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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지구로의 여행 - 1부
A VOYAGE TO THE INNER WORLD
By Olaf Jansen
1908
From the Book "The Smoky God"
by Willis George Emerson
올라프 얀센 이야기
OLAF JANSEN'S STORY
나의 이름은 올라프 얀센Olf Jansen이다. 나는 발틱 해Baltic Sea의 북쪽에 있는 보스니아 만Gulf of Bothnia의 동해안에 있는 울레보그Uleaborg의 한 작은 러시아 어촌에서 태어났지만 노르웨이 인이다.
나의 부모는 보스니아 만의 한 어선에 있었고, 1811년 10월 27일 내가 태어날 무렵, 울레보그의 이 러시아 어촌으로 보내졌다.
나의 아버지, 옌스 얀센Jens Jansen은 로포덴 섬Lofoden Islands 가까이에 있는 스칸디나비아 해안의 로드윅Rodwig에서 태어났지만, 결혼 후에 스톡홀름에 정착했는데, 나의 어머니 가족이 그 도시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책을 좋아하는 적성을 보여주었고, 9살 때 스톡홀름에 있는 사립학교에 보내졌으며, 14살이 되기까지 그 학교에 다녔다. 졸업 후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모든 그의 정기적인 고기잡이 여행에 따라다녔다.
나의 아버지는 키가 6피트 3인치(187cm)의 장신이었고 몸무게가 210파운드나 되는 전형적인 거친 노르웨이 인으로,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다른 남자들보다 강인한 타입이었다. 그는 부드러운 작은 방식으로 여성의 온화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의 결의와 의지력은 막강했다. 그의 의지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어부로서 마지막 여행이 된 여행을 떠났을 때 19살이었고, 그 여행은 세상에 주어질 이상한 이야기가 될 것이었는데 -- 그러나 내가 지구의 순례여행을 끝내기 전에는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것이 발행된다는 사실을 허용하지 않을 터인데, 더 많은 수치와 감금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는 나를 구해준 포경선의 선장에 의해 철창에 갇혔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내가 나의 아버지와 나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경이로운 발견들에 대한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이어질 고문의 끝이 아니었다.
4년 8개월의 잠적 후에 나는 스톡홀름에 도착했고, 나의 어머니가 한 해 전에 돌아가셨음을, 나의 부모가 남긴 재산이 내 어머니 가족의 소유가 되어있음을 알았으나, 그것은 어쨌든 내게 돌아왔다.
내가 나의 기억으로부터 우리 모험의 이야기와 나의 아버지의 끔찍한 죽음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면, 모든 것이 잘 되었을 것이다.
마침내 어느 날, 나는 유력한 성품의 소유자인 나의 삼촌 Gustaf Osterlind에게 자세히 그 이야기를 했고, 내가 그 이상한 나라로 다시 항해를 떠날 수 있도록 장비를 마련해줄 것을 재촉했다.
처음에 나는 그가 나의 계획을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관심을 갖는 듯 보였으며, 내가 어떤 공무원에게 가서 그에게 했던 대로 우리 여행과 발견의 이야기를 설명해주라고 초대했다. 내가 말을 끝내고, 어떤 서류들이 나의 삼촌에 의해 서명되었을 때, 나는 예고도 없이 체포되어 한 정신병원의 어둡고 무서운 감금상태로 끌려갔으며, 그때의 나의 절망감을 상상해보라. 그리고 나는 거기서 28년을 갇혀서 -- 길고 지루하고 끔찍한 고통의 해들을 보냈다!
나는 나의 온전함을 주장하고, 나의 감금에 대한 부당함을 제기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1862년 10월 17일, 나는 석방되었다. 나의 삼촌은 이미 죽었고, 나의 젊을 때 친구들은 이제 이방인들이 되었다. 실로, 그의 유일하게 알려진 기록이 정신병자인 50살이 넘은 한 남자는 친구가 없었다.
나는 생계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으나, 본능적으로 많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선창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한 주일 안에 Yan Hansen이란 이름의 어부가 로포덴 섬으로 긴 고기잡이 여행을 떠날 때 그의 배를 탔다.
여기서 나의 초기 해들의 훈련이 가장 큰 유리한 점으로, 특히 나 자신을 유용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은 다른 출항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으며, 나는 절약해서 몇 년 안에 나 자신의 쌍 돛배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 후 27년 동안, 나는 어부로서 바다를 항해했는데, 5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했고, 마지막 22년은 나 자신을 위해 일했다.
이 모든 해들 동안 나는 가장 부지런히 책을 읽는 학생이었고, 또한 나의 사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일꾼이었으며, 그러나 나는 나의 아버지와 나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발견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데 큰 주의를 기우렸다. 지금같이 시간이 많이 지난 때에도 나는 누군가 내가 쓰고 있는 일들과 내가 간직하고 있는 기록과 지도들을 보거나 알가 봐 두려워진다. 나의 지구상의 날들이 끝날 때, 나는 지도들과 기록들을 남길 것이고, 그것들이 밝혀져서 인류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정신병자들과의 나의 긴 감금에 대한 기억, 그리고 모든 무서운 고뇌와 고통들이 또 다른 위험을 감수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있다.
1889년 나는 배들을 팔았고, 내가 남은 생애를 보낼 만큼 충분한 재산을 축적했음을 알았다. 그때 나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십여 년 동안 나의 집은 일리노이 주, 바타비아Batavia 근처에 있었고, 거기서 나는 나의 서재를 위한 대부분의 책들을 모았는데, 비록 내가 스톡홀름으로부터 많은 책을 가져왔지만 말이다. 나중에 나는 로스앤젤레스로 왔는데, 여기에는 1901년 3월 4일에 도착했다. 그 날은 내가 잘 기억하는데, 그것이 맥킨리McKinley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박한 집을 샀고, 덩굴나무와 무화과나무로 둘러싸인 여기 내 자신의 사적 거처에서 우리가 발견했던 새로운 땅들에 대한 지도들과 그림들을 만들고, 나의 아버지와 내가 스톡홀름을 떠나 남극해에서 우리를 갈라놓은 그 비극적 사건이 있기까지 자세한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결심했다.
나는 우리가 1829년 4월 3일 우리의 돛을 단 어선으로 스톡홀름을 떠났던 것을 잘 기억하며, 고스랜드 섬Gothland Island을 왼쪽으로, 올란드 섬Oeland Island을 오른 쪽으로 하면서, 남쪽으로 행해를 떠났다. 며칠 후 우리는 샌호머 지점Sandhommar Point을 급회전하면서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해안을 가르는 소리를 통해 나아가는데 성공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크리스치안센Christiansand의 어촌에 들렀고, 거기서 이틀을 쉬었으며, 그런 다음 스칸디나비아를 돌아 서쪽으로 로포덴 섬을 향해 떠났다.
나의 아버지는 기분이 좋았는데, 우리의 마지막 어획물을 스칸디나비아 해안의 어촌에서 팔기보다 스톡홀름의 시장에서 팔아서 번 충분하고 만족스러운 수입 때문이었다. 그는 작년에 북쪽으로 항해 중에 프란즈 조셉 랜드Franz Joseph Land의 서쪽 해안에서 그가 발견했던 어떤 코끼리 상아들의 판매로 특히 기뻐했으며, 그는 이번에도 우리가 대구, 청어, 고등어, 연어 대신, 상아로 우리의 작은 돛단배를 가득 채울 만큼 다시 행운이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표현했다.
우리는 며칠간 쉬기 위해 위도 74도 40분에 있는 해머페스트Hammerfest에 들렀다. 여기서 우리는 한 주일 동안 머물면서, 여분의 식량과 여러 통의 식수를 준비했고, 그런 다음 스피츠버겐Spitzbergen으로 출항했다.
처음 며칠 동안 우리는 넓은 바다와 호의적인 바람을 만났고, 그런 다음 많은 얼음과 많은 빙산들을 만났다. 우리의 작은 돛단배보다 조금 더 큰 배라면 빙산들의 미로를 통해 가거나 겨우 열린 수로들을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 괴물 빙산들은 크리스탈 궁전들로, 거대한 성당들로, 환상적인 산맥들로 끝없이 연속해서 나타났으며, 근엄한 보초처럼, 움직일 수 없는 단단한 바위의 치솟은 절벽처럼 서있었고, 스핑크스처럼 조용히, 성마른 바다의 요동치는 파도들에 저항하는 듯 했다.
많은 좁은 곳들을 탈출하면서 우리는 6월 23일 스피츠버겐에 도착했고, 잠시 동안 위자드 만Wijade Bay에 정박했으며, 거기서 우리는 꽤 좋은 어획고를 달성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닻을 들어 올렸고, 힌로펜 해협Hinlopen Strait을 통해 나갔으며, 노스이스트-랜드Northeast-Land의 해안선을 따라갔다.
강한 바람이 남서쪽에서 불었고, 나의 아버지는 우리가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면서, 프란츠 조셉 랜드로 가려고 했는데, 그곳에서 작년에 그는 스톡홀름에서 그처럼 큰 수입을 올려준 상아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전에 결코 나는 그처럼 많은 바다 조류들을 본 적이 없는데, 그들은 너무나 수가 많아서 해안선의 바위들을 온통 덮었고 하늘을 어둡게 할 정도였다. 여러 날 동안 우리는 프란츠 조셉 랜드의 울퉁불퉁한 해안을 따라 항해했다. 마침내 우호적인 바람이 불어와서 우리가 웨스트코스트West Coast로 나갈 수 있게 해주었으며, 24시간을 항해한 후 우리는 한 아름다운 후미로 들어갔다.
