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명 |
금 액 |
파 계 |
주 소 |
백남송 |
일 천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
백낙순 |
오백만원 |
선전공계 |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 감초약국 |
백도흠 |
부지 20 평 |
죽촌공계 |
장흥군 안양면 동계리 |
백낙홍 |
일백삼십만원 |
죽촌공계 |
장흥군 안양면 동계리 |
백영식 |
일백만원 |
서호공계 |
보성군 회천면 봉강1구 |
백성인 |
일백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
백호인 |
일백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장평면 양촌리 |
백호암 |
일백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목단리 |
백영우 |
일백만원 |
서호공계 |
보성군 회천면 모원리 |
백영길 |
일백만원 |
서호공계 |
장흥군 부산면 기동리 |
백관인 |
일백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
백형권 |
일백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장흥읍 향양3구 |
백진수 |
일백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장흥읍 원도리 |
백광철 |
일백만원 |
선전공계 |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
백도인 |
일백만원 |
죽촌공계 |
장흥군 장흥읍 월평리 백산건설대표 |
백인천 |
오십만원 |
선전공계 |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
백 현 |
오십만원 |
선전공계 |
장흥군 장동면 용곡리 |
백남곤 |
오십만원 |
서호공계 |
광주시 |
백형만 |
오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비동리 |
백형구 |
오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비동리 |
백남정 |
사십만원 |
동계공계 |
경기도 수원시 |
백출인 |
삼십삼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 |
백영환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
백만식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장평면 우산리 |
백태식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 |
백남석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
백동인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수양리 |
백영동 |
삼십만원 |
서호공계 |
서울시 성북구 |
백영도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서울시 |
백정흠 |
삼십만원 |
선전공계 |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 |
백돈철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 |
백형정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수양리 |
백환주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읍 건산리 새마을금고 이사장 |
백선익 |
삼십만원 |
선전공계 |
부산시 사상구 학장동 |
백금철 |
삼십만원 |
선전공계 |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
백홍철 |
삼십만원 |
선전공계 |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
백석인 |
삼십만원 |
선전공계 |
경기도 남양주시 |
백헌명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 |
백남훈 |
삼십만원 |
동계공게 |
광주시 |
백 훈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보성군 보성읍 다향관 |
백 남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경기도 수원시 |
백남주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 중앙소리사 |
백형기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장흥읍 월평리 월평정미소 |
백형칠 |
삼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장흥읍 향양3구 탐진정미소 |
백학인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
백양인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
백천근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인천시 |
백남윤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광주시 금동 |
백한신 |
이십만원 |
선전공계 |
장흥군 장동면 진곡리 |
백영록 |
이십만원 |
선전공계 |
경기도 남양주시 |
백인혁 |
이십만원 |
선전공계 |
경기도 남양주시 |
백한욱 |
이십만원 |
선전공계 |
경기도 남양주시 |
백현범 |
이십만원 |
선전공계 |
인천시 |
백진휘 |
이십만원 |
선전공계 |
서울시 중곡동 |
백민휘 |
이십만원 |
선전공계 |
서울시 중곡동 |
백낙주 |
이십만원 |
죽촌공계 |
광주시 |
백낙훈 |
이십만원 |
죽촌공계 |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 |
백을인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경기도 |
백형정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경기도 |
백형춘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광주시 북구 운암동 |
백형순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경기도 |
백형언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경기도 송탄시 |
백형로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비동리 |
백종선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안양면 동계리 |
백영근 |
이십만원 |
서호공계 |
서울시 양천구 |
백진명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경기도 안양시 |
백홍선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울산시 |
백종천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 삼보주택 |
백라대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광주시 |
백형주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보성군 옥암리 |
백형옥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광주시 |
백중근 |
이십만원 |
서호공계 |
광주시 |
백영국 |
이십만원 |
서호공계 |
부산시 |
백영회 |
이십만원 |
서호공계 |
보성군 회천면 |
백현인 |
이십만원 |
서호공계 |
부산시 |
백홍준 |
이십만원 |
서호공계 |
여수시 |
백강래 |
이십만원 |
서호공계 |
경기도 |
백동선 |
이십만원 |
동계공계 |
장흥군 관산읍 |
백영삼 |
일십만원 |
서호공계 |
부산시 해운대구 |
백진선 |
일십만원 |
동계공계 |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
백용선 |
일십만원 |
동계공계 |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
백황선 |
일십만원 |
동계공계 |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
백유선 |
일십만원 |
동계공계 |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
백광훈 |
일십만원 |
동계공계 |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
현재총액 |
4,453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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部將公의 忠烈事實(十九세,長興 ) 참고자료 수원백씨 대동보 丁丑版 214쪽
公의 諱는 世禮요 字는 和仲이니 弘治 十八年 乙丑 1505년에 長興府 岐山里 本家에서 出生 하였다.
