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음성(陰城)은 충청북도 북서쪽 끝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진한(辰韓)의 영토였으나 고구려 장수왕 때 잉홀현(仍忽縣)이라 하였고, 553년(신라 진흥왕 14)에 신라의 영토가 되어 757년(경덕왕 16) 음성현(陰城縣)으로 고쳐서 흑양군(黑壤郡: 鎭川)에 속하게 하였다. 995년(고려 성종 14) 중원도(中原道) 진주(晉州)에 속하였고, 1018년(현종 9) 양광도(陽廣道) 충주목(忠州牧)에 속하게 되었으나 1356년(공민왕 5) 충청도(忠淸道) 국원경(國原京) 음성현으로 개편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와서 현감(縣監)을 두었고, 1592년(선조 25) 폐현되어 청안현(淸安縣)에 속하였으며 1618년(광해군 10)에 다시 음성현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 음성군으로 승격하였고, 1896년 충청북도로 이관하였다. 1956년에 군내면이 음성읍으로, 1973년에 금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음성박씨(陰城朴氏) 시조 박서(朴犀)는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넷째 아들인 죽성대군(竹城大君) 박언립(朴彦立)의 11세손으로,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장수 살리타이(撤禮塔)가 쳐들어와 철주(鐵州)를 함락하고 이어 귀주(龜州)를 공격하자 서북병마사(西北兵馬使)로 이를 물리쳐서 몽골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며 후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라 음성백(陰城伯)에 봉해졌다. 후손들은 죽성박씨(竹城朴氏)에서 분적하여 그를 시조로 하고 관향을 음성(陰城)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분적종 및 분파
정승공파(政丞公派), 충민공파(忠愍公派), 문익공파(文翼公派)
주요 세거지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유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음성박씨는 2,149가구 총 7,094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