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수도원 주일 저녁은 모두가 모여서 웃고 떠드는 시간이다. 평일에 모일 때는 모임이나 나눔을 하거나 필요한 경우 급한 일도 하게 되지만 주일 저녁은 가능하면 순수하게 놀이를 하는 시간으로 둔다.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축일 파티나 드라마 시청을 하기도 한다.
요 근래에 공동체에서는 가능할 때 “가족끼리 왜 이래” 라는 드라마를 함께 보고 있는데 참 따뜻한 가족 드라마라고 생각된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웃고 울면서 보고 있다. 등장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잘 드러나고 때로는 서로를 다독이고 때로는 소리 내서 싸우면서 소통하고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가족’이란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노래가 있는데 처음 듣고서 깨끗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고 들을 때마다 노랫말이 쏙쏙 들어왔다. 내용이 이렇게 짧았나 싶을 만큼 단순하다. 하지만 노래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 노래는 1980년대 로커스트라는 그룹이 불렀던 곡을 가수 요조가 리메이크해 부른 것이다.
내가 말했잖아 < 요조 >
내가 말했잖아 기쁠 땐 웃어버리라고
복사꽃 두 뺨이 활짝 필 때까지
내가 말했잖아 슬플 땐 울어버리라고
슬픔이 넘칠 땐 차라리 웃어버려
소녀야 왜 또 이 밤 이다지도 행복할까
아이야 왜 또 이 밤 이다지도 서글플까
(http://www.youtube.com/watch?v=syzDHaqOKDY)
이 노랫말처럼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울고 행복과 슬픔을 함께 지고 가는 것이 가족이다. 서로 마음이 상해서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워 서먹해져도 누군가 말을 걸면 자연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게 되는 것이 가족이다.
수도생활을 하면서도 이와 같은 것을 겪게 된다. 서로 웃으며 마음을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오해나 섭섭함에 멀어졌다가 또다시 어느 순간 함께하며 울고 웃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이다. 가족이 아니라면 싫으면 안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가족은 그럴 수가 없다. 끝까지 함께 가는 것이다.
2015년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면서 나름 결심을 세운 것이 ‘오늘을 살자’였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늘을 살 때, 교황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좀 더 기쁘게,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얼마 전 이 드라마에서 아버지의 대사 중 와 닿는 표현이 있었다. “그래, 그게 인생인 거지.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날들을 매일매일 의미 있게 만들어 가는 것, 그게 인생인 거지.”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갈 때 똑같이 흐르는 듯 보이는 그날이 의미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에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하게 하셨다. 또한 주님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마태 6,31-32)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매일 주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받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일 만나를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매일의 양식을 주신다. 우리는 날마다 그 양식을 나누며 살아간다.
주어진 오늘을 기쁘게 사는 것, 그것이 올해 과제이며 선물이다. 그것은 슬픔이나 어려움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내게 주신 양식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가정 안에서 나누며 함께 헤쳐 나간다는 것이다. 때로 투닥거려도 그 고개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기쁠 때 함께 웃고 슬플 때 함께 울며 행복과 슬픔을 안아가는 것이다.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께 그 모든 것을 맡기며 걸어갈 때 그분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믿기만 한다면....
황난영 수녀 (율리아나)
성바오로딸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