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알리아 꽃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신문 기사를 보다가 화훼용어를 가급적 우리말로 바꿔 쓰자는 말에 시선이 꽂혔다. 흔히 가지치기를 일러 ‘전정(剪定)’이라고 하고, 덩이뿌리를 구근(球根)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한자말 보다는 ’가지치기’나 ‘덩이뿌리’로 부르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공감이 되어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 생활주변에 한자어는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가. 쉬운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어려운 표현을 보면 답답해진다. 덩이뿌리의 대표적인 꽃나무는 ‘다알리아 '이다. 뿌리가 고구마처럼 생겼는데 추위에 약해 늦가을이면 캐내어 따로 갈무리를 해야 꽃나무이다.
내가 어렸을 적 이것도 구근이라고 불렸다. 모두가 그리 말하니 따라 한 것이다. 늦가을에 갈무리해둔 것을 땅이 풀리는 봄이 되면 이것을 화단에 내다 심었다. 이것은 죽은 듯이 있다가 늦은 봄이 되면 싹이나서 여름 한 철 꽃을 피웠다. 예쁘고 화려하게 피어나 눈을 즐겁게 했다.
다알리아는 우리 집 말고도 동네 다른 사람들도 많이 심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를 들어가서 보니 학교 화단에도 온통 다알리아가 꽃동산을 이루고 반가웠다. 그것으로 보아 다알리아는 한때 유행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꽃이 되었다.
다알리아 꽃은 화형이 크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피어서 눈에는 금방 띄지만 야해 보이지는 않는다. 한데 이것은 크나큰 약점이 있다. 큰 허우대에 비하여 줄기가 부실하여 거센 바람이라도 몰아치면 쉽게 부러진다. 그래서 이것은 높이 자라면 반드시 부목을 대주어야만 한다.
그것만 빼면 이 꽃은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 여름 내내 피어서 오랫동안 눈을 즐겁게 해줄 뿐 아니라 집안 분위기도 밝게 해준다. 꽃잎은 붉은 단색인 모란과는 달리 빨강과 흰색이 골고루 섞여서 입체감을 보여준다.
그런 까닭에 나는 유년시절을 떠올리면 다알리아와 함께 보낸 시절이 생각난다. 그러면서 많이 보고 싶어진다. 다알리아는 늦가을이 되면 신경 쓸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냉해에 취약하여 서리가 내리기전 뿌리를 미리 캐내어 얼지 않도록 보관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때는 반드시 신문지나 비료포대로 뿌리를 싸매서 서늘한 마룻바닥에다 갈무리를 했다.
그런 일을 반복했기 때문에 ‘다알리아’를 생각하면 화사하게 핀 꽃모양과 함께 뿌리를 갈무리하던 일이 함께 떠오른다.
다알리아는 비록 우리 땅에 잘 자라는 화초지만 토종 꽃은 아니다. 줄기가 실팍하지 못한 점도 토종의 체질과는 거리가 멀다. 원산지는 멕시코인데 관련된 일화는 다른 나라에서 더 유명하다. 그만큼 전 세계에 널리 퍼진 꽃이다.
기록을 찾아보니 프랑스 나폴레옹의 첫째부인 조세핀은 워낙에 다알리아 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녀는 저택 정원에 여러 종류의 다알리아를 심어놓고 즐겼는데 누구한테도 그 뿌리를 선물한 적이 없었단다. 그런데 하루는 시녀가 욕심을 내어 그중 한 뿌리를 뽑아갔다. 그 사실을 안 그녀는 바로 시녀를 내쫓아버렸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어떤 독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어려서 본 장명인데, 소가 지나가다 담장을 넘은 강낭콩 줄기나 나팔꽃, 그밖에 호박 줄기는 슬쩍 뜯어먹기도 하지만 울 넘어 자라는 다알리아 잎사귀는 입에 대지 않았다. 그로 미루어 그런 추정을 해본다. 진딧물도 붙지 않은 게 의심이 가는 것이다.
엊그제였다. 모처럼 고장에서 회원들과 함께 다녀온 문학기행 길에서 마음을 정화해주는 꽃구경을 했다. 천변 가득히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데 바라보니 기분이 상쾌했다. 한데 아쉬움이 좀 있었다.
펼쳐진 꽃밭이 아름답기는 한데, 어딘가 모르게 왠지 좀 허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공간에 다양한 것을 심었으면 낫지 않았을까. 코스모스 일색으로 조성한 단지가 아쉽게 느껴졌다.
그것을 보자니 대번에 다알리아 꽃 같이 화형이 탐스러운 것을 심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훨씬 풍성하고 돋보일 것 같았다. 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전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좀처럼 볼 수가 없어서 그리워진 마음에 그랬을까. 아니면 주변의 조화를 생각하다가 단지 아이디어 차원에서 생각해 본 것이었을까.
어떤 것이 됐든 지금은 거의 사라져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보다 원초적인 그리움을 생각해 본다. 그것은 어린 시절 누나와 동생들과 함께 공유한 추억이 있어 잊지 못한다.
서리가 내리기전 함께 캐내어 갈무리를 하던 일을 잊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단서. 누나는 당시 수예를 배우면서 처음으로 아담한 상보(床褓)를 만들었는데, 당초무늬가 태를 두른 그 보자기 가운데에는 탐스럽게 피어난 다알리아 꽃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잊을 것인가. 그토록 다알리아는 늘 내 곁에 가까이 있던 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흔하던 그 꽃을 구경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더구나 고향을 떠나와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가 없다. 왜 이토록 구경하기 어렵게 되었을까.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하기에는 수긍이 가지 않는 점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어느 한해 추위가 갑자기 한파가 몰려와 동해를 입지 않았을까. 그런 짐작도 해보는데 알 길은 없다. 이런 마당에 나는 실제로 다알리아 꽃을 대하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에 유년시절 누나와 동생들과 함께 호미질 하며 가꾸던 그 추억을 마음 속 깊이나마 소중히 간직해 본다. (2021)
첫댓글 그러고보니 다알리아꽃을 본 지가 언제였는지 아득합니다 과꽃이나 백일홍은 주위에 흔한데 다알리아는 좀처럼 보이지 않아요 하긴 요즘엔 나팔꽃이나 채송화 등도 거의 가꾸지 않는 것같더군요 꽃도 시대와 유행을 따라 배역이 바뀌는가 봅니다
다알리아꽃이 어느날 부터 주위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전에는 어느집 화단이나 심어져 있을 정도로 흔했는데 지금은 구경하기가 어렵습니다.
늦가울이면 누나와 동생들과 함께 호미로 뿌리를 캐내어 갈무리하던 생각이 많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