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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 인생사에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람은 다 같겠지만 사람마다 그 우열은 천차 만별 일것이다 남자 중에는 현인군자가 있는가 하면 어리석은 이와 천한 이도 있고 여자 중에는 정부(절개가 굳은 아내)와 열녀가 있는가 하면 음탕한 이와 간사 스러운 이도 있다 그들의 본성은 아주 없어 지지 않고 대를 이어 오니 예나 지금이나 알수 없는것은 형형색색 사람의 성질 이라 하겠다 사람의 성질 이란 살고 있는 고장의 풍치를 닮기 마련 인데 산 좋고 물 맑은 고장 사람은 성질이 순후, 공손, 부지런 하며 악하질 못하고 산천이 험한 고장 사람은 성질이 우둔하고 간사하며 교활한 법이다 호남의 제주군 한라산은 탐라국의 주산이오 남녁 제일의 명산 이다 그 높고 가파르며 아름다운 정기가 서려 기생 애랑이 태어 났는지도 모른다 애랑은 비록 천한 기생으로 태어 났지만 그 맵시와 지혜가 누구 보다도 빼어 났고 영특한 꾀는 구미호가 환생 한듯 여자 좋아하는 사내가 걸려 들면 상투 끝까지 빠저 들어 헤어나질 못하게 했다 한양에 문장과 재능이 뛰어난 김경 이라는 양반이 있었다 그는 15 세에 생원과 진사를 지내고 20 세 전에 장원 급제 하여 제주 목사에 임명 되었다 부임 길에 오른 김경이 육방( 이방, 호방, 예방, 공방, 병방, 형방의 관리)을 선택 할때 서강에 사는 배 선달(문과에 급제하고 아직 벼슬 하지 않은 사람)을 불러 예방을 맡기고 그를 높이 불러 비장(조선 시대에 감사, 유수,병서,수사, 사신을 따라 다니며 일을 돕던 무관 벼슬아치) 이라 했다 배 비장은 팔도강산 경치 좋은 곳은 안가 본데가 없었다 다만 제주는 육지 에서 멀리 떨어저 있던 섬 이라 아직 구경을 못해 봤는데 그 곳으로 가게 되었으니 꾀나 기뻐 했다 그 좋아 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주의를 주었다 " 제주라 하는 곳이 비록 육지 에서 멀리 떨어진 섬 이나 미인이 많기로 유명 합니다 그곳에 계시다가 만약 주색에 빠저 돌아오시지 못하신다면 부모님께 불효 하는 것이고 더불어 첩의 신세를 망치게 하는 것 입니다 " 배 비장은 펄쩍 뛰며 말했다 " 쓸데 없는 염려를 하는구려, 내 절대로 계집은 가까히 하지 않겠소" 배 비장은 전령패(포도대장이 지니는 직사각형 쪽패)를 차고 김경을 따라 나섯다 때는 바야흐로 무르 읶은 봄철 이라 오얏꽃, 복사꽃, 살구꽃이 흐드러 지게 피었고 풀과 버들이 푸르며 맑은 물은 잔잔하게 흘러 사방의 풍광이 아름답기 이를데 없었다 이런 경치에 취하여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해남 땅에 이르니 새로 부임해 오는 목사를 모셔가려고 하인들이 미리 와 기다리고 있었다 사또는 하인들의 인사를 받은 후에 사공을 불러 물었다 " 여기서 배를 타면 제주 까지 몇일 이나 걸리느냐 ? " 사공이 공손히 아뢰었다 " 날씨가 맑고 서풍이 살살 부니 아딪줄(바람 방향에 맞추어 돛을 매는줄) 에서 핑핑 소리가 나고 뱃 머리 에서 물결 갈라지는 소리가 절벅 절벅 나면 하루에 천리길도 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는 