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생으로 만 22세이던 지난 2011년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를 달성해 국내 최연소 MDRT 기록을 세운 프라임에셋 춘천지점 송지은 FC가 2012년 MDRT에도 올랐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서울을 떠나 춘천에 정착했다. 군 초급간부들을 대상으로 타깃 영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정년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일한 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설계사를 직업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입사를 한 탓에 지인 영업을 하기 어려웠다. 그는 군(軍)이라는 특수시장을 떠올렸다. 그리고 부사관과 장교들을 대상으로 컨설팅하기 위해 군부대가 많은 춘천을 영업지역을 택했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어 더욱 일에 집착했고 그것이 성공의 배경이 돼 영업시작 8개월만에 국내 최연소 MDRT를 달성했다.
송 FC는 고객을 만나기 위해 오늘은 남해, 내일은 동해로 쉴 새 없이 뛰었다. 덕분에 실적이 올랐고 처음 영업할 때 타고 다니던 마티즈는 1년만에 벤츠로 바뀌었다. 그는 “초급 간부들 대부분 나와 나이가 비슷해 공감대 형성이 어렵지 않았는데 그것이 영업성공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송 FC는 설계사라는 직업에 애착을 갖고 있다. 학력 차별이 없고, 성실하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20대들에게 희망이 되고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MDRT 연차총회에 갔다가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을 절감했다는 그는 세계 최연소 COT(MDRT 실적의 3배)를 다음 목표로 잡았다. 송 FC는 “올해 세계 최연소 COT를 달성해 지점 식구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후배들을 위한 좋은 멘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KBS 강연 100℃ 2013/08/04
<55회> 유상영 / 송지은 / 박종팔
유상영 (50세, 男, 당뇨를 극복한 산부인과의사) “찔러야 산다”
매 끼니마다 자신의 손가락을 10번씩 찔러 당뇨를 이겨낸 유상영씨. 산부인과 부인암을 전공한 그는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환자들을 보며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름 건강을 자부하던 그에게 40대 초반에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운동을 하는데 공이 2개로 보이고, 신호등이 두개로 보이는 등 시신경 마비 증상이 찾아온 것. 그는 뇌종양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병원에 찾아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뇌종양은 아니지만, 심각한 당뇨라는 진단을 받았다. 당장 죽을 병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을 했지만, 병원의 처방대로 식단을 바꿔도 혈당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음식을 먹고 혈당을 체크하는 인체 실험을 하기로 결심한 유상영씨. 어떤 음식을 먹을 때 당 수치가 높아지고, 낮아지는지 매 끼니마다 자신의 손가락을 10번씩 찔러가며 혈당을 체크했다. 그 결과 2년 동안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어떤 음식이 혈당을 높이고 낮추는지 정리할 수 있었다. 하루에 30번 가까이 손가락을 찔렀지만, 당뇨를 정복해야겠다는 각오로 힘들다는 생각보다 더욱 연구에만 몰두했다는 그. 약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노력으로 당뇨를 이겨낸 유상영씨만의 비법을 들어보자.
송지은 (25세, 女, 억대 연봉의 국내 최연소 보험설계사) “용 꼬리보다 뱀 머리”
1989년생으로 국내 최연소 MDRT(생명보험업계에서 연간 1억 2천 이상의 실적을 가진 사람)기록을 세운 억대 연봉자 송지은씨. 그녀는 중?고등학생 시절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의기소침해있었지만, 지방대 법학과 진학 후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법학과이다 보니 검찰사무직 공무원을 꿈꾸기도 했고, 남들처럼 대기업에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방대생’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취업에 대해 고민하던 어느 날 한 회사에서 취업 제의가 들어왔다. 자신이 일한 만큼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그녀가 시작한 일은 바로 보험설계사였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도 무척이나 심했고 그녀 역시 자신감이 없었지만, 반대가 클수록 도전정신과 열정이 생겼다. 8개월 동안 10만km를 달리고, 1년에 8번의 차사고가 날 정도로 열심히 고객들을 찾아다닌 결과, 일한지 1년 만에 국내 최연소 업계 억대 연봉자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부모님과 사람들의 편견을 이겨내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낸 그녀. 모두가 원하는 화려한 꿈을 좇기보다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송지은씨를 만나보자.
박종팔 (72세, 男, 치매 아내 10년째 돌보는 남편) “당신만이”
치매에 걸린 아내를 10년째 사랑으로 돌보는 박종팔씨. 박종팔씨 부부는 충남 홍성군에서 유명한 '원앙 부부'이다. 밥을 먹을 때도, 산책을 할 때도 부부는 손을 꼭 잡고 떨어지지 않는다. 가난한 집 장남에게 시집 온 아내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5남매까지 키우며 농사와 뱃일까지 해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다. 고생만 하던 시절을 보내다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둘만의 단란한 생활을 즐길 무렵, 부부에게는 큰 시련이 찾아왔다. 건망증이 좀 심하다 생각했던 아내가 알고 보니 치매였던 것. 이제야 좀 먹고살만해졌다 싶었던 부부에게 치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이었다. 그는 너무 큰 충격에 3,4일을 내리 술만 마셨다. 하지만 고생만 한 아내에게 화내고 짜증내는 대신 사랑으로 보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고, 생전 안 해본 살림살이까지 직접 도맡았다. 그의 사랑과 노력으로, 지난 10년간 다행히 아내의 치매는 심각하게 악화되지 않았다. 못난 남편에게 시집와서 40년 넘게 고생한 아내를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겠다고 말하는 그. 사랑이 있다면 치매도 안고 살 수 있다는 박종팔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989년생으로 만 22세이던 지난 2011년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를 달성해 국내 최연소 MDRT 기록을 세운 프라임에셋 춘천지점 송지은 FC가 2012년 MDRT에도 올랐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서울을 떠나 춘천에 정착했다. 군 초급간부들을 대상으로 타깃 영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정년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일한 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설계사를 직업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입사를 한 탓에 지인 영업을 하기 어려웠다. 그는 군(軍)이라는 특수시장을 떠올렸다. 그리고 부사관과 장교들을 대상으로 컨설팅하기 위해 군부대가 많은 춘천을 영업지역을 택했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어 더욱 일에 집착했고 그것이 성공의 배경이 돼 영업시작 8개월만에 국내 최연소 MDRT를 달성했다.