어려서 부터 체격이 큼직하고 담력과 계략이 보통에서 뛰어 났으며 나이 十歲가 못되어 이미 천만 병력이
달려와도 꼼짝하지 않는 기상이 있었다.
아버지 進士公께서 그 용맹 스러움을 항상 염려한 나머지 小學책을 주어 일평생 가지고 다니며 符節을
삼도록 하였다. 公께서는 晝夜로 小學을 읽는데 게을리 하지않아 학업에 나아가 뜻을 다졌다.
公께서는 小學에서 父母를 섬기는데 능히 그 힘을 다 하였고, 임금을 섬길때는 능히 자기의 몸을 바친다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말씀 하시기를 孔子 제자 子夏氏가 나의 마음을 먼저 말씀 하셨다며 이 구절을 두세번 반복하여 읽으면서
감탄하지 아니한 적이 없었다.
父母님을 섬길제 지극히 그 뜻을 따랐고 음식물을 충분히 갖추었으며 昏定晨省 과 冬溫夏淸 하는 절차에 있어
셋째 아들이지만 分居하지 않고 조금도 간격을 두지 않았다 .
두 형과 더불어 기뻐하고 즐거워 했으며 날마다 하는일이 小學에서 제시한 規矩에 벗어나지 않았다.
먼저 부친 초상을 당하고 뒤에 모친 초상을 당하였는데 그때마다 한결같이 家禮에 依해 비록 사소한 儀節에 있어서도
감히 放過하지 않았으므로 온 마을,온 군민,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순수한 孝子라고 하였다.
公께서는 三年복을 마친 뒤에도 홀로 시묘막(墳庵)에 거처하면서 텅빈 산천 비바람이 때리는 밤마다 太公望이 엮은
六韜와 黃石公이 쓴 三略 등 兵書를 큰 목성으로 읽고 孔明이 周易八卦를 응용해 만든 八陣圖法과 術書에서 밝힌
往亡日 즉 싸움의 승패 계책등을 또한 暗讀하여 마음속으로 해석 하였다.
아름답고 고상한 뜻을가진 公께서는 科擧에 응시할 학업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詩文調格 등 일체를 신경쓰지 않았다.
或者가 公에게 立身揚名 할 것을 권고 하였건만 公께서는 뜻이 없다고 하셨도다.
이보다 먼저 郡守 方伯 등이 公에게 將軍이 될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으며 그들의 권고에 의해 武士에 뽑혀 右部將 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 모두 公의 뜻은 아니었다.
明宗임금 十年 乙卯 (1,555)년에 倭人賊船 수백척이 동남쪽 으로부터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上陸 하였다.
바다에서 가까운 여러 고을이 屠戮 당하였고 강진과 해남땅인 梨津 達梁(현,해남군 북평면 남창리)등이 왜적의 소굴이 되었다.
당시 兵使인 元績이 본 고을 府使 韓蘊에게 보낸 通知文에 曰 이 때 왜적을 평정함에 있어 白部將이 아니면 남쪽지방
人民 모두가 魚肉이 된다고 하였다.