중에 태풍을 만나 표류 하면 영국 이라도 가겠지요 만일 일이 잘 못되면 바다 물도 먹고 숭어와 입을 맞추게 됩니다 " 사또가 분부했다 " 당일 제주에 닿는 다면 푸짐한 상을 내릴태니 착실히 거행 하라 " 사공이 분부를 받고 일기를 살피는데 마침 날씨가 청명 하여 서풍이 솔솔 불어 왔다 그는 소리 높여 아뢰었다 " 사또, 배에 오르십시오 " 사또 일행이 배에 오르자 사공은 돛을 달아 바람에 맞추어 배를 움직여 망망대해로 나아갔다 그리고 배가 추자도에 다다랐을때 였다 난데 없는 태풍이 일어나고 사방이 어두워 지더니 태산 같은 물 마루 (높이 솟은 큰 파도)가 덥치면서 우르릉 철썩 뱃 전을 때리고 콸콸 펄펄 뒹구는 것이었다 드센 바람에 배 위에 띠집 (선실위 띠로 만든 지붕) 이 조각 조각 흩어지고 키는 꺽이고 용총줄(돛대에 매어 놓은 줄)마룻대가 동강나 버리고 말았다 배의 뒷 부분이 들리면 배의 앞 부분이 수그러 지고 , 이물이 번쩍 들리면 저물이 수그러 져서 요한하게 조리질(몹시 흔들거림을 뜻함) 을 하는듯 배가 기우뚱 거렸다 사또는 놀라 어리둥절 하였고 비장과 하인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사또는 노하여 사공을 꾸짖었다 " 이놈, 양반은 물 길에 익숙지 못해서 떤다만 물길에 익은 네놈이 왜 그렇게 떠느냐 ? " 사공은 송구 스럽게 말했다 " 소인이 어려서 부터 허다한 바다를 다 다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입니다 용왕이 외삼촌 이라도 살아 가기는 어렵겠습니다 살아 나려면 이 물을 다 마셔야 할 터인데 누구의 배에다 이물을 다 채우겠 습니까 ? " 이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 울고 비장도 울었다 그러나 사또의 명으로 고사를 지내고 나자 달이 뜨고 물결도 잔잔해 졌다 이후로 별 탈 없이 배는 순조롭게 제주에 다다랐다 환풍정 에서 배를 내려 사방을 둘러 보니 제주 에서 제일 경치가 좋은 망원루 었다 그 곳을 살펴보니 청춘남녀 한쌍이 안타까움을 못 이겨 한숨을 쉬며 눈물 짓고 있었다 이는 구관 사또가 신임 하던 정 비장과 수청 기생 애랑의 애타는 이별 장면 이었다 정 비장은 애랑의 손을 잡고 말했다 "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제주가 물색이 좋단 말에 혹해 한양에서 이곳 까지 내려온 것이 언제더냐 너와 아리따운 연분을 맺고 세월을 보내면서 맵시 있는 네 자태와 밁은 네 노래 소리에 고향 생각을 잊었구나 그런데 이별 이라니 애달 프구나 푸른 강 맑은 물에 원앙새가 짝을 잃은 격이로구나 사람 없는 높은산 깊은 골 에서 둘이 만나 희롱 하다 이런 날을 맞았으니 이벌 이야 이별 이야 ! 애달 프구나 이별이야 ! 애랑아 부디 잘 있거라 ! " 애랑은 슬품을 억지로 짜내어 웃는듯 찡그리는듯 길게 한숨 지으며 말 했다 " 여보, 들어 보시오 나으리가 이곳에 계시는 동안은 이몸이 먹고 입고 살기에 걱정 없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누구를 의지 하라고 이렇게 갑작 스럽게 떠나 가십니까 ? " " 그대는 염려 마라, 내 올라 가더라도 한동안 먹고 쓰기에 넉넉할 만큼 곡식을 내주고 갈터이니 " 그리고 나서 정 비장은 창고 지기에게 명해 볏섬을 풀어 애랑 에게 주도록 