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이제는 마이크로 선교 시대다.
이렇게 신이 날 수가! 교회 사무실에 들어와 보니 책이 산더미다. 돈더미보다 더 좋은 책더미인데, 그곳에 참 삶이 있기 때문이다. 5일간 나는 부산에 없었다.시골에 내려갈 준비를 위해 시골에 내려가 집을 수리하고 있었다. 지난 주 이틀을 머물고, 이번주 다시 4일을 머물며 부엌방을 수리하고 벽지와 장판을 깔았다. 수십년을 두 분에서 홀로 사셨던 집이라 여기저기 치울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몸이 허약해진 탓에 집은 구석구석 여러가지 농사도구와 정리되지 못한 짐들로 널부러져 있었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사역을 내려놓고 싶지만, 교회 사정도 무시할 수 없이 300km 가까이 되는 거리를 왕복하며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이번주는 다행히 금요일이 한글날이 금요일 오전까지 집을 수리하는데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해도해도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수일 동안 중노동을 견디며 부산에 입성했다.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조카 딸의 돌잔치에 참석하기위해 영화의 전당으로 핸들을 돌렸다.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집에 도착하니 벌써 밤 10시가 넘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정을 소화한 일주일이었다. 그 다음날, 그러니까 토요일 아침 일찍 사무실에 들렀더니 여러 박스가 쌓여져있다. 양육을 위해 주문한 책과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들이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책들을 보는 순간 밀려오는 그 뿌듯함이란! 하여튼 책을 보내준 분들에게 심심함 감사를 표한다.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들이 도착해 있다. 모두들 귀농해서 집을 수리하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 구입한 책들이다.
이재열 <태양이 만든 난로 햇빛 온풍기>(시골생활)
김성원.남궁철 <화목난로의 시대>(소나무)
이토 히로시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메멘토)
데이미언 톰슨 <책과 집>(오브제)
박계해 <빈집에 깃들다>(민들레)
이재열씨가 누군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김성원의 흙부대집에서 소개한 봉하에 귀농한 분이었다. 그곳에서 적정기술을응용해 시골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햇빛으로 방을 데우는 그야말로 천연자원 활용법을 소개한 책이다. 책을 읽고 있으니 당장이라고 시골로 다시 내려가고 싶어진다.
김성원의 <화목난로>는 3년 전쯤에 <화덕의 귀한>의 후속작이다. 화덕과 화목난로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황종의 <벽난로, 구들방을 데우다>와 많은 부분 겹치면서도 저마다 다른 특이점이 보인다. 김성원은 좀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반면 이화종은 철학적이고 자연적이다. 다르면서도 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다시 '나무'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일치한다. 난 두 분 모두에게 백점 만점을 주고 싶다.
박계해의 <빈집에 깃들다>는 중고로 구입했는데 귀향하며 꼭 써보고 싶은 책이다. 교사 생활을 접고 무작정 귀농해 허름한 빈집을 구입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삶에 희의를 느끼고, 살아감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워질 때 우린 고향 또는 자연으로 되돌아 간다. 난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귀농은 도시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경쟁과 반목을 단호히 거부하고 인간의 본연으로 돌아가는 것,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귀농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한 박스 보내왔다. 고마운 분들이다. 출판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책을 부정하는 시대 속에서 한 권의 책을 펴내기 위해 고전분투하는 그들이야말로 참 삶이 아니겠는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곧 책을 펴내는 출판사가 길을 만든다는 말이 될 것이다.
주종훈 <예배, 역사에서 배우다>(세움북스)
오스왈드 챔버스 <욥기>(토기장이)
이지영 <마이크로 선교 마이크로 엔터프라이즈>(샘솟는기쁨)
주종훈의 <예배, 역사에서 배우다>는 월요일 아침 도착해서 시골에 함께 동행한 책이다. 아쉽게도 앞장 몇 부분을 읽지 아직 본론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신학생 시절 예배가 무엇인가를 '득도'하고 싶고 신학교 도서관에 하루종이 숨어들어가 예배 관련 서적과 논물을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참을 수 없는 예배의 가벼움이 지배하는 이 시대 속에서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가를 고민한다는 것은 아름답지 않는가.
오스왈드 챔버스의 책은 기회가 되는 대로 사모은다. 욥기도 지난 주 새부산 기독교 서점에 들러 다른 책과 함께 구입한 책이다. 책을 읽고 감동?받은 나는 나의 삶을 반추(反芻)하듯 주일오후 설교를 욥기로 선택했다. 아직 욥기를 설교하기에 깊이가 없다. 아직 인생의 경륜이 부족한게다. 겂없이 욥기를 설교한 것을 후회한다. 10년 전 비일의 <욥기> 강해서를 읽고 대충 이해는 했지만 조금도 진척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당분간 욥기 설교는 다시 하지 않을 작정이다.
이지영의 <마이크로 선교 마이크로 엔터프라이즈>를 살펴보며 깜짝 놀랬다. 나 또한 4년 동안 선교학을 공부한 무늬만 선교학도다. 이지영 선교사의 사역을 한 마디로 말하면 '복음과 떡을 함께 주는 선교'이다. 그러나 근대적인 선교 개념이 아니다. 즉 고기를 잡는 방법만 가르쳐 주는 선교도 아니고, 고기를 주는 선교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이지영 선교사가 말하는 마아크로 선교는 무엇인가?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그물을 사주는 선교이다. 김재구 명지대 교수는 이렇게 평가한다.
"예수님께서 매태복음 20장의 포도원 주인 비유를 통해 이미 보여 주셨듯이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자립할 수 있는 비즈니스 기반을 세우는 것은 이 시대의 선교방향이기도 하다. 이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이라는 둘을 짝지워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삶의 현장에서 영적 구원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차원에서도 구원을 가져올 것이다."(11쪽)
영적, 경제적, 사회적 차원의 구원. 바로 이것이 이지영 선교사의 사역이 지금까지의 선교와 다른 점이다.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일하도록, 기업을 일으키도록, 농장을 구입해 노동을 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현대선교는 길을 잃었다. 그동안 먹혀온 선교방법들이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이런 저런 이론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필드 선교사들은 탁상공론에 불과한 이론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사업과 선교가 접목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현장에 있는 분들은 안다. 위험천만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이지영선교사는 여성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선교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그런점에서 이지영 선교사의 '마이크로 선교'는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역들이 기다릴터인데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기도해 본다.
귀향을 준비하면서 몸으로 부닥쳤다. 싱크대와 벽지, 전문가와 업자를 불러 할 수도 있을 일이다. 그러나 내가 살 집은 내 손으로 하고 싶었다. 혼자 만으로 집을 수리하고 짓기는 힘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싶다. 전문가의 손으로 지어진 집보다 서툴고 어설프지만 나의 땀과 눈물이 들어간 집이 더 사랑스럽지 않을까. 예배도 구경하는 관람객이 아닌 함께 참여함으로 참된 예배가 될 것이다. 나의 손으로, 나의 몸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예배, 선교, 집, 행복이 아니고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