깃국 먹었다우
남조선 병사들 먹을것이 없어 굶지말고
우리 북조선으로 넘어오면 금강산에서
목욕도 하고 음식도 배불리 먹을수 있으니
빨리 넘어 오라우 !"
하면서 심리전 확성기 방송도 합니다 .
취사병들은 px 면세점 관리관과 통하여
술을 많이 먹는데 한날은 연대 상사에게
술먹다가 걸리어 대대장이 노발 대발 하여
모두 취사병에서 쫒겨나게 생겼는데 일반
병사가 취사를 할수도 없고 한시간만에
취사병으로 복귀하기도 하였습니다 .
병장3호봉 까지 전방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하다가 후방 전라도 부안 바다 경계하라고
발령이 나서 부안 개화도에서 분대별로
8명씩 생활하는데 나는 소대 왕고참이었고
취사는 이등병 신참에게 맡기고 어민들이
주는 고기나 얻어 먹으면서 탱자 탱자하며
군말년을 즐기다가 육군 병장으로 제대하게 되었습니다 .
나는 태어나면서 약골 체질이고 군대 취사병하기
전까지는 말라깽이 마른 허약 체질인데 군대
취사병하고부터는 너무 고기를 많이 먹어 몸의
제질이 돼지형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
군대 제대후 대학 다닐때도 집안 형편이
나아져 하숙을 하였는데 여러명이 밥을 먹으니
반찬이 너무 많아 살이 돼지같이 찌기도 하였는데
강원도 탄광지역에서 온 가난한 같은과 모학생은
하숙을 못하고 자취를 하던데 강원도 탄광에서 일하는
자신의 형이 보내주는 적은돈으로 자취하니
반찬도 김치 한가지인데 배가 고픈지 맛있게
먹는것을 보았습니다 .
지역감정의 되물림은 문민정부시대도 일어나
모전라도 젊은이는 20대 초반에 군대 직업 군인을
선택하고 군대 생활을 4년 정도 할즈음에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었는데 왠만한 직업 군인은 대다수가
스타트폰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전라도 직업 군인들이
갤럭시 A 시리즈 삼성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LG폰 , 대만폰 아이폰 ,2G폰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모전라도 직업군인은 전라도 후배와 술을 한잔
하면서 "왜 삼성폰을 사용하지 않느냐 ?"
고 질문하니 "삼성 그룹 이병철 회장이
호남 사람들을 무시하여 죽어도 삼성폰은
쓰고 싶지 않다 "고합니다 .
자기 고향 전라도를 욕하고 부정하는데
전라도 사람중에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고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
왕조시대 역적을 귀양보낼대 호남 전라도로
많이 보냈고 가장 열받는것은 왕조시대
사람들이 전라도를 우습게 본다는 것입니다 .
조선시대 실학자 안정복은
" 호남의 풍속은 겉모습만 그럴 듯하고 경박하며
면전에서만 진실된 척하고 속마음은 다르니
마땅히 순후와 예교로써 교화해야 한다"하였고
조선시대 관리 정만화는 전라 감사 그만두고 나올때
"영남은 인심이 돈후한데 호남은 인심이 교사하여
허위의 폐습이 있다"라고 하였고
조선 영조 정조시대 실학자 정약용은 정조가 죽은후
당파 싸움이 심했는데 1801년 2월 천주교도들이
청나라 신부 주문모를 끌어 들여 역모를 꾀했다는
신유사옥으로 투옥되었다가 1801년 2월 27일
경상도 포항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그해 11월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 생활을 오래 하였는데
"호남은 풍속의 질박함이 없어 뛰어난
가문이 서넛밖에 없다."고 하였고
하멜은 서양인 최초의 한국에 대한 저술을
했으며 <하멜표류기의 저자>입니다
1653년(효종 4) 1월 배를 타고 네덜란드를 출발하여
바다비아를 거쳐 타이완에 도착했다가
그해 7월 64명의 선원과 함께 무역선 스페르웨르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향해 가던 도중 폭풍을 만나
8월 제주도 부근에서 배가 난파되어 일행 36명이
제주도 산방산 앞바다에 표착했습니다 .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의 심문을 받은 후
이듬해 5월 서울로 호송되어 훈련도감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뒤 1657년 강진의 전라병영, 1663년(현종 4)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배치되어 잡역에 종사했습니다 .