했다 그뿐 아니라 애랑 에게 준 재물 들은 헤아릴수 없를 만큼 많았다 애랑은 눈물을 닦으면서 말 했다 " 나으리 께서 주신 것은 천금 이라도 귀하지 않습니다 백년 가약이 한때의 부질 없는 꿈이 되었으니 그것 만이 애달플 뿐입니다 나으리가 소녀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 백발 부모를 위로 하고 아름답고 귀여운 처자를 만나 그립던 정회를 풀때, 소녀 같은 보잘것 없는 것이야 생각이야 하시겠 습니까 ? 애고 애고 슬퍼라 " 이에 정 비장은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 네 말을 들으니 정이 더욱 간절 하구나 네가 달라고 하면 내가 지닌것을 모두 줄터이니 어서 말헤 보아라 " 그렇지 않아도 정 비장은 물 오른 소나무 껍질 벗기듯 하려던 차에 애랑은 손뼉을 치고 좋아할 일이었다 가지고 싶은 대로 다 준다니 피나무 껍질 벗기듯 아주 홀랑 벗겨 버리려고 했다 " 나으리, 들으시오 갖두루마기(짐승의 털 가죽을 안으로 댄 당시 고급 두루마기) 를 소녀 에게 벗어주고 가시면 한 자락은 펴서 깔고 한 자락은 덮고 두 소매는 착착접어 베고 자면 나으리 품에 누운듯 다정 하지 않겠소 ? " 정 비장은 양피 갖두루마기를 훨훨 벗어 애랑 에게 주었다 " 이 옷을 깔고 덮고 베고 잘때 부터 나를 잊지 말거라 " 애랑은 또 말 했다 " 나으리, 또 들으시오, 나으리 가신후 겨울 되어 추운 바람 불때 이 몸은 귀 시러워 어찌 살겠소 ? 나으리가 지금 쓰신 돼지 껍질 휘양(추울때 쓰는 모자 )을 소녀 에게 벗어 주고 가시면 두 귀에 덥석 눌러 쓰고 땀을 흘릴 테니 얼마나 다정 하겠소 ? " 말이 떨어지자 마자 정 비장은 휘양을 벗어 애랑에게 주었다
" 손 으로 매만지고 입으로 털을 불어 쓰면 엄동설한 추위 라도 네 귀 시리지 않을 것이다 이 휘양 쓸때 마다 부디 나를 잊지 마라 " 애랑은 거기서 그만두지 않았다 " 여보, 나으리, 허리에 찬 칼을 소녀 에게 풀어 주시오 " 정 비장은 칼을 만지며 그것만은 거절 하였다 그러자 애랑이 애원했다 ' 나으리, 들으시오 나으리를 생각하며 수절 할때 외간 남자가 달려들면 어쩌란 말이요 ? 나으리가 주고 가신 칼을 빼어 키 큰놈은 목을 찔러 물리 처야 하지 않겠소 ? 제발 그 칼을 제게 주오 " 정 비장은 기분이 좋아 껄껄 웃으며 칼을 풀어 애랑에게 주었다 " 수절 하는 여인을 범 하는 놈들은 네 수단껏 잘 찌르면 만 인은 못 당해도 한 사람은 물리 칠수 있을 것이다 " 애랑은 칼을 받아 놓고 울면서 또 말했다 " 여보 나으리 들어 보시오 입으신 숙주(명주 비단오옷 )창의(벼슬 있는 사람이 평상시 입는 윗옷)를 소녀 에게 벗어주고 가시오 " " 남자 옷이 네게 쓸데가 있겠느냐 ? " " 제 심정을 그다지도 모르신단 말이오 ? 나으리의 옷을 입고 나가 이리 저리 거닐다가 임 생각 절로 날때 들어와 이 옷을 매만지면 온갖 시름 잊을것 이니 그 아니 다정 하겠소 ! " 정 비장이 그 말에 넘어가 옷을 모두 훌렁 훌렁 벗어 주니 애랑은 또 다음 것을 말했다 " 여보 나으리, 이별 후에 때때로 나으리 생각이 나면 그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무엇으로 풀겠습니까 ? 