그것이 그 머나먼 노스랜드Northland인지는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곳은 자라는 풀들로 녹색이었고, 그 장소가 1,2 에이커 밖에 되지 않았지만, 공기가 따뜻했고 고요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걸프 스트림Gult Stream의 영향이 가장 심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거기 동해안에는 많은 빙산들이 있었으나, 여기서 우리는 넓은 바다에 면해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왼쪽으로 멀리 얼음 덩어리들이 있었고, 더 멀리 왼쪽으로 얼음이 낮은 산맥들처럼 나타나보였다. 우리들 앞에는, 곧장 북쪽으로 넓은 바다가 놓여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오딘과 토르Odin and Thor의 열렬한 신봉자였으며, 그들이 “북풍North Wind” 너머 먼 곳으로부터 온 신들이라고 자주 내게 얘기해주었다.
나의 아버지는 설명했는데, 더 멀리 북쪽으로 인간이 알아온 어느 곳보다 더 아름다운 땅이 있으며, 거기에는 “선택된Chosen” 자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구전이 있다고 말했다.
나의 어린 상상력은 나의 선량한 아버지의 열정과 열의, 종교적 열기로 불이 붙었으며, 나는 소리쳤다. “왜 이 신의 나라로 가지 않는 거죠? 하늘은 맑고, 바람은 순조로우며, 바다가 열려 있잖아요.”
지금도 나는 그가 돌아서서 물었을 때 그의 얼굴에서 즐거운 놀람의 표정을 볼 수 있다. “아들아, 너는 나와 함께 인간이 모험해보지 못한 곳으로 가기를, 탐험하고 싶으냐?” 나는 확고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그럼 좋아,” 그는 대답했다. “오딘Odin 신이 우리를 보호해주기를,” 그리고 재빨리 돛을 조절하고, 나침반을 들여다 본 다음, 정 북쪽으로 열린 수로를 통해 배를 돌렸으며, 그리하여 우리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태양은 수평선에 낮게 걸려 있었는데, 그때가 아직 이른 여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실로 우리는 얼어붙는 밤이 다시 오기까지 우리 앞에 거의 4개월의 낮이 있었다.
우리의 작은 돛단배는 우리들처럼 모험을 향해 열렬히 달려갔다. 36시간 안에, 프란츠 조셉 랜드의 해안선의 최고봉의 모습이 사라졌다. 우리는 북동풍으로 북쪽으로 흐르는 강한 조류 속에 있는 듯 보였다. 우리의 오른쪽과 왼쪽으로 멀리 방산들이 있었으며, 그러나 우리의 작은 돛단배는 좁은 수로로 들어가 여러 수로들을 지나 넓은 바다로 나왔는데, 여기저기 수로들이 너무나 좁아 우리 배가 그처럼 작지 않았다면 우리가 결코 헤쳐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3일째 우리는 하나의 섬에 도달했다. 그 해변은 바닷물에 씻겨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내려서 하루 동안 탐험하기로 결정했다. 이 새로운 땅에는 목재들이 없었으나, 북쪽 해안에서는 떠내려 온 나무들의 거대한 더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나무들은 길이가 40피트(12m), 직경이 2피트(60cm)나 되었다.
이 섬의 해안선을 하루 동안 탐험한 후, 우리는 닻을 올리고 배를 넓은 바다의 북쪽으로 돌렸다. 나는 아버지도 나도 거의 30시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음을 기억했다. 아마 이것은 아무도 가보지 않았다고 나의 아버지가 말했던 더 먼 북해로 우리의 이상한 항해에 대한 흥분의 긴장 때문이었으리라. 활동적인 정신력은 육체적 필요성의 요구들을 무디게 만들었다.
우리가 예상했듯이 추위가 심해지는 대신, 날씨가 6주 전의 노르웨이 북쪽 해안의 해머페스트에 있을 때보다 더 따뜻하고 더 포근했다.
우리는 매우 배가 고픔을 둘 다 인정했고, 그래서 나는 식품 저장실로부터 푸짐한 음식을 준비했다. 우리가 식사를 즐겁게 한 후, 나는 아버지에게 잠이 올 것 같다고 말했는데, 심한 졸림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 내가 망을 볼 거야,” 하고 그는 대답했다.
나는 그로부터 내가 얼마나 잤는지를 모르는데, 단지 돛단배의 격심한 요동으로 갑자기 깨어났음을 알았을 뿐이다. 놀랍게도, 나는 아버지가 곤히 잠들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힘차게 그에게 소리쳤고 그는 놀라 벌떡 일어났다. 실로 그가 즉시 난간을 잡지 않았더라면, 그는 분명 요동치는 파도 속으로 던져졌을 것이다.
격렬한 눈보라가 불고 있었다. 바람은 후미를 향해 매 순간 우리를 전복시킬 듯 위협하면서 우리의 돛단배를 무서운 속도로 밀고 있었다. 당황할 시간이 없었고, 돛은 즉시 내려져야 했다. 우리의 배는 격동 속에 몸부림쳤다. 우리가 알고 있던 몇 개의 빙산이 양쪽으로 서있었으며, 그러나 다행히도 수로는 북쪽으로 곧장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로 계속될까? 우리들 앞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수평선에 걸쳐 안개가 끼어있었는데, 바로 물 위에는 이집트의 밤처럼 검고, 위로 가면서 증기구름처럼 하얀 안개가 되었는데, 그것은 떨어지는 거대한 흰 눈송이들과 섞이면서 마침내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불안정한 빙산을 가리고 있는지, 달려오는 우리의 작은 돛단배를 받아쳐 물 밑으로 수장시킬런지, 아니면 하나의 북극의 안개 현상에 지나지 않는지, 그것을 분간할 방법이 없었다.
어떤 기적에 의해 우리가 완전한 파괴의 충돌을 피해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우리의 작은 배가 마치 이음새들이 부사지고 있는 듯 삐걱거리며 신음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마치 큰 소용돌이의 사나운 역류에 사로잡힌 듯 흔들리면서 앞뒤로 비틀거렸다.
다행히도 우리의 나침반은 대들보의 긴 나사못에 매여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 식량의 대부분이 나뒹굴면서 작은 짐칸의 갑판으로부터 휩쓸려 나갔고, 우리가 맨 처음 돛의 기둥에 우리 자신을 단단히 묶지 않았다면 우리는 질타하는 바다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을 것이다.
성난 파도의 귀청이 터질 듯한 소리 위로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들아, 용기를 내어라,” 그는 소리쳤다. “오딘은 물의 신이고, 용감한 자들의 친구이고, 그는 우리들과 함께 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에게는 우리가 참혹한 죽음을 피해갈 가능성이 없는 듯이 보였다. 작은 돛단배에는 물이 가득 찼고, 눈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내리고 있었으며, 파도는 흰 물보라를 맹렬히 뿌리면서 난간위로 넘실거렸다. 우리가 어느 순간, 떠다니는 얼음 덩어리에 곤두박질하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엄청난 파도가 우리를 파도의 산꼭대기로 들어 올렸다가 마치 우리의 고기잡이 배가 연약한 조개껍질인 듯 깊은 바다 골짜기로 내동댕이쳤다. 거대한 흰 모자를 쓴 파도들이 단단한 벽처럼 앞과 뒤에서 우리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 끔찍한 신경을 곤두세우는 시련은 그 이름 없는 긴장의 공포,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의 고뇌와 함께 3시간 이상이나 계속되었고, 그 동안 우리는 격렬한 속도로 앞으로 밀려갔다. 그런 다음, 갑자기, 마치 그 광란의 호기가 점점 싫증이 낳는지, 바람이 그 노여움을 풀면서 차츰 시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는 완전한 고요 속에 있었다. 안개도 사라졌으며, 우리들 앞에는 얼음이 없는 수로가 아마 10 내지 15마일이나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몇 개의 빙산이 우리 오른쪽에서 멀리 보였고, 왼쪽으로는 작은 섬들의 군도가 드문드문 보였다.
나는 아버지를 자세히 바라보면서 그가 말하기 전에는 조용히 있으리라고 결심했다. 지금 그는 허리로부터 로프를 풀고 있었고, 말 한 마디 없이 펌프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다행히 손상되지 않았으며, 폭풍의 광란 속에 퍼 담았던 물을 빼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어망을 던지려는 듯 배의 돛을 조용히 펼쳤으며, 그런 다음 우리는 순풍이 올 때 맞을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그의 용기와 인내는 정말로 대단했다.
우리가 조사를 해보니 식량이 1/3도 안되게 남은 것을 알았으며, 우리는 물통들이 배가 격렬하게 떨어질 때 갑판으로부터 휩쓸려 나간 것을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물통 2개는 짐칸에 있었는데, 그러나 둘 다 비어 있었다. 우리는 상당한 음식이 있었으나 먹을 물이 없었다. 나는 즉시 우리 입장의 참담함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격심한 갈증에 사로잡혀 있었다. “참 딱하군,” 아버지가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젖은 옷을 말리자, 우리가 완전히 젖었어. 아들아, 오딘 신을 믿어라. 희망을 버리지 말자.”
태양이 비스듬히 비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먼 북쪽 땅에 있다기보다 남쪽 위도에 있는 듯이. 해는 한 바퀴 돌고 있었는데, 그 궤도가 언제나 보였고, 매일 점점 더 높이 떠올랐으며, 자주 안개로 덮였는데, 그러나 언제나 마치 어떤 운명의 까다로운 눈처럼 구름 사이로 내다보았고, 신비로운 북쪽 땅을 수호하면서, 질투심으로 인간의 못된 장난을 주시하는 듯 했다. 우리의 오른쪽으로 멀리, 빙산의 프리즘으로 반사된 빛들이 아름다웠다. 그 반사는 석류석, 다이아몬드, 사파이어의 빛깔들을 내뿜었다. 무수한 색깔들과 모양들의 화려한 파노라마였으며, 그 아래에는 녹색을 띤 바다가, 위로는 보라색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북풍을 넘어서BEYOND THE NORTH WIND
나는 음식을 좀 가져오고, 짐칸으로부터 빈 물통 하나를 가져오면서, 바쁘게 움직이면서 갈증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손과 얼굴을 씻으려는 목적으로 나는 난간 밖으로 물통에 물을 채웠다. 물이 나의 입술과 닿자 나는 깜짝 놀랐는데, 소금기가 없었다. 나는 그 발견으로 정말 놀랐다. 나는 숨이 넘어갈 듯 소리쳤다. “아버지, 물이, 물이, 먹을 수 있어요.” “올라프, 뭐라고?” 아버지는 급히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네가 정말 이상해졌구나. 땅도 없는데, 네가 정신이 이상해 지나보군.” “맛보세요!” 나는 소리 질렀다.