1666년 9월 7명의 동료와 함께 탈출,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1668년 네덜런드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귀국 후 13년간의 한국 억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멜 표류기> 책을 이것은 한국을 서양에
소개한 최초의 책으로 당시 유럽인들의 이목을 끌었는데
하멜은 제주도와 서울 한양에서 1년동안 있었고
12년간 전라도 호남 지방에 있었는데
"조선인은 절도의 버릇이 있고, 또 사기와 거짓말을
일수 잘하야 도모지 그들을 신용할 수 없는 정도이다"
라고 적었는데 전라도에서 오랜 생활을 하였으니
조선인은 전라도를 말하며 한마디로
전라도 사람들은 허벌나게 싸가지가 없다는것입니다 .
조선 선조왕때 이순신장군은
"호남사람들은 약한자를 무시하며
강한자에 비굴하니 믿을수가 없다 "
고 인터넷에 적혀 있던ㄷ 유언비어 같습니다
이순신장군은 충남 아산이 고향이고
고려 선조때 1592년에 임진 왜란이 일어 났을때
전라도 좌수영을 하였으며 전라도 주민으로
부터 존경 받는 인물인데 성품으로 보아
이런 전라도 비속 발언을 할것 같지가 않습니다 .
고려 태조 왕건은 943년에 죽기전에 유언으로
후세왕과 왕자에게 남긴 문서를 훈요10조라고 하는데
왕건은 훈요 10조중에서 8번째에
"차현(車峴) 이남 공주강(公州江) 밖은 산형(山形)과
지세가 모두 배역(背逆)하니 인심 역시 그러하다.
그 아래의 주·군 사람이 조정에 참여하여 왕후·국척(國戚)과
혼인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면, 국가를 변란하게
하거나 통합당한 원망을 품고 임금의 거동하는
길을 범하여 난리를 일으킬 것이며,
또 일찍이 관청의 노비와 진(津)·역(驛)의 잡척(雜尺)에
속했던 무리들이 권세 있는 사람에게 의탁하여
신역을 면하거나 왕후(王侯)나 궁원(宮院)에
붙어 말을 간사하고 교묘하게 하여 권세를 부리고
정치를 어지럽혀서 재변(災變)을 일으키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니, 비록 그
선량한 백성일지라도 벼슬 자리에 두어
권세를 부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씌여 있습니다 .
인터넷에 보면 차현이남 공주 바같은 전라도 땅이라하고
"전라도 지역은 배신을 잘하니
인재로 등용하지마라 "라고 적혀 있던데
이또한 유언비어 같습니다
후삼국시대 태봉 궁예 황제와 왕건 장군은 의형제인데
왕건장군은 해상을 통하여 후백제 전라도 땅중에
목포를 점령하여 후백제 땅중에 목포만 고려로 만들고
목포 오다련은 후백제 견훤이 세금을 너무 많이 요구하여
후백제를 싫어 하여 고려 왕건에게 쉽게 항복하였습니다
목포 유지 오다련은 자신의 딸을 왕건에게
주었고 왕건의 둘째 부인이되었는데
첫째 부인이 낳은 아들이 병으로 죽자
목포 오다련의 딸이 장화왕후가 되었고
둘째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이 고려 제2대
왕 혜종이고 전라도 목표피가 흐르는데 왕건이
훈요10조 여닯번째 차현 이남땅을
전라도라 해석한것은 잘못된것 같습니다 .
현대의 모학자는 차현이남을 전라도가 아닌
중국 오월국이라 해석 주장하여
전라도 사람들은 인터넷에 바른 해석을
해주어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907년 당나라가 망하고 오대십국사이에
오월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907년에서
978년에 존재한 나라인데 고려,일본과
교류하면서 간사하여 왕건이 조심하라고 한것 같습니다 .