나으리가 지금 입고 계신 고의적삼(여름에 입는 저고리와 홑바지)을 벗어 주시면 제 손으로 착착 접어 두었다가 임 생각에 잠 못 이룰때 나으리와 함께 자는듯 고의적삼 끌어 안고 옷가슴(윗 옷의 가슴부분)을 열어 보리다 그리하여 향기로운 임의 땀내로 슬픔을 풀것 이니 그 아니 다정 하겠소 ? " 그까짓 고의적삼이 문제랴 가죽 이라도 벗어줄 판 이었다 정 비장이 고의적삼 마저 벗어 애랑 에게 주니 그야말로 알몸 비장이 되었다 그러자 정 비장은 밑천을 가릴 길이 없어 방자를 불러 말했다 " 가는 새끼 두 발만 가저 오너라 " 방자가 세끼를 가저 오니 그것으로 개짐(월경때 샅에 치는 헝겁)을 만들어 가랑이에 차고서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 어허, 무던히도 춥구나, 섬 이라서 그런지 바람이 매우 차구나 " 그러나 애랑은 또 청했다 " 나으리, 또 한번 들어 보시오, 옷은 그만 벗어 주시고 이제 상투를 좀 베어 주시면 소녀의 머리와 함께 땋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얼마나 다정 하겠습니까 ? " 그렇긴 하다만 나더러 중의 아들이 되란 말이냐 ? "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상투를 잘라 애랑 에게 주았다 애랑은 또 말했다 " 여보, 내 말좀 들어 보소 나으리가 아무리 다정하나 소녀만 못하니 애달프고 원통 하오 창가에 마주 앉아 나를 보고 웃으시던 그 앞니 하나만 빼 주시오 " 라고 말하고 통곡하니 정 비장은 어이 없어 물었다 " 이젠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 까지 헐라고 하니 그건 어디다 쓰려고 그러느냐 ? " 애랑이 대답한다 " 앞 니를 하나 빼 주시면 손수건에 꼭꼭 싸서 백옥합에 넣어 두고 눈에 가물 가물한 임의 얼굴 보고 싶고 귀에 쟁쟁한 임의 목소리 듣고 싶을 때면 종종 꺼내어 슬픔을 풀 리다 그러다 소녀 죽은 후에 관에 넣어 지니고 가면 한 몸으로 합장 되어 다정치 않겠소 ? " 정 비장은 또 마음이 크게 흔들려 공방의 창고 지기를 불렀다 " 여봐라, 장도리와 집개를 대령 하라 " " 예, 대령 하였습니다 " " 너는 이를 얼마나 빼 보았느냐 ? " " 많이는 아니고 서너말은 빼 보았습니다 " " 이놈, 제주 사는 사는 사람 이는 죄다 뽑은 모양 이로구나 다른 이는 상하지 않게 앞니 한개만 쑥 빼어라 " " 소인이 이 빼는 데는 이골이 났으니 어련 하겠습니까 ? " 그러더니 작은 집게로도 쑥 빠질것을 커다란 집게로 창과 칼을 다루듯이 한 없이 어르다가 느닷없이 코를 탁 치는 것이었다 정 비장은 코를 움켜쥐고 소리를 첬다 " 어이쿠, 이게 왠 봉변 이냐 ? 이놈, 너더러 이를 빼라 했지 코를 빼라고 하였더냐 ? " " 이를 쑥 빠지게 하느라 코를 좀 쳤습니다 " " 너더러 이를 빼라고 한 내가 잘못이다 " 이러고 있을 즈음 방자가 바삐 뛰어 들어 왔다 " 사또 얼른 배에 오르 십시오 " 정 비장은 할수 없이 일어섰다 " 노 젓는 소리에 배 떠난다 재촉하니 이제 떠날수 밖에 없구나 " 애랑은 정 비장의 손을 잡고 빌을 동동 구르며 탄식 했다 " 니를 두고 어디가오 하루에 천리도 가는 배에 나도 싣고 가시오 살아서는 다시 못볼 임아 죽어 환생 하여서나 다시 볼까 임은 죽어 학이되고 이 몸은 죽어 구름되어 첩첩 흰 구름속 가는 곳 마다 같이 정답게 놀아 볼까 " 이에 정 비장이 답했다 " 너는 죽어 높은집 거울 되고 나는 죽어 해가 되어 서로 얼굴 이나 비추어 보자 " 이렇게 작별할때 신관 사또