韓府使가 즉시 公을 찾아가 주선할것을 도모하자 公께서 의로운 膽力을 확실하게 내 보이며 드디어 府使의 간청을 허락하고
말을 달려 本府에 들어가 큰 활과 큰 칼을 손에쥐고 府使에게 병력을 일으켜 남북진을 지휘 하도록 부탁하였다.
公께서는 蒼龍津으로 卽行하여 침범해 오는 그들의 위세를 좌절 시키고 그들의 정찰하는 길목을 두절 시켰는데 수하
戰士들의 용맹은 모두가 一當百 아닌 병사가 없어 병사들의 함성은 크게 진동 하였다.
公께서 또 정예병 일백여명을 선발하여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인 達梁의 北營으로 달려갔다.
그 때 光州목사 李希孫은 적의 복병을 만나 패전 하였고 康津군수 洪彦誠은 적의 위세에 겁을먹고 도망질 했으며
영암군수 李德賢(堅)(역사 자료에는 이덕견 임) 은 죽음이 두려워 城 밖에 나가 그들을 환영 하는가 하면
兵使인 元績은 갑옷을 벗고 항복 하였다.
公께서 분개한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높여 曰 고을을 사수 하는것은 떳떳한 일인데 主將이 계책을 잃었으니
義當 軍法으로 다스려야 할것이다. 그러나 우리 군중에게 主將들의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싶지 않다 하시고
公은 韓府使와 더불어 힘을 같이하여 병사 수백명을 인솔, 진격 준비를 갖추고 있으니 왜적이 감히 공격해 오지 않았다.
公께서 밤이되면 손에 籌算을 쥐고 三綱五倫의 글귀를 口誦 함으로써 군중의 심정을 위로하는 한편 군중들의 뜻을
관찰 하기도 하며 잠 자리에 눕지 아니 하셨다. 韓府使께서 公과 더불어 술잔을 권하며 칭찬하여 曰 내가 우리 白部將이
아니면 君父를 섬겨야 하는 도리를 어찌 해 냈겠는가? 하니 그 말씀에 公께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옛날 伏波將軍 馬적
처럼 싸우다 죽으면 말 가죽에 나의 시체를 싸도록 할 것이요 祖士雅와 같이 중국을 평정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며
노를 두둘겼다는 말씀으로 답변 하셨다.
그러한지 三日 뒤에 왜적이 또 북을 울리며 싸울것을 청하자 싸움이 시작된지 반 나절이 못 되어 수십번을 진격 하였다.
韓府使는 장기전을 펴다가 상처를 입고 落馬 하여 전사하고 公께서는 옆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장대를 휘두르고
혀를 씹으며 조금도 후퇴하지 않고 진격중에 날아온 화살에 명중되자 그 활촉을 뽑아 적에게 쏘아 왜적을 대파 하였다.
적병들은 은신처를 무너뜨리며 주위 집을 불태우고 후퇴 하였다.
公께서는 개선장군으로 승전의 노래를 부르며 돌아 왔는데 그 날밤 화살의 독이 온 몸에 퍼져 잠을 자듯 저 세상으로
떠나 가셨으니 곧 五月 十三日 밤 二十時 경 이었다.
그리하여 왜적이 물러가니 이 어찌 南方民의 一大幸運이 아니겠는가?
아 ! 韓府使는 都護府使로서 의로운 사실이 알려져 조정으로 부터 贈職이 내렸는가하면 諡號도 내렸고 사당에서
제사를 모시는 영광을 누리지만 우리 部將公의 높고도 의로운 업적이 지금 까지도 묻혀져 있는것은
후손의 활동이 막혔다는 것을 이내 언급할 것도 없고 元績 , 洪彦誠 , 李希孫 , 李德賢 , 등이 조정에 돌아가 이 사실을
분명히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이 억울함을 어찌 가히 형언 하겠는가?
뒷날 千百世에 붓을 잡은 선비가 國朝五亂錄 , 湖南節義錄 , 및 장흥군지 등을 參酌해 주었으면 다행 이겠다.
