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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동천의 동물 친구 멧돼지와 강아지 이야기
출처: http://blog.naver.com/wun12342005/220579938191
얼음골의 동물 친구들 이야기 (멧돼지와 강아지, 그리고...)
내가 사는 지리산 얼음골에는 야생동물들이 많다.
개울가에는 수달이 먹이를 찾아 다니고,
오두막 뒤의 험한 바위비탈에는 까맣고 누런 무늬가 있는 진돗개만큼이나 큰 살쾡이가 어슬렁거린다.
양지쪽인 풍개나뭇골 대밭 주변에는 꿩과 멧토끼들이 내려와서 놀고
더 높은 곳능선 꼭대기 근처에 있는 바위굴에는 오소리들이 산다.
족제비, 너구리, 노루 같은 산짐승들이 남긴 흔적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청설모, 다람쥐, 들쥐 같은 것들은 집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지만,
겨울이 되면서 다 제 집을 찾아 들어가 버렸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집 앞을 흐르는 개울물에는 메기처럼 생겼으나 메기보다 크기가 작은 미유기가 산다.
흔히 산골 사람들이 산골메기라고 부르는 물고기다.
버들치, 쉬리, 퉁가리 같은 물고기도 있는 것 같으나 쉽게 눈에 뜨이지는 않는다.
물이 깊어서 속이 보이지 않아 물빛이 시퍼렇기만 한 소가 여럿이고,
숨을 수 있는 바위와 돌들이 많아서 꼭꼭 숨어 있기만 하고 잘 나돌아다니지는 않는 것 같다.
아니면 물살이 너무 세어서 큰물이 질 때 떠내려 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물고기가 많이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만약 물고기가 없다면 수달이 이 계곡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겨울 밤에 소쩍새 울음소리를 듣고 싶지만 이 골짜기에 소쩍새는 없는 것 같다.
독수리와 부엉이, 올빼미같은 것도 아직 보지 못했다.
멧비둘기와 까치, 산까치들은 뒷산 비탈에 자라는 늙은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 열매를 쪼아 먹는다.
새들이 많아서 겨우살이들이 많이 번식하고, 겨우살이가 많아지면서 새들도 더 많아졌다.
아침이면 오막집 앞 대숲에서 여러 종류의 작은 새들의 합창이 시끄럽다.
태어난 지 한 달 밖에 안 된 강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기에 부엉이의 소행이라고 여겼다.
부엉이가 채어 가지 않은 다음에야 강아지가 흔적도 없이 소리도 없이,
마치 유령처럼 사라져 버릴 리가 있겠는가.
부엉이 말고는 흔적 없이 강아지를 해치워 버릴 육식동물이 따로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밥 잘 먹고 사람을 귀찮을 만큼 잘 따르던 강아지를 잃어버린 허전함에
다시 다른 강아지를 구하려고 알아보던 이틀 뒤에 강아지는 허섶 쓰레기 더미 속에서 돌연 유령처럼 나타났다.
통조림 깡통을 머리에 뒤집어쓴 채로.
강아지는 코를 킁킁거리며 다니다가
빈 통조림 깡통을 발견하고 비릿한 냄새를 좆아 주둥이를 깡통 속으로 디밀었을 것이다.
그러나 좁은 깡통 속의 바닥에 주둥이가 닿기도 전에 강아지의 머리가 깡통에 꽉 끼어 버렸다.
맛있는 냄새를 따라 더 깊이 주둥이를 박아 보았으나 점점 더 깊이 머리가 깡통에 끼어서
이제는 더 이상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다.
머리가 깡통 속에 있으니 깜깜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으며,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다.
맛있는 고기 냄새는 깡통 속에 가득하지만 볼 수도 먹을 수도 없다.
강아지는 깡통을 뒤집어쓰고 비틀거리면서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깡통에서 빠져 나오려고 무진 애를 써 보았으나 애를 쓰면 쓸수록 깡통은 더 세게 머리통을 조여 올 뿐이었다.