앞장을 섰던 예방의 배 비장은 두 남녀의 하는양을 보고는 방자를 불러 말했다 " 저 건너편 망원루 에서 청춘 남녀가 서로 붙잡고 떠나지 못하니 무슨 일 이냐 ? " 방자가 아뢰었다 " 기생 애랑과 구관 사또를 모시를 모시고 있던 정 비장이 작별 하고 있습니다 " 배 비장은 그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냈다 " 한심한 장부 로다 부모처자 와 떨어져 천리 밖에 와서는 아녀자 에게 넘어가 저러고 있다니 꼴 좋구나 " 이 말을 들은 방자는 코 웃음을 첬다 " 남의 말 쉽게 하지 마십시오 나리도 애랑을 한번만 보시면 오목 요자에 움을 묻어 살림을 차리고 싶으실것 입니다 "
배 비장은 잔뜩 허세를 부리며 방자를 꾸짖었다 " 이놈, 양반을 어찌 알고 그런 경망스런 말을 하느냐 ?" 방자는 지지 않고 대답했다 " 그러면 소인과 내기를 하시지요 " " 무슨 내기를 하려고 하느냐 ? " " 나리께서 애랑에게 한눈을 팔지 않으시면 소인의 많은 식구가 나리님 댁에 가서 드난밥(남의 집에 고용되어 살면서 잠은 자기 집에서 자고 밥만 얻어 먹는 생활 ) 을 먹고 만일 애랑 에게 반하시면 타시고 계시는 말을 소인 에게 주십시오 " " 좋다 말 값이 천금 이라 해도 내가 너를 속이겠느냐 ? " 두 사람이 이렇게 수작하고 있을때 신관 사또와 구관 사또의 인수 인계가 끝나고 새 사또가 부임을 했다 부임 절차가 끝나 모두가 제 처소로 돌아 갔을 때에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달이 뜨고 밁은 바람이 불어 태평한 기운이 완연 한데 모든 비장이 기생들을 골라잡고 방으로 들어가니 노랫소리와 비파 소리가 월야에 퍼지는 것이 운치를 더 했다 배 비장도 심사가 울적하여 남들 처럼 놀고 싶었으나 정한 내기가 있어 혼자 있을수 밖에 없었다 남아 일언 중천금 이라 했으니 어찌 딴 마음을 먹을수 있겠는가 ? 이때 여러 동료 비장들이 배 비징 에게 전갈했다 " 방자야, 너는 예방 나리께 가서 ' 미인의 고장에 오셔서 수심에 잠겼으니 어떤 일이 십니까 ? 고향 생각 너무 마시고 미색을 골라 수청 들게 하고 정을 나누심이 좋을줄 압니다 ' 하고 여쭈어라 " 빙자놈은 분부를 듣고 배 비장 에게 전갈을 했다 배 비장은 방자 에게 다시 전갈을 보냈다 "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 하오 모처럼의 청을 물리치는 것은 도리가 아니나 저는 원래 기생과 풍류를 줄기지 않으니 용서 하시고 여러 동관들이나 재미 있게 노시기 바람니다 " 그러더니 방자를 불러 분부 했다 " 네 만일 기생년을 내 앞에 보였 다가는 엄한 매를 맞을 것이다 "
이 소리를 사또가 듣고 일등 명기를 모두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 너희들 중 배 비장의 마음을 돌려놓는 사람이 있으면 큰 상을 줄것이니 그리할 기생이 있느냐 ? " 이때 애랑이 나섰다 " 소녀가 사또의 의중대로 하겠습니다 " " 네 만약 배 비장의 절의를 꺽는다면 기생중의 의뜸이 되리라 " " 때는 좋은 봄철 이니 내일 한라산 에서 꽃놀이를 하십시오 그러면 꾀를 내어 배 비장을 홀리 겠습니다 " 사또는 각 비장과 짜고 새벽에 명을 내려 한라산 으로 꽃 놀이를 갔다 산 속으로 들어가니 꽃들이 다투듯이 피어 있고 새 들이 지저귀어 