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을에 쓸쓸한 영화를 보고 싶은 것은 내 맘이 쓸쓸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진즉부터 영화 한 편을 벼루다 자동차극장을 찾았을 때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러브 스토리가 가을 밤 스크린에 옮겨져 있습디다. 포스터가 다소 진부하고 싼 티가 나긴 했는데 영화 보고 난 소감은 뒷간에서 꿩이 라도 건진 기분입니다. 구한 말, 불꽃처럼 짧은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해야만 했던 명성황후에게 가슴 시린 사랑이 있었다는 맹랑한 상상은 틀림 없이 역사 왜곡 문제를 야기 시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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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워워하시라. 신화-철학/신학-과학이 푸닥거리다 보니 현대 문명이 생긴 것이고, 세상은 탄피이며, 존재든 주체든 계속 변화 하질 않던가. 영화라는 장르가 사실과 허구가 적절히 가미되어 관객에게 보여 지는 것이라 이 영화(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 역사는 단지 배경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 험난한 역사 속에서 쓸쓸하게 살다가 처참하게 사라져간 한 여인에게, 먼발치에서나마 두려움을 함께 느끼고 목숨이 다하도록 곁을 지켜낸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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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에나마 품고갈 수 있었던 정인 한 사람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닐 듯싶습니다. 더군다나 "불꽃처럼 나비처럼"이란 영화가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니 말입니다. 저는 김 용균 감독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개인적으로 명성황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김 감독이 100억 원이나 되는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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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명성황후를 KBS 드라마를 통해 만났을 때 3번 4번씩을 보고 또 보면서 그 분을 존 애 하게 되었습니다. 명성황후가 일본 영사관과 자객들에 의해 시해 되고 화장 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노래방 룸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도록 꺼억, 꺼억 울었던 경험이 있는데 이참에 이 나라의 국모를, 그토록 허망하게 떠나보낸 우리들 자신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판타지로 삼으면 어떨 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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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을 기반한 실제적인 죽음 과정을 재구성 해보면 1. 새벽 일본군·낭인 침입 2. 황후 은신(작은 편전) 3. 궁녀·내관 폭행 및 오인 살해 4. 황후 발견 5. 궁녀 2명 피격 6. 황후 피격(칼·창에 의해 수차례 공격받아 사망) 7. 머리카락·의복으로 신분 확인 8. 시신을 건청궁 뒤뜰로 옮김 9. 시신에 등유를 뿌려 화형 10. 고종은 충격으로 실어증 비슷한 상태 11. 그날 오후부터 아관파천 구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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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무명'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을 알리는데 천주학쟁이이었던 어머니가 처형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본 무명은 낮에는 뱃사공으로, 밤에는 자객이 되어 거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한 여인을 만나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여인의 이름은 민자영. 곧 그녀는 고종과 혼례를 치르고 황후가 되는데 민 자영을 향한 연정을 숨길 수 없는 무명은 위험을 무릅쓰고 대원군을 찾아가 자영의 호위 무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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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를 업어서 피신시키고, 을미사변 때 낭인들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홍계훈 장군을 모티브로 했다는 무명(조승우역)은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순수하고, 때로는 강인함과 뚝심을 지닌 남자로 묘사됩니다. 한편, 불안한 운명 앞에서 슬픔과 두려움을 느끼고, 개화를 경험할 때 순수한 설렘을 표현하면서도 대원군에 맞서 확고하게 신념을 펼쳤던 민 자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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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승우와의 이루지 못할 사랑 앞에서 안타까워하는 수애를 통해 새롭게 비춰질 때는 이 미연, 최명길과 함께 내 마음 속 존 애 하는 님의 이미지로 더 커져갔습니다. 아, 깊어 가는 가을밤입니다. 나도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녀의 그림자라도 만지고 싶습니다. 그녀의 단아하고 기품 있는 미소가 보고 싶습니다.
2.
왜 가을 밤이면 쓸쓸한 영화를 보고 싶은 걸까? 내 마음의 결핍과 영화가 제공하는 위로는 어떤 관계일까?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구한말 역사 속에서 비극적으로 사라진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기록에 남지 않은 사랑과 인간적 감정을 상상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포스터나 광고 문구는 다소 상투적이지만, 실제 상영된 영화 속 장면은 보는 이에게 “뒷간에서 꿩이라도 건진 기분” 같은 희열과 감정을 동시에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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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 특히 을미사변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영화는 그저 역사 교육용 재연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펼친다. 관객은 짧고 비극적인 생을 살다간 명성황후에게, 역사 기록 속에 남지 않은 한 사람의 정인을 마음속에서 상상하며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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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영화 속 주인공 ‘무명’(조승우)은 실제 역사 속 홍계훈 장군을 모티브로, 황후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때로는 귀엽고, 순수하며, 강인한 인간적 매력으로 그려진다. 민자영(명성황후)의 인간적 모습과 함께 관객에게 다가오는 안타까움과 설렘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관객 각자의 감정적 공감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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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난 후, 역사의 비극과 허망함을 새삼 느끼면서도, 마음속으로 황후와 무명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 속에서 사랑과 인간적 연대의 가능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큰 장점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죽음의 재구성(일본군 침입 → 황후 은신 → 살해 → 화형 → 고종의 충격)과 영화 속 판타지가 결합되어, 관객은 비극 속에서도 인간적 위로와 감정적 연결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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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또한 관객으로 하여금 역사를 단순한 사건의 나열로 보지 않고,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인간적 선택과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허구와 사실을 적절히 섞어 관객의 감정을 동화시키는 방식은, 단순한 역사 교육이나 다큐멘터리보다 훨씬 더 깊은 공감과 성찰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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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 쓸쓸함을 느끼는 마음과 맞닿은 영화. 역사적 사실 위에 쌓은 인간적 상상과 사랑의 이야기가, 짧은 시간 동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동시에 감상하며, 비극 속에서도 인간적 위로와 사랑을 상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영화이다.
2025.12.11.thu.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