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도록 돕는 두 가지 방편
-주의 말씀과 주의 중보의 은혜-
히브리서 4:11~16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성도가 구원의 은혜에 이르도록 돕는 은혜의 방편들을 알려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1절을 먼저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로 하여금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했을까요? 왜냐하면 구약 시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왔지만 모두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일부만 들어간 것처럼, 신약 시대에 복음을 들은 사람들 중에도 다 안식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온 다음에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여 멸망에 들어가는 자들이 적지 않이 있었기에,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출애굽 시절의 완악한 자들의 멸망했던 일들을 상기시키면서 경고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과거의 이러한 일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신앙 생활을 시작했지만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안식에 끝내는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적지 아니하게 있기에 이러한 경고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전도하다 보면 적지 않은 기간 교회를 다녔지만 결국 시험에 걸려 넘어지거나 영적 침체에 빠져서 교회도 더 이상 다니지 않고 믿음이 식었거나 아예 믿음을 완전히 저버린 사람들도 상당수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히브리서 저자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간절하게 권면하는 이 말씀을 결코 남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순종한 것 같은 본보기를 따르지 않고 순종과 믿음으로 인하여 안식 곧 온전한 구원에 확실하게 이르게 될까요?
먼저, 히브리서 저자는 구원에 이르는 은혜의 방편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2절로부터 1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기서 소개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히브리서 1장과 2장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로 통하여 말씀하시다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아들을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선언하신 바 있습니다. 구약 시대 모세와 천사를 통하여 말씀하신 말씀도 견고하여 그 말씀을 듣지 않은 자들이 합당한 보응을 받고 광야에서 멸망하였는데, 이제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하여 더 큰 구원의 말씀을 증거하였고 성령께서도 표적과 기사들로 그 말씀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입술의 말과 그의 죽으심과 부활 사실 자체가 더 큰 구원의 말씀 자체인데, 예수님이 세우신 사도들은 이 말씀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바 되어서 자신들의 목숨을 내걸고서 이 말씀을 증언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이 큰 구원의 말씀을 전해 듣고도 만일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아니한다면 구약의 모세를 통하여 전해준 말씀을 듣지 않은 자들이 받은 보응보다 더 크고 더 무서운 보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초대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다시 한번 말씀을 받은 자들이 불신앙과 불순종을 받지 아니하고 신앙과 순종으로 받으라고 여기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12절과 13절에서 하나님의 말씀, 특별히 예수님을 통하여 마지막 때에 증거되고 사도들에 의하여 확증된 큰 구원의 말씀, 복음의 진리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록자가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죽은 말, 죽어 있는 문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주는 살아 있는 말씀이며, 활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 역시 그의 편지 베드로전서 1:23 말씀에서 밝히기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선포된 말씀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증거된 말씀, 그의 행동으로 보여주신 삶의 말씀, 그의 세우신 바 사도들을 통하여 증거한 말씀들 모두가 그냥 인간의 말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수술하는 칼과 같이 예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쪽은 둔하고 한쪽만 날이 선 보통의 칼보다 더 예리한 양날이 다 서슬퍼런 날카로운 칼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의 칼날에 의하여 사람의 내면이 다 찔러 쪼개지는 영향력을 끼칩니다. 12절에 ‘혼, 영, 관절, 골수’라는 것은 사람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 전체를 다 포함한 그 사람의 전 존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받는 사람의 내면을 다 찔러 쪼개서 변화시키기에 능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수술하는 칼이 환자의 암덩어리를 날카롭게 도려내어 그 사람을 살리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의 삶의 죄와 허물들이 숨어 있다면 그것들을 도려내어 살리고 변화시키는 위대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감추인 모든 것을 다 드러내어 심판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마치 밝은 빛 아래서 모든 것을 다 환하게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도 다 들여다 봅니다. 그래서 말씀의 빛 안에서 사람의 온갖 감추인 생각과 동기와 의도들까지 발가벗은 듯이 드러나고 그 모든 것이 말씀의 저울에 달려 평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의 본심을 숨길 수 없습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의 심판대 앞에 누구나 다 서게 될텐데, 그 때에도 사람의 모든 삶을 다 결산하시는 주님의 눈앞에서 우리의 모든 삶이 말씀의 빛 아래서 드러내어 다 판단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있고 살아 있으며 활력을 주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죽이려는 칼이 아니요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우리 속에 가장 예리한 칼날로써 죄악을 들춰내고 도려내어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까지 찔러 쪼개어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내면 인격과 신앙을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과 순종으로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 항구에 불러내어 그들에게 여러 가지를 당부할 때 이렇게 가르치며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서 기업이 있게 하려 하시리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자기의 훈계, 곧 그가 선포한 말씀을 기억하라면서, 그들을 주님과 및 그 은혜의 말씀에게 부탁하면서, 그 말씀이 그들을 능히 든든히 세워줌으로써 그들이 천국을 상속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붙들 때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붙들어 우리를 살리고 치유하고 온전케 하며 보호하며 우리를 세우며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도록 부탁을 받은 자들이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말씀 특히 마지막 날에 우리 주님을 통하여 증거하신 큰 구원의 말씀을 꼭 붙드십시다.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굳게 붙잡읍시다. 세상이 시끄럽고 세상이 화려하고 세상이 변화무쌍하고 그 풍조가 복음의 정신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지라도, 오직 우리는 항상 있고 살아 있는 영원한 생명의 진리의 복음 말씀을 굳게 붙잡읍시다. 이 말씀을 굳게 끝까지 견고하게 붙들고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갑시다. 그리할 때 우리는 저 광야에서 도중에 엎드려진 자들과 달리 하늘의 가나안 영원한 안식에 너끈히 다 들어갈 줄 믿습니다.