마치 아름다운 풍악을 듣는듯 했다 사또와 여러 비장이 기생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춘흥에 겨워 놀때 배 비장은 저 혼자 깨끗하고 고고한척하며 소나무 아래 앉아 남의 노는것을 비웃으며 글을 읊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숲 속을 바라다 보니 한 미인의 여인이 보일듯 말듯 백만가지 교태를 부리면서 봄 빛을 줄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옷을 훨훨 벗어 던지더니 물에 풍덩 뛰어 드는게 아닌가 ! 그리고 물장구에 온갖 장난을 다 하며 손도 씻고 발도 씻고 배와 가슴과 목 덜미도 씻고 여기도 씻고 저기도 씻고 힌창 목욕을 줄기고 있었다 배 비장은 그 광경을 보자 몸이 근질 근질 해지고 정신이 흐릿 해졌다 그는 힐끗 흘끗 눈을 뜨고 도둑질 하다 쫏기는 사람 처럼 숨을 헐떡 거리며 그 여자의 근본이 알고 싶어졌다 ' 허, 저 여자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사내 여럿 녹였겠다 ' 그러나 누구에게 물어 볼수도 없으니 군침만 꿀꺽 삼키며 안타까워 할뿐 이었다 드디어 하루 해가 저물어 사또는 관으로 돌아 가려고 길을 재촉 했다 모든 비장과 기생, 하인도 일제히 길을 떠나는데 배 비장은 딴 마음을 먹고 배가 아프다며 앓는 소리를 냈다 " 벌써 넘어 갔구나 " 비장들은 이미 알아 채고도 모르는척 배 앓이를 걱정해 주었다 " 예방 께서는 침 이나 한대 맞으시오 " " 아니오, 괜찮습니다 병이 아니니 조금 진정하면 나을 것이오 " 비장들은 웃음을 참으며 방자를 불러 일렀다 " 나리 병환이 대단치 않다 하니 진정 되거든 잘 모시고 오도록 해라 " 그리고 다시 배 비장에게 말했다 " 사또께 잘 말씀 드려 놓을 테니 마음 놓고 잘 진정된 후에 오시오 " " 동관들 께서 이처럼 염려해 주시니 김사하오이다 사또께 잘 여쭈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배야 ! " 이때 짓궂기가 짝이 없는 비장 한 사람이 배 비장을 놀려줄 셈으로 이렇게 말했다 " 염려 마시오, 사또 께서는 동관 께서 갑작스레 병이 났음을 짐작 하신것 같습니다 배 앓이는 계집의 손으로 문지르면 효험이 있다고 합니다 기생 한년을 두고 갈테니 잘 문질러 달라고 하시오 " " 아니오, 내 배는 좀 달라서 기생을 보기만 해도 더 아프니 그런 말씀 거두시오 " " 참으로 이상한 배 구려, 우리는 천리 먼 곳에 같이와서 의리가 친형제 같은데 그처럼 괴로워 하는 것을 보고 어찌 혼자 두고 갈수 있겠소 ? 진정된 후에 같이 가도록 합시다 " " 동관 께서는 내 성미를 잘 모르시는것 같습니다 나는 병이 나면 혼자서 진정을 해야 낫지 형제 지간 이라도 옆에 누가 있으면 낫기는 커녕 더 아프니 사람을 살리려거든 어서 제발 먼저 가 주시오 애고, 배야, 나 죽겠소 ! " " 정 그러시다면 혼자 두고 갈수 밖에 , 우리가 간 후에 무정한 사람들 이라 욕 하지는 마시오 " 동관들이 사또를 모시고 관아로 돌아갈때 배 비장은 그 여인을 보고 싶은 욕심을 주체 할수가 없었다 " 얘 방자야, ! 