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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수리 마하수리
修理修理 摩訶修理
한국에서 통용되는, 온갖 마법과 마술과 요술을 부릴 때 쓰는 주문의 대명사.
서양으로 치자면 “호쿠스 포쿠스 티디부스”에 비견될 수 있다.
“호쿠스 포쿠스 티디부스”의 유래가 성체성사에 쓰이는 전례문구인
'Hoc est enim corpus meum(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의 몬데그린인 것처럼,
이 문구도 사실은 불경의 하나인 천수경에 수록된 진언에서 유래했다.
천수경은 한국에서 반야심경과 더불어 상당히 많이 읽는 불경이다.
이 천수경의 가장 첫 시작이 바로 산스크리트어 진언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sri sri maha sri su sri svaha'이다.
진언의 이름은 '정구업진언(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는 주문)'.
산스크리트어를 해석하면 '수리(sri)[1]'는 좋다/깨끗하다/기쁘다,
'마하(maha)'는 크게(아주)이며, '수수리(susri)'는 '수리(sri)'에 '묘하다, 또는 지극하다, 좋다 라는
뜻의 접두어 '수(su)'가 붙어 '묘하게 좋다'라는 뜻이다.
'사바하'는 원만해지다, 성취하다는 뜻으로 진언마다 붙는 종결구이다.
종합하면 '깨끗하구나 깨끗하구나, 아주 깨끗하구나, 묘하게 깨끗하구나,
(모든 것이) 원만히 성취되리라'라는 의미가 된다.
불교계에서 천수경을 하도 많이 읊으니까 사람들도 맨 앞 구절이 귀에 익어서
결국 수리수리 마하수리는 주문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근래에 들어서는 본래 산스크리트와는 너무 멀어져서 '수리수리 마하수리'보다
'수리수리 마수리'라고 축약해서 더 많이 쓰인다.
<절대로> 술이 술이 마술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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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이건 인도의 여신 라크슈미와 연결된다. 한역으로는 길상천吉祥天이 되는데,
좋다, 기쁘다, 행복하다, 부귀 등 좋은 의미는 대부분 다 들어간다.
[2] 아브라카다브라처럼 이 진언은 이루어질지어다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대부분의 진언은 사바하로 끝난다.
예를 들어 반야심경의 마지막 진언은 '아제 아제 바라 아제 바라승 아제 모지 사바하 '이다.
[3] 진언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깨끗해져라 깨끗해져라 매우 깨끗해져라 정말로 깨끗해져라
이 주문은 이루어질지어다' 정도가 된다.
sri의 해석에 따라서는 행복하세요, 기쁘도다, 라크슈미 신이시여 등으로
정말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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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는 진언'이 바로 수리수리 마하 수리 수수리 사바하입니다.
여기서 수리는 길상존(吉祥尊)이란 뜻입니다.
길상존의 뜻은 매우 거룩하여 상서로우신 높은 분이시여 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마하수리에서 마하는 '크다'는 뜻이어서 마하수리는 대길상존(大吉祥尊)이 됩니다.
풀이하면 위대하시며 매우 거룩하고 상서로우신 높은 분이여 라고 풀이 됩니다.
수수리의 수는 지극하다는 뜻이어서 수수리는 극길상존(極吉祥尊)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풀이하면 ' 가장 높고 거룩하며 상서로우신 높은 분이여 라고 해석됩니다.
마지막의 사바하는 앞의 내용을 결론짓는 종결적 의미가 있습니다.
사바하의 뜻은 원만성취입니다. 무엇이든 이루지 못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또는 ' 간절히 원합니다'라는 뜻도 포함이 됩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직역으로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 길상존이여, 길상존이여, 대길상존이여, 극길상존이여 간절히 원합니다.]가 됩니다.
길상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찬탄이요,
둘째는 축원입니다.
남을 위해 축원하고, 그의 좋은 부분들을 찬탄해 주는 것이 길상의 참된 뜻입니다.
길상존은 관세음보살님의 거룩하신 대자대비심을 높이 올려 부르는 것이입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중생의 아픔을 보면 그 중생보다 더 아파하시며 잘 되기를
지극히 축원해주시고 살펴 주시니 길상이요,
중생이 잘 되는 것을 보시면 그 중생보다 더 기쁜 마음을 내시고 찬탄해 주시니
이 또한 길상입니다.
찬탄의 예와 축원의 예를 든다면
'행복하십시오, 훌륭하십니다. 장하십니다. 성공할 것입니다. 잘 될 것입니다.' 등
모두가 축원이자 찬탄입니다.