그런 다음, 우리는 물이 실제로 민물이라는 것을, 최소한의 소금기도 없는, 심지어 소금의 맛을 의심할 수도 없는, 절대로 민물임을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는 2개의 남은 물통들을 채웠고, 나의 아버지는 그것이 오딘과 토르 신들로부터 자비로운 천상의 은혜라고 선언했다.
우리는 기쁨으로 들떠있었고, 그러나 배고픔이 우리의 참아온 단식을 끝내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넓은 바다에서 마실 물을 발견한 지금, 배가 결코 다녀본 적 없고 노 젓는 소리가 들린 적 없는 이 이상한 위도에서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가?
우리는 산들바람이 한가한 돛을 부풀게 만들기 시작할 때 배고픔을 겨우 달랬고, 나침반을 들여다보았을 때 우리는 북을 가리키는 침이 유리에 딱 달라붙은 것을 발견했다.
나의 놀라는 반응에 아버지가 말했다. “난 전에 이것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그것은 그들이 바늘의 침잠dipping of the needle이라고 부르는 거야.”
우리는 바늘이 유리로부터 떨어져 방해받지 않게 가리키라고, 나침반을 느슨하게 하고 그것을 바다 쪽으로 향하게 한 다음 직각으로 돌렸다. 그것은 마지못해 움직였으며, 술 취한 사람처럼 불안정하게 보였고, 마침내 하나의 방향을 가리켰다.
이것을 하기 전에 우리는 바람이 북서풍으로 북쪽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바늘이 자유로워진 다음 우리가 그것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가 북동풍으로 약간 북쪽으로 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우리의 진로는 항상 북쪽을 향했다.
바다는 고요하게 순조로웠고, 거의 파도가 없었으며, 바람은 산들거리고 즐거웠다. 태양의 빛은 우리를 비스듬히 비추면서 차분한 따뜻함을 주었다. 그리하여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갔고, 우리 일지의 기록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공해에서 폭풍을 만나 후 11일 동안 항해했음을 알았다.
철저한 검약으로 우리의 음식이 우리를 잘 지탱하게 해주었으나,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물통 중 하나가 비어졌으며, 나의 아버지는 말했다. “물을 다시 채워야겠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는 물이 지금은 노르웨이 해안의 로포덴 섬 지역에서처럼 소금기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것은 우리가 남아있는 물통을 극도로 아끼게 만들었다.
나는 오래 동안 잠을 청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미지의 바다를 항해한다는 흥분의 체험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폭풍의 바다에서 우리 모험의 무섭게 긴장된 사건으로부터 긴장완화로 인한 것인지, 또는 음식의 부족으로 인한 것인지,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작은 돛단배의 짐칸 쪽으로 자주 누웠고, 하늘의 푸른 돔으로 멀리 바라보았는데, 태양이 동쪽에서 멀리 빛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머리 위에 있는 하나의 별을 보았다. 며칠 동안 내가 이 별을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항상 우리들 바로 위에 있었다.
때는 이제 우리 계산으로 8월 1일 경이었다. 태양이 하늘에 높이 떠 있었고, 너무나 밝아서 며칠 전에 나의 관심을 끌었던 하나의 외로운 별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이 시기의 어느 날, 나의 아버지가 나를 깨워서 거의 수평선으로 우리들 앞에 멀리 있는 한 신기한 광경으로 나의 관심을 돌렸다. “저건 가짜 태양이야,” 그는 소리쳤다. “그것에 대해 읽은 적이 있어, 그것은 반사나 신기루라고 부르지. 그건 곧 사라질 거야.”
그러나 이 불그스레한 가짜 태양은, 우리가 생각한 대로 몇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그것이 내뿜는 빛을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은, 매일 24시간 중 최소한 12시간 동안인데, 우리는 여전히 앞의 수평선을 넘어 가짜 태양의 광채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구름과 안개가 종종 거의, 그러나 전부는 아닌데 그 태양의 위치를 가렸다. 점차 그것은 우리가 다가가면서 뿌연 보라색 하늘의 수평선에서 더 높이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둥근 모양을 제외하고는 태양과 닮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구름이나 바다의 안개로 가려지지 않을 때에는 뿌연 붉은 색의 구리의 모습을 가졌으며, 마치 저 너머 더 큰 빛을 반사하듯이, 빛나는 구름처럼 흰 빛으로 바뀌곤 했다.
우리는 의논에서 그 현상의 원인이 무엇이든, 그것이 우리 태양의 반사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행성 - 하나의 현실 - 이라고 이 뿌연 용광로 색깔인 태양에 대한 합의에 마침내 도달했다. 이 후 곧 어느 날, 나는 심하게 졸림을 느꼈고, 편안하게 잠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듯, 금방 나는 아버지가 어깨를 힘차게 흔들면서 ”올라프, 깨어나, 섬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섰고, 오! 기쁨이 말할 수 없었다! 멀리, 그러나 바로 우리의 길 앞에, 바다로 삐죽이 나온 땅들이 있었다. 해안선이 눈이 닿는 멀리까지 우리의 오른쪽으로 뻗어있었다. 모래사장을 쭉 따라 파도가 거품으로 부서지면서 나갔다 들어오며, 단조로운 우렁찬 음조로 심해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제방이 나무들과 풀들로 덮여있었다.
나는 이 발견으로 내가 느꼈던 환희의 기쁨을 표현할 수 없다. 나의 아버지는 키에 손을 얹고, 곧장 앞을 보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가슴은 오딘과 토르 신에 대한 은혜의 감사의 기도로 가득 차있었다.
그러는 동안 짐칸에 있던 그물을 바다로 던졌고, 우리는 줄어들던 식량에 물질적으로 보탬을 줄 몇 마리의 물고기를 잡았다.
또 다른 폭풍의 두려움으로 우리가 제 자리에 붙여놓았던 나침반은 아직도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스톡홀름에서처럼 그 축을 돌고 있었다. 바늘의 눌림은 멈추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우리들의 항해의 많은 날들은 확실히 우리를 북극North Pole을 지나 멀리로 데려왔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바늘은 계속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는 매우 당황했는데, 확실히 우리의 방향이 지금은 남쪽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해안선을 따라 3일간을 항해했으며, 그때 피요르드fjord의 입구, 광대한 강의 입구가 나타났다. 그것은 큰 만과 같아 보였고, 이곳으로 우리는 고기잡이 배를 돌렸으며, 방향은 남쪽의 약간 북동쪽이었다. 매 24시간 중 12시간 동안 우리를 밀어주는 성마른 바람의 도움으로, 우리는 내륙으로, 나중에 우리가 주민들로부터 히덱켈Hiddekel이라고 알게 된 거대한 강으로 계속 들어갔다.
우리는 그로부터 10일간 여행을 계속했고, 대양의 조수가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물이 소금기가 없는 강으로, 깊은 내륙으로 들어왔음을 알았다.
그 발견은 우리의 남아있던 물통이 거의 비어갈 무렵 왔다. 우리는 급히 물통들을 채웠으며, 바람이 순조로울 때 강을 거슬러 위쪽으로 더욱 여행을 계속했다.
제방을 따라 수 마일에 이르는 큰 숲이 연안을 따라 펼쳐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무들은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우리는 가까운 모래사장에 닻을 내린 다음 상륙했고, 매우 입맛에 맞고 배고픔을 달래주는 많은 너트들로 보상 받았으며, 그것은 우리의 남은 단조로운 식량으로부터 반가운 변화였다.
그것은 9월 초 무렵이었고, 우리가 스톡홀름을 떠난지 우리 계산으로 5개월 이상이 되었다. 갑자기 우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거의 정신 나간 듯 놀랐다. 그 후 곧 우리는 거대한 배가 강으로 미끄러지면서 우리를 향해 오는 것을 발견했다. 거기 탄 자들은 제방 여기저기로 에코가 울리는 하나의 힘찬 합창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천명이 부르는 목소리로, 떨리는 멜로디로 전 우주를 채우려는 듯이 노래를 불렀다. 반주가 우리의 하프 같은 현악기로 연주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본 어느 배보다 큰 배였고, 다른 식으로 건조되어 있었다.
이 특별한 시간에 우리의 돛단배는 조용해졌고 연안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강의 제방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수백 피트(30m x ?)나 치솟은 매머드 나무들로 덮여 있었다. 우리는 분명히 내륙으로 뻗어있는 어떤 원시림 변두리에 있는 듯이 보였다.
광대한 배는 멈추었고, 거의 즉시 보트가 내려졌으며, 거대한 키의 여섯 남자들이 우리의 작은 고기잡이 돛단배로 노를 저어왔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상한 언어로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태도로부터 그들이 비우호적이 아님을 알았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상당히 얘기했고, 마치 우리를 발견한 것이 신기한 발견을 한 것처럼, 그들 중 하나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들 중 하나가 우리의 나침반을 엿보았고, 그것이 우리 배의 다른 어느 부분보다 그들에게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였다.
마침내 지도자가 우리가 우리 배를 떠나 그들의 배에 오르겠는가를 묻는 듯한 몸짓을 했다. “아들아, 넌 뭐라고 하겠니?” 하고 아버지가 물었다. “그들이 우리를 죽이는 이상이야 하겠는가.”
“그들은 친절한 성품인 거 같아요,” 나는 대답했다. “비록 대단한 거인들이긴 하지만! 그들은 왕국의 진압 부대의 선발된 6명이 틀림없어. 그들의 장대한 크기를 봐요.”
“우리는 끌려가기보다 자발적으로 가는 게 나아,” 아버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그들은 분명 우리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는 몸짓으로 우리가 그들과 같이 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렸다.