조선 영조때 이중환은 실학자이며
젊어서 벼슬길에 올랐으나 남인 당파
출신으로 노론이 권력이 잡으면서 유배도
갖다오고 벼슬도 잃게됩니다 ,
1751년 60세 초반에 <택리지 >라는
지리서를 내었는데 살기좋은 좋은 조건
4가지를 제시하였는데 지리환경,
생리 먹고 살수있는 환경이 ,
인심 , 산수 경치가 좋은 지방이라고 합니다
이중환은 택리지 <복거 총론>에서
"전라도는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물산으로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곳으로 보았는데
조선 초기 왜구의 칩략과 오랜 수탈로
민심이 거칠어져 평안도가 민심이 가장 후하고
경상도는 선비정신이 가장 살아있고
전라도는 민심이 거칠어져 오로지 간사하고
교활하여 나쁜일에 쉽게 움직인다고 합니다 "
라고 하였는데 조선 초기 왜구가 자주
전라도 지방을 침범하여 수탈하니
신경이 예민하여 이종환이 전라도를
찾았을때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보니
전라도 사람을 안좋게 평가한것 같습니다 .
전라도 사람들이 더 열받는것은
영화에 나오는 깡패들이 주로 전라도
말을 구사하여 호남을 깡패 지방으로
오해를 받을까봐 아주 기분 나빠하는것입니다
가수 홀자는 무명가수 였는데
티비조선 "미스트롯1"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인기가수가 되었고 곰탕보이스로 유명합니다 .
가수 홍자의 아버지는 경상도 사람이고
홍자의 어머니는 전라도 사람인데 경상도 울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
전라도 행사 갔다가
" 나는 전라도 사람 이마에 뿔이나 있는줄 알았는데
직접와서 보니 아니네요 "
라고 말실수를 하여 전라도 사람들은
자신들을 도깨비라 말하는줄 알고 엄청 기분 나빠하며
인터넷에 " 전라도 가수 송가인아 두번다시 경상도
홍자하고 같이 만나지도 말고 행사도 같이가지마라 "
고 전라도 사람의 댓글도 올라오고 홍자는 가수 생활 끝난줄
알았는데 해명을 잘하여 활동하고 있고
전라도 홍자의 어머니 전라도 고향에서 행사오라고
하면 다시는 말실수 안하고 가수 생활 잘하고 있습니다 ,
가수 조영남이 부르는 "화개 장터 "노래는
영호남이 지역 감정을 없애고 잘지내보다는것입니다
"화개 장터 " 노래에 나오는 마을이 있는데
하동은 경상도 , 구례는 전라도인데 냇가를
경계선으로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이라며
인사를 주고 받고 합니다 .
문민정부시대에 영호남 지역 감정을 없애기위하여
영화도 만들어 졌는데 내용은 경상도 총각과
전라도 아가씨가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면
영호라고하고 딸을 낳으면 호영이라고 한다는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 감동 하였습니다 .
신라는 경상도 경주가 도읍이고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초대 왕이 되고 935년 56대
경순왕이 고려에 망하는 992년 까지 신라 천년을
지탱하였고 백제는 기원전 18년 부여의 온조가
백제 초대왕이 되었고 660년 의자왕때
신라에의하여 망하는 678년까지 존속하였으나
신라가 삼국 통일한후 도성이 경상도 경주에
있었기에 먹고 살기위하여 도성으로 이동하여
전라도 인구는 줄고 경상도 인구가 늘어난것 같습니다
조선 영조시대 이중환 실학자는
"전라도는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물산으로
전국에서 으뜸가는 곳으로 꼽았습니다.
나주 평야, 전주 일대의 곡창지대, 여수와
순천의 해산물까지, 먹고사는 데는 전라도만
한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반면 조선 초기의 잦은 왜구 침략과 오랜
수탈로 민심이 거칠어진 면도 있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여 전라도
인구는 줄고 도성이 있는 서울 한양
의 인구는 늘어난것같습니다 .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고향은 경남 의령인데
경상도 대구에서 삼성전자를 창업하여 현재의
한국의 1위기업 삼성 그룹이 되어 전라도 사람
들은 기업에 취직하여 먹고 살기위하여
경사도로 이사하여 전라도 인구는 줄고
경상도 인구는 늘어난것같습니다 .
