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카터 前대통령 과 그레그 前주한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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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원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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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기고(寄稿) 읽었습니까?"
지난 16일 워싱턴 DC의 관가(官街)와 싱크탱크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온종일 이런 말이 오고 갔다.
미사일이 열리면서 꽃을 든 손이 나오는 삽화와 함께 실린 카터 전 대통령의 미국 신문 기고는 날이 밝자마자 비판의 대상이 됐다.
기자는 이날 저녁까지 최소한 3차례의 한반도 관련 모임 안팎에서 그의 기고에 대한 '탄식'이 나온 것을 확인했다.
지난달 북한이 억류했던 미국인 석방을 명목으로 방북했던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은 협상을 원한다'는 기고에서 일방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전달했다.
"북한이 미국·한국과 포괄적인 평화협상, 한반도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기를 바란다는 분명하고 강력한 신호들을 받았다"고 했다.
대승호 송환과 이산가족 상봉 제의 등을 '긍정적인 메시지'로 규정하며 지체 없이 즉각 대화 재개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6자회담을 먼저 깨고 나간 것이나 천안함 공격에 대한 비판이나 지적은 전혀 없었다.
그의 기고문이 나온 직후,
이날 오전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이에 대한 비판이 공개적으로 표출됐다.
한때 카터 전 대통령과 같은 당에 소속돼 있었던 조 리버먼 상원의원은
'기절할 정도(stunning)', '끔찍한(awful)'이라는 단어를 써 가며 그를 비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이 우리에게 (북한으로부터) 여러 차례 샀던 똑같은 말을 사라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천안함 사태를 언급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미 국무부의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언급이 그의 기고에서 빠진 것에 대해 놀랐다"는 말로 리버먼 의원의 입장에 동조했다.
이날 오후 한·미경제연구소(KEI)의 세미나에서 잭 프리처드 KEI 소장은
"카터 전 대통령의 기고문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로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에 앞서 발표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美) 대사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기고에 대해서도 많은 관리와 전문가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정체불명의 문서를 '러시아 보고서'라면서 천안함 의혹을 제기한 것 외에도 여러 황당한 주장을 폈다.
특히 "지난해 백악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가장 어린 아들이자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큰 정은을 초청해야 한다는 제언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정일이 주민들을 굶기면서 3대 세습 체제를 일구려는 것은 그레그 전 대사의 인생관·세계관과는 정반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실소(失笑)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이들이 균형된 시각을 갖지 못하고 마치 북한의 선전매체가 된 듯 보이게 만들었을까.
그레그 전 대사가 자주 방북해 왔으며 카터 전 대통령 역시 북한의 초청으로 최근 평양을 다녀온 사실을 고려하면 북한의 '선택적 초청 전술'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닌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북한을 자주 왕래한 이들은 그 '희귀성'의 덕을 본다.
북은 그런 이점을 지키고 싶어 하는 그들의 심리를 계속 이용한다.
거꾸로 보면 우리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해 온 이들에게
제대로 대북정책을 설명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외교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에서 현재 상황과 우리 입장을 충분히 알리는 노력을 했더라도 이렇게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활자화됐을지 의문이다.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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