이처럼 진언이 함축적으로 가지고 있는 뜻이 깊고도 오묘하여 해석을 잘못하면
그 본래의 뜻과 십만 팔 천리로 멀어질 수가 있으니 감히 해석을 꺼려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가 구업을 짓습니다.
이렇게 입으로 지은 구업을 참회하고 깨끗이 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반대로 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남을 칭찬해 주고, 긍정적인 말을 해 주고, 약이 되는 말을 해 주고,
타이르는 말을 해 주고, 복이 되는 말을 해주고, 축복해 주는 말을 해주고,
화합을 도모하는 말을 해주고, 서로 이해시키는 말을 해 주고,
욕이나, 나쁜 말을 멀리 하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구업을 깨끗이 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남을 칭찬해 주는 말, 축원해 주는 말을 실천하면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의 진언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됩니다.
기도라는 것은 부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남을 비난하고, 헐뜯고 욕하는 일은
부처님과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구업진언의 의미는 입으로 지은 구업을 깨끗한 행으로서 입을 맑게 하여
서로 하나가 되라는 의미가 있는 진언입니다.
아함경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남을 비난하지 말라. 비난 하는 것은 마치 피를 물고
남을 향해 뿌리는 것과 같으니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말의 위력이란 참으로 엄청납니다. 오죽하면 속담에 '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 새겨 보시고
음미해 보시길 바랍니다.
(답변 - 도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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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 입으로 지은 죄를 맑히는 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업(業)은 범어로 카르마(karma)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갈마(褐磨)라고 음역했으며, '조작 행위' 라는 뜻입니다.
중생의 업에는 신(身) · 구(口) · 의(意) 삼업이 있습니다.
중생은 삶을 영위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업을 짓게 됩니다.
착한 업(행위)을 쌓음을 선업(善業)이라 하고
악한 업(행위)을 쌓음을 악업(惡業)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업이라 하면, 악업을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열 가지 악한 업(十惡業)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1] 신업(身業)
몸으로 짓는 악업에는
살생하는 것, 도적질하는 것, 사음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살생은 부처님 계율 중에서도 가장 중대하고
수많은 악한 일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죄입니다.
불자들은 하찮은 작은 생명이라도 가볍게 여겨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살생을 자꾸 하게 되면 자비종자가 끊어지게 되어
포악한 마음만 길러지고 자비로운 마음은 점점 멀어집니다.
옛 스님들은 방안에 아무리 자주 벌레가 들어와도
죽이지 않고 밖으로 내보냈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살생의 반대인 방생하는 신행이 있는데,
방생을 통하여 생명의 존귀함을 배우고 자비를 실천하게 되니
방생의 공덕이 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도적질 역시 중죄입니다.
도(盜)는 도둑질을 말하고, 적(賊)은 도둑질도 하고 살생도 하는 강도질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져오는 것' 을 도둑질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길에서 물건을 주웠으면 주인을 찾아 주어야지
가져간다면 도둑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구든지 잃어버린 물건을 줍지 않고
그대로 놓아둔다면 그 것 만큼 아름다운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여기 저 오랜 역사 속에서 이 아름다운 일을 실천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당(唐)나라 때 배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쌍둥이로 등이 맞붙은 기형아로 태어나 부모가 칼로 등을 갈라 약을 바르고
치료를 해 키웠는데 살이 많이 붙은 아이는 형으로 배도라 이름 지었고,
살이 적게 붙은 아이는 동생으로 배탁이라고 불렀습니다.
장성한 후, 형 배도는 배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배휴는 어려서 조실부모하여 외삼촌한테 몸을 의탁하고 있었는데
동생은 어디론지 가버려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외삼촌과 친한 일행(一行) 선사(禪師)라는
스님이 와서 외삼촌에게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밖에 있는 저 아이를 내 보내십시오.
저 아이는 워낙 복이 없는 아이라서 얻어먹어야 하는데, 저 아이가 얻어먹으려면
우선 이 집부터 망하게 되니 그렇게 되기 전에 내보내야 합니다."
배휴는 선사가 돌아간 뒤 외삼촌에게 말했습니다.
"아까 일행 선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 때문에 외삼촌까지 망하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지금부터 빌어 먹으로 가렵니다."
"그것은 스님이 괜히 하시는 소리였다." 며 만류하는 외삼촌을 뿌리치고
거지가 되어서사방으로 다니던 중, 하루는 어느 절 목욕탕에서
부인삼대(婦人三帶)라는 진귀한 보배를 줍게 되었습니다.
