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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흔든 여인(21)-
형제 왕 섬긴 애욕의 부나비 -우왕후
초여름의 나른한 잠에서 깨어난 우 왕후는 버릇처럼 옆자리에 누워 있는 왕의 허리를 더듬었다. 17년 동안 왕을 섬겨 왔지만 웬일인지 우 왕후는 아직 대를 이을 왕자 하나 얻지 못하고 있는 터여서 기회 있을 때마다 왕자의 잉태를 기대하고 있었다.
"마마……."
팔을 뻗어 왕이 허리를 조심스럽게 더듬어 나가던 우 왕후는 무엇인가 섬쩍지근한 기분이 들어 재빨리 팔을 거두어들였다.
"아니, 그럴 리가!"
우 왕후는 침상에서 냉큼 몸을 일으켜 불을 밝혔다. 그리고는 왕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마마, 마마!"
왕은 대답이 없었다. 우 왕후는 무서움을 누르고 왕의 상체를 흔들어 본다. 끄덕도 않는다. 맥을 짚어 본다. 맥박이 뛰지 않는다.
"아……."
왕은 죽은 것이다. 서기 197년 초여름, 재위 19년 만에 고구려 제 9대 고국천왕은 그렇게 죽어 버렸다.
우 왕후는 왕의 죽음 앞에서 슬픔에 눈물짓기보다 변함없는 국가의 권병과 새로운 애욕의 상대를 먼저 생각해 보았다.
'내 손아귀에서 권세가 떠나서는 안 된다. 왕자 하나도 낳아 보지 못한 이 젊은 육신이 대궐 밖으로 밀려나 살 수는 없으니.'
우 왕후는 17년 전 2월에 왕후가 되어 대궐 안으로 들어오던 때가 바로 엊그제 일처럼 떠올랐다.
연나부 우소의 딸은 당시 열다섯. 꽃다운 낭자의 자색은 이미 근동에 파다하게 알려져 있었다.
우소의 딸은 밤마다 꿈을 꾸었다. 젊은 새 왕이 자기를 말 위에 태우고 거대한 왕궁으로 들어가는 그런 꿈이었다. 언젠가는 또 사냥 길에 나선 젊은 왕에게 발각되어 황공하게 몸을 바치는 그런 꿈도 꾸었다. 그런 꿈을 꾼 이튿날 아침에 우 낭자는 아버지를 잡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버지, 새 임금은 사냥을 즐기시나요?"
"그래. 새 임금은 키가 아홉 척이나 되고, 커다란 쇠가마 솥을 한손으로 번쩍번쩍 들어 올릴 만큼 힘도 장사란다."
새 임금 남무는 신대왕 백고의 둘째 왕자였으나 신대왕이 승하하자 첫째 왕자 발기가 못나고 어리석다는 이유를 들어 나랏사람들이 새 왕에 남무를 추대하게 되었다고들 한다.
"아버지, 새 임금은 또 모든 일을 처리할 때 백성의 말을 잘 듣고 이를 잘 판단하며 관용과 용맹을 함께 갖춘 어른이라 들었는데 사실이온지요?"
아버지 우소는 딸이 말끝마다 새 임금의 자표며 용맹을 들고 나오는 것이 은근히 걱정이 되어 짜증을 내었다.
"네가 새 임금에게 정을 두고 있는 모양이다만 안 될 소리다. 마마께서는 너 같은 미천한 처녀에게 눈을 돌리시지도 않을 터이니까."
우 낭자는 그러나 아버지에게 엉뚱한 부탁을 하였다.
"아버지, 새 임금을 한번만 만나 뵙게 해 주세요."
"만나서 어쩌겠다는 거냐?"
"새 임금님을 뵙기만 하면 임금님의 마음을 소녀 쪽으로 돌아서게 하겠나이다."
"허, 네가 새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겠다구?"