박정희 정권때는 경부 고속 도로를 건설하고
고향 구미에 공장을 많이 세우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경상도 발전이 전라도보다 훨씬 잘되어
경상도 인구증가 요인이기도 합니다 .
민주당 정부 이재명 대통령은 경북 안동이 고향이지만
민주당 심장이 전라도 광주이고 경상도에서 많은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경상도가 전라도 보다 훨씬 발전하고
전라도가 땅값이 싼것은 발전이 덜되었다면서
전라도 호남에 800조원을 들여 반도체 클러스트를
만들려고하고 대통령의 의중에 반기를 들수는 없고
이재용 삼성 그룹 회장과 SK 최태원
회장도 동의하였고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일자리가 창출되어 전라도 인구가 늘어날것으로 봅니다 .
2026년 8월 13일 국힘당 이진숙의원은
"5.18이 특정집단의 성역이 되어되어서는 안된다
광주 민주화는 재조명이 필요하다 "
며 토론회를 개최하여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합니다
토론에 참가할 모씨는
"1980년 5월 18일 광주 사태는 광주 시민이
특정인을 위하여 일어난 소요사태이고
데모를 진압하려는 전두환이 무슨 죄가 있느냐 ? "
고 말하는데 전두환은 정권을 잡기위하여
1979년 12월 12일 군사 쿠테타를 일으켰고
대한 민국 대통령이 야당 경상도 김영삼 ,
전라도 김대중에게 넘어가면 안되기에 언론을 장악하고
경상도 공수 부대를 투입하여 전라도 광주 양아치들이
파출소를 습격하여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하고있다며
광주 시민 반을 때려 죽여도 좋으니 데모를 진압하라고
하라고 하였던 것이고 야당 민주당 김영삼
자택 감금하고 야당 민주당 김대중을 북한 지령받는
빨갱이로 몰아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하고
11대 12대 대통령에 오른것입니다 .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주권이 있으며
공산 독재자 김일성처럼 북한을 무력으로 장악하고
혼자 출마하여 추대받아 북한을 통치하였고
대한 민국은 북한과 같은 공산 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이기에 군을 동원하여 권력을 잡는 자체가
전두환은 죄가 되고 광주 시민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위하여
1980년 5월 18일 봉기하였던 것입니다 .
계엄군은 광주시민이 북한 적군도 아닌데 탱크를 몰고
전라도 광주에 들어가 시민을 무차별 사살하고
하는데 가족 잃은 부모 친지가 가만 있을수는 없고
전두환에 맞서 대항하였지만 많은 광주 시민의
사상자만 내고 총칼을 들은 계엄군을 이길수는 없었고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
데모 진압을 하려면 체류탄을 사용하여
광주 시민 사장자가 나오면 안되는데 계엄군이
총으로 대항하는 시민을 향하여 조준사격을 하고
데모진압 한다면서 몽둥이로 데모에 가담한
광주 시민를 무차별 폭행하니 광주시민도 생존권을
지키려고 파출소를 습격하여 항쟁한것이고
계엄군은 데모진압 과정에서 광주 시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몽둥이로 개패듯이 때리고 여학생
유방도 단도칼로 찌르고 하물며 데모에 참가하지도 않는
일가족이 저녁밥먹다가 계엄군 총알이 날아들어
자식이 맞아 숨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어느 부모가 자식이 아무런 죄도 없는데
져녁밥먹다가 총맞아 죽는것을 보고 가만 있겠습니까
저는 경상도 사람이라 당시 라디오 방송만 듣고
광주 사태를 접하였고 무법천지 지옥이었을 것입니다 .
입장을 바꾸어 나의 가족이나 친지가 계엄군에게
총맞아 죽거나 무차별 폭행 당하면 보고만 있을수없고
직업 격어보지 않았다고 절대로 5.18 민주화
운동을 폄훼할수는 없습니다 .