답답하고, 깜깜하고, 배고프고, 춥고, 목마르고.....
그러나 입이 봉해져 있으니 낑낑대며 소리내어 구원을 청할 수도 없고,
앞이 보이지 않아 방향을 알 수 없으니 주인의 문 앞에 갈 수도 없다.
가엾은 어린 강아지는 죽음의 공포에서 빠져나오려고 끊임없이 몸부림쳤다.
깡통은 강아지의 족쇄이자 감옥이었고, 이제 관이자 무덤이 될 참이었다.
밤날씨는 제법 추웠다. 돌아다니던 강아지의 발에 푹신한 지푸라기 같은 것이 밟혔다.
본능적으로 강아지는 지푸라기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추위가 한결 덜해졌다.
아마 강아지는 꽤 오랜 시간을 허섶 쓰레기 속에서 있었을 것이다.
강아지는 사라진 지 만 이틀이 지난 뒤에 이상국 형한테 구조되었다.
쓰레기더미에서 깡통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라서 살펴 보았더니 강아지였다는 것이다.
깡통이 얼마나 강아지 머리에 세게 끼었는지 처음에는
강아지의 목을 자르든지 깡통을 쇠톱으로 베어 내기 전에는 도무지 머리가 빠지지 않을 것 같았다.
강아지의 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 머리의 가죽을 천천히 끌어당기면서 깡통을 돌려내어
한참 만에 무사히 강아지 머리와 깡통을 떼어냈다.
이틀 동안 지옥의 고통을 겪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강아지가 대견했다.
깡통에서 벗어난 강아지는 한동안 멍한 것 같고 쓰러질 듯이 비칠거렸다.
배가 몹시 고플 것 같아서 급히 라면을 한 개 끓여서 갖다 주었다.
강아지는 라면 냄새를 맡자마자 확 하고 달려들더니 혀로 몇 번 음식을 핧아 보기만 하고 먹지를 않았다.
몇 시간을 지켜 보았으나 국물만 조금 마셨을 뿐 건데기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너무 심한 충격과 공포를 겪어서 입맛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저녁에 강아지가 좋아하는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주었다.
본디 식성이 좋아서 어른 한 사람 몫의 밥을 먹는 놈이 밥에 입을 대어 보지도 않았다.
두어 시간 뒤에 저 놈이 저러다가 굶어 죽는 것이 아닌가 하여 가 보았더니
어느 틈엔가 그 많던 밥을 다 먹어치워 버리고 밥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심지어 그 전에 주었던 라면까지 다 먹어치워 버리고 없다.
밥그릇을 얼마나 혀로 핣았는지 그릇이 윤이 반짝반짝 난다.
그러면 그렇지.
저 놈이 이제사 식욕이 돌아온 모양이다.
밥을 더 달라고 낑깅거렸으나 배가 통통한 것을 보니
더 먹였다간 배가 터져 죽을 것 같아서 물만 조금 주고 밥은 더 주지 않았다.
우리는 여러 날을 두고 깡통을 뒤집어쓴 강아지 얘기를 하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틀 사이에 반토막으로 홀쭉해졌던 강아지는 며칠이 지나자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사람도 여전히 잘 따랐다.
영리하고 다부지고 잘 놀고 잘 먹었다.
풍개나뭇골은 온통 멧돼지 차지다.
멧돼지들이 억새와 칡넝쿨이 우거진 묵은 밭은 마치 쟁기로 갈아엎듯이 파해쳐 놓았다.
괭이도 삽도 쟁기도 없이 질기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살로 덮인 뾰족한 주둥이 하나로
불도져처럼 흙을 파서 뒤지는 재주와 힘이 놀랍다.
풀뿌리 몇 조각을 찾기 위해 멧돼지들이 풍개나뭇골 뿐만 아니라
벽송사 뒷산에서부터 얼음터까지 갈아엎지 않은 데가 없다.