어려서부터 용모가 빼어나게 어여쁜 딸이기는 하였다. 어디 용모뿐이랴. 지모와 정략이 출중한 딸이었으니, 딸의 요구대로 왕을 한번 만나게만 해 준다면 그야 무슨 귀걸이 날는지 모를 일이었다.
우소는 고국천왕 남무가 사냥 나오는 날을 미리 알아내어 딸에게 일러주고 결과를 기다렸다.
새 임금 고국천왕은 사냥의 명수였다. 우소 부녀의 소원대로 고국천왕은 며칠 뒤 사냥 길에 올랐다. 우소 부녀는 사냥 길에서 왕을 꾀어내기로 한 것이다. 고국천왕은 우 낭자가 얽어 놓은 지혜의 덫에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었다.
깊고 깊은 산 속이었다. 우 낭자는 멧돼지를 쓰러뜨려 놓고 혼자 기다렸다.
희끗희끗한 눈발이 우 낭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고국천왕의 일행이 산 속에서 낭자와 화살에 맞은 멧돼지를 발견하기는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멧돼지는 낭자가 잡았는가?"
"그러하옵니다. 마마."
9척 장신의 늠름한 젊은 왕은 멧돼지와 낭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참으로 아름답고 재기에 넘쳐 보이는 낭자였다.
고국천왕은 주위를 돌아보고 분부했다.
"저 낭자와 멧돼지를 수레에 태우고 궁으로 돌아가자."
왕의 힘으로써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날 밤 왕은 열다섯 살 난 우소의 딸을 침전으로 불러들여 하룻밤의 인연을 맺었다.
이튿날 중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왕은 이렇게 알렸다.
"과인은 연너부 우소의 딸을 비로 맞으리로다."
서기 180년, 고국천왕 즉위 2년 음력 2월의 일이었다.
어린 우 왕후는 고국천왕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국가의 권병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왕후의 친척들을 하나 둘 궁궐 안으로 불러들여 자리를 잡게 하고, 그들의 자제들도 아울러 권세를 잡게 하였다. 자연히 왕후의 친척들은 권세를 믿고 교만해지는가 하면, 사치를 일삼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자녀를 약탈하여 노비로 삼고 전택을 함부로 빼앗아 나라 안 사람들을 통분시켰다.
고국천왕은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알고 몸을 떨었다.
"괘씸한 것들 같으니라구! 당장 국법을 어기는 자들을 잡아 주살토록 하라."
그러나 왕의 명령을 받은 군사들이 우 왕후의 친척들을 잡으러 가자 그들은 먼저 그 낌새를 알고 오히려 모반을 서둘렀다.
일이 다급하게 된 고국천왕은 급히 병사를 징집, 이를 토평하고 영을 내렸다.
"근자에 관직을 은총으로서 주고 벼슬을 바로 올리지 아니한 까닭으로 그 독이 백성에게 미쳐 우리 왕실을 동요시키니, 이는 과인의 밝지 못한 탓이라. 너희들은 4부로 하여금 현양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천거하라."
고구려 4부에서는 즉시 동부의 안유를 천거했다. 왕이 안유를 불러 국정을 맡기려 하자 그는 손을 저어 사양했다.
"마마, 미신은 용렬하여 대정에 참여하기 부족하옵니다."
"그러면 그대 말고 대정에 참여할 숨은 사람이 있단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전하."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해 보오."
"얘, 마마. 그는 바로 좌물 촌에 사는 을파소란 사람이온데, 이 사람은 일찍이 유리왕 때의 대신 을소의 손으로서 성품이 강건하고 매사를 생각해서 헤아리는 능력이 깊고 뛰어난데, 세상에서 쓰지 않고 있으므로 지금은 다만 밭갈이에 힘쓰며 자급하고 있사오니 대왕 전하께오서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오면 을파소를 불러서 쓰도록 함이 어떨까 하나이다."
왕은 사자를 파견하여 을파소를 불러들였다. 처음에 낮은 벼슬로 을파소를 쓰려 하였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신은 우둔하여 감히 엄명을 당하지 못하겠사오니 원컨데 현량한 사람을 뽑아 고관을 주어 대업을 이룩하소서."