한강 작가가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재조명하기위하여 《소년이 온다 》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 46%까지 하락하고
야당 국힘당 지지율이 오를 려고만 하면 국힘당 극우
의원이 당론을 무시하고 개별 행동을 하는것은
적절하지 못하고 국힘당 정점식 원내대표도
국힘당 이진숙의원보고 토론하지말라 권고하였고
장동혁 국힘당 대표도 "5.18은 숭고한 희생"
이라며 인정하는데 국힘당 의원은 누구나 개인
플레이하여 국힘당에 누를 끼치면 2028년 총선과
다음 대통령 선거에 패배할수 있으니 당대표를
중심으로 국힘당은 뭉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
광주 5.18 민주화 정신은 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기에 국힘당 이진숙의원은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
광주 민주화 희상자에게는 보상이 모두 이루어졌고
여야가 인정하였는데 이제와서 다시 재조명하기위하여
토론하자고 하는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
야당 국힘당도 5.18 민주화 운동을 인정하였으니
국힘당 의원이 광주 민주화 묘소에 참배하러 가면
광주 시민은 손님 맞이하듯이 따뜻하게 대해주어야 하고
국힘당 김천 송언석 원내총무가 비공개적으로
농담식으로 " 광주 5.18 묘역에 왜 안가나 ?"
고 누군가 질문하니 "더러워서 (서러워서) 안간다"고
하여 논란이 된적이 있는데 이제는 영호남
지역 감정을 없애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특정 단체가 아닌 우리 대한 민국 전국민의
성역이 되었으면 합니다 .
2026년 8월 15일 광복 81주년을 맞이하여
민주당 정부 이재명 대통령은 " 한일 반민족
행위를 했던 부정재산은 조사하여 환수
한다 "고하고 독립투사 김구 선생은 1945년 해방후
남북한이 갈라지는것을 안타까워 북한에 가서
김일성보고 남북한 총투표를 하자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하여 남북한이 갈라진것인데
인테넷에 못된 인간은 독립투사 김구 선생보고
북한 빨갱이라고 하는것도 부적절합니다.
남북한은 1945년 해방전까지만 하여도
단일 민족이었고 남북한이 해방되어 통일 되면
좋지만 북한 공산주의와 남한 민주주의는
물과 불이기에 체제 이념이 달라 통일이
될수는 없고 서로 욕하고 싸워 보았자
남북이 서로 손해이기에 남북이 서로 욕하지 말고
평화적으로 휴전을 하자는 것입니다 .
누구든 폭력으로 싸워서 덕될것은 없으며
중국이 우리나라의 땅덩이가 51배 크고
브라질이 우리나라의 39배 크다고하는데
작은 땅덩어리에서 남북한이 분단된것은
마음이 너무 아프며 먼 후세에 통일이 되기를 기원하고
남한에서도 영호남이 지역 감정으로
서로 헐뜯고 싸울 필요가 없고 서로 상생하는것입니다 .
2025년 9월 1일 배낙호 김천시장은 김천 보은 청주를 잇는
98km 철도를 건설하자고 국힘당 박덕흠의원 , 국힘당
김천 지역구 송언석의원을 비롯하여 150여명이 모여
민주당 이재명 정부에게 건의하였지만
국토 교통부는 아무런 을답이 없습니다
남부내륙과 중부내륙을 잇는 김천 청주간 철도는
청주 공항에 쉽게 갈수 있고 물류 관광 , 교통 ,산업전반에
걸쳐 큰 시너지 효과를 낼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2026년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
안동에서 민주당 7명 ,국힘당 7명 시의원이 당선되어
안동에 선물을 하나 안주었는데 김천시는
민주당 시의원 4명 당선되는데 거쳐 지역 군형
발전은 낙후된 전라도가 시급하다며 800조원을
들려 반도체 클러스트를 지어 민주당 텃밭 호남에
인구가 많이 증가하여 경상도와 전라도 인구 균형을
맞추는게 시급하다고 전문가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배낙호 김천 시장의 제안은 좋지만
지역 감정을 없애기위해서는 대구 광주간
달빛철도가 우선이고 민주당 이재명 정부 국토 교통부에서
말이 없으면 그냥 없던것으로 하는게 편하고 국힘당이
정권을 잡을때까지 참을인 셋으로 인내하는게 처방전입니다
민주당 정부는 정치적으로 이슈가 되는것에
관심이 있어 서울 오르는 집값을 잡기위해
그린벨트 지역 용산 대공원에 아파트를 지어
23만가구를 분양한다는것이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전라도는 민주당 텃밭이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전라도에 800조원을
투입하여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든다는것이고
김천 보은 청주를 잇는 철도는 김천 발전을
위해 중요하지만 민주당 이재명 정부가 응급하지