몇 분 후에 우리는 그 배를 올랐고, 30십분 후에 우리의 작은 고기잡이 배가 이상한 고리에 의해 통째로 물에서 들어 올려 졌으며, 호기심으로 갑판 위에 놓여졌다.
우리들에게는 매머드와 같은 이 배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으며, 배는 “나즈The Naz”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나중에 그것이 “즐거움”, 더 정확하게는 “즐거운 소풍Pleasure Excusion”의 배를 의미함을 알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와 내가 배의 탑승원들로부터 호기심으로 관찰되었다면, 이 이상한 거인 종은 우리들에게 대등한 정도의 경이감을 주었다.
배 위에는 키가 완전히 12피트(3.6m)가 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무성한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특히 길지는 않고 짧게 자른 듯 했다. 그들은 온화하고 아름다운 얼굴, 불그스름한 혈색의 특히 섬세한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일부의 머리와 수염은 검은 색이었고, 다른 이들은 모래 색이거나 노란 색이었다. 우리가 큰 배를 지휘하는 인물로 선장으로 생각한 이는 그의 다른 동료들보다 머리 하나가 완전히 더 컸다. 여자들은 평균적으로 10피트에서 11피트(3m-3.3m)였다. 그들의 이목구비는 특히 균형이 잡히고 세련된 반면, 그들의 얼굴은 건강한 빛으로 고조된 가장 고운 빛을 띠고 있었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우리가 좋은 가문의 표시로 생각하는 그 특유의 우아한 매너를 지닌 듯 보였고, 그들의 우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그들 주위로 어색함을 나타내는 그 무엇도 없었다. 내가 19살 밖에 안 된 한 소년이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내가 난장이로 보였으리라. 1.8미터 되는 아버지의 머리는 이 사람들의 허리 위를 넘지 못했다.
각각이 우리에게 예의를 나타내고 친절을 보이는데 다른 사람과 겨루는 듯 보였고, 그들이 나의 아버지와 내가 테이블에 앉도록 의자를 즉석에서 만들어주었을 때 모두들 밝게 웃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들은 그들에게 특이하고도 아주 매력적인 고급스러운 의상을 입었다. 남자들은 비단과 새틴의 멋지게 수놓은 튜닉을 입고 허리에 벨트를 찼다. 그들은 짧은 바지와 고운 질감의 스타킹을 신었고, 그들의 발은 금 버클로 장식된 샌들을 신고 있었다. 우리는 금이 가장 흔한 금속으로 알려져 있음을, 그것이 장식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일찍이 알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나의 아버지도 나도 우리의 안전에 대해 조금도 걱정을 느끼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땅으로 왔다.” 나의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이것은 내 아버지와 내 할아버지가, 그리고 우리 종족의 많은 세대들을 통해 전해져온, 내가 들어온 이야기의 완성이야. 이것은 확실히 북풍 너머의 땅이야.”
우리가 그 그룹에게 큰 인상을 준 듯 했고, 우리는 그들 언어의 교육을 받을 목적으로 그들 중 한 사람인 쥴스 갈데아Jules Galdea와 그의 아내에게 특별히 맡겨졌으며, 우리들로서도 그들이 가르치는 것을 배우기를 열망했다.
선장의 명령으로, 배는 교묘하게 한 바퀴 돌아 강 위쪽으로 그 진로를 되돌리기 시작했다. 그 엔진은 소음이 없는 반면 매우 강력했다.
양쪽의 제방들과 나무들이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배의 속도는 가끔 내가 여기 미국에서조차 타 본 어느 기차보다 빨랐다. 그것은 훌륭했다.
그러는 동안 태양 빛이 사라졌으며, 그러나 우리는 이미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불그스레한 태양에서 나오는 “그 내부의” 빛이 지금 우리들 앞에 멀리 있는 구름 언덕으로 흰 빛을 주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맑은 밤하늘에 두 개의 보름달보다 더 밝은 빛을 비추었다.
12시간 안에 이 흰 구름은 마치 기울어지듯 시야로부터 지나갈 것이고, 우리의 밤에 해당하는 12시간이 뒤따를 것이다. 우리는 이 이상한 사람들이 이 밤의 큰 구름을 숭배하는 자들임을 일찍이 알았다. 그것은 “내부 세계Inner World”의 “연기의 신The Smoky God”이었다.
배는 내가 지금 전기라고 알게 된 발광의 양식을 장착하고 있었지만, 내 아버지도 나 자신도 배를 운전하거나 부드러운 아름다운 빛을 유지하는 그 힘이 어디서 오는지 이해할 만큼 기계학에 조예가 없었다. 그것은 근래에 와서 우리 도시들의 거리들, 우리의 주택들, 사업장들을 밝히는 전등의 같은 목적에 답을 주었지만 말이다.
내가 기록했던 그 시기가 1829년 가을임을 기억해야 하는데, 지구의 “외부outside” 표면의 우리들은 당시에 소위 전기라는 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전기적으로 충전된 공기의 상태가 항구적인 동력원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내가 지구의 내부에서 여행했던 2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다고 느낀다.
사건들에 대한 나의 설명을 재개하자면, 우리가 탔던 배가 우리가 그 배를 탄지 이틀이 지나서 도착했다. 나의 아버지는 그가 판단할 수 있는 최선으로, 우리가 바로 스톡홀름이나 런던 아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도착한 도시는 항구 어촌을 뜻하는 “제후Jehu”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집들은 크고 아름답게 건축되었으며, 모양이 꽤 일관적이었으나 똑같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중요한 일은 농업처럼 보였다. 언덕 기슭들은 포도밭으로 덮여있었고, 계곡들은 곡식의 재배에 충당되었다.
나는 그처럼 많은 금이 진열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모든 곳에 있었다. 문의 케이스들이 금 상감으로 꾸며졌고, 테이블들은 금의 합판으로 꾸며져 있었다. 공공건물들의 돔들이 금으로 덮여있었다. 음악의 대 전당들의 마감재에 금이 주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풀들이 왕성하게 자랐으며, 모든 종류의 과일들은 가장 특이한 향미를 지니고 있었다. 포도송이는 4-5피트(1.2-1.5m)나 되었고, 각각의 포도 알이 오렌지만 했으며, 사람 머리보다 큰 사과들은 지구의 “내부inside”의 모든 것의 경이로운 성장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캘리포니아의 거대한 미국 삼나무는 여기서 모든 방향으로 수십 마일이나 뻗어있는 거대한 숲의 나무들에 비교할 때 관목들에 지나지 않았다. 산기슭을 따라 많은 방향들에서 거대한 소떼들이 강에서의 우리 여행의 마지막 날 동안 보였다.
우리는 “에덴Eden”으로 부르는 도시에 대해 많이 얘기를 들었으며, 그러나 1년 동안은 전적으로 “제후”에 남아있었다. 그 시기가 끝날 무렵, 우리는 이 이상한 종족의 사람들의 언어를 꽤 익숙하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의 교사인 쥴스 갈데아와 그의 아내는 참으로 칭찬할만한 인내를 보여주었다.
하루는 “에덴”의 지도자로부터 한 사절이 우리를 보러 왔고, 이틀 동안 나의아버지와 나는 일련의 놀라운 질문들을 받았다. 그들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바깥”에서 살고 있는지, 어떤 신God을 우리가 숭배하는지, 우리의 종교적 신념이 어떤지, 우리의 이상한 땅에 생활 방식이 어떤지, 그리고 수천의 다른 질문들을 알고 싶어 했다.
우리가 가져갔던 나침반은 특별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나의 아버지와 나는 우리들끼리 나침반이 아직도 북쪽을 가리킨다는 사실에 대해 얘기했는데, 비록 우리가 지금 지구의 구멍의 곡선 또는 테두리를 넘어 항해했고, 지구의 껍질의 “안쪽” 표면에서 남쪽으로 멀리 와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의 계산에 따르면, 내부에서 외부 표면까지의 두께가 약 300마일이 될 것이라고 알고 있다. 비교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계란 껍질보다 더 두껍지 않은데, 따라서 지구의 외부에 있는 것처럼 내부에도 같은 정도의 지각이 있는 것이다.
거대한 빛나는 구름 또는 불그스레한 불의 공은 - 아침과 저녁에는 불타는 빨간 색을, 한 낮에는 아름다운 흰 빛을 내는 “연기의 신the Smoky God”으로 - 외관상 내부 지구의 거대한 진공의 중심에 멈춰 있는 듯, 혹은 불변의 중력 법칙에 의해서거나, 반발적 대기의 힘으로 그 자리에 묶여 있는 듯 보인다. 나는 모든 방향에서 동등한 힘으로 당기거나 반발하는 알려진 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전기 구름, 혹은 중앙 발광체의 바탕, 신들gods의 자리는 검고 투명하지 않은데, “연기의 신”이 그 위에서 쉬는, 신성한 제단 혹은 큰 지지대의 바닥에 있는 듯 보이는 무수한 작은 구멍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들 많은 구멍들을 통해 나오는 빛들이 밤에 그 광채로 반짝이며 별들처럼 보이는데, 우리가 스톡홀름의 집에서 바라본 빛나는 별들과 같이 자연스럽지만 예외는 그것들이 더 크게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연기의 신”은 매일 지구의 회전으로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외부 표면에서 우리들의 태양이 하는 것과 같다. 현실적으로 “내부”의 사람들은 “연기의 신”이 그들의 제호바Jehovah의 왕관이고 정지되어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밤과 낮의 효과는 지구의 매일 회전에 의해서 생긴다.
