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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과 시뇨리아 광장 등 들르고 로마로 이동 및 투숙 2016년 12월 23일 오늘 로마에서 3시간 가량 이동하여,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 연안의 고대 향락의 도시 폼페이에 도착한다. 매표소에 도착하여 내려다본 폼페이 유적지의 모습이다. 2,000년 가까이 화산재 속 침묵의 존재감의 지속해온 모습을 상상한다면, 가히 놀라운 모습이 눈 앞 펼쳐진 것이다. 폼페이는 화산 폭발 당시 15,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7m 이상의 화산재에 파묻혀 사망하였다고 한다. 뜨거운 화산재가 폼페이를 뒤덮어 하늘에 어둠이 깔리고 쏟아져내리면서, 구사일생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명을 구했으나 탐욕에 재물을 챙겨 모았다면 화산재에 깔려 유독가스를 마시고 쓰러졌으니! 그들에겐 종말이나 비극이 따로 있었겠나.. 헉~~~ 그리고 당시의 건축물들과 도로가 이렇듯 생생하게도 보존되었다니, 분명 화산재가 그 보호막이 되었을 터! 와~우~ 폼페이(Pompei)는 제정 로마시대 때인 AD 79년 8월 24일, 인근 베수비호 화산 폭발로 한 순간에 화산재에 묻혀 멸망한 번영과 향락의 도시이자 비운의 도시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절대 자신의 고향인 폼페이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 저주받은 도시 출신이라는 것을 알리기 싫어했기 때문인 건 당연지사.. 당시 폼페이는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귀족의 피서(避暑)와 피한지(避寒地)로도 인기가 높았다. 따라서 로마 지도자들이 휴양지나 별장 등을 많이 지었던 곳이다. 4계절동안 그나마 일조량이 풍부하고, 겨울에도 화산의 지반열이 있어 별로 춥지도 않았으니! 전성기 때 갑자기 멸망한 폼페이는 16세기 말부터 소규모로 발굴을 시작하다가 1748년부터 발굴하기 시작해 현재 도시의 약 3/5 정도 드러난 상태다. 첫 발굴 작업 당시, 전 유럽으로 고대 그리스풍이 유행할 정도로 유럽의 부호들의 관심사였다. 유물이나 유적은 예술품을 넘어서 엄청난 부를 안겨 줄 노다지이기도 했기에~ 실제 폼페이는 BC 6세기경에 그리스의 지배를 받다가 BC 80년부터 본격적으로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벽화 등 출토품 중에는 당시의 생활과 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많으며, 로마인들의 매우 쾌락적이고 현세적인 삶을 영위했을 것이란 통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지금은 유네스코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1997년)해 보호받고 있다. 현지인들은 폼페이 유적지를 스카비라 부른다. 폼페이 유적지는 09시에 입장한다. 유적지의 입구는 마리나 문으로 당시 마을에서 항구로 통하는 길의 성문이었다고~ 이처럼 당시 폼페이는 해안과 맞닿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 밤에도 길이라는 걸 알 수 있게 야광석을 설치하기도 했으니 놀랍다! 아본단차 거리는 폼페이에서 가장 중요한 거리로 중앙 광장부터 시 외곽 지역까지 연결되어 있다. 비가 내릴 때 사람들이 물에 젖지 않도록 도로에 디딤돌을 세우고, 돌 사이 간격을 수레바퀴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벌려 놓았다. 당시 횡단보도인 셈이다. 그리고 도로 변 말고삐를 맸던 고리 부분도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 포룸(해발 34m)이다. 폼페이의 중심지로, 이곳에서 정치와 경제 활동이 주로 이루어졌다. 2층의 열주가 있는 현관(포티코)에 의해 둘러싸인 거대한 4각형 지역이었으며, 남서쪽의 거대한 평지에 있는 광장이라~ 즉 포룸은 말그대로 중앙, 또는 광장의 역할을 하던 폼페이의 정중앙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폼페이에서 가장 큰 건물인 바실리카, 아폴로, 주피터 신전 등이 있다. 아래 좌측에는 아폴로 신전이 있는 곳이다. 또한 지금은 포룸과 중앙광장에는 설치미술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중앙 광장인 포로에는 도리아식 원주가 서 있고~ 중앙 광장은 폼페이의 가장 핵심적인 광장으로 종교, 정치, 상업의 중심지다. 폼페이 유적지는 광장과 주요 도로를 중심으로 한 고대 도시의 형태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이 거리의 음식점들은 음식을 즉시 판매할 수 있도록 부엌이 도로를 향해 있고, 내부와 거리에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장식한 흔적이 남아 있다. 폼페이는 선사시대의 용암이 흘러나온 자리에 건설되어 불규칙한 형태를 이룬다. 아울러 폼페이 중앙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오늘날과 비교해도 손색 없을 만큼 돌로 포장되어 잘 정비 또는 정돈된 느낌이다. 당시를 고려하면, 고급스럽고 쭉 뻗은 길이야말로 풍요를 엿볼 수 있다. 돌과 벽돌로 쌓아올린 건물들은 지붕은 없고 거의 벽체만이 존재한다. 