배휴는 '보배를 잃어버린 사람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생각하고는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보배가 어떤 물건인가 하면, 죽을죄를 지은 사람이 있었는데 삼대 독자였습니다.
그 어머니가 아들의 목숨을 구하려고 가산을 모두 팔아 멀리 촉(蜀)나라까지 가서 구해 온
보배로 그 고을 자사(刺使 : 지금의 도지사급)한테 바쳐 삼대독자를 살리려는,
참으로 애절한 사연이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바쁘게 서두르다 보니 목욕탕에 귀중한 보물을 빼 놓고 간 것입니다.
집에 가서 찾아보니 부인삼대가 없어져서 정신없이 절 목욕탕에 와 보니
웬 거지가 목욕탕 앞에 서 있기에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주워서 챙겨 놓았습니다. 당신이 주인이면 가져가십시오."
빌어먹는 처지에 보물을 지켜준 거지를 보고
감격하며 백배 감사하고 보배를 갖고 가서 아들을 살렸습니다.
그 후 배휴가 외삼촌 집에 들르니 마침 일행 선사가 오셨는데 놀라면서,
"얘야. 너 정승이 되겠구나." 라고 하셨습니다.
배휴가 그 말을 듣고, "지난번엔 빌어먹는다더니,
오늘은 정승이 된다고 하시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일행 선사가 "전에는 너의 관상(觀象)을 보았고, 오늘은 너의 심상(心象)을 보았다." 라며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라고 묻자, 배휴가 부인삼대를 찾아 준 이야기를 하니,
"그랬구나!" 하고 수긍을 하였습니다.
사주불여관상四柱不如觀相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
사주가 아무리 좋아도 관상이 좋은 것만 못하고
관상이 아무리 좋아도 심상보다는 못하다
그 후 일행 선사의 말대로 배휴는 삼공(三公) 영의정이 되었고,
신심 지극한 불자로 불교를 외호하였으며 불경의 서문을 짓기까지 하였습니다.
도둑질은 복덕의 종자를 끊는 것입니다.
남이 피땀 흘려 모아 놓은 재산을 쉽게 훔쳐 써버리면
다음 생에 훔친 재산의 몇 십 배를 갚아야 되고 가난하게 됩니다.
불법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배울 여유가 없어 전하기 어렵고,
아만심이 가득한 사람에게도 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불법을 아무리 많이 공부했다 해도 남이 애써 모아 놓은 공덕을 가로채는
박복한 짓을 하면, 다음 생에 집안이 가난하여 불법을 만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진리를 무시하여 마음 닦는 공부에 전념할 의사가 없으므로 점점 지혜가 퇴전하여
성불할 기약이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도적질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사음이니 삿된 음행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음행 자체를 나쁘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음행은 인간의 생리적인 구조에 맞추어 사는 것이므로 선악을 가리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하지만 삿된 음행은 바람직하지 않고, 3가지 부정한 사음이 있습니다.
①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음행하는 것
: 사음을 행하게 되면 가정과 사회를 모두 파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② 혼인 전에 사음하는 것
: 부처님께서 아직 혼인하지 않은 젊은이들의 혼전 음행을 경계하셨던 이유도
인간은 성性의 기쁨 이외의 기쁨으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미혼모는 바로 이 혼전 음행에 대한 올바른 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정신의 양식이 되는 일을 찾아야 하고 그 일에 더 많은 관심과 연구를 해야
건전한 사회가 됩니다.
부처님은 마음이 고요하여 무심해지면 그것이 최상의 즐거움이고 행복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야말로 인생의 근원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이 마음을 탐구하고 잘 쓰는 수행과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물질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스스로 기뻐할 수 있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명상과 진리 탐구를 하지 않고 감각적인 쾌락을 좇아
정신의 진보를 늦추는 것은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전의 사음을 금지한 것입니다.
③ 출가 수행자가 사음하는 것
: 열반과 선정삼매는 모든 일을 하는 근원적인 힘이 되어 나오고 창조의 바탕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출가한 수행자에게 사음하지 말라고 엄격한 계율을 정해 놓은 것입니다.
수행자의 길은 결코 가족을 부양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여의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짧은 시간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시간을 오직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하므로
오로지 자신 하나를 지탱하기조차 힘들 때가 다반사인데 어찌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겠습니까.