나는 그 후 내부 세계의 사람들의 언어가 산스크리트Sanskrit와 많이 닮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부 대륙의 정부의 중앙 권좌로부터 온 사자들에게 우리 자신에 대한 설명을 준 후, 나의 아버지는 조잡한 방식으로, 그들의 요청대로, 지구의 “외부” 표면에 대한 지도를, 땅과 바다의 구분을 보여주고, 각 대륙과 큰 섬들과 대양의 이름을 주는 지도들을 그렸으며, 우리는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것과는 다른 운송수단으로 “에덴Eden”의 도시로 데려가졌다. 이 운송수단은 틀림없이 어떤 전기의 발명품이었다. 그것은 소음이 없고, 완전한 균형 속에서 단일 궤도를 달렸단. 여행은 아주 높은 속도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언덕들과 골짜기들을 지났고, 계곡들을 지나 다시 가파른 산기슭을 따라, 우리가 철로를 만들듯이 땅을 평형하게 만들려는 어떤 시도도 없이 오르내리며 달렸다. 차 안의 좌석은 거대했으나 편안했고, 바닥에서 무척 높았다. 각 차량의 꼭대기에는 높이 장착된 나는 바퀴들이 옆으로 놓여 있었고, 아주 자동적으로 조절되기 때문에, 차의 속도가 증가할 때 이 나는 바퀴들의 속도가 기하학적으로 증가했다. 쥴스 갈데아는 차 꼭대기의 이 회전하는 선풍기 같은 바퀴들이 대기의 압력을, 혹은 일반적으로 중력의 의미로 이해되는 것을 소멸시킨다고, 그리고 이 힘이 소멸되거나 무로 만들어질 때 차가 단일 레일로부터 어느 쪽으로 떨어지지 않고 안전한데, 마치 그것이 진공 속에 있는 듯이 안전하다고 우리에게 설명했다. 그 급속한 회전에서 나는 바퀴들은 실제로 중력의 힘을, 혹은 대기압을, 혹은 땅 표면으로의 근접한 저항 점으로 모든 것을 낙하하게 만드는 어떤 잠재적 영향력을 소멸시킨다는 것이다.
왕실의 위용을 갖춘 넓은 홀 가운데서 우리가 마침내 모든 땅들의 지배자인 최고 사제Great High Priest 앞으로 데려가졌을 때, 나의 아버지와 나의 놀라움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고, 그 주위의 자들보다 훨씬 컸으며, 키가 14-15피트(4.2m-4.5m) 정도 되었다. 우리가 접견한 광대한 방은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들이 여기저기 박힌 단단하고 두꺼운 금판들로 꾸며져 있는 듯 보였다.
에덴의 도시는 아름다운 계곡으로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실제로는 내부 대륙Inner Continent의 가장 높은 고원 위에, 둘러싸고 있는 지역의 어느 곳보다 수천 피트나 더 높은 곳에 있었다. 그것은 내가 모든 나의 여행에서 보아온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였다. 이 높은 정원에는 모든 종류의 과실들, 덩굴들, 관목들, 나무들, 꽃들이 요란한 풍성함 속에 자라고 있었다.
이 에덴의 막강한 원천의 수원에 4대 강이 그 기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나눠지며 4대 방향으로 흘렀다. 이 장소는 주민들에 의해 “땅의 배꼽navel of the earth,” 혹은 시작, 혹은 “인간 종의 요람the cradle of the human race”이라고 불리어졌다. 강들의 이름들은 유프라테스Euphrates, 피손the Pison, 기혼the Gihon, 그리고 히데켈the Hiddekel이었다.
이 아름다운 궁전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예기치 못한 것은 우리의 작은 고기잡이 배의 발견이었다. 그것이 1년 좀 더 전에 우리를 발견했던 사람들에 의해 배에 실어졌던 바로 그날, 물에서 들어 올린 것과 같은 완전한 모습으로 최고 사제 앞에 가져와져 있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사제와 두 시간이 넘게 알현을 가졌으며, 그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성품인 듯 했다. 그는 확실히 그의 사절들이 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함으로써 직접 열띤 관심을 보여주었다.
인터뷰의 결론에서 그는 우리가 즐거운지, 우리가 그의 나라에 남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우리가 지구의 북쪽과 남쪽 입구를 둘러싼 얼음의 장애물들을 지나 성공적인 귀환 여행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질 때 “외부” 세계로 돌아가기를 더 원하는지를 물었다.
나의 아버지는 대답했다. “나와 내 아들이 당신의 나라를 방문하고, 당신의 국민을 만나고, 당신들의 대학들과 음악 및 예술의 궁전들을, 당신들의 거대한 농장들을, 당신들의 훌륭한 목재의 숲들을 본 것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며, 우리가 이 즐거운 특권을 누린 다음, 우리는 지구의 ”외부“ 표면에 있는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나가는 길이 가장 위험하기 때문에 당신들이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가봐 두렵습니다,” 하고 최고 사제가 대답했다. “그러나 당신들은 쥴스 갈데아의 에스코트를 받아 다른 지방들을 방문할 것이고, 모든 예의와 친절로 대우 받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돌아가는 항해를 할 준비가 될 때가 언제이든, 나는 여기 전시된 당신들의 배를 히데켈 강의 입구로 보낼 것이고, 우리는 당신들에게 제호바Jehovah의 속도를 기원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최고 사제, 대륙의 지배자와의 우리의 유일한 인터뷰가 끝났다.
내부 지구로의 여행 - 2부 A VOYAGE TO THE INNER WORLD By Olaf Jansen 1908 From the Book "The Smoky God" by Willis George Emerson 나사(NASA)에서 공개한 지구 북극 위에서 찍은 위성사진 위성에서 찍은 위 사진을 확대한 것 지저 세계에서IN THE UNDER WORLD 우리는 남자들이 75세에서 100세가 되기 전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자들이 적령기로 들어가는 나이는 단지 조금 적으며, 남자와 여자 둘 다 보통 600살에서 800살까지 살고, 어떤 경우에는 더 오래 산다는 것을 알았다. 뒤이은 해 동안 우리는 많은 마을들과 소도시들을 방문했으며, 그들 중에 뛰어난 도시들은 니지Nigi, 델피Delfi, 헥티아Hectea였으며, 나의 아버지는 지도를 작성하느라 6번이나 불려갔는데, 그것은 지구의 “바깥” 표면에 있는 땅과 바다의 구분으로 그가 처음 그렸던 대략의 스케치로부터 만들어졌다. 나는 “연기의 신”의 나라에 있는 거인 인종의 사람들이 스톡홀름의 일반 대학의 교수들이 아는 만큼 지구의 외부 표면의 지도에 대해 거의 정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아버지가 말했던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우리의 여행들에서 우리는 델피 시 가까운 곳에서 거대한 나무들의 숲으로 왔다. 성경이 키가 300피트(90m)나 되고 직경이 30피트(9m)나 되는 나무들이 에덴의 정원에 자라고 있었다고 말했다면, 잉그솔Ingersolls 파나 톰 페인Tome Paines 파나, 볼테르Voltaires 피는 틀림없이 그것을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캘리포니아의 세쿼이아 거목들에 대한 묘사이며, 그러나 이들 캘리포니아 거목들은 “내부” 대륙에서 발견되는 숲의 골리앗들과 비교할 때 보잘것없이 되는데, 거기에는 키가 800-1000피트(240m-300m), 직경이 100-120피트(30m-36m)가 되는 거대한 나무들이 셀 수 없는 숫자로 가득하며, 바다로부터 수백 마일이나 내륙으로 뻗치는 숲들을 형성하고 있다. 사람들은 극도로 음악적이고, 예술과 과학, 특히 지리와 천문학의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도시들에는 음악의 웅장한 궁전들이 지어져 있고, 자주 25,000명이나 되는 이 거인들의 힘찬 목소리들이 가장 숭고한 심포니의 막강한 합장들로 울려 퍼졌다. 어린이들은 20살이 되기 전에는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다음 그들의 학교생활이 시작되며, 30년간 계속되는데, 그 중 10년은 남녀가 일관적으로 음악 공부에 전념하게 된다. 그들의 주된 직업은 건축, 농업, 원예, 방대한 소 떼들의 사육, 그리고 땅과 바다로의 여행을 위한 그 지방에 특이한 편이시설들의 건설이다.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장치로 그들은 그들 나라의 가장 먼 지역들과, 기류 상으로, 서로 교신을 했다. 모든 빌딩들은 힘과 내구성, 아름다움, 대칭성, 그리고 내가 다른 곳에서 관찰한 어떤 건물보다 더 눈을 사로잡는 건축 양식으로 지워졌다. 지구의 내부 표면의 3/4 정도가 육지이고, 1/4 정도가 물이다. 여러 크기의 수많은 강들이 있고, 일부는 북쪽으로, 다른 것들은 남쪽으로 흐른다. 이 강들의 어떤 것은 폭이 30마일이나 되며, 이들 방대한 수로들로부터 물이 지구의 “내부” 표면의 최북단과 최남단으로 흐르고, 지역적으로 낮은 온도가 체험되며, 민물 빙산들이 형성된다. 그것들은 매년 두 차례 그들 앞의 모든 것을 휩쓰는 격렬한 기상이변적인 홍수에 의해 거대한 얼음 덩어리들로 바다로 밀려간다. 우리는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숲에선 마주치는 새들보다 크지 않는 무수한 조류의 표본들을 보았다. 지난 몇 년 간, 조류의 많은 종들이 사라진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 작가가 이 주제에 대해 최근 기사에서 글을 썼다. “거의 매년 하나나 다른 새 종류가 멸종되었다. 하나의 섬에서만도 - 서인도의 세인트 토마스 섬St. Thomas Island - 한 세기 전에 발견되었던 조류의 14 종 가운데 8종이나 사라진 것으로 발견되었다.” 이 사라진 새들의 종들이 “외부”에서 서식을 끝내고, “내부 세계”에서 피난처를 찾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산들 속의 내지에서, 그리고 해안을 따라 우리는 풍부한 조류의 서식지들을 발견했다. 