풍개나뭇골 위에 있는 무덤을 파헤쳐서 봉분이 반 넘게 없어졌으며
흙보다는 큰 돌이 많이 박힌 건너편 골짜기의 칡밭도 멧돼지들의 소행으로 큼직한 구덩이가 헤아릴 수 없이 생겼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는 멧돼지 떼가 화장실 건너편에 있는 묵은 밭에 내려왔다.
2백근은 넘어 보이는 털이 붉은 놈이 대장인듯 싶었고, 털빛이 회색이고 좀 작은 놈이 네 마리였다.
멧돼지 일행은 두어 시간 가량을 너덜과 칡뿌리와 억새뿌리와 싸리뿌리들이 꽉 얼키고 설킨 묵밭을 마구 파헤쳤다.
땅 속에 먹이가 되는 풀뿌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있으니까 땅을 파헤쳤겠지.
아무리 미련하다고는 하나 소득 없이 그렇게 오래 땅을 파헤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멧돼지들은 사람이 구경하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주둥이로 땅을 쟁기질하더니
제일 큰 놈이 일어나서 천천히 산으로 올라가자 다른 놈들도 그 뒤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지리산에 사는 멧돼지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놈들은 한두 마리가 다니기도 하지만 대개 대여섯 마리에서 수십 마리에 이르기까지 떼를 지어 몰려 다니며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아래 성안 마을에 사는 김창식 형은 대낮에 멧돼지 여러 마리가 찻길을 막고 있는 바람에
무서워서 한참을 피해 숨어 있었다고 한다.
이상국 형도 풍개나뭇골에서 나뭇가지를 솎아내는 작업을 할 때
곁에서 부스럭거리는 멧돼지들한테 공격을 받을까 염려되어 큰 몽둥이를 깎아 옆에 세워 두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산골의 겨울은 밤이 길다.
길고 긴 밤 동안 이상국 형과 우리는 산짐승 이야기로 밤을 지샜다.
TV, 라디오, 전화, 신문이 없는 외진 산 속에서 우리들의 겨울밤은 재미있고 따뜻하고 풍요로웠다.
참나무 장작으로 온돌방을 뜨겁게 달구어 놓고 벽틈으로 파고 들어오는 매캐한 나무연기에 캑캑거리고,
두터운 솜이불을 뒤집어 쓰고 우리는 멧돼지 잡는 이야기, 오소리 잡는 이야기,
호랑이 만난 이야기, 너구리 잡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 동짓달 기나긴 밤도 짧게만 느껴졌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는 그만 이쯤에서 접고, 멧돼지 이야기나 조금 더 하고 글을 마쳐야겠다.
멧돼지는 우제류(偶蹄類)에 딸린 산짐승이며 산돼지, 산돝, 멧돝, 야저(野猪), 산저(山猪)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아주 작은 섬을 빼고는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서식하며,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제각기 생김새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멧돼지는 만주지방에서 자라는 것이나 일본에서 서식하는 것과는 자세히 뜯어보면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인도 북부, 우리나라, 만주 지방에서 서식하는 멧돼지는 덩치가 크고
중남미 지방에 서식하는 페카리라고 부르는 멧돼지는 몸집이 가장 작은 종류이다.
그러나 모두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니고 있고 부상을 당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용감무쌍하게 반격하는 성질이 있는 것은 몸집의 크기나 생김새와 상관이 없다.
송곳니는 마치 잘 갈아놓은 칼과 같아서 매우 질긴 나무뿌리를 자르는 데도 쓰지만 싸움에서는 무서운 무기가 된다.
만약 그 이빨에 떠받히면 사냥개쯤은 당장에 뱃가죽이 찢어져서 내장이 쏟아지고,
사냥꾼의 가죽장화 같은 것은 단번에 갈라지고 뼈가 드러날 만큼 깊은 상처를 입고 만다.