애고 배야 " " 예 " " 나는 여기 온 후로 눈 앞이 몽롱 해서 지척을 분간 못하겠다 애고 배야 애고 배야 " " 소인도 나리 께서 이러시니 정신이 없습니다 " " 사또 가시는걸 자세히 살펴 보아라 " " 저기 내려 가십니다 " " 애고, 배야, 또 살펴 보아라 " " 산 모퉁이를 돌아 가셨습니다 " 애고, 배야, 다시 한번 더 보아라 " " 저기 멀리 가십니다 " " 이제 배가 다 나았다 배 비장은 목욕하는 여자를 보려고 골짜기 숲에 몸을 숨기고 살금 살금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가느다란 소리로 방자를 불렀다 " 방자야 ! " 방자는 말 버릇이 고약하게 대답 하였다 " 어째서 부르오 ? " " 너 저기 여인의 거동을 좀 보아라 " " 저기 무엇이 있단 말이오 ? " " 소란 떨지 말고 조용히 구경 하자구나 " 백만 가지 교태를 부리며 목욕하는 그 거동은 금도 같고 옥도 같았다 배 비장은 드디어 본색이 드러나 말했다 " 저것이 금 이냐, 옥이냐 ? " " 금도 아니고 옥도 아니오 " " 금도 아니고 옥도 아니라면 매화란 말이냐 ? " " 눈 속이 아닌데 어찌 매화가 피겠소 ? " " 그럼 양귀비 란 말이냐 ? " " 온천물이 아닌데 어찌 양귀비가 목욕을 하겠습니까 ? " " 그럼, 불 여우란 말이냐 ? 애고 애고 나를 죽인다 나를 죽여 ! " " 나리, 뭘 보고 그렇게 미첬습니까 ? 소인의 눈엔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 " 이놈아 ! 저기 저 건너에 목욕하는 저것이 안 보인단 말이냐 ? " " 난또 무엇을 보고 그러시나 했죠, 저건너 목욕하는 여인을 말씀 하시는 것 입니까 ? " " 그래, 너도 이제 보았구나 상놈의 눈 이라 양반의 눈 보다는 믾이 무디구나 " " 예 소인의 눈이 나리의 눈 보다 무디어 저런 요망한 것이 안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도 양반과 상놈이 달라 나으리 마음은 소인 보다 컴컴하고 음흉 한가 봄니다 남녀유별, 체면도 모르고 처녀가 목욕 하는 것을 보고 눈을 밝혀 탐욕 스럽게 구경을 하니 말씀입니다 요새 한양 양반들 계집 이라면 체면 이고 뭐고 욕심을 낼데 안낼데 분간을 못하고 함부로 덤비다가 봉변도 많이 당한답니다 " " 뭐라고, 이놈아 ! " " 아녀자 목욕 하는걸 엿 보다 그 친척들이 눈치체고 일시에 덮치면 꼼짝 없이 혼만 날것이니 저 여자 볼 생각은 꿈에도 마시오 " 무안을 당한 배 비장이 말했다 " 다시는 안 본다, 안봐 그런데 정신이 혼미해 아무리 안 보려 해도 지남철(자석)에 바늘 달라 붙듯 눈이 자꾸 그리로만 가니 어쩐단 말이냐 ? " 방자는 이런 배 비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눈 ! " " 안 본다 " 배 비장은 이렇게 말 하면서도 어쩔수 없이 여인에게 눈길을 돌리는것이었다 그는 꾀를 내어 방자를 불러 말했다 " 이곳 경치가 참으로 좋구나 서쪽을 살펴 보아라 저 불타는 일몰이 아름답지 않느냐 ? 그리고 동쪽을 보아라 약수 삼천리에 봄빛이 아득한데 파랑새 한쌍이 날아 가는구나 남쪽을 또 보아라 망망대해 천리 파도에 대붕이 날다가 지처서 앉아 있다 " 방자는 짐짓 속는 체하고 배 비장이 가리키는 대로 눈을 돌려 살펴 보았다 그러는 동안 배 비장은 여인을 훔처 보기에 바빴다 배 비장이 넋이 빠져 그 여인을 바라볼때 방자가 말했다 " 저 눈은 일을 낼 눈이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