그들이 날개를 펼쳤을 때 어떤 새는 30피트(9m)나 되는 듯 보였다. 그들은 굉장히 다양한 종류로 많은 색깔들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바위 절벽으로 올라가 알이 든 둥지를 조사하도록 허락을 받았다. 둥지에는 4개의 알이 있었으며, 각각이 최소한 길이 2피트(60cm), 지름이 15인치(37.5cm)나 되었다. 그 후 우리는 헥티아Hectea 시에서 한 주일 간 머물렀고, 갈데아 교수는 우리를 내해로 데려갔는데, 거기서 우리는 모래 연안을 따라 수천 마리의 거북들을 보았다. 나는 이 거대한 생물들의 크기를 말하기가 망서려진다. 그들은 길이가 25-30피트(7.5-9m), 폭이 15-20피트(4.5-6m), 그리고 높이가 완전히 7피트(2.1m)였다. 그들 중 하나가 그 머리를 내밀 때는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의 모습이 되었다. “내부”의 이상한 조건들이 풍성한 풀들의 방대한 초원들, 거목들의 숲들, 모든 종류의 식물 뿐 아니라 경이로운 동물들에게도 유리한 것 같았다. 어느 날, 우리는 코끼리들의 큰 무리를 보았다. 거기에는 500여 마리의 천둥소리를 가진 이 괴물들이 거대한 몸체들을 끊임없이 흔들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나무로부터 거대한 가지들을 찢고, 작은 나무들을 짓밟아 먼지로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보통 길이가 100피트(30m), 높이가 75-85피트(22.5-25.5m)가 되었다. 내가 이 멋진 거대한 코끼리들의 무리를 응시하고 있었을 때, 마치 내가 스톡홀름의 공공 도서관에 있는 듯 느껴졌는데, 거기서 나는 마이오세Miocene 시대의 경이들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나는 말없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나의 아버지 역시 경이감으로 말을 잃었다. 그는 우리가 마치 다치게 되지나 않을 가봐 나를 보호하려는 듯 나의 팔을 잡고 있었다. 우리는 이 거대한 숲에서 두 개의 원자에 지나지 않았고, 다행히도 이 방대한 코끼리 무리들에게 관찰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양들의 무리가 그러하듯 우두머리를 따라 황급히 떠나버렸다. 그들은 여행할 때 앞에서 자라는 초목들을 먹었고, 이따금 그들의 깊이 울리는 소리로 하늘을 뒤흔들었다. 매일 저녁 땅에서 올라가는 뿌연 안개가 있었고, 매 24시간마다 한번 틀림없이 비가 내렸다. 이 풍부한 습기와 생생한 전기적 빛과 따뜻함이 어쩌면 풍성한 식물들을 설명해줄지 모르며, 고도로 전기적으로 충전된 공기와 고른 기상 조건들이 모든 동물들의 거대한 성장과 장수에 많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장소에 따라 평평한 골짜기들이 모든 방향으로 수십 마일이나 뻗어있다. “연기의 신”은 그 맑은 흰 빛 속에 있을 때는 차분하게 보인다. 전기적으로 충전된 공기 속에는 사라지는 속삭임처럼 부드럽게 뺨을 스치는 흥분이 있었다. 자연은 자장가를 바람의 속삭임 속에 불렀으며, 그 숨결은 꽃 봉우리와 꽃들의 향기로 달콤했다. “내부” 세계의 많은 도시들 중 몇 개와 그 사이에 있는 많은 지역들을 방문하는데 1년 이상을 보낸 후, 우리가 강에서 큰 유람선에 승선한 시간으로부터 2년 이상이 지난 후, 우리는 다시 한번 바다로 우리의 행운의 주사위를 던지기로 결정했고, 지구의 “외부” 표면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우리의 소원하는 바를 알렸고, 그들은 마지못해, 그러나 신속히 따라주었다. 우리의 주인들은 나의 아버지의 요청대로 지구의 내부 표면 전체를, 그 도시들, 대양들, 바다들, 강들, 만들을 보여주는 다양한 지도들을 주었다. 그들은 또한 관대하게 금덩어리들이 든 많은 주머니들을 - 그것들의 일부는 거위 알만큼 컸는데 - 줄 것을 제의했고,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작은 고기잡이 배에 그것들을 실으려고 했다. 적당한 때에 우리는 제후Jehu로 돌아갔고, 거기서 우리는 우리의 작은 돛단배를 검사하고 고치는데 한 달을 보냈다. 모든 것이 준비된 후, 처음 우리들을 발견했던 배, “나즈”가 우리들을 태우고 히데켈 강 어구로 데려갔다. 우리의 거인 형제들이 우리의 작은 배를 내린 후에, 그들은 가장 진심으로 이별을 슬퍼했으며, 우리의 안전을 위한 많은 기원을 표현했다. 나의 아버지는 그가 1,2년 안에 분명히 다시 돌아와 그들을 방문할 것이라고 오딘의 신들에게 맹세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에게 인사를 고했다. 우리는 우리의 돛을 바로 올렸으며, 그러나 바람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거인 친구들이 우리를 남기고 떠난 후 한 시간 안에 안정을 되찾았다. 바람은 항상 남쪽으로 불고 있었으며, 그것은 지구의 북쪽 입구로부터 우리가 남쪽으로 알고 있는 쪽으로 불었는데, 그러나 우리의 나침반의 바늘에 의하면 그것이 정 북쪽이었다. 3일 동안 우리는 바람을 거슬러 항해하려고 노력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다. “아들아, 우리가 왔던 같은 길로 돌아가는 것이 이 시기에는 불가능하구나. 나는 우리가 왜 이것을 전에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여기서 2년 반 동안 있었고, 따라서 지금은 태양이 지구의 남쪽 입구에서 빛나기 시작할 계절이다. 길고 추운 밤이 스피츠버겐Spitzbergen 에 와있을 거다.” “그럼 어떻게 할 거에요?” 내가 물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한 가지 밖에 없다," 아버지는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은 남쪽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배를 돌렸고, 돛을 완전히 줄인 다음 나침반의 북쪽, 실제로는 정 남쪽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바람은 강했고,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굉장히 신속하게 달리는 조류를 만난 듯 했다. 단 40일 만에 우리는 우리의 가이드인 쥴스와 그의 아내와 함께 방문했던 기혼 강 입구에 있던 도시인 델피Delfi에 도착했다. 여기서 우리는 이틀을 머물었고, 지난번 방문 때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가장 친절한 접대를 받았다. 우리는 일부 추가적인 식량을 실고, 다시 바늘이 가리키는 북쪽을 따라 항해를 나섰다. 우리의 나가는 여행에서 우리는 두 개의 큰 땅 덩어리 사이를 갈라놓는 물로 보이는 좁은 수로를 통해 갔다. 우리의 오른쪽에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보였는데, 우리는 그것을 정복하기로 결정했다. 닻을 던져 넣고, 우리는 외부로의 위험한 항해를 계속하기 전에 하루를 쉬기 위해 해변으로 노를 저어갔다. 우리는 불을 피우고 떠내려온 마른 나뭇가지들을 불 속에 던져 넣었다. 나의 아버지가 해변을 따라 걷는 동안 나는 우리가 가진 식품으로 맛있는 식사를 준비했다. 아버지가 지구의 남쪽 입구를 통해 빛나는 태양으로부터 온다고 말했던 온화하고 밝은 빛이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잘 잤고, 다음 날 아침에 깨었는데, 마치 우리가 스톡홀름의 우리 집 침대에 있는 듯 상쾌한 기분이었다. 아침을 먹은 후 우리는 발견을 위해 내해로 들어갔으나, 우리가 펭귄에 속한다고 즉시 알아본 어떤 새들을 발견했을 때 더 이상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날개가 없는 새들이며, 그러나 탁월한 수영 실력이 있었고, 흰색 가슴과 짧은 날개들, 검은 머리, 그리고 긴 부리와 함께 엄청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9피트(2.7m)의 키로 서있었다. 그들은 약간 놀란 듯이 우리를 쳐다보았고, 물을 향해 뒤뚱거리며 걸어갔으며, 북쪽 방향으로 헤엄치며 사라졌다. 그 다음 백여 일 동안 일어난 사건들은 표현을 무력하게 한다. 우리는 넓은 얼음이 없는 바다에 있었다. 그 달을 우리는 11월이나 12월이라고 생각했고, 우리는 남극이 태양을 향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내부의 “연기의 신”의 전기적인 빛과 따뜻함으로부터 나가면서 통과할 때, 우리는 지구의 남쪽 입구를 통해 빛나는 태양의 빛과 온기를 만나게 될 것이었다. 우리는 잘못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의 작은 배가 끈질기게 부는 바람에 밀려 화살처럼 물을 가르는 때들이 있었다. 실로 우리가 숨어있는 바위나 장애물과 충돌했다면 우리의 작은 배는 나무 조각들로 산산이 부셔져버렸을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기후가 심하게 추워지는 것을 의식했고, 며칠 후 빙산들이 왼쪽으로 멀리 보였다. 아버지는 정확히 우리의 돛을 채웠던 바람이 “내부”의 따듯한 기후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시기는 확실히 우리가 “외부” 세계를 향해 출항하고, 우리의 고기잡이 배를 극지방을 둘러싼 얼음지대의 열린 수로를 통해 나가기를 시도하는 데는 가장 상스러운 때였다. 우리는 곧 얼음 덩어리들 사이에 있었고, 우리의 작은 배가 어떻게 충돌하지 않고 이 좁은 수로들을 헤어나갔는지 모르겠다. 나침반은 우리가 북쪽 구멍으로 들어올 때처럼 남쪽 구멍의 테두리 혹은 만곡부를 지난 때 술 취한 듯 믿을 수 없는 양상으로 움직였다. 그것은 빙빙 돌다가 들어붙었고, 귀신에 홀린 물건처럼 보였다. 하루는 맑은 물속으로 배의 측면을 한가하게 들여다보고 있을 때, 아버지가 소리쳤다. “앞에 암초가 있다!” 올려다보니, 나는 자옥한 안개 사이로 우리의 진로를 완전히 가로막고 있는, 수십 미터로 솟아있는 흰 물체를 보았다. 우리는 즉시, 돛을 급히 내렸다. 그 순간 우리는 두 개의 거대한 괴물 빙산 사이에 끼어있음을 발견했다. 둘이 좁아지면서 상대의 얼음산들을 갈아붙이고 있었다. 그들은 우월을 다투는 두 전쟁의 신들 같았다. 우리는 크게 경악했다. 실로 우리는 왕들의 전투 사이에 있었고, 서로 갈고 있는 얼음의 울리는 굉음이 계속되는 대포들의 일제사격과 같았다. 자주 집채보다 큰 얼음 덩어리들이 측면 압력의 막강한 힘으로 수십 미터 튕겨 올려졌다. 