우리나라의 멧돼지도 다 자란 늙은 수컷은 송곳니의 길이가 12-15센티미터나
주둥이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길지만, 남쪽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바비루사라는 멧돼지의 일종은
이빨의 길이가 한 자나 되어 콧등을 뚫고 뒤로 구부러진 모양을 하고 있다.
가장 작은 멧돼지 종류인 페카리도 무게가 4-5킬로그램에 지나지 않지만,
가끔 사냥꾼한테 반격을 가하여 심한 상처를 입힌다.
멧돼지가 사육되어 돼지로 가축화된 것은 다른 가축들보다 연륜이 짧다.
다른 가축들은 그 조상이 되는 동물들과는 모양이 많이 바뀌었으며 교배하여 트기를 얻기가 어렵지만
돼지는 생김새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뿐더러 교배하여 트기를 쉽게 얻을 수 있으며,
도 그 트기도 생식능력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개 두 가지 짐승 사이에서 난 간생종(間生種)은 생식능력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말과 당나귀의 간생종인 노새라든지 호랑이와 사자의 간생종 같은 것은 전혀 생식능력이 없다.
경북 칠곡에 사는 어떤 사람이 까만 돼지 한 마리를 집에서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가 허물어져서 돼지가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으나 한 달쯤 뒤에 돼지는 피골이 상접한 모양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두 달쯤 우리 속에서 지내면서 건강이 회복되자 돼지는 다시 탈출했다. 우리를 튼튼하게 고쳤지만 탈출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돼지는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돼지 주인은 돼지를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5개월이 지난 뒤에 돼지가 완전하게 다 자란 모양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돼지 주인은 돼지가 다시 탈출하기 전에 돼지를 장에 가서 팔아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돼지는 우리에 돌아온 지 사흘째 되는 날 다시 탈출해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영 돌아오지 않고 멧돼지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는 것을 여러 사람들이 여러 번을 보았다고 했다.
멧돼지는 깊은 산이거나 야산이거나 가리지 않고 나무와 풀이 우거진 곳에 서식한다.
멧돼지는 본디 초식동물이지만 토끼나 들쥐 같은 작은 동물에서부터 물고기, 곤충에 이르기까지 아무거나 먹는다.
대개 한 가족이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데 모계중심의 가족제도를 이루고 있다.
초식동물은 대부분이 모계중심의 가족생활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생식기는 12월에서 1월 사이인데 여러 마리의 수컷이 암컷의 뒤를 따르면서 사나운 쟁탈전을 벌인다.
이것은 사슴 종류와는 정반대다.
사슴 종류는 수컷 한 마리가 암컷 10여 마리를 거느리지만 멧돼지는 암컷 한 마리가 7-8마리의 수컷을 거느리는 일처 다부제이다.
멧돼지는 수태한지 4개월만에 새끼를 낳는다. 5월 무렵에 7-8마리한테서 12-1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수컷은 새끼를 전혀 돌보지 않고 단독으로 행동하고 어미멧돼지가 새끼들이 완전히 다 자랄 때까지 혼자서 키운다.
새끼 멧돼지는 적갈색 털에 검은 무늬가 세로로 그려져 있어서 마치 참외처럼 귀엽게 생겼다.
이 줄무늬는 보호색이며 자라면서 차츰 없어진다.
멧돼지는 언뜻 보기에 미련한 동물 같지만 사람도 따르지 못할 재주를 갖고 있다.
새끼를 낳을 때가 되면 풀을 모아서 정교한 보금자리를 만든다.
길고 짧은 여러 종류의 풀을 모아서 마치 침낭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서
코끝으로 기어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사람도 흉내를 내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고 아름답다.
옛날, 밀렵을 하던 사람들이 먹이에 폭약을 장치하여 부상을 입힐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 여우 같은 작은 짐승은 즉사하고 곰은 주둥이와 눈이 가까우므로 눈이 빠져 버린다.
