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호라는 이름을 들으면 포토그램부터 떠오른다. 좀 더 기억해내려 애쓰면 펀치로 신나게 구멍이 뚫려버린 사진과 벗음사진들이 연달아 이어진다. 포토그램은 감광재료를 바른 인화지 위에 피사체를 올리고 빛을 찍어 인화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암실만 있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간단한 과정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진가들이 그 예술성을 무시한 것 또한 사실이다.
<호박넝쿨 포토그램 중 하나. DCM에 실린 것을 재차 촬영했다>
<암실 인화지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은 강아지풀이다>
사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접했을 만한 사진으로는 환자의 고름을 입으로 빨고 있는 의사의 사진일 것이다.
<최광호라는 이름을 모르더라도 워낙 인터넷 여기저기에 퍼져 있는 덕에 이 사진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게다>
그는 포토그램을 온몸으로 실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몸에 현상액이나 착상액을 바르고 대형 인화지에 몸을 던지고 구르면서 작품을 만들어냈다. 삶 그 자체가 사진이 되는 순간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삶의 희노애락을 온 몸을 던져 한 장의 인화지에 담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월간 <사진예술>에 '최광호의 사진 읽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건조하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진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최광호 자신만의 사진론을 가감없이 진하게 적고 있다. 타인의 시선은 상관하지 않고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한 어투에 적잖이 내 성향과 부딪히는 면도 없지는 않았다. '강남콩' 따위의 자잘한 맞춤법 오류부터 사고 방식이나 행위까지 말이다.
<책의 표지>
언젠가 육명심 선생님과 인천 선배네 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술 취해 잠자려고 하는데 육명심 선생님과 같이 자고 싶어서 같이 자자고 했더니, 주정하지 말고 조용히 가서 자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화가 나서 칼을 들고는 육명심 선생님을 죽인다고 소동을 피운 적이 있다. 이 세상을, 내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여 발광하고 다녔던 것이 이 시기였던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사진에 대한 열정의 발산, 사진적 한풀이를 그렇게 온몸으로 했다는 것이 대단하다 싶다. - 최광호, <사진으로 생활하기>, 79쪽.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딱 그 모양새다. 전공 교수님에게 술 주정하는 것도 모자라 칼을 들고 난동을 피운 데에 대해 사진에 대한 열정의 발산이라고 규정지은 데에 대해 할 말을 잊었다. '대단하다'는 마지막 문구가 압권이다. 적어도 송구스럽다거나 하는 표현이 와야지 않을까 싶은데.
일본에서 그렇게 사진을 찍은 행동은 말 그대로 폭력이었다. 사진기의 초점거리를 1미터로 고정시킨 다음 1미터 안에 사람이 들어오면 '펑'하고 스트로보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었는데, 그것은 대단한 재미이기도 했다. (중략) 스트로보를 코앞에서 펑펑 터뜨리고 일본사람과 큰소리로 싸우기도 하면서 사진 찍은 것은 일본사람들에 대한 나 자신의 울분의 표현이었다. 정말 많이 찍고 말썽도 많이 부렸다. 억눌린 역사에 대한 분노를 그런 식으로 토해낸 것이다. - 최광호, <사진으로 생활하기>, 87쪽, 90쪽.
한 명의 잘못이 그가 속한 국가의 전체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폭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 앞에서 스트로보를 터뜨려대다니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여기서 또 최광호는 자신의 폭력적 사진 행위에 대해 '억눌린 역사에 대한 분노의 표현'으로 포장한다. 그나저나 거꾸로 되짚어보자면, 고작 스트로보를 터뜨리는 행위가 역사적 억눌림에 대한 울분의 표현이라는 거창한 의지의 발현이었다니. 기꺼이 그들을 포용해버릴 수 있는 대범함같은건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사진가 모리야마 다이토를 만나고 싶다고 이노우에 선생님에게 말했는데, 함께 만나게 된 날은 정말 광란의 날이었다. 내가 모리야마 다이토에게 죽으라고, 옛날 명성만으로 살고 있을 뿐이지 새로운 작업이 없다고 하면서 죽기살기로 오기를 부렸던 것 같다. - 최광호, <사진으로 생활하기>, 93쪽.
기껏 그를 소개해준 이노우에 선생님은 대체 뭐가 되는가. 어쩌면 이렇게 치기어리고 오만할 수가있는지 말이다. 게다가 글의 뉘앙스는 시종일관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으레 하는 무용담처럼 과거 누울 자리 보지 않고 다리 뻗었던 이야기를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듯해 거북하기까지 했다.
124쪽 즈음에서 자신의 20대에 대해 '건방의 극치였고 유치하고 오만하기 그지 없었다'고는 회고하고 있으나 곧바로 그 다음 문장에서 '말도 안 되는 세상'을 고집으로 버티면서 살 수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안하다거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자기가 구축한 자기 자신만의 완벽한 세계를 구축하고 그 범주를 벗어나는 이들에게는 가차없이 들이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의 최광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책 한 권을 통해 한 사람을 들여다 보려 노력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지만, 글만 놓고 보면 꽤나 불편한 문장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놓고 보면 꽤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작가의 과거지사와 사고관이 일부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매도할 이유는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포토그램이라는 과정만 논한다면 흔히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오류처럼 '그게 뭐 별건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충분히 매력이 있다. 사진에서 중요한 점이 얼마나 초점이 잘 맞았는지, 노출은 어떤지가 아니라 작가의 생각과 사상인만큼, 포토그램 역시 무엇을 왜 이렇게 찍었는가가 중요하다. 과정이 간단하다는 이유만으로 포토그램을 함부로 폄하한다면, 사실 포토그램 뿐 아니라 사진도 간단하다. 그저 셔터를 누를 뿐이니까.
<1977년, 인천 북평 공동묘지에서 찍은 최광호의 사진, 책에 실린 사진을 재차 촬영했다>
포토그램은 그 제작과정의 특성상 똑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단 한 장의 작품이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있다. 모든 작품의 에디션 넘버는 오로지 1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컬렉터들의 눈에도 이런 점이 소장가치의 매력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최선생님의 작품은 계속 봐야 다가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때문인지 컬렉터나 사진 전공한 분들이 좋아하는 편입니다. 특히 컬렉터들은 작품을 세트로 사는 일이 많은데 아무래도 작품들이 연관성이 많다보니 컬렉터들이 주목을 하게 됩니다." - 김종선
작년에 있었던 『선물』전시회에서는 100여 점 중 70여점이 팔려나갔다.
<최광호는 사진에 구멍을 뚫기도 했다>
최광호 - 일본 오사카 예술대학교 사진과와, 대학원(다큐멘터리 사진 전공)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대학교 대학원(순수예술 전공)을 졸업했다. 《뿌리 깊은 나무》 기자와 《샘이 깊은 물》 사진부장을 거쳤으며 50여 회의 개인전과 많은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동강사진상, 동경 국제 사진 비엔날레 교세라 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나와 우리 식구》(1996), 《나눔, 그래서 살 만한 세상》(2005), 《포토그램, 선물》(2007), 《땅의 숨소리-고성산불》(2007), 《가족》(2008)등 많은 사진집을 출간했다.
책 내에 작가의 개인적인 신변잡기가 많다는 점은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명의 사진가가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길과 공부하는 과정을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는 점은 사진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라도 흥미로운 주제일 수밖에 없다.
첫댓글 최광호 사진작가의 '동행'이라는 책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