그들은 몇 초 동안 앞뒤로 흔들리다가 귀가 멍할 정도의 굉음으로 물과 충돌하면서 물거품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하여 두 시간 이상 얼음의 거인들의 대결이 계속되었다. 마지막 순간이 온 듯 보였다. 얼음의 압력은 무시무시했으며, 우리가 그 혼잡한 위험 속에 사로잡혀 있는 않을 때는 한동안 안전했으며, 그러나 무거운 얼음 덩어리가 들어 올려졌다가 여기저기 물속으로 곤두박질 쳤을 때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몸을 떨었다. 마침내 얼음의 서로 긁기가 우리의 안도의 한숨으로 끝났고, 몇 시간 안에 거대한 덩어리가 서서히 쪼개지면서, 마치 신의 섭리가 행해지듯이, 우리들 바로 앞에 넓은 수로가 놓여있었다. 우리는 이 통로로 우리의 작은 배의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가? 만약 압력이 다시 온다면, 우리의 작은 배와 우리들은 찌그러질 것이다. 우리는 기회를 잡기로 결정했고, 우호적인 미풍에 우리의 돛을 올렸으며, 곧 달리는 말처럼 열린 바다의 이 미지의 좁은 수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얼음 덩어리들 사이에서AMONG THE ICE PACKS 다음 45일 동안 우리의 시간은 빙산들을 피하고 수로들을 찾는데 보내졌다. 실로 우리가 강한 남쪽 바람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이 이야기가 세계에 주어질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마침내 나의 아버지가 말했다. “아들아, 우리가 집을 곧 보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얼음을 거의 다 거쳐 나왔다. 보라! 넓은 바다가 앞에 놓여있다.” 그러나 넓은 바다로 나가는 북쪽으로 쭉 떠있는 빙산들이 아직 우리들 앞에 양쪽으로 수십 마일이나 뻗어있었다. 우리들 앞에 직선으로, 이제야 제대로 작동하는 나침반의 북쪽으로, 하나의 넓은 바다가 있었다. “스톡홀름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멋진 이야기를 우리가 해주게 될까?” 아버지는 고취되는 의욕을 그의 정직한 표정에 나타내며 계속했다. “그리고 짐칸에 가져온 금덩어리들을 생각해봐.” 나는 아버지에게 그의 강인함과 인내 뿐 아니라 발견자로서 그의 용감한 대담성에 대해, 그리고 이제 성공적인 끝을 약속하는 항해를 이룬데 대해 칭찬의 말을 했다. 나 역시 우리가 집으로 가져가는 금의 부를 모은 게 기뻤다. 아직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식량과 물의 충분한 공급에 대해, 우리가 피해온 위험들에 대해 우리 자신을 축하하는 동안, 우리는 거대한 얼음산이 갈라지면서 생기는 가장 무시무시한 폭발음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수천발의 대포를 쏘는 것처럼 귀가 멍해지는 굉음이었다. 우리는 그때 큰 속도로 가고 있었고, 모든 면에서 바위섬처럼 꼼짝 않는 괴물의 빙산에 가까이 있게 되었다. 그러나 빙산이 갈라져 쪼개지는 듯 보였고, 그로 인해 우리가 가고 있던 쪽의 괴물의 균형이 깨지면서, 그것이 우리로부터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그 무서운 가능성을 알아차리기 전에 위험을 재빨리 예상했다. 빙산은 수십 미터나 물속으로 연장되어 있었고, 그것이 기울자 물 에서 나오고 있던 부분이 우리 배를 지레대의 지레처럼 잡고 그것이 축구공인양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우리의 배는 빙산 위로 다시 떨어졌으며, 이때 그것은 우리들 옆에서 옆으로 누워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아직 배 안에 있으면서 장비들과 뒤엉겨 있었고, 나는 6미터 정도 튕겨져 나가 있었다. 나는 급히 기어가서 아버지에게 소리쳤으며, 그는 “모든 것이 괜찮다”고 대답했다. 바로 그때 내게 하나의 깨달음이 다가왔다. 공포에 공포가 밀려왔다! 나의 혈관의 피가 얼어붙었다. 빙산이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고, 전복될 때 그 거대한 무게와 힘이 일시적으로 그것을 가라앉힐 것이다. 나는 물속에서 모든 쪽으로 그것이 만들 엄청난 빨아들이는 소용돌이를 완전히 깨달았다. 그것들은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흰 이빨을 드러내는 늑대들처럼, 그 모든 격렬함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이다. 정신적 고뇌의 이 극한의 순간, 나는 옆으로 누워있는 우리 배를 쳐다보고 그것이 자신을 바로 세울 수나 있을지, 내 아버지가 탈출을 할 수나 있을지를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것이 우리의 투쟁들과 모험들의 끝일까? 이것이 죽음일까? 이 모든 질문들이 순식간에 내 마음 속에서 번쩍였으며, 다음 순간에 나는 생과 죽음의 투쟁을 벌였다. 육중한 얼음 덩어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극도로 찬 물이 격노하며 내 주위를 삼켰다. 나는 접시 속에 있었고, 물이 모든 쪽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다음 순간, 나는 의식을 잃었다. 내가 부분적으로 감각을 회복했을 때, 반 쯤 익사한 자의 기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젖었고 뻣뻣해져 거의 얼어붙은 채 빙산 위에 누워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나 우리의 작은 고기잡이 배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괴물 빙산은 그 자신을 회복했고, 새로운 균형감으로 그 머리를 파도로부터 15미터 정도의 높이로 쳐들고 있었다. 이 얼음 섬의 꼭대기는 아마도 반 에이커 정도의 넓이를 가진 고원이었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매우 사랑했고, 그의 참담함 죽음에 고통스러웠다. 나는 나 역시 그와 함께 대양의 죽음으로 잠들게 허락되지 않은 운명에 통곡했다. 마침내 나는 일어서서 주위를 돌아다보았다. 위로는 보라색 돔의 하늘이, 밑으로는 해안이 없는 녹색의 대양이, 오직 이따금의 빙산이 눈에 뜨일 뿐이었다! 나의 가슴은 절망감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우리의 고기잡이 배가 바로 서 있기를 희망하면서, 조심스럽게 다른 쪽으로 빙산을 걸어가 보았다. 내 아버지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가능할 가? 그것은 나의 가슴 속에 타오른 하나의 희망의 빛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대감은 나의 혈관의 피를 따뜻하게 해주었고, 나의 몸의 모든 조직 속으로 귀한 자극제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빙산의 절벽 쪽으로 가까이 기어갔고, 희망하고, 또 희망하면서 멀리 밑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때 나는 빙산을 매 발걸음을 재면서 한 바퀴 돌았으며, 그리하여 나는 도는 것을 계속했다. 나의 뇌의 한 쪽은 확실히 미쳐가고 있는 반면, 다른 쪽은 이렇게 하는 것이 완전히 정상적이라고 믿었다. 나는 12번 회로를 돈 것을 의식했으며, 나의 지성의 한 쪽이 모든 이성으로 희망의 흔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반면, 어떤 이상한 환각적 착오가 여전히 기대감으로 나 자신을 속이라고 홀리고 강요했다. 나의 뇌의 다른 부분은 나의 아버지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하는 반면, 그러나 만약 내가 도는 순례를 중지한다면, 만약 내가 단 한 순간도 멈춘다면, 그것은 패배의 인정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듯 했고, 내가 멈춰야 한다면 나는 내가 미칠 것이라고 느꼈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멈추고 쉬는 것이 두려워, 계속 돌고 돌았으며, 그러나 더 이상 계속하는데 육체적으로 힘이 없어졌다. 오, 식량도 물도 없이 이 넓은 바다에 던져졌고, 오직 거주할 자리라곤 끔찍한 빙산 밖에 없다니, 그 공포의 공포란! 나의 가슴이 속으로 깊이 가라앉았고, 모든 희망의 자취가 검은 절망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졌고, 극도로 참을 수 없는 고독의 죽음 같은 고요가 갑자기 신호용 총소리로 깨어졌다. 나는 놀라서 위를 바라보았고, 그때 나는 반 마일 안에 한 대의 포경선이 그 완전한 돛을 펴고 나를 향해 오는 것을 보았다. 분명히 빙산에서 나의 계속된 활동이 그들의 관심을 끌었음이 틀림없다. 가까이 오면서 그들은 조심스럽게 물가로 보트를 내렸다. 나는 구조되었고 조금 지난 후 포경선에 오르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스코틀랜드 포경선 “알링턴Arlington”임을 알았다. 그 배는 9월에 던디Dundee로부터 출항절차를 마쳤고, 즉시 고래들을 찾아 남극으로 출항했다. 선장, 엥거스 맥퍼슨Angus MacPherson은 친절한 성품으로 보였으나, 규율의 문제에 있어서는 내가 곧 알게 되었지만 철의 의지를 지녔다. 내가 그에게 내가 지구의 “내부”로부터 왔음을 말하려고 시도했을 때, 선장과 친구는 서로를 쳐다보더니 머리를 흔들고, 나를 배의 의사의 철저한 감독 하에 벙커로 집어넣자고 주장했다. 나는 음식을 못 먹어서 매우 허약해져 있었고, 많은 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의 휴식 후에,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의사나 다른 사람의 허락 없이 옷을 입고, 그들에게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정상적이라고 말했다. 선장은 나를 불렀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왜 내가 멀리 떨어진 남극 대양의 빙산 위에 홀로 남게 되었는지에 대해 다시 질문을 했다. 