또 한 가지 히브리서 저자는 안식에 들어갈 또 한 가지의 은혜의 방편을 여기서 소개합니다.
14절로부터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두 번째 은혜의 방편은 대제사장이신 우리 주님이 우편에 계신 하나님의 은혜 보좌 앞에 나아가 우리의 연약함을 고하면서 도우심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여러 가지 시험이 다가오고 많은 장애들이 우리 앞길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죄의 유혹이 찾아오고 우리의 타락한 본성들이 여전히 우리 안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시험이 다가올 때 이리 저리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의 노력과 결심으로는 버틸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하면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시험을 이기고 끝내 승리할 수 있을까요? 모든 시험을 이기고 구원을 온전히 이루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 거기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간절히 도우심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히브리서 저자는 14절 이하에서 밝히기를, 우리를 돕는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큰 대제사장’이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대제사장보다 더 큰 대제사장입니다. 더 위대하신 대제사장이시기에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기에 능하십니다.
또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하신 이’이십니다. 승천하신 사실은 지극히 높여지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7:26에 이르기를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꼐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고 우리 구주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하늘에 올라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대제사장의 기도에도 응답해주신 하나님께서 지극히 크신 대제사장으로서 지상의 사명을 다 이루고 하늘에까지 올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기도를 어찌 외면하시겠습니까?
더욱이 우리 구주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깊이 공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우리와 동일하게 시험을 다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을 다 당하셨습니다. 아픔과 시험, 괴로움, 상처 등을 다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죄를 범한 적은 없습니다. 그는 모든 죄의 시험을 당하였을 때에 그 모든 강력한 시험을 다 겪으셨지만 끝까지 죄와 저항하여 승리하여 물리치셨습니다. 마귀가 광야에서 세 번에 걸쳐 유혹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가지고 강력하게 예수님을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 끈질기고 강력한 마귀의 시험, 육신의 시험, 마음의 시험들을 끝까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힘입어서 물리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혹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공감하기 위하여서 동일한 죄를 범해야 그를 공감한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동일한 시험을 끝까지 주님을 힘입어서 싸우고 또 싸워서 이김으로써 그 사람의 연약함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러한 시험을 싸워 이길 수 있는 믿음의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동일한 시험을 다 겪으셨다는 의미가 그러합니다. 극한의 시험을 우리와 함께 다 겪으셨고 그것을 이기셨고, 그래서 시험 중에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이길 수 있도록 능히 도와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모든 시험에 함께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능히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으므로 우리는 그를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6절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16절을 함께 읽읍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지극히 불쌍히 여기시는 돕는 자가 계십니다. 그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엄의 보좌를 은혜의 보좌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감히 설 수 없으나, 우리들은 우편에 계신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시니, 그가 계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그에게 우리의 연약함을 고합시다. 그의 도우심을 청합시다. 그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내 저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는데 무엇을 가지고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두 가지 은혜의 방편을 가지고 힘쓰면 됩니다. 하나는 살아 있고 항상 있는 우리 영혼과 삶의 수술칼이신 주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합시다. 또 하나는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도우심을 부지런히 청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잠시 넘어질지라도 아주 자빠지지 않을 것이요 좌로 우로 잠시 흔들릴지라도 길을 잃어버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저 영원한 안식의 나라에 들어갈 그 때까지 우리 모두 더욱 이 영적인 분투를 결코 쉬지 않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