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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자기선언-5
나는 세상의 빛이다.
본문/요한복음8:12-20절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이스라엘의 5대 절기중 장막절때였습니다. 해마다 장막절 기념절기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나간 40년동안 광야 생활중에 그들을 성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당시를 되돌아보는 그런 명절입니다.
본문배경
본문은 예수님께서 성전 안의 “여인의 뜰”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20절에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이 연보궤는 성전 안 여인의 뜰에 놓여 있었는데, 이곳은 가난한 과부가 자기 생활비의 전부였던 옆전 두푼을 하나님께 드렸던 장소입니다.
장막절 기념 절기가 되면 이 여인의 뜰에서는 네 개의 대형 금촛대에 불을 밝힙니다. 이 불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그들의 갈 길을 보이시고 인도하셨음을 기념하는 것으로서, 예루살렘 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다 볼수 있을 만큼 밝았다고 합니다. 문서에예루살렘의 아낙네들이 이 불빛을 의지하여 바느질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밝기라고 합니다.
금 촛대에 불이 붙여지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는 백성들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여기 저기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춥니다. 장막절은 안식일에 시작해서 그 다음 안식일에 끝나는 것이 상례입니다.
장막절 절기 행사가 거의 끝나 가는 마지막 날인 안식일 저녁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올림픽 행사가 마지막이 갈 때 함께 올림픽 성화도 꺼저가는 네 촛대의 불이 가물 가물 거릴 때, 이제는 노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신나게 춤을 추는 것도 멈추고 이때 한 젊은이가 군중들을 헤치고 여인의 뜰 한복판으로 들어섭니다. 잠시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드디어 그 젊은이가 무리를 향하여 외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의미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12절)
이 말씀은 요한복음서에만 나타나는 예수님의 두 번때 나는—이다.(I AM) 라는 자기 선언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I am the lighe the world).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드러내 보이시기 위한 중요한 두 번째 선언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는—이다”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하나님이신 바로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를 보여주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이“나는—이다.”는 선언은 헬라어도 톡특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이 나 홀로 빛이라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선언입니다.
구약의 불 기둥의 빛은 하나님 자신의 현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자신이 바로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27: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신약성경에서 사도 요한도 이렇게 선언합니다. 요일1:5절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그런데 지금 주님께서 이렇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장막절 마지막날, 예루살렘 도성을 비추고 있던 자연적 혹은 인공적인 모든 불빛이 사라져 가는 이 극적인 순간에 예수님게서 등장하셔서 자신을 드러내는 이 선언
“나는 세상의 빛이라.”
이 선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번 주제에서 이 선언이 담긴 세가지 중요한 의미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입니다.
마치 광야의 장막에서 쉬키나 즉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스러운 빛이 주의 임재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단적으로 말하면, 그분은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하나님 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찬생을 예언한 임마누엘의 의미입니다. 마1:23절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요한1:14절에 그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찬아오신 말씀(λοϒος/로고스)이신 예수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손을 만졌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손을 만졌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에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광야길에는 이루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걱정이 있었겟지만 그 중 가장 큰 고통은 아마 고독 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오직 홀로 잇는 고독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백만 이상, 학자들의 의해서는 이백만에 가까운 군중들이 이 험악한 광여 생활을 하고 있는데 많은 난관과 역경을 경험하게 되고 저마다 자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 보면 사람은 많았지만 정말로 마음을 터 놓고 지낼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삶을 다 드러내놓고 나눌만한 사람들이 없는 광야노중, 그들에게 들이닥치는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는 살수 있는 이 광활한 광야에서 무엇보다도 그들은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누구도 광야 노중에서 도와줄수 없는 이 상황속에서 외롭게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에도 이런삶이 종종 찾아옵니다. 