나는 내가 방금 지구의 “내부”로부터 왔고, 계속해서 나의 아버지와 내가 어떻게 스피츠버겐을 거쳐 들어갔는지, 그리고 남극의 길을 통해 나왔는지를 말했으며, 그 때문에 다시 철창에 갇혔다. 나는 나중에 선장이 내가 3월의 토끼처럼 미쳤다고 친구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고,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진실한 설명을 줄 수 있을 만큼 이성적이 될 때까지 감금 속에 있어야만 했다. 마침내, 수없이 간청하고 수없이 약속한 후, 나는 철창에서 풀려났다. 나는 그때 선장을 만족시킬만한 어떤 이야기를 만들기로 결정했고, 내가 최소한 친구들 가운데서 안전해질 때까지는 “연기의 신”의 땅으로의 나의 여행을 결코 다시는 거론하지 않았다. 2주일 안에 나는 한 사람의 선원으로서 나의 자리를 찾았으며, 돌아다니게 허락되었다. 조금 뒤에 선장은 설명을 요청했다. 나는 내 체험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 두렵고, 미래의 어느 때가 될 때까지 대답할 수 없는 상태로 내버려 줄 것을 간청했다. “나는 네가 상당히 회복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가 말했다. “그러나 너는 아직 정상적이 아니다.” “당신이 시키는 일을 할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당신에게 충분히 보답하지 않는다면, 내가 스톡홀름에 도착하는 즉시 전부, 한 푼도 빠짐없이 갚겠습니다.” 그리하여 문제는 해결되었다. 마침내 스톡홀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언급했듯이, 나의 어머니가 1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또한 나중에, 어떻게 한 친척의 배신이 나를 정신병원으로 보냈는지, 거기서 내가 28년을 - 끝나지 않는 해들로 보였던 날들을 - 보냈는지, 그리고 나중에 풀려난 후, 어떻게 내가 어부의 생활로 돌아갔는지, 그리고 27년간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그런 다음 어떻게 내가 미국으로 왔는지, 그리고 마침내 캘리포니아, 로스앤젤스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독자에게 관심거리가 될 수 없다. 실제로 나의 경이로운 여행과 이상한 모험들의 절정은 스코틀랜드 배가 나를 남극해의 빙산으로부터 구조했을 때 도달한 듯 보인다. 결론CONCLUSION 이 나의 모험의 역사를 결론짓는데 있어, 나는 과학이 지구의 우주학에 관해서는 아직도 그 유아기에 있다고 내가 확고히 믿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오늘날의 세계의 인정된 지식으로 설명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은 “연기의 신”의 땅이 알려지고 우리들의 지리학자들에 의해 인정될 때까지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다. 그것은 지구의 북극에 이르는 먼 바다에서 탐험가들에 의해 발견되어온 거대한 삼나무 목재들이 흘러 온 땅이고, 또한 그 뼈들이 시베리아 해안의 방대한 지역에서 발견된 매머드의 시체들도 거기서 왔다. 북극의 탐험가들은 많은 일을 했다. Sir John Franklin, De Hacen Grinnell, Sir John Murray, Kane, Melville, Hall, Nansen, Schwatka, Greely, Peary, Ross, Gerlache, Bernacchi, Andree, Amsden, Amundson, 그리고 다른 이들이 모두 이 신비의 얼어붙은 요새를 습격하려고 노력해왔다. 나는 Andree와 그의 용감한 두 동료들, Strindberg와 Fraenckell을 굳게 믿는데, 그들은 1897년 7월 11일 일요일 오후 스피츠버겐의 북서 해안으로부터 발룬 “오레온Oreon"을 타고 여행을 떠났으며, 지금은 ”내부“ 세계에 있으며, 나의 아버지와 내가 내부의 아틀란티스 대륙Atlantic Continent에 살고 있는 친절한 마음의 거인들에 의해 대접 받았듯이, 틀림없이 대접 받고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내가 소박한 방식으로 여러 해들을 이러한 문제들에 헌신했으므로, 나는 인정된 중력의 정의들, 그리고 자기 바늘의 당김의 원인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자기 바늘이 지구를 옷처럼 완전히 감싸고 있는 전류에 의해 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이 전류들이 끝없는 회로 속에서 지구의 실린더 남쪽 입구를 지나, “외부” 지표의 모든 곳에 퍼지고 전파되면서, 북극을 향해 그들의 진로에서 미친 듯이 달리고 있다는 나의 확고한 신념을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전류들이 외관상 지구의 만곡부 또는 테두리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반면, 그것들은 “내부” 지표로 다시 떨어져 내부의 지각을 따라 남쪽으로, 소위 남극의 입구를 향해 그들의 길을 계속 간다. 중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사과가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 대기압인지, 혹은 지구 표면 150 마일 아래, 지구 두께의 중간점에서 그것을 잡아당기는 강력한 천연자석이 존재하는 지를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과가 나무 가지를 떠날 때 잡아당겨지는지, 아니면 저항의 최근접점으로 밑으로 향하는지가 물리학의 학생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제임스 로스James Ross 경은 위도 74도에서 자기적 극magnetic pole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 자기의 극은 지구 껍질의 정확히 반이 되는 거리에 있다. 만약 지구의 껍질이 두께에서 300마일이라면, 그것이 내가 추정하는 거리인데, 그때 자기극은 틀림없이 지구 지표로부터 150마일 되는 곳이며, 어디서 테스트가 이루어지든 상관없다. 그리고 지표 아래로 150 마일이 되는 이 특정 점에서 중력은 소멸하며, 중화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 점을 지나 지구의 “내부” 지표로 향할 때 반대의 당김이 기하학적으로 힘에서 증가하는데, 다른 150 마일의 거리를 통과될 때까지이며, 그것은 우리를 지구의 “내부”로 데려갈 것이다. 그리하여 만약 런던이나, 파리에서, 뉴욕이나 시카고에서, 혹은 로스앤젤레스에서 하나의 구멍을 지구 껍질을 통해, 300마일의 거리로 파내려간다면, 그것은 두 표면을 연결할 것이다. “외부”의 지표로부터 떨어지는 하나의 중량의 관성과 운동량은 자기적 중심을 지나 멀리 그것을 운반하는 반면, 지구의 “내부” 지표에 도달하기 전에, 점차 속도가 줄어들고, 중간점을 지난 후에 마침내 멈추며, 즉시 외부 지표를 향해 다시 떨어진다, 그리하여 힘이 제거된 진자의 스윙과 같이 진동을 계속하는데, 그것이 마침내 자기적 중심에서, 지구의 “외부” 지표와 “내부” 지표사이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서 쉴 때까지이다. 나선적 회전 속에서 매일 한 바퀴 도는 행동 속에 있는 지구의 회전은 발전기의 원형으로, 매 시간 1000마일보다 더 큰 속도로, 혹은 초당 17마일로 돌며, 그것을 거대한 전기 발전기라는 기계를 만드는데, 인간이 만든 발전기는 기껏해야 자연의 원래 것의 연약한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북극의 가장 먼 상류 물들과 경계하는 이 내부 아틀란티스 대륙Atlantis Continent의 계곡들은 계절마다 가장 웅장하고 풍부한 꽃들로 뒤덮인다. 몇 백, 몇 천이 아닌 몇 백만 에이커인데, 그로부터 꽃들의 꽃가루들이 지구의 나선 회전운동에 의해, 그로 인한 바람의 생성에 의해, 거의 모든 방향으로 멀리 운반되며, 많은 북극의 탐험가들을 신비스럽게 했던 북극 지방의 색깔을 가진 눈들을 만든 것은 “내부”의 방대한 꽃들이 핀 초원들로부터 온 이들 꽃들과 꽃가루인 것이다. Andree의 발룬 여행에 대한 글에서 La Chambre는 144페이지에서 말한다. “암스테르담Amsterdam 섬에서는 눈이 상당한 지역에 이르도록 붉은 색을 띠고 있으며, 하인들이 그것을 현미경으로 조사하기 위해 채집하고 있다. 실제로 그것은 어떤 특성들을 나타내는데, 그것이 매우 작은 식물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유명한 고래잡인 스콜스비Scoresby는 이미 이것을 언급했다.” 말할 것도 없이, “내부”에 있는 이 새로운 땅은 인간 종의 집이고 요람이며, 우리들에 의해 만들어진 발견의 견지에서 볼 때, 모든 물리학적, 고생물학적, 고고학적, 철학적, 그리고 고대의 신화적 이론들에서 당연히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져야만 한다. 신비의 땅 - 인간의 바로 그 시작으로, 그 기원으로 - 으로 돌아간다는 같은 생각이 신들, 영웅들, 인간들의 초기의 영역들인 이집트 전통들에서,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전통에서, 그리고 폼페이의 더 최근의 발굴들로부터 얻은 역사적 기록들로 완전히 입증된 메네토Menetho의 역사적 단편들로부터 발견된다. 지금은 자정에서 한 시간이 지났으며 -- 1908년 새해가 되었고, 이것이 이제 3일째인데, 내가 세상에 주고 싶은 나의 이상한 여행과 모험들의 기록을 마침내 끝냈으므로, 나는 인생의 시련과 변천 후에 온다고 내가 확신하는 평화로운 휴식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고, 심지어 그것을 동경하고 있다. 나는 나이를 먹어 늙었고, 모험들과 슬픔들로 성숙해졌으며, 의롭고 올바른 생활을 이끌기 위한 나의 투쟁에서 친해진 몇몇 친구들로부터 풍부해졌다. 거의 끝난 이야기 같이, 나의 생명은 썰물이 되고 빠져나가고 있다. 내가 다시 뜨는 태양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내적 느낌이 강해진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메시지를 끝맺는다. 올라프 얀센OLAF JANSEN |
첫댓글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