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시각장애인 육상 세 남매 김천천·김선정·김지혜 선수
- “더 멀리 던지고 더 빠르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목표에 도달해 있을 거예요”
세 남매 김천천·김지혜·김선정 선수가 포함된 광주장애인육상선수단은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고 있다. 1남 5녀 중 맏이 김천천 선수와 넷째 김지혜 선수는 원반·포환·창던지기에서, 다섯째 김선정 선수는 트랙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궂은 장마철에도 연일 훈련에 매진하면서 10월 전국장애인체육대회를 준비 중인 세 남매를 만났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각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김천천) 안녕하세요? 저는 원반·포환·창던지기 등 필드 부문에서 선수로 활동 중입니다. 전국장애인체육대회를 앞두고 기초 체력 단련은 물론 자세 연습, 실전 훈련을 하고 있어요. 조선대학교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했고 11월 특수교사 임용시험을 치를 예정입니다. 육상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요.
A. (김지혜) 저는 오빠와 마찬가지로 필드 부문에서 활동 중이고, 현재 호남대 외식조리학과에 재학 중이에요. 중학교 1학년 때 오빠를 따라 장애인체육회에 간 걸 계기로 육상을 시작했어요. 파리패럴림픽은 기준 기록에 못 미쳐 나갈 수 없지만, 4년 후 열릴 LA패럴림픽에는 출전하고 싶어요.
A. (김선정) 저는 세광학교에 재학 중이고 트랙 부문에서 뛰고 있어요. 언니와 함께 필드와 트랙 테스트를 봤는데, 달리기가 저와 잘 맞더라고요. 100m뿐 아니라 200m, 400m도 뛰어요. 힘든 만큼 보람이 커요.
Q. 세 남매 모두 유전성 망막 디스트로피를 앓고 있다고 들었어요.
A. (김천천) 유전자 이상으로 망막의 막대세포, 원뿔세포, 망막 색소 상피세포 등에 이상을 일으키는 진행성 망막 질환으로, 가족 중 세 명이 이 질환을 앓고 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시력 검사를 받았는데, 그땐 황반변성이라고 했어요. 지난해 산전특례 혜택으로 검사를 받고 나서야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되었죠.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거나 버스 번호가 잘 안 보이는 것 등의 불편함은 있지만 운동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A. (김지혜) 저도 오빠와 생각이 같아요. 그래서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다녔습니다. 중학교 때보다 공부량이 많아 힘들었을 뿐, 장애를 불평하지 않았죠. 선생님과 주변 친구들이 많이 챙겨주기도 했고요.
A. (김선정) 서서히 시력이 떨어졌기에 상실감을 크게 느끼진 못했어요. 이미 오빠, 언니가 시각장애인이었기에 거부감도 없었고요. 장애로 인한 힘든 생활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잘 적응하며 지내요.
Q.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나요.
A. (김천천) 큰 재능을 타고나진 않았어요. 세광학교 재학 시절, 여느 또래처럼 선배들과 축구를 했고, 합기도 등 여러 운동도 접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 체육 선생님께 육상을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단거리 선수로 활동하던 중 선생님께서 “힘이 세다. 투척을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죠. 금세 기량이 올라 한국 기록도 세우고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메달도 획득했습니다.
A. (김지혜) 오빠를 따라 시작한 운동인데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좋아요. 오빠와 같은 종목이다 보니 던지는 자세, 마인드 컨트롤 등에서 조언을 받을 수도 있고요. 운 좋게 태극 마크까지 달면서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촌에 들어가 체계적인 훈련도 받았죠.
Q. 필드와 트랙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A. (김천천) 필드는 트랙 안에서 벌어지는 종목을 말해요. 필드 내 종목은 크게 도약과 투척으로 나뉘는데, 장애인 선수들은 투척 경기에서 포환던지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곤봉던지기(비장애인은 해머던지기)를 합니다. 트랙과 달리 필드는 접할 기회가 드물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어요.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데다 자세 잡는 게 매우 어려웠죠. 매 경기할 때마다 자신 있는 종목이 달라지는데, 요즘엔 원반던지기와 포환던지기 기록이 잘 나옵니다.
