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惡意)라는 단어가 있다. 그냥 국어사전에는 '남을 해치려는 나쁜 마
음'이나 '나쁜 뜻'이란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법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언젠가 소액재판정에서 노인네 한 분과 젊은 판사 사이에 말다툼이 발생했
다. 일반적으로 법정에서는 판사와 말다툼을 벌이는 일은 당사자에 대한 인
상을 흐리기 때문에 하지 않으시는게 좋다. 그러나 살만큼 사신 분들이 가
끔 오해하고 덤비는 수가 있다. 그런 경우는 <법에 대한 무지>가 원인인 경
우가 대부분이다.
판사가 재판 도중에 노인네에게 "악의가 있으시네요"라고 말하자, 노인네
는 "내게 무슨 악의가 있냐"고 대답했다. "그럼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없었나요?"라고 판사가 물었다. "들어서 알고 있었다"고 노인네가 말했다.
"그럼 악의가 있으신거네요" 판사가 다시 말했다. "악의가 없다니까. 왜 자
꾸 있다고 그래요. 판사님."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긴 어렵지만, 법정에서
의 이 다툼은 법에서 사용하는 '악의'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로
들으신 노인네의 오해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법원에는 사건이 하도 많아 판사가 제대로 다 설명하기는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재판을 하는 경우에는, 특히 당사자가 직접 하
게 되는 소액재판의 경우에는 기초적인 내용은 알고 가야 한다. 아니면, 판
사가 요구하는 사항을 적어서 법을 아는 사람에게 꼭 물어보고 재판을 해
야 한다. 판사가 요구하는 것의 대부분은 청구하는 사건에 대한 <입증>에
관한 부분이 대부분이므로,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면 패소하게 되어 있다.
법에서 사용하는 '악의'라는 용어와 그 반대말인 '선의'라는 단어는 어떤
윤리적인 배경없이, <악의(惡意)>는 '일정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선의(善意)>는 '일정한 사실을 모르는 것'을 의미한다(아주 예외적으로 윤
리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렇다는 말이
다).
그리고, 법은 모르는 사람에게 불리하게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법에 대한 무지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법에 대한 무지(내
가 그런 법은 몰랐다)는 어떠한 경우에도 주장할 수 없다. 법을 몰라도 처
벌되고, 법을 몰라도 의무사항을 이행해야 한다. 그것이 법이다.
며칠전에 <자동차관리법 위반 검사(점검) 과태료 처분 사전 통지서>라는
긴 제목의 우편물을 하나 받았다. 자동차 검사(점검)을 하지 않아서 과태
료 "30만원"을 물리겠다는 내용이었다(자동차관리법 제43조 제1항 제2호
및 동법 제84조 위반).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자동차 등록증>을 보
니, 과연 자동차검사일이 지난 지 1년이 넘어 있었다. 지금까지 행정기관으
로부터 뭘 내라, 뭘 어떡해라는 것에 대하여 안한 적이 없는데, 자동차 검
사 하라는 통보를 받은 기억이 없다.
어떻게 방법이 있을까 백방으로 찾고 알아 보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꼼짝없이 "30만원"의 과태료를 내어야 할 것 같다. 아까와라.
혹시, 클라이언트들 중 자동차 있으신 분은 꼭 자동차등록증을 한 번 살펴
보시길 바란다. 검사 받아야 할 기간이 있으면 새해 달력에 꼭 적어 놓고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