송 FC는 고객을 만나기 위해 오늘은 남해, 내일은 동해로 쉴 새 없이 뛰었다. 덕분에 실적이 올랐고 처음 영업할 때 타고 다니던 마티즈는 1년만에 벤츠로 바뀌었다. 그는 “초급 간부들 대부분 나와 나이가 비슷해 공감대 형성이 어렵지 않았는데 그것이 영업성공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송 FC는 설계사라는 직업에 애착을 갖고 있다. 학력 차별이 없고, 성실하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20대들에게 희망이 되고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MDRT 연차총회에 갔다가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을 절감했다는 그는 세계 최연소 COT(MDRT 실적의 3배)를 다음 목표로 잡았다. 송 FC는 “올해 세계 최연소 COT를 달성해 지점 식구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후배들을 위한 좋은 멘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KBS 강연 100℃ 2013/08/04
<55회> 유상영 / 송지은 / 박종팔
유상영 (50세, 男, 당뇨를 극복한 산부인과의사) “찔러야 산다”
매 끼니마다 자신의 손가락을 10번씩 찔러 당뇨를 이겨낸 유상영씨. 산부인과 부인암을 전공한 그는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환자들을 보며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름 건강을 자부하던 그에게 40대 초반에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운동을 하는데 공이 2개로 보이고, 신호등이 두개로 보이는 등 시신경 마비 증상이 찾아온 것. 그는 뇌종양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병원에 찾아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뇌종양은 아니지만, 심각한 당뇨라는 진단을 받았다. 당장 죽을 병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을 했지만, 병원의 처방대로 식단을 바꿔도 혈당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음식을 먹고 혈당을 체크하는 인체 실험을 하기로 결심한 유상영씨. 어떤 음식을 먹을 때 당 수치가 높아지고, 낮아지는지 매 끼니마다 자신의 손가락을 10번씩 찔러가며 혈당을 체크했다. 그 결과 2년 동안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어떤 음식이 혈당을 높이고 낮추는지 정리할 수 있었다. 하루에 30번 가까이 손가락을 찔렀지만, 당뇨를 정복해야겠다는 각오로 힘들다는 생각보다 더욱 연구에만 몰두했다는 그. 약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노력으로 당뇨를 이겨낸 유상영씨만의 비법을 들어보자.
송지은 (25세, 女, 억대 연봉의 국내 최연소 보험설계사) “용 꼬리보다 뱀 머리”
1989년생으로 국내 최연소 MDRT(생명보험업계에서 연간 1억 2천 이상의 실적을 가진 사람)기록을 세운 억대 연봉자 송지은씨. 그녀는 중?고등학생 시절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의기소침해있었지만, 지방대 법학과 진학 후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법학과이다 보니 검찰사무직 공무원을 꿈꾸기도 했고, 남들처럼 대기업에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방대생’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취업에 대해 고민하던 어느 날 한 회사에서 취업 제의가 들어왔다. 자신이 일한 만큼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그녀가 시작한 일은 바로 보험설계사였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도 무척이나 심했고 그녀 역시 자신감이 없었지만, 반대가 클수록 도전정신과 열정이 생겼다. 8개월 동안 10만km를 달리고, 1년에 8번의 차사고가 날 정도로 열심히 고객들을 찾아다닌 결과, 일한지 1년 만에 국내 최연소 업계 억대 연봉자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부모님과 사람들의 편견을 이겨내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낸 그녀. 모두가 원하는 화려한 꿈을 좇기보다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송지은씨를 만나보자.
박종팔 (72세, 男, 치매 아내 10년째 돌보는 남편) “당신만이”
치매에 걸린 아내를 10년째 사랑으로 돌보는 박종팔씨. 박종팔씨 부부는 충남 홍성군에서 유명한 '원앙 부부'이다. 밥을 먹을 때도, 산책을 할 때도 부부는 손을 꼭 잡고 떨어지지 않는다. 가난한 집 장남에게 시집 온 아내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5남매까지 키우며 농사와 뱃일까지 해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다. 고생만 하던 시절을 보내다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둘만의 단란한 생활을 즐길 무렵, 부부에게는 큰 시련이 찾아왔다. 건망증이 좀 심하다 생각했던 아내가 알고 보니 치매였던 것. 이제야 좀 먹고살만해졌다 싶었던 부부에게 치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이었다. 그는 너무 큰 충격에 3,4일을 내리 술만 마셨다. 하지만 고생만 한 아내에게 화내고 짜증내는 대신 사랑으로 보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고, 생전 안 해본 살림살이까지 직접 도맡았다. 그의 사랑과 노력으로, 지난 10년간 다행히 아내의 치매는 심각하게 악화되지 않았다. 못난 남편에게 시집와서 40년 넘게 고생한 아내를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겠다고 말하는 그. 사랑이 있다면 치매도 안고 살 수 있다는 박종팔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