않는것은 차순위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
김천의 인구가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데
배낙호 김천시장의 2차 공공기관 유취를 하여
일자리 창출로 인하여 인구가 증가되었으면 합니다
대구 지역구 국힘당 유승민 전의원은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의 전라도 광주에 반도체
800조 투자 몰빵에 대하여 경상도 전라도 지역 감정에
폭탄을 던진것이라 맹비난하고 대구와 광주를
비교하면서 지역 균형 발전이라 볼수도 없다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
이번 2026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국힘당 추경호후보가 아닌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당선되었으면 민두당 이재명 대통령의
심중이 어떤지 궁금하기도합니다
세상은 권력과 부(富)에의하여
움직여 왔고 운명은 누구도 거역할수 없고
받아 들이는게 마음 편합니다 .
경상도 김천 지인중에는
"경상도에 박정희 대통령 동상
하나 못세우는게 말이되냐 ?"고하는데
전라도에도 김대중 대통령 동상이 없습니다 .
동상은 나라를 위해 애국하여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존경하는 인물
이순신장군,세종대왕 같은
영웅이어야 국민들이 동상을 보고
고개가 숙여지고 본받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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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북한이 분단되어 마음이 아픈데
영호남이 지역감정을 가지고 싸움질
하는 더욱더 마음이 슬퍼지죠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분들도 죽었으니
이제 영호남 지역 감정은 작가님 말씀데로
없어 져야 되겠죠 ..
영호남 지역 감정의 시초는 1971년 4월 27일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기위화여
전라도 출신 신민당 김대중후보가 전라도 광주 4만명이 모여든 유세장에서
경상도 출신 박정희대통령이 경상도끼리 대해쳐먹고
전라도를 홀대하고 있다고 발언하여
영호남 지역 감정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현대까지도 영호남 지역 감정이 없어지지 않는것은
전라도는 민주당 텃밭이고 경상도는 국힘당 텃밭이기에
상대후보가 서로 자기 지역구에서 당선되지 못하게
내로 남불로 지역 갈등을 부축이기 때문입니다
국힘당후보가 전라도에서 국힘당 간판달고 최고 성적을 낸것은
이정현 (3선)후보이고 민주당 후보가 경상도에서 민주당 간판
달고 2026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에서는 민주당 전재수후보가 당선이되고
울산에서는 김상욱후보가 민주당 간판달고 당선되고
김천에서는 민주당 시의원후보가 4명 당선되고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 안동에서는 민주당 시의원 후보가 7명이나
당선되는데 국힘당 간판달고 전라도에서 당선되는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보다 단결이 더잘되고
국힘당 정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하여
전라도 광주 군공항은 반도체 클러스터 짓는다고 속도를 내고
대구 신공항은 오래 전부터 숙원 과제인데
민주당 정부 이재명 대통령이 관심도 없고 답보상태입니다
202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김부겸후보가
대구시장에 낙선하였으니 더더욱 대구에 관심 없겠지요 ㅠㅠ
국힘당 유승민전의원 주장되로 이재명 대통령이
영호남 지역 감정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전라도는 행정 통합해주고 경상북도는 왜 행정통합
안해주는지 이재명 대통령은 경상도가 고향인데
전락도 광주가 민주당 심장이라고
전라도에 화끈하게 몰빵 치는군요
KBS -1 대구 방송 들어보니 지역차별한다고 하네요 ㅠㅠ
국힘당은 지지율이 오를라고하면 당론을 무시하고
개인 플레이하는 의원이 있는데 다음에 공천주면 안되고
윤리위에 회부하여 솟아내야 국힘당이 정권 찾아 올수 있습니다
배낙호 김천시장은 2026년 경북 농식품 수출정책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
축하합니다
제2 공공 기관 이전은 김천이 최적지입니다
배낙호 김천 시장은 2026년 7월 13일 농민의 시름을
덜어주기위하여 양파 소비 촉진 운동에 참가하여
큰호응을 얻었고 양파는 혈관건강에 좋습니다
사회와 국가가 발전하려면 좋은 것을 쫒고.
