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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경우' 고문해도 형사 처벌하지 않는 나라
팔레스타인인을 '특별취급하는' 이 나라 정보기관
'최대한 고통과 모욕을 주는 방법' 미국과 공유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은 1987년 1월 13일 자정 경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소속 수사관 6명에 의해 연행되었다.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 받고 있던 박종운을 잡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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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초기 발표에서 책상을 “탁”치니“억”하고 죽었다는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며 발뺌을 하였으나, 시체부검 결과 전기고문과 물고문에 의한 살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영화〈1987〉
영화 <1987>에서도 표현되었듯이 당시 대학생이던 박종철은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던 중 사망합니다. 고문은 일제 시대와 군사정권 시절까지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줬으며 그 아픔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해서 고문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에서도 ‘어느 누구도 고문, 또는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과 고문
UN이 채택한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에서는 고문을 아래와 같이 정의합니다.
이 협약의 목적상 "고문"이라 함은 공무원이나 그 밖의 공무 수행자가 직접 또는 이러한 자의 교사·동의·묵인 아래, 어떤 개인이나 제3자로부터 정보나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이나 제3자가 실행하였거나 실행한 혐의가 있는 행위에 대하여 처벌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이나 제3자를 협박·강요할 목적으로, 또는 모든 종류의 차별에 기초한 이유로, 개인에게 고의로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 <국가법령정보센터> 참고
많은 국가가 고문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예외입니다. 지난 1999년 이스라엘 대법원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팔레스타인인 심문 과정에서 고문 등의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전반적인 경우에 대해 고문과 같은 방법의 사용을 금지했지만, 특별한 경우는 ‘물리적인 심문 수단’을 사용해도 형사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겁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바로 그 특별한 경우를 내세우며 팔레스타인인들을 계속 고문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이탈리아 법원이 이탈리아에서 체포된 팔레스타인인 아난 야에쉬(Anan Yaeesh, 36세)를 인도하라는 이스라엘의 요구를 거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법원은 아난 야에쉬를 이스라엘에 인도할 경우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고 굴욕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앗다미르(Addameer)
지난 수십 년간 이스라엘 감옥에서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였습니다. 이미 체포되어 수감된 후에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고문을 정보 획득뿐만 아니라 처벌과 학대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전쟁을 시작한 이후 고문은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6일 세계 고문 희생자 지원의 날(International Day in Support of Victims of Torture)을 맞아 팔레스타인 인권단체 앗다미르(Addameer)가 발표한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수감자들에게 가장 가혹한 형태의 고문을 자행하고 있습니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의 각종 수감 시설에서 고문과 가혹 행위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의 수는 54명에 이릅니다. 물론 이러한 숫자는 그나마 확인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수감자에 대한 정보를 인권단체는 물론 변호사에게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실제 사망자 수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는 상황입니다.
고문의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인권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이 지난 7월 발표한 ‘물리적 학대·전염병 확산 등 이스라엘군 수감 시설에 있는 팔레스타인 미성년자들의 상태 악화’에 따르면, 2023년 10월 이후 서안 지구에서만 약 650명의 미성년자가 이스라엘에 체포되었습니다. 가자 지구에서는 얼마나 많은 미성년자가 체포되었을지 그 수를 알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감옥에 있다 풀려난 쿠사이(Qusay. 17세)는 감옥에서 만난 12세~13세 어린이들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어린애들은 정말 무서워했고 계속 울었어요. 그 애들을 챙겨주고 싶어서 간수한테 걔들과 함께 있으면 안 되겠냐고 했다가 실컷 두들겨 맞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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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이스라엘 간수가 창문을 열어버렸고 우리는 추웠어요. 한 애가 발진이 심하게 나서 간수한테 그 애가 햇빛에 앉아 있을 수 있도록 하거나 아니면 몸을 좀 씻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어요. 그러자 간수는 ‘그놈이 죽으면 나를 다시 불러’라고 했어요.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베첼렘
지난 8월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B'Tselem)은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 고문 캠프 네트워크로서의 이스라엘 감옥 시스템’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이 학대한 팔레스타인인 55명의 증언이 담겨 있습니다. 그 가운데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5명의 자식과 함께 살고 있는 나빌라 미크다드(Nabilah Miqdad. 39세.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5살짜리 아들 아담의 손을 꼭 잡았어요. 아담은 배탈이 나고 아파서 계속 울었어요. 갑자기 군인 중 한 명이 제게 아담의 손을 놓고 여동생에게 넘기라고 했습니다…군인은 여자들의 이름을 읽기 시작했고, 몇 명의 여군이 여자들을 근처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은 저를 옆으로 서게 한 다음 속옷과 브래지어까지 벗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시키는 대로 했고, 여군은 기계를 가지고 제 온몸을 검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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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학교에 하마스 사람들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모른다고 하자 그는 정보를 얻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군대가 저를 데려갈 것이고 다시는 아들을 볼 수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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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묶인 채로 밥을 먹어야 했고 화장실도 그렇게 갔습니다. 정말 끔찍했습니다…다른 여군은 제 머리를 잡고 버스에다 찧었습니다.
지난 8월 26일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고문받는 팔레스타인 의료인들’을 발표했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있는 병원을 계속 파괴함과 동시에 의료인들을 체포·감금함으로써 가자 지구 의료 시스템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병원(Indonesian Hospital)에서 일하는 의사 이야드 아베드(Eyad Abed. 50세)의 증언입니다.