어쨌든 오늘날과 같이 성性의 문란으로 미혼모가 늘어가고,
가족과 사회에 한 약속을 파기하는 사례가 빈번한 심각한 현대사회 구조 속에서
부처님의 이 불사음(不邪淫)의 규율은 깊이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는 윤리규범입니다.
[2] 구업(口業)
입으로 짓는 악업인 구업에는
① 망령된 말 ② 거짓말 ③ 두 말하는 것 ④ 악한 말 등 네 가지가 있습니다.
말은 항상 단정하고 신의信義가 있어야 하는데
근거 없는 말, 횡설수설 하는 말,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말 등이 전부 망령된 말입니다.
또 거짓말 역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거짓말을 하면 혀를 쇠꼬챙이로 뽑히는 지옥고를 받습니다.
차라리 말을 안 할지언정 거짓말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생명을 구하거나 중생의 큰 이익을 위해 득得이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도 반드시 신중히 생각해서 하셔야 합니다.
두 말 하는 것 역시 입으로 쉽게 짓는 구업인데,
이간질이나 물건을 산다고 했다가 이유 없이 안 산다고 하는 것,
부처님께 약속했다가 지키지 않는 것 등인데, 혀가 갈라지거나 잘려지는 과보를 받게 됩니다.
<빙혼>
성경이나 불경이나 중생들 협박하는 짓은 똑같다.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데 지옥에 가고 안 가고는 누가 결정할까?
성경은 하나님/예수님이 결정한다고 하는데 불경에서는 부처님이 결정을 할까?
수 억 명의 부처님 중에서 어느 부처님이 지옥에 가는 것을 결정을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툭하면 즈그들이 인간들에게 지옥에 간다고 협박을 한다.
지옥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마음에 있을까? 생각에 있을까? 거짓말과 협박에 있을까?
정답 : 거짓말과 협박.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종교 관련자는 툭하면 중생들을 지옥에 간다고
거짓말과 협박한 죄로 그들만이 지옥에 간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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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말은 욕설을 말하는데,
항상 부드러운 말을 골라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욕설을 잘하는 사람은 박복해집니다.
제 속가 친척 중에 매우 욕을 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분은 한국전쟁 때 상처를 입고 평생을 정부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후유증으로 고생하며 불우하게 살고 계신 분입니다.
그 분은 병고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살림마저 기울다 보니
성질은 더 포악해지고 욕설이 더욱 심해져 집안사람들이 욕쟁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그 분은 말년에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여러 날을 혼수상태로 있다가 깨어났습니다.
그 후 정신을 놓아버린 채 치매를 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고가 난 뒤에도 약을 먹고 욕하는 기억이 제일 먼저 회복되어
지금도 매일 진통제를 먹고, 비위를 건드리면 욕설을 해 댑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젊어서 고치지 못한 습관은 정상적인 정신을 잃어버린 뒤에도
영원히 고치지 못하게 되었으니 다음 생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빙혼>
인간은 내일 일을 알 수가 없다.
내일을 알 수가 있어야만 다음 생도 알 수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내일을 미리 예측하여 알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다음 생이 어떻게 되는 지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죄를 짓는 사람들의 다음 생은 가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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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이 간혹 제정신이 들 때면
'크게 죄를 진 것도 없는데 말년에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고 하소연을 하곤 한답니다.
그러면서도 악한 말을 하는 과보로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생각조차 않습니다.
하지만 이 분에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은 부처님이다' 하는 생각을 갖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를 해온 공덕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통증 때문에 실제로 자신을 극복하지 못한 채 욕설을 해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항상 부처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잃지 않아서인지 그 자식들은 모두 잘 되었습니다.
어쨌든 항상 부드럽고 순한 말을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옛 스님들께서는 "말하는 것도 복 있게 해야 한다. 남이 싫어하는 소리는 하지 말고
항상 상대방이 기뻐하는 소리를 해라. 그리고 상대방의 단점은 말하지 말고 장점을 말하라.
그러면 단점은 절로 고치게 된다." 고 하셨습니다.
간혹 바른 소리라며 상대방이 들어서 가슴 아픈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사람이 있는데,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괴롭기 마련입니다.
결국 박복한 씨앗을 심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3] 의업(意業)
의업은 뜻으로 짓는 죄업을 말합니다.
뜻으로 짓는 악업은 3가지가 있으니
① 탐욕 ② 분노 ③ 어리석음 등입니다.
탐욕은 만족할 줄 모르고 끝없이 욕심을 일으킴을 말합니다.