사람은 많지만 결국 어려움을 홀로 견디어내어야 할 처지, 평소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정막 힘들 때 도움을 줄수 잇고 의지할수 있는 이웃과 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롭고 힘겨운 광야 생활 중에 갑자기 그들앞에 나타난 구름 기둥과 불 기둥, 누군가는 이렇게 소리를 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 순간 이 광야를 걸어가면서 느껴야 햇던 온갖 어려움과 힘든 여정, 그리고 끝없는 행진의 고독은 새로운 희망과 소망으로 변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분, 진실로 나의 모든 문제의 응답이 되시는 그분, 나와 함께 하시는 그분, 진실로 나의 모든 문제의 응답이신 그분, 창조주이신 하나님, 나와 더불어 함께 계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이 하나님의 현현, 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놀라운 증거였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인간일찌라도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고독한 존재인 것을 느길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인간이 가장 깊은 의미의 고통속에 몰입할 때는 그 누구도 함께 해 줄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죽음의 다리를 건너갈 때 누구와 손을 잡고 함께 건널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스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하실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진정 놀라운 희망입니다. 광야 생활 노중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출13:22절입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것은 그 백성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희망이며 힘이었겠습니까? 내가 겉고 있는 이 삶의 여정에서 오늘의 고통이 아무리 심각하고, 오늘의 방황이 아무리 어렵고 오늘의 좌절이 아무리 눈물겹다고 해도 하나님만 떠나지 아니하신다면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마지막 절을 통하여 주님은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 끝날때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그 빛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였습니다. 그 하나님을 뜨겁게 경험하시고 임마누엘의 비밀을 속에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인도의 선언입니다.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가슴앓이와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나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줄 수는 있을지라도 우리를 인도해 주지는 못합니다.
광야 길을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변화무쌍한 광야환경에서 변화되지 않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그게 그것 같고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기도 힘들고,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모르는 급박한 환경이었습니다. 우리의 일생도 사실 어떻게 보면 그런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무의미하게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가운데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다람지 쳇바퀴 돌 듯이 돌아가는 인생입니다.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사막의 강렬한 태양열로 인하여 그들은 혼이 혼미해질 것입니다. 땡볕아래서의 행진, 고통스러운 사막의 이 방황이 그들을 얼마나 지치게 했겠습니까?
그런데 이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가도 제 자리에서 있는 것 같습니다. 목적지는 가나안땅인데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의 행진,
그런데 그들 앞에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 기둥은 움직이며, 갈길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인상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까? 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한발자욱 내딛는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 없없고, 백성들의 입에는 금새라도 찬양과 감사가 넘쳐났을 것입니다.
민수기 9장을 보시면 이 장면을 극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구름이 진행하면 백성들도 진행하고 구름이 머물면 그들도 머물렀습니다.
민수기9:18절 이하의 말씀에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19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20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여호와의 명을 좇아” 주님의 인도를 경험하며 나아가는 장면들! 얼마나 다름답고 인상적입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도 유혹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막 길에서는 이따금씩 오아시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의 쉼터에 한번 털썩 주저 앉게되면 다시 일어나고 싶지 않는 유혹이 귿르의 행진에 발목을 잡을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힘든 방황 길을 끝없이 걸어야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구르밍 떠오라 움직이면 그들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계속 무엇인가를 경정해야 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오늘 저와 여러분은 정말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결정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쉽고 편리한 쪽으로 결정하십니까? 나의 편리와 나의 쉼과 나의 안식을 위해서 결정하지는 않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며, 주께서 내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시는지? 그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고 있습니까?
어제 하나의 유튜브를 보았는데 48세의 목사님이 목회를 그만두고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한번도 해보지 않는 고된 노동을 하면서 몇 달이 지나고 자신을 돌아보니까? 목사님 이라는 말보다는 직장에서 부르는 직함이 더 어울리고 적응 되어가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그동안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외쳤던 그 말씀들이 오늘 나에게는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를 돌아보면서 강단에서 외쳤던 말씀구절들이 적용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그런류의 동영상이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누군가가, 이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하나님의 임재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편리와 자신의 쉼을 위해서 주님을 좇아가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리석은 사건들이 우리의 삶속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성경을 열어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십니까?
