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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크고 작은 이적과 트레이드, 연봉 협상이 이뤄지는 겨울 스토브리그. 겨울은 선수 대리인인 에이전트들에게 가장 바쁜 시기다. 에이전트가 전면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지만 발도 넓고, 하는 일도 참 다양하다. 현재 한국축구 인력 시장을 움직이는 주요 에이전트사는 5~6개 정도. 몇몇 젊은 에이전트들이 독자적으로 꾸려가기도 한다. 이들은 선수 일정체크부터 연봉 협상, 이적까지 깊숙이 관여한다. 축구계를 끌고가는 커다란 축이자 '숨은 손'인 셈이다.
1997년 미국 영화배우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가 국내에 소개됐다. 스포츠 에이전트의 삶을 그린 ‘제리 맥과이어’였다. 출세가도를 질주하던 제리 맥과이어가 갑작스러운 해고통지를 받은 뒤 인간 중심의 참된 에이전트로 변화하는 게 골자다.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스포츠 에이전트의 존재를 알았고 그 매력에 감탄했다. 스포츠 에이전트를 꿈꾸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실제 활동 10~15명선…신뢰바탕 '인맥관리'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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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배우 톰 크루즈가 스포츠 에이전트 역할로 나왔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 포스터 |
에이전트의 뜻은 대리인이다. 주인을 대신해서 업무를 처리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존재라는 의미다. 해당 업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능력, 넓고깊은 인맥 등이 에이전트가 갖춰야 할 조건이다. 우리나라에서 에이전트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종목은 축구다.
현재 한국에는 92명의 에이전트가 있다. 모두 국제축구연맹(FIFA)과 대한축구협회가 실시한 시험을 통과한 공식 에이전트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축구판에서 활동하고 있지는 않다. 징계 등으로 자격이 취소된 사람도 있고, 보증보험을 들지 않아 에이전트 역할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현재 FIFA 홈페이지에 정식으로 등록된 한국 에이전트가 56명인 이유다. 전 세계적으로 FIFA가 인정한 에이전트는 123개국 3780명이다. 축구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진 종목이라는 것이 고스란히 반영된 규모다. 국가별로는 이탈리아가 495명으로 가장 많고 스페인(451명), 잉글랜드(319명) 순이다. 한국도 15위로 높은 편이다.
에이전트는 무엇으로 살까. 에이전트의 수익원은 크게 3가지다. 가장 높은 수익이 날 때는 선수 이적이다. 선수를 A구단에서 B구단으로 이적시킬 경우 에이전트는 A, B구단으로부터 이적료의 5~10%를 각각 수수료로 받는다. 이적료가 10억원이었다면 최대 2억원이 수수료로 남는다. “에이전트는 선수를 자꾸 이적시켜야 목돈을 만질 수 있어 일부러 구단을 옮기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음은 용병수급이다. 용병계약은 베일에 가려져 있는 데다 오가는 돈의 액수가 엄청나기 때문에 규모가 크다. 선수 연봉계약을 마친 뒤 선수로부터 받는 수수료는 미비하다. 통상 기본급의 3~10%이며 저임금 선수에게는 수수료를 아예 받지 않는 에이전트도 많다.
그 중 비리 온상으로 의심받는 게 용병계약이다. 용병 관련 비리 유형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에이전트조차도 “3만 가지나 된다”고 말할 정도다. 이적료를 부풀리는 것은 이미 구식이 됐다. 이적료가 없는 자유계약선수를 영입하면서 이적료를 일부러 만들었다는 소문도 있다. FIFA 규정에 따르면 이적료는 반드시 구단계좌를 통해서만 주고받아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구단과 에이전트간 이적료를 주고받는 경우가 있어 2004년 사법처리되기도 했다. 이를 교묘히 이용해서 페이퍼 구단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런 비리는 에이전트와 구단 고위층, 지도자 등이 모두 얽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단이나 감독이 특정 에이전트를 쓰고 에이전트는 수수료 중 일부를 구단 고위층, 감독 등에게 상납하는 식이다. 비밀스러운 뒷거래인 데다 이들의 관계가 오랜 기간 다져진 만큼 사실 확인은 어렵다. 하지만 에이전트들조차 “뒷돈을 원하는 구단도 있다” “거래성사에 대한 감사 표시”라며 상납관행을 인정하고 있다.
보통 이적료 10% 챙겨…능력 따라 수입 천양지차
이렇다 보니 국내 에이전트 판은 많이 왜곡된다. 신입 에이전트들에게 기존 에이전트가 구축한 카르텔은 난공불락의 진입장벽이다. 에이전트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마저 구단 고위층과의 밀착도로 변질된 느낌이다. 구단은 “오랫동안 일을 잘 해왔다. 다른 에이전트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에이전트는 “구단 고위층과의 원만한 관계 구축도 에이전트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에이전트도 나름의 애환이 있다. 오랜 기간 투자해온 어린 선수가 좀 컸다고 은혜를 저버리고 떠날 때, 계약관계에서 ‘갑’인 구단이 수수료를 깎거나 아예 미지급하려 할 때, 내가 관리하는 선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에이전트에 의해서 팀을 옮겨야 할 때, 계약에 대한 법적 지식이 부족한 선수를 악용하는 소수 에이전트 때문에 욕을 먹을 때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축구시장은 에이전트 숫자에 비해 취약한 편이다. 능력 있는 선수가 부족하고 구단의 재정이 줄어드는 가운데 에이전트는 포화상태다. 한 구단 관계자는 “시장은 작고 거간꾼만 많으니 구단과 선수를 무시하고 한탕주의로 돈만 벌려는 어처구니없는 업무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협상능력, 유망주 발굴능력, 해외업무 능력, 자금력을 고루 겸비한 굵직한 에이전트가 많이 나와서 정정당당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축구 에이전트는 호수 위 백조와 곧잘 비유된다.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멋있는 것 같지만 물 아래에서는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발버둥을 친다. 그런 남모를 몸부림 끝에 성공하는 에이전트는 소수다. 그리고 성공을 위해서는 비뚤어진 계약관행을 수용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국내외 선수의 모든 계약은 공개돼야 한다. 그것만이 건전하고 투명한 축구판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축구계 원로의 말이 정답이지만 실현될 날은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