자신의 능력과 현실을 망각하고 지나친 과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허욕을 부리다가 살생, 도둑질, 투기 등에 손을 대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자신을 망치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세상은 욕심대로 다 되지 않고 그 누구도 욕심을 채우고 간 사람은 없습니다.
채워도 절대 다 채울 수 없고 결국 채워지지 않는 욕심으로만 남을 뿐입니다.
살아가면서 복도 지을 줄 알아야 하고, 부지런히 일하면서 복을 짓다 보면
전생의 복과 금생의 복이 합쳐져서 부자도 되고,
부자는 아니라도 적어도 궁핍하게 살지는 않습니다.
부지런히 사는 것 자체가 복 짓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탐욕을 버리라고 하시면서 시종일관 부지런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세존의 유언이 무엇이었습니까?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이었습니다.
탐욕은 전생의 복도 까먹고 금생의 복도 까먹게 되므로
불자들은 항상 투기나 과욕에 사로잡히지 말고 검소하게 살면서 복을 지어야 합니다.
분노 역시 박복한 행위 중 하나인데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화를 안 내고 사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성인들은 화내지 않고도 잘 살았습니다.
자식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회초리를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식에 대한 무분별한 분노는 역효과를 가져옵니다.
분노는 자신과 남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시기 · 질투 · 미움 · 불신 · 비교 등도 큰 어리석음입니다.
사람을 믿지 않는 불신풍조 시대라고 하는데,
이를 고치는 약은 '사람을 믿는 습관' 입니다.
사회가 혼탁하면 혼탁할수록 사람 속에 훌륭한 성인이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이 있고,
행복의 열쇠가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이 땅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하여 행복한 사회가 건설되는 것이지
위대한 능력자 한 사람이 평화를 가져다주는 게 아닙니다.
한편 미움은 모든 불화의 근본이 됩니다.
인류 최고의 어리석음인 전쟁도 미움에서 옵니다.
이 나는 본래의 나가 아닙니다.
내 몸도 내 것이 아니고 지수화풍의 네 가지 원소가 인연에 의하여 합하여진 것이므로,
나라고 할 주체가 없는데 어찌 나와 남이 따로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곧 나입니다.
내 속에 이미 추악함이 잇고 비굴함이 있으며
못된 것이 있으므로 남에게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내가 자비한 보살이면 남에게도 그런 자비가 있을진대
누구를 미워하고 시기하며 증오하겠습니까?
미움은 진리에 깨어나지 못한 어리석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보면 미워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편 시기와 질투, 미움은 나이가 들었거나
고매한 인격이라 해서 근원적으로 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절제할 줄 아는 것뿐인데, 절제만으로는 안 됩니다.
수행을 통해 근본적으로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진리를 깨닫고, 본래 나가 없는 줄 알면
앉은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 자리입니다.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죄업과 입으로 짓는 네 가지 구업은
모두 조금만 주의해도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뜻으로 짓는 세 가지 죄업은 좀처럼 그치기 힘듭니다.
그래서 의업(意業)을 끊으려면 열심히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믿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항상 진리를 가까이 하여 깨닫도록 해야 하고
수행하고 또 수행해서 진리와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그래서 불교는 수행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위에서 말한 신구의(身口意) 세 가지는 죄업을 짓는 도구입니다.
중생은 이 세 가지 도구로 모두 열 가지 죄업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 가지 모두 결국은 신구의가 짓는 업이므로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합니다.
이 삼업을 항상 맑게 하고 삼업에서 나온 열 가지 악업 대신
선행을 쌓아 가는 것이 바로 불교의 십선계(十善戒)입니다.
이 중에서 하나라고 깨뜨리면 불자들이 지켜야 할
열 가지 계율 중 하나를 깨뜨리는 불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 가지를 다 깨뜨리는 삶을 살면 십악업(十惡業)을 지었다고 합니다.
자! 서론이 좀 길었지요?
천수경의 처음에 나오는 정구업 진언은 십선계 중에서도
입으로 짓는 구업을 맑히는 진언입니다.
입은 몸이나 뜻으로 짓는 죄업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네 가지 죄업을 짓습니다.
불자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입은 무거울수록, 몸은 가벼울수록, 뜻은 맑을수록 좋습니다.
천수경에서 나오는 첫 구절인 정구업 진언은
입으로 지은 죄를 맑히는 정지작업도 되지만,
진언을 읽으면서 입을 항상 무겁게 하여
신뢰를 쌓는다는 간절한 서원이기도 합니다.