지금은 구름이 뜨지 않고 불기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 시편119:105절에서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광야노중가운데 이스라엘을 인도하였지만 오늘날에는 빛이되고 등불이 되는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 빛과 말씀의 등불앞에 엎드리어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삶의 여정을 인도받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그런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한 성령님도 요엘 2:28절에서 꿈과 환상과 예언이라는 계시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새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나 이렇게 확신과 평안을 주시며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다고 선포하신 말씀에도 불구하고 내 편리를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지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야 빛 가운데 거하는 이 놀라운 복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다닌다고 구원받다고 해서 다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를 충분히 해서 자의 의지적인 것은 말씀앞에 내려놓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만 가능한 삶입니다.
따른다는 것은 계속해서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신실하고 계속적으로 성실하게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며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는 삶!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도와 은총을 체험하는 이 삶을 사모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그것은 취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삶의 갈림길에 설때마다 주님의 말씀을 열어 그부느이 인도를 구하며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좇아 걸을 때, 이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들의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다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상징된 이 빛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것이요 하나님의 이끄시는 인도의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 나라의 약속입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그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딸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목적이며 광야 생활의 이유인 것입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처럼 오신 예수님, 자연의 불빛은 사라져도 여전히 우리를 인도하는 영원한 인도자가 되시기 위해서 우리의 역사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 그분은 이렇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바로 내가 구름 기둥이다. 내가 불 기둥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던 그 구름 기두와 불 기둥의 임재 이상으로, 더 정확하고 더 아름답고 더 평안하게 우리 삶속에 간섭해 오시는 예수님! 그분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까? 바로 약속의 땅인 아버지의 나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14:6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려야만 했던 그 많은 결정들!!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잘 나아가다가 때때로 방향을 잘못 들어 방황하고 헤매이며 위험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내리는 어떤 결정이 우리의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게 할수 없다면 그것은 그릇된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결정은 하나님께 시선을 두게 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사모하게 합니까? 그리고 발걸음을 주님 앞으로 이끌고 있습니까? 만일 드른 곳에 눈을 두게 하고 하나님께 맟춰진 초점을 흐리게 만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단호히 거부할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면했던 가장 큰 유혹이 있었다면 약속의 땅을 등지고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만일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예수님이 함께하시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진행하던 우리의 발걸음도 어느 한 순간에 돌이키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싶은 별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인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가야할 목표를 다시 바라봅니다. 세상의 유혹과 세상의 정욕이 순간순간 우리의 삶의 초점을 흐리게 만들 때에도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다시 주님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가야할 그 땅이 있기에, 약속의 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진할수 있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그 인도를 좇아 오늘도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이 행렬 속에 여러분과 제가 있는 것을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등블 앞에 서 있습니까? 어직도 교회는 다니지만 어두움 가우데 서 있지는 않습니까? 이 어둠은 죄 방황, 무목표, 무의미, 무목적일 수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이 이런 특징으로 묘사되고 있다면 그들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여기 구름 기둥이 있습니다. 불 기둥이 있습니다. 빛으로 다가오시는 그분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온통 붉은 네온사인 등불로 도시를 덮어도 여전히 갈길을 알지 못하는 어두움 가운데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나는 생명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빛은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들을 위한 빛입니다. 하늘나라로 가는 밝은 빛이신 이 예수님께서 지금도 그 빛을 따라 가라고 하시면서 다가오십니다.
이 빛은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재의 표시이며,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던 동일한 인도의 선언이며,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의 그 많은 사람 속에서도 여전히 홀로임을 느껴야 하는 우리들, 그러나 이 고독과 고통 속에 우리를 홀로 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찾아오신 하나님, 임마누엘의 예수님, 주께서 이땅에 찾아오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예수님을 영접한 저와 여러분 속에 있습니다. 이제 인생의 방황은 끝내고 내 안에 계신 그 주님의 빛을 따라 순종하며, 그 주님께서 내 인생을 이끌어 주시기를 내 자신을 맡겨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빛 가운데로 인도하여 그나라를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시간 기도하겠습니다.
빛 되신 주님의 인도 때문에 인생은 진정으로 가치 있고 복 되는 줄 믿습니다. 저희들의 고백은 바로 빛되시는 주님게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를 사모 합니다.. 그리고 순종함으로 주님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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