그러나 멧돼지는 주둥이가 길어서 입 안과 이빨이 망가져 버린다.
어린 멧돼지는 죽어 버리지만 다 자란 멧돼지는 목숨에는 지장이 없고 다만 통증이 몹시 심할 뿐이다.
멧돼지는 상처를 입으면 스스로 치료를 하는데 부러진 이빨 틈이나 상처에 송진을 발라서 치료한다.
사냥꾼의 총에 맞았을 때에도 얼음을 깨서 찜질을 하여 다친 부분의 열을 식히고
소나무 껍질을 문질러 송진을 긁어 붙여서 출혈을 멎게 하고 염증이 생기지 않게 한다.
멧돼지는 사람보다 더 나은 의료 지혜를 갖고 있다.
꿩도 총에 맞아 다리가 부러지면 송진을 붙여서 치료한다.
멧돼지는 가을철 가장 기름진 때는 피하지방층이 3센티미터나 되지만 몹시 바람을 싫어한다.
눈 속에서 풀이나 나무의 뿌리를 캐먹으면서도 추위를 몹시 싫어하여 양지쪽을 찾아다닌다.
노루가 태양(太陽)에 속한 동물이어서 엄동설한에도 음지에서 생활하는 것에 견주어
멧돼지는 소음(少陰)의 동물이어서 언제나 바람이 없고 햇볕이 잘 드는 양지에서 산다.
또 일정한 잠자리가 없고 작은 나무가 우거진 곳이나 풀이 무성한 곳에 땅바닥을 파고 낙엽을 모아서 하룻밤을 지낸다.
이 자리의 크기를 보고 몸집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발자국을 보고도 몸집의 크기를 짐작할 수도 있으나
험한 산에 사는 멧돼지는 순한 산에서 사는 것보다 발자국이 작으므로 몸집의 크기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멧돼지가 자고 난 곳을 자세하게 관찰해 보면 그 슬기로움과 경계심이 철저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방이 막혀서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면서도 그 자리에 앉아 보면
사방으로 전망이 툭 틔어서 어느 방향에서 오는 적이라도 다 미리 알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멧돼지는 다 자라면 몸무게가 200-250킬로그램이나 나가며
추운 북쪽 지방에 있는 것은 3백 킬로그램이 넘는 것도 있다.
멧돼지는 이렇게 몹시 큰 짐승이므로 그 걸음걸이가 매우 느린 것 같으나 사실은 가까이서 보면 번개같이 지나간다.
멧돼지는 저돌적이라는 표현 그대로 무모하기만 하고 용맹스럽지 않은 것 같으나
사실은 표범보다도 사냥하기가 어려운 짐승이다.
더구나 상처를 입으면 더욱 무서운 맹수로 돌변한다.
부상을 당한 멧돼지 앞에 있는 것은 지름이 10센티미터쯤 되는 나무도 모조리 부러져 버리고
바위도 그 이빨에 부딪히면 가루가 되어 버린다.
강원도 영월에 살던 어떤 사람이 사냥꾼한테 부상을 당한 멧돼지에 쫓기다가
한 아름이나 되는 큰 소나무에 올라갔는데 멧돼지가 한 시간 동안이나 이빨로 소나무를 물어뜯는 바람에
소나무의 줄기가 반이나 찢겨 나갔다.
그는 나무 위에서 무서워서 오줌을 질질 싸면서 사람 살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몰려와서 멧돼지를 내쫓은 뒤에야 나무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옛말에 선불 맞은 멧돼지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하였다.
나는 이 무서운 멧돼지가 바글바글한 산속에서 겨울을 났다.
이 산은 사람이 주인이 아니고 그들이 주인이다.
사람들은 한두 마리 잡아서 쓸개를 얻었으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아서라, 멧돼지를 잡으려다가 사람을 잡지 않을까 두렵다.
어떻게 해야 이 우악스러운 놈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운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