안 좋은 것을 과감히 버리거나 고쳐나가야 합니다.
영호남 갈들은 박정희.김대중에서 시작되었다기보다
조선 후기 안동 김씨의 기득권 유지로부터 봐야지요.
호남은 영남을 표용한 사례가 있는데 영남은 아직까지 없어요.
김대중이 평민당 대표일 때 경북 칠곡이 고향인 이수인 교수를 영광 함평지역에 공천하여 국회의원에 당선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이정현은 국힘당이었지만 전남 곡성출신이라 의미가 크지 않아요.
해소책은 대한민국 도로체계부터 바꾸면 됩니다.
도로가 주로 남북으로만 된 도로를
동서로 많이 뚫어서 교류를 더 많이 하게 해야 해요.
이수인은 일제 강점기 1941년 4월29일 평양 복심법원
판사를 지낸 아버지 이충녕과 어머니 강금복사이의
4남 5녀중 차남으로 태어 났고 형 이수성은 1995년
20대 서울대학교 총장, 김영삼 정권때는 29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고향은 경북 칠곡이고 서울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 대학교 문리과 대학 정치학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졸업후 영남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역임하던중
1980년 5월 17일 광주 사태 내란이 일어나면서
해고되었고 1988년 한겨레 민주당에
입당하여 회계 책임자와 총무위원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하였습니다 .
한겨레 민주당이 1988년 13대 국회의원선거에
대거 낙선하면서 많은 한겨레 인사들이 김대중이 만든
평화 민주당에 입당합니다 .
1990년 11월 전남 함평군 영광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고향이 경북 칠곡군 이수인을 평화 민주당 후보로
공천을 주어 김대중 총재는 영호남 지역 감정을 없애는
이유라고 당에서 밀어주어 13대 국회의원이 되는데
경상도 출신으로 전라도에서 당선된 첫사례인데
결자해지 차원일것입니다
저의글은 인터넷 다움(daum)에 전국 인기 신문과 동등하게
인터넷에 올라가기에 전국의 네티즌은 물론 호남 전라도
네티즌도 보기에 글 포현을 잘못하면 호남인들은
저를 욕할수 있기에 전에 쓴글 " 호남인들은 --->
호남인 중에는 "으로 수정합니다
'호남인들"하면 전라도 전체로 볼수 있으므로
"호남인중에는 "으로 표현하는게 맞는것 같습니다
호남인중에는 영호남 지역감정은 박정희,김대중
시대가 아닌 경상도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할때라고 하는데
안동 김씨 세도정치는 1804년 (순조4년)부터 1864년
(고종 1년)까지 안동김씨 김조순 , 김조순의 장남 김유근,
김조순의 3남 김좌근까지 60년간 이루어지며
영의정 김좌근때에는 전라도 나주 기생 양씨를 첩으로
들이면서 두인간이 쌍으로 백성들에게 뇌물을
받고 벼슬을 주어 영호남이 사이가 좋았습니다 .
(본문에 안동김씨에 대한 상세 내용이 있습니다 )
영호남 지역감정은 1971년 4월27일 대한민국
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김대중후보가
전라도 광주 군중 4만명을 모아 놓고
"경상도 출신 ㄷ박정희가 대통령하면서
경부고속도로를 놓고 경상도에 공장을 집중적으로
짓고 전라도에는 고속도로는 켜녕 양선 철도마져도
놓아주지 않고 우리 전라도인을 물로 보고 홀대하고 있습니다 .