水原白氏 大同譜 丁丑版 第一券 214~216쪽 部將公의 忠烈事實 에서 白 光哲 옮김
殉國先祖 部將公 諱 白 世 禮 忠 烈 碑 建立 發起文
부장공 종중 종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의 한파와 혹한 속에서도 봄은 질척이며 찾아와
매화가 어느새 만발 하였는가 싶더니, 노오란 개나리 꽃이 활짝 피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 목련이 순백의 꽃 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합니다.
우리들의 사문중 파조이신 부장공 할아버님께서 을묘왜변(1,555년) 당시
장흥부사 한 온 과 함께 달량진 (현,해남 남창)에서 전사 하시어 순국 하셨지만
그동안 자손들의 무성의로 현창해 드리지 못해서 늘 안타까웠습니다,
가선대부, 해평, 윤영구님의 찬 으로 묘갈명과 족보에는 이미 실려 있고,
호남 절의록과 국조 오란록의 기록을 국립중앙 도서관에서 찾음으로 해서
할아버님의 훌륭하신 업적을 재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차제에 후손들의 헌성금을 모금하여 만시지탄 이지만
이제라도 할아버님의 업적을 기리고 충절과 공적을 현창 해 드리기로
2010년 3월 7일 종친 임시 총회를 개최하여 다음과 같이 결의 되었기에
알려 드리는 바입니다.
1) 부장공 할아버님의 충렬비 건립을 추진하기 위하여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고문 백영식,백성인, 추진위원장 백낙홍 부위원장 백태식,백낙순,백도인,백남송,
총무 백형권, 간사겸 집전 백광철 재무 백남주, 감사 백관인,백진수, 추진위원
백호인,백영길,백호암, 백형정,백진영,백영우, 백학인,백영환,백동인,백양인,백출인,)
2)각파 종친들에게 취지를 잘 알려서 후손중 모르고 성금록 비문에 빠지는일이
없도록 하자고 결의를 하였습니다,
3)부장공 할아버님 께서는 우리들에게 충국의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이번일에 서로 앞장 선 참여로 후손들에게 효의 길을 가르칩시다.
4)충렬비를 건립하고 준공식까지 행 하려면 최소 약3,000 만원의 자금이 필요한바,
20만원 이상의 성금을 내 주신분을 성금록 비문에 명단을 올려 드리기로 결정되어,
부장공 종중 명의로 법인통장을 개설하고 통장번호를 아래와같이 알려 드립니다.
끝으로 종친 여러분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충만 하시기를 기원 드리고
부장공 할아버님에 대한 자료를 첨부해 드리면서 인사 말씀에 갈음 합니다.
2010년 3월 일
부장공 충렬비 건립 추진위원장 백 낙 홍
연락처 : 백낙홍 061-863-4712 총무 백형권 핸드폰 : 016-684-5724
간사겸 집전 백광철 : 010-4621-0043
* 참고 : 다음카페, 기산마을 , 행사소식, 코너에 오시면 진행 과정을 보실수 있습니다.
온라인송금 : 농협 351-0173-5617-83 부장공 종중
첫댓글 대부님새비문에참판공,[회]증.
대부님새비문에[참판공회]증.빠짐.정신재공1405ㅡ1418졸13년.장동면용곡리두룡탑동.참고황희1418년5월유배.백장.10월졸
착각하신것 아니신가요? 본비문은 참판공회나 정신제공의 비문이 아니고, 손이신 부장공 세자례자의 비문임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부장공비문내용에착오된내용입니다.증직이고[참판공]정신재공유배기간이13년이고.산소현주소입니다.대부님이학인한번해주십시요
백수인 교수님이 교정한 내용 이거든요, 증직이나 사후 추증은 같은 뜻이고요, 기왕에 세워져버린 비문이고, 본 비는 부장공에대한 내용이 주 가 되는 것이니까요,또 주소란 옛 문헌과 현재는 늘 차이도 있는것이니까, 참작 하시죠,..
대부님잘알겠읍니다.[증직.추증.뜻은알고있읍니다]농사일에고생하십시요,,,,,,,,추신용주족장이시골에있지요저하고잘지내고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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