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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려 토론방 삼별초항쟁에대하여
쇼량 추천 0 조회 576 09.06.16 20:59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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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6.17 05:38

    첫댓글 사료는 아니지만 삼별초가 무인정권시절 어떻게 그렇게 병력을 증강/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무인정권의 비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합니다. 이들은 대몽항쟁기간에 싸웠고, 해산명령전에 해산했다라는 말이 있어도 변화지 않습니다. 권력유지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고려왕실이 몽골에 투항한 이유도 왕권강화를 위해섭니다. 그렇다면 왕권이 강화된다면 가장 먼저 해체될 가능성이 높은 기관과 군사력은 어딜까요? 바로 중방과 삼별초입니다.

  • 09.06.17 05:42

    또한 1,2차 대몽전쟁이후의 3차전쟁부터의 항쟁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물런 그것으로 몽골제국에게 끝까지 저항한 국가란 칭호는 얻었죠. 그러나 백성들의 삶은? 1차때는 어느정도 막았고, 2차때는 총사령관 살리타이까지 죽였습니다. 이미 그런 군사적 승리를 바탕으로 몽골의 천하를 인정하고, 태자가서 대칸에게 입조를 했다면 어때했을까요? 그게 더 고려에게 큰이득이지 않았을까요? 삼별초가 진정으로 백성과 나라를 생각하는 집단이었다면 그렇게 항쟁을 할것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창대신 쟁이를 들고, 백성들의 농사일을 돕는것이죠.

  • 작성자 09.06.18 00:07

    음..아 정보고맙습니다!

  • 09.06.18 00:42

    삼별초의 난이 권력유지에 급급한 무인들의 난이었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네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배중손, 노영희, 유존혁등 삼별초의 주역들에겐 포기하기 어려운 권력이 주어져 있어야 하는데 배중손이나 노영희는 삼별초의 난 이전엔 사서에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서에 등장하지 않는 다는 것은 무인정권에서 강력한 권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지 않을까요? 반면 김문비, 송분, 고여림등 무인 권력의 핵심인사들은 개경으로 환도하여 원에 아부하며 출세를 거듭합니다.

  • 09.06.18 00:43

    임연, 임유무 정권의 최대 수혜자들은 멍쩡히 살아남아 세도를 누리는데 사서에 이름하나 올리지 못한 이들은 그 최후조차 알려지지 않은채 사라져가죠. 권력을 쫏는 자의 초감각적인 능력은 예나지금이나 탄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 09.06.18 05:46

    그저 저의 추측일 순 있지만 배중손, 노영희등은 중간급 무인들이 아니었을까요? 그럼 사서에 이름이 나올리가 없죠. 지금으로 부터 무려 팔백년전 관직명단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사서의 양질에서는 중간급 무장들의 이름이 나올리가 없죠. 지금의 중령, 소령들이 사서에 싣일리가 없죠. 그럼 무인정권 핵심인 장군들이 난 아무죄 없다고 원조정에 아부에서 죄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럼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당연히 그아래에 있는 중소령들이죠.

  • 09.06.18 05:50

    이들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죠. 그리고 삼별초는 교과서에 나온대로 원나라에 끌려갓다가 온사람이나 또는 그가족들입니다. 상관이 조금만 꼬득이면 대몽항쟁을 할 수 있죠. 대몽항쟁은 대의명분이었겠죠. 국가를 건국했던 유방, 주원장, 이성계, 왕건이 정말로 백성을 걱정해서 난을 일으켰을까요? 아닙니다. 그건 대의명분일 뿐이죠.

  • 09.06.18 13:08

    삼별초는 고려사에서 말하듯 기본적으로 '권신의 조아(爪牙)' 입니다. 권신을 맹수로 본다면, 그 맹수의 손톱과 이빨과 같은 '무기' 가 되는 존재인 권신의 사병(私兵) 성격이 강한 집단(물론 사병은 아닙니다)이 삼별초입니다. 최씨무신정권때 삼별초가 형성된 이후, 삼별초는 무신들의 '집권 수단' 이 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면, 최씨무신정권이 종료되던 무렵에 김준이 최의를 죽이고 집권할 때나, 임연이 김준을 죽이고 집권할 때, 송례가 임유무를 죽이고 집권할 때 모두 삼별초의 힘에 의지해 쿠데타를 일으켰었지요. 즉, 삼별초는 무신정권 말기에 가장 양지만을 쫓아다닌 무력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09.06.18 12:49

    그런데 개경환도 무렵이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개경으로 환도한다는 것은, 몽골의 세력권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로서 몽골이 기존 집권자의 실질적 무력기반인 삼별초를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지요. 개경출륙은 곧 삼별초가 더 이상 집권자의 권력기반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삼별초가 개경출륙에 반대하며 극렬히 저항할 이유가 생기는 것이지요. 실제 삼별초가 권신의 단순 손발 노릇을 벗어나 스스로 권신이 되어 극렬히 대몽항쟁에 나서던 때는 바로 국왕이 '삼별초 해산령' 을 내린 시점입니다.

  • 09.06.18 13:12

    삼별초가 진작에 대몽항쟁의 선두에서 극렬히 나서려 했다면 진작에 왕을 바꾸든 뭐를 하든 해서 했어야지, 그 동안은 강화도에서 집권무신의 권력기반으로 기능하다가 권력을 잃을 위험(자신들을 권력기반으로 삼는 무신정권이 끝날 위험 내지는 삼별초가 해산될 위험)에 처하자 비로소 움직인 것일까요? // 물론 삼별초 항쟁을 '권력욕' 하나만으로 환원하여 설명할 순 없습니다. 신의군(몽골에서 돌아온 자들)이 삼별초의 한 축이라는 데에서 보듯, 삼별초는 기본적으로 구성 자체가 반몽골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게다가 삼별초가 서~남해안에서 상당한 세력을 떨쳤다는 건 항몽활동에 대한 광범한 지지가 꽤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겠지요

  • 09.06.19 01:30

    역시 저보다 내공이 있으시니 설명이 간결하고 좋네요^^;; 저도 이런말을 하고 싶었는데요. ㅋㅋㅋ 고려사는 워낙 몰라서 ㅋㅋ 삼별초는 지휘관이 조금만 꼬득이면 대몽항쟁을 할 사람들입니다. 워낙 반몽골성격이 강한 사람들이니깐요. 대의명분이 백성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면 대몽항쟁만큼 좋은 명분도 없죠.삼별초가 진짜 백성을 위한다면 미주가효님 말씀대로 그전에 움직이던가 아니면 북방에 가서 몽골군과 싸우던가 조정이 투항후에 괭이를 들고 백성들 농사일을 도와웠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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