A. (김선정) 시각장애 정도에 따라 T11부터 T13 등급으로 나뉘는데, T11은 전맹으로 가이드러너와 함께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반드시 불투명 안경이나 안대를 착용해요. 가이드러너는 끈을 사용해 선수와 0.5m의 간격을 유지해야 해요. 경기가 시작되면 선수들은 8개 레인 중 2개(1, 3, 5, 7) 레인을 사용해요. T13 등급은 가이드러너 없이 진행합니다. 지체장애인이나 뇌병변장애인은 휠체어 레이싱에 참여할 수 있어요. 2개의 큰 바퀴와 1개의 작은 바퀴가 있는 휠체어를 오직 팔과 손의 힘으로 움직입니다.
Q. 전문 선수가 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겠어요.
A. (김지혜) 반복되는 훈련만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패럴림픽에 나가는 선수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고 싶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어요. 가족의 지지도 큰 도움이 돼요. 엄마께서는 경기 열릴 때마다 와서 응원해 주세요.
A. (김천천) 동생 말처럼 하고 싶다는 의지와 노력, 인성이 갖춰지는 게 우선입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체육 선생님을 찾아가야 해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선수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주변 분들의 도움도 필요해요. 필드 선수들의 연습 공간이 마땅치 않자 광주장애인육상연맹에서 전용 연습장을 따로 마련해주었고, 덕분에 훈련에만 매진할 수 있었어요. 저를 포함한 동생들의 장학금도 지원해 주셨고요. 이 자리를 통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A. (김선정) 저는 훈련과 취미를 잘 구분하려고 노력해요. 훈련이 끝나면 집에서 웹툰과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죠. 자막 속도를 따라가기가 어려워 주로 더빙으로 즐겨요.
Q. 가장 기뻤던 순간이 있다면요.
A. (김천천) 5년 전 전국장애인체육대회를 앞두고 새로 부임하신 코치님께 금메달을 안겨드리고 싶었어요. 창던지기가 선수단의 마지막 경기였는데, 제가 마지막 차시에서 역전했어요.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세 종목에서 고른 기량을 선보이는 게 힘들지만 그것을 이뤘을 때의 성취감은 세 배로 커요. 동생들과 함께 해서 그런지 특별히 어려운 순간은 없습니다.
A. (김지혜) 지난해 생애 첫 출전한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3개 종목 한국 신기록을 달성하며 3관왕을 차지했을 때가 떠오르네요. 메달 색깔도 중요하지만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었다는 생각에 큰 자부심을 느꼈어요.
Q. 앞으로의 목표와 꿈은 무엇인가요.
A. (김선정) 제 목표는 건강한 몸을 유지하면서 상승세를 이어 나가는 겁니다. 진로를 육상으로 정한 건 아니지만 큰 이변이 없다면 계속하고 싶어요. 다소 완만하더라도 꾸준히 좋은 기록을 내는 선수가 될 거예요. 이따금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오빠, 언니와 함께한다면 참고 이겨내리라 믿어요.
A. (김지혜) 패럴림픽과 같은 세계적인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에요. 더 멀리 던지고 더 빠르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목표에 도달해 있지 않을까요? 또한 대학 전공을 살려 제과제빵사가 되고 싶습니다.
A. (김천천) 제 꿈은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사도 지도자 중 하나이므로 임용시험을 치르려는 거고요. 오늘날 저를 이끌어준 여러 코치님들처럼 저 또한 선수 발굴에 힘쓰고 특성에 맞는 기본기와 기술을 전수하고 싶어요.
김수정·신혜령 기자
○ 제4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개최 기간: 2024년 10월 25일~10월 30일
개최 지역: 경상남도 김해종합운동장 등 37개 경기장
경기 종목: 골볼, 보치아 등 31개
참가 인원: 10,000여 명
경기 주관: 대한장애인체육회, 경상남도·도교육청·도장애인체육회
* 월간 <손끝으로 읽는 국정> 통권 203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