경상도 국힘당 (공화당 )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고
전라도 대표선수 이 김대중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5.18 광주 사태 희생자들에게 보상도 충분히 해주고
경상도에 집중된 경제시설 못지 않게 전라도를
황금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여러분 "
하여 전라도 군중들은 "김대중 선생 만세 !
전라도 만세 !"를 부른게 지역 감정의 시초입니다
이 광경을 텔레비젼으로 본 공화당 (현국힘당) 박정희후보
측에서는 "전라도 김대중 저거 뭐꼬 ?
빨갱이 시키 영호남 지역 감정 일으키고 있잖아 ~~ 십발
각하를 당선 시키고 빨갱이들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서는 관권선거든 뭐든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뛰는수 밖에 없어 에이 밥맛없는 빨갱이 시키 ! "
라고 하자 전라도 김대중 측에서는
"아따 보리문디 경상도 시키 허벌나게 느자구 (싸가지 없다 )하당게
솔찬히 우리 김대중 선생에게 시방 빨갱이라고 했당가
일베시키들 눈구녕을 어따두고 씨부린당게 ~~십발
전라도 대표선수 김대중 선생을 당선시키고
박쥐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려 전라도가 살기위해서는
전라도인구가 경상도 인구보다 째간해도 뭉쳐야 한당게 !"
하고 경상도와 전라도는 한치도 물러섬이 없이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지역감정이 최고조에 다르게 됩니다 .
7대 대통령 선거는 돈주고 유권자를 매수하는
부정 관권 선거가 성행하였고 투표결과
민주 공화당 박정희후보 634만 2828표 (53.19%)
신민당 김대중후보 539만 5900표로 (45.25%)로
민주당 박정희후보가 94만 5928표 차이로 당선되었습니다
선거에 패배한 김대중 전대통령은 회고록에에서
" 관권 부정선거만 없었다면 공화당(현 국힘당)
박정희후보에게 100만표 차이로 이겼을 것이다 "
라고 아쉬워하였습니다 .
당시는 군사정권 암흑기여서 제가 아는 경상도
정치인이나 지인들도 관권선거가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고 아무리 경상도 사람이라
팔이 안으로 굽는다하여도 양심을 속일수는 없습니다
군사정권시절 여당 후보 선거운동원이 돈봉투를
동네 이장에게주면 동네 이장은 반은 딱아넣고
반만 동네 친한 사람에게만 5만원씩 나누어 주는데
벌써 돌아가시고 없는 저의 이모도 받았다고 합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선고 받고 감방에서
콩밥 먹고 있는 윤석열 전대통령의 극우세력 국사학 일타 강사
전한길씨가 유튜브 방송한 혐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명예 훼손 ,산업 통상부
업무 방해 혐의 ,허위사실유포혐의로 고발되어 재판을
받는 혐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5.18 광주 민주화 운동때 북한군이 개입되었다
(2)이재명 대통령이 성남 지사시절 대장동 비자금
1조를 이재명 대통령 해외 순방시 싱가포로
저수지에 숨겨 두었다
(3) 이재명 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 김현지
제1 부속 실장 사이에 혼외자가 있다
(4)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과거 선거 공보물을
근거로 이 대표가 하버드대 컴퓨터과학·경제학을
복수전공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컴퓨터과학 학위만 있고 경제학 학위는 없다
(5)산업자원 통상부는 울산 석유 90만 베럴을
북한으로 반출하였다 .
주장하는데 저는 믿지 못합니다
혹시 전한길씨가 꿈을 꾼것을 이야기 한것같습니다
판사가 행위로 본다면 유죄이고 단순한 꿈이야기를
이야기 한것으로 인식으로 보았다면 무죄같습니다
70년대에는 지식인이 그리 많지 않았으나 2000년대 즉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인터넷 보급으로
모두가 눈을 뜨고 1일 생활권이 되었으면서도
영호남 갈등이 여전하다는 것은 지성인 기득권층.
우리 성인들 모두의 책임입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대안을 갖고 논해야하거늘 그걸 갖고 대립하고
이간질시키고 있으니 한심하고 우선 저 자신부터
반성합니다.
동서 교통 확충으로 교류가 늘어나게 하여
벽을 허무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