당시 조적조 건축 공법도 놀랍다. 벽체 형태를 얼핏 보아 압축력과 인장력을 두루 고려하여 고강도의 건축술을 보여주고 있다. 위 좌측 상단에 표시는 Ⅷ지구(REG) Ⅴ번지(INS)를 나타낸다. 중앙광장 인근에 위치한 선술집인데, 다양한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벽화가 이채롭다. 선술집 바로 맞은편에는 미성년자가 들어가지 못하는 '매음굴'이 있는데, 집 안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이는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원하는 자세를 고르도록 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술집 오른쪽에는 병원이 있어 당시 폼페이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상수도 관이 설치되어 있었으니! 직접 보아 역시 놀랍다^*^*^* 바닥의 문양을 보라~ 당시 부유한 귀족의 저택 등으로 보여 호화스러움도 느껴진다. 현재와 비교하여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문양 지체의 예술적인 미도 돋보인다. 아래, 폼페이에서 밟게 되는 흙은 화산재가 남겨놓은 듯 새까맣고도 부드럽다. 화산 폭발을 실감한다. 폼페이 유적의 의미를 고찰컨대, 폼페이와 그 발굴 역사를 엄숙히 생각케 한다. 또한 폼페이가 유럽에 끼친 영향도 다양하고 지대할 것이라 하겠다. 아울러 폼페이는 고대의 도시설계와 토지이용 등에 관한 연구자료는 가치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상 직접 둘러보지 못한 원형투기장과 포도밭 등에 관한 큰 아쉬움은 없다. 목욕탕 내 세신실인가요? ㅎㅎ 폼페이의 3개의 목욕탕 중 하나로, 그 흔적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특히 증기 목욕탕의 천장에 붙어 있는 조각의 보존 상태는 놀랍다! 스타비아네의 온천이다. 화산 인근이라 온천과 목욕 문화가 발달했을 터~ 폼페이에는 목욕탕이 많았으며, 이곳 스타비아네의 온천은 가장 오래된 온천 내지 목욕탕 시설로서 남녀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보다시피 목욕 공간은 작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다 온천욕을 했다고 한다. 한편, 항상 병자들이 먼저 욕탕에 들어갔기 때문에 피부병이나 전염병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밀을 찧는 맷돌도 보인다. 포장된 도로는 다시금 보고 걸어도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 여하튼, 폼페이 유적은 현재 거의 전부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의 우물 또는 공동수조 모습인 듯~ 제정 로마시대에는 상수도가 발달하여 지속적으로 도시로 맑은 물을 공급했다. 따라서 거대한 수로를 다수 건설하였다. 그 수로를 통해 폼페이 역시 흘러든 물을 정교하게 낙차(수압 조절)를 계산하여 사방으로 분산했으니, 이러한 공동수조로 물이 공급되었다. 형태가 거의 잘 보존되어 있다. 마차가 돌 길을 따라 바퀴가 지나간 흔적이 또렷하다. 거의 2,000년 전 모습이 이렇듯 형태가 유지되고 있어, 믿기 힘들만큼 신기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사이프러스(Cyprus) 나무가 인상적이다. 《글래디에이터》 등 영화에서도 분위기 연출에 기여한 사이프러스 나무이다. 고흐의 그림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럽의 남부지방에서 많이 서식한다. 폼페이 유적지를 짦으나마 30여 분에 걸쳐 둘러본 후, 베수비오 화산 쪽에 있는 에르콜라노 문을 통해 빠져나온다. 에르콜라노 문을 빠져나오면서 만난 월계수 폼페이 유적지 출구로 다가서니 배수비오 화산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선다. 폼페이 지역의 인구는 3만 명 정도에 이를 정도로 번영하였으되, 배수비오 화산의 폭발 징조는 이미 62년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번영을 누리고 있던 폼페이는 애써 위험을 외면했을 것이다. 당시 인근 도시인 에르클라네움은 이미 폐허가 되었지만 폼페이는 건재하였다. 배수비오(VESUVIO) 산은 79년 8월 대분화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분화를 겪었다. 1631년에는 18,000여 명이 희생되기도 했으며, 20세기에 들어서도 1973년과 1979년에 분화하였다. 그리고 비밀의 저택을 만난다. 당시 부유한 상인이나 귀족이 소유하고 살았을 저택인 듯, 공간이 많고 문양 장식 또한 많고 화려하며 프레스코화 장식 역시 돋보인다. 중앙광장 근처 창고 안에서 발견된 죽어가는 남자의 주조물 폼페이를 둘러본 후 출구 인근 식당에서 10시 30분 경에 이른 점심식사를 한다. 오후 일정은 카프리섬에도 다녀올 예정이라 서두르게 된 것이다. 식사는 제1요리인 스파게티를 먹는데, 깔끔한 맛의 조개가 곁들여져 풍미가 최고! 그리고 스파게티와 함께 주문하여 먹는 셀러드도 Good^*^ 점심식사 후 채 정오가 되기 전, 카프리행을 위해 이제 소렌토를 향한다. 따라서 소화도 할 겸 잠시 걸으면서 폼페이 스카비 역에 도착하여 소렌토행 열차를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