(이스라엘 군인한테) 쉴 새 없이 두들겨 맞았어요. 두 다리 사이 민감한 부분은 물론이고, 가슴과 등 가리지 않고 온몸을 때렸어요. 몸통과 얼굴을 발로 차기도 했구요. 군화 앞쪽에 금속을 붙였는데 그걸 무기로 사용한 거지요. 이스라엘 군인은 라이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 군인이 저를 지지려고 하다 옆 사람을 지졌어요. 제가 의사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어요.
아베드는 이스라엘 군인에게 맞아서 갈비뼈와 꼬리뼈가 부러졌고, 두 달이 지나도록 낫지 않았다고 합니다.
방법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게 가하는 고문과 학대의 방법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1. 폭행 : 체포 당시부터 총이나 주먹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기 시작합니다. 감옥에서는 나무 막대기나 금속 봉을 이용해 폭행하며, 이미 피를 흘리고 있거나 뼈가 부러진 수감자도 때립니다. 최루 가스나 전기 충격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담뱃불로 지지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경찰용 개를 이용해 수감자를 겁에 질리게 하거나 물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간수가 팔레스타인인을 두들겨 패는 동안 개가 사람을 물기도 합니다.
바나나 자세. 베첼렘
2. 고통스럽게 묶어두기 : 팔레스타인인을 체포하는 순간 눈을 가리고 플라스틱 끈 등으로 손과 발을 묶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밖에 아주 고통스러운 자세로 오랫동안 묶어 둡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나나 자세’인데 작은 의자에 등을 대게 하고 의자 아래쪽으로 손과 발을 묶어두는 것입니다.
‘개구리 자세’는 손을 뒤로 묶은 채 쭈그려 앉아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계속 무릎을 꿇고 있게도 합니다.
3. 성적 학대 : 여성에게 알몸 수색을 강요하거나 강간하겠다고 위협합니다.
4. 목조르기 : 숨을 못 쉬도록 목을 조르는 것입니다.
5. 못 움직이게 하기 : 몸을 움직이지도 말고 고개를 돌리거나 쳐다보지도 말고 말을 하지도 말고 가만있으라고 합니다.
6. 잠 안 재우기 : 계속해서 아주 밝은 조명을 쬐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틀어놓고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며칠, 몇 주씩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게 하여서 수감자의 심리적·육체적 건강을 무너뜨립니다.
개구리 자세. 베첼렘
7. 모욕하기 : 수감자에게 이스라엘 국기에 입을 맞추라고 하거나 이스라엘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또 수감자의 눈을 가리고 몸을 묶은 채 이스라엘 깃발로 몸을 싸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8. 굶기기 : 음식이나 물을 아주 소량만 제공해서 수감자를 배고프고 목마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주기도 합니다.
2022년 3월 1일에 체포되었을 때 제 몸무게는 91kg이었습니다. 2024년 3월 15일 석방될 때 몸무게를 재보니 55kg밖에 나가지 않아 놀랐습니다. - 이마드(Imad. 36세),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가운데
9. 치료 거부 : 수감자가 피를 흘리고 고통에 비명을 질러도 이스라엘은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의료진이 감방을 방문한다고 해도 의례적으로 ‘뭐가 문제야?’라고 물을 뿐입니다.
끝나지 않은 아부 그라이브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2004년 ‘아부 그라이브 고문 사건’이 알려집니다. 이 사건은 미군이 이라크에 있는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을 고문하고 학대했던 사진이 공개되면서 알려졌습니다.
사진 속에서 미군은 수감자를 폭행하는 것은 물론 개를 끌고 와 위협합니다. 옷을 모두 벗긴 뒤 팬티를 머리에 씌우고 손을 뒤로 묶어서 벽에 매달기도 합니다. 사람 목에 줄을 묶어 끌고 다니기도 하고, 알몸 상태의 수감자들을 벽돌 쌓듯 겹쳐 쌓기도 합니다. 수감자들은 피를 흘리고 있고 벽면 여기저기 핏자국이 가득합니다.
게다가 사진 속 미군들은 시신 앞에서 활짝 웃으며 엄지척 자세를 취합니다. 알몸 상태로 겹쳐 쌓은 수감자들 앞에서 자랑스럽다는 듯 함께 모여 기념 촬영을 하기도 합니다. 어느 여성 군인은 알몸 상태인 남성 앞에서 성기를 향해 총질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합니다.
한편,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책임자로 있다 해임된 재니스 카핀스키 미군 준장은 2004년 7월 B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이 이라크인을 심문하는 과정에 이스라엘 요원도 참여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라크인에게 가하는 고문 기술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사용하는 기술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미국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도 이라크인을 고문한 것이 아니냐는 국제적 비난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런 사실을 부정했습니다.
사진 출처:pixabay
고문은 처벌을 위한 자백을 받거나 가학적 쾌락을 위해 사람의 신체나 정신에 격심한 고통을 가하는 심문행위이다. 고문은 인간 존엄을 침해하고 피해자의 인간성과 신체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그 가해자를 포함하여 사회 전체를 비인간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게 가하는 고문의 목적은 단지 하마스 대원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것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상대가 팔레스타인인이기 때문에 고통을 주고 괴롭히고, 울부짖게 하고 살려달라고 소리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고문을 통해 이스라엘이 지배하고 있고 팔레스타인인이 지배받고 있다는 것을 정신적·육체적으로 각인시키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일본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조선인을 고문했듯이 말입니다.
지난해 10월 7일 전쟁을 시작한 이후 이스라엘은 이미 4만 2천 명가량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적어도 1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의 감옥에 갇혀 죽음과도 같은 고문과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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