우리 속담에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처럼
아름답고 부드럽게 말해서 신뢰를 쌓으면
입 하나 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는 것이니 입을 정말로 조심하셔야 합니다.
단 한 마디 말도 복의 씨앗이 되는 것이요
善業은 운명을 바꾼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거듭 당부 드립니다.
우리들은 진리를 몰라서 죄를 짓기도 하고,
습관(업식) 때문에 진리를 알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누구든지 실수도 잘못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회하고 서원하면서 죄를 짓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변화된 사람이
되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정구업 진언을 읽으셔야만 효력이 생깁니다.
오늘부터라도 정구업 진언을 건성으로 읽지 마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천수경에는 참회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리라고 서원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구업을 맑히는 진언을 제일 먼저 배치한 것입니다.
또한 입으로 지은 죄를 맑히고 경전을 읽게 하고자
업을 맑히는 진언이 처음에 나오는 것입니다.
구업口業을 맑히는 진언은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입니다.
대승불교의 수행계위(10신信, 10주住, 10행行, 10회향廻向, 10지地, 등각等覺,
묘각妙覺의 52계위階位)를 보면 최초의 깨달음인 10신(범부각)을 성취하면
몸이 공空함을 체험해 몸으로 짓는 살생, 도둑질, 삿된 음행과 입으로 짓는 악담,
이간질 ,거짓말, 꾸미는 말을 하지 않게 된다 합니다.
의식이 사라지는 상사각(성문, 연각, 초지)을 성취하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 교만, 삿된 견해, 의심이 제거되며, 아공, 법공이 타파되어
자아의식인 말라식이 소멸하는 수분각(2지에서 7지)에 이르면
아치, 아애, 아만, 아견이 사라지고,
부동지인 8지 이상에서 무의식인 아뢰야식이 사라져 주객이 나누어지기 전인
최초의 한 생각인 무명이 타파되어 마침내 구경각을 성취한다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보시란 몸과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으뜸임을 느낍니다.
자신의 가장 강력한 욕망인 내 몸과 애착하는 내 물질에 대한 탐욕심이 얼마나 깊고
강력하게 뿌리 깊이 숨겨 있는지 수행계위를 보면서 늘 자신을 바라보고 점검해 보십시오.
또한 정토에 왕생해도 완전한 해탈이 아니라 다겁생의 번뇌는 남아 있으니
계속 보살도를 닦으며 차츰 차츰 번뇌를 제거하여 구경에는 근원적인 너와 나를
완전히 초월하는 구경각을 성취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無量光明 합장 관세음보살
찰나라도 의심하지 말지니 염념물생의(念念勿生疑)
관세음 거룩한 성인은 관세음정성(觀世音淨聖)
고뇌와 죽음의 재앙에서 어고뇌사액(於故惱死厄)
능히 믿는 의지처가 되어준다네 능위작의호(能爲作依怙)
<빙혼>
빙혼은 종교를 갖지 않는다.
종교라는 것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내어 인간들을 협박하는 짓만 골라 한다.
종교가 무의미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성직자가 늘어나고 종교인들이 늘어나는 데도 세상 살기는 엿 같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고 인간들 스스로가 자학을 하면서
허상일 수밖에 없는 신을 만들어 놓고 “신만이 오로지 완전하다”고 주장을 하며
지구상의 동물인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것들을
“도덕, 규범, 탐욕, 성욕, 식욕 등”이 기준을 만들어
같은 종류의 인간들을 위협하고 협박하는 것은 종교의 실체인 것이다.
종교인들이 말하는 그들의 종교가 진리이고, 진실이고, 사실이라면
왜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존재하고 있을까?
어떤 특정 종교의 관점에서 그들이 믿고 있는 신만을 주장한다면
다른 종교의 신은 모두 사기꾼일 것이고
마찬가지로 다른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특정 종교도 사기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종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 내면에 존재하는 마음과 생각이 중요한 것임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눈앞, 우리의 인생살이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저 “삶의 강, 죽음의 강, 성공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건너가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는 그들이 죽어보아야 알 것이다.
인생의 강을 건너기 위하여 종교라는 수단을 들고 전도나 포교 등 광고를 하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일방적으로 주장을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빙혼은 종교라는 장사꾼 배를 타지 않고 직접 인생의 강을 헤엄쳐 건너갈 생각인 것이다.
첫댓글 입은 무거울수록 몸음 가벼울수록 뜻은 맑을수록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좋은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