고국천왕은 내심 '아, 이 사람이 벼슬이 낮아서 응하지 않는구나.' 판단이 되어 곧 국상(국무총리)을 제수하여 정사를 맡아 보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 역사상 가장 우수한 재상 중의 한사람인 을파소가 고국천왕 대에 탄생하게 되 셈이었다. 이는 또한 우 왕후가 그의 친척들을 궁 안으로 끌어들인 결과에서 빚어진 일이니 말하자면 전화위복이 된 꼴이었다.
어떻든 을파소가 정사를 맡자 우 왕후는 권세의 최고 지위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우 왕후의 시들 줄 모르는 권세욕을 미리 방비라도 하겠다는 듯이 왕은 때 맞춰 이런 하교를 내렸다.
"빈부와 귀천이 없이 국상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는 이를 멸족 할 것이니라."
친척으로서 세력을 잡고 있던 자들은 모두 국상 을파소의 눈 밖에 나 떨려나버렸다. 우 왕후는 이제 날갯죽지 잃은 새 꼴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저앉을 우 왕후가 아니었다. 그녀는 권세 대신 더 큰 욕망을 이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왕자를 낳자. 그래서 내가 장차 태후가 되는 게야."
우 왕후는 기회 있을 때마다 왕을 보채어 침전으로 들고는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우 왕후에게는 태기가 없었고, 근간에 왕은 잠자리에서 기운이 쇠하여 자주 경련을 일으키곤 하였다. 이러다가 길사라도 하면 어쩌나 하여 겁이 나기도 했으나, 우 왕후는 왕자를 보고
싶은 욕망에 왕의 몸이 쇠해 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잠이 든 왕을 흔들어 깨운 뒤 욕심대로 교접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왕의 죽음---. 그러다가 닥친 왕의 죽음을 앞에 놓고 우 왕후는 발상하지 않았다.
'왕의 죽음을 숨기자. 왕의 후사가 없으니 내 마음에 드는 남자로 차기 왕을 삼고 그를 사로잡아야 한다.'
우 왕후는 왕의 시신 위에 이불을 뒤집어씌워 놓고 대궐 밖으로 나왔다.
'먼저 왕의 형 발기를 찾아가 의논해 보자.'
밤중에 변복을 하고 나타난 우 왕후에게 발기는 꾸짖기부터 했다.
"밤이 깊은데 어인 나들이시오?"
"왕의 후사를 상의해 볼까 하고 왔소."
발기는 왕이 승하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언성을 높였다.
"이 밤중에 할 일이 그리도 없어서 왕의 후사를 의논하러 왔단 말이오?"
"그렇소, 그대가 왕의 형제 중에 장자이니 차기 왕위는 그대가 잇는 게 마땅하오."
"뭐요? 하늘의 역수는 돌아가는 바가 따로 있는데 어찌 이를 가벼이 의논하겠소. 황차 부인이 야행을 하는 것이 한나라의 황후로서 어찌 예라 하리오!"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우 왕후는 돌아서서 그길로 발기의 동생 연우의 집으로 갔다. 발기에게 자기의 뜻을 거부당했다는 부끄러움과 연우라면 자기 소원을 들어 줄 것이라는 벅찬 기대를 안고 우 왕후는 마침내 연우와 맞닥뜨렸다. 의관은 정제하고 나온 연우는,
"이 밤중에 어인 행차십니까?"
하고 정중히 맞는다.
"저, 실은……"
"아, 아, 밖에서 이러시지 마시고 방안으로 듭시오. 혹 아랫것들이 보면 흉이 될까 저어됩니다."
연우는 우 왕후의 옷소매를 잡을 듯이 다가서서 연신 허리를 굽실거린다.
우 왕후는 주저하지 않고 연우의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연우는 귀한 손을 맞아 손수 음식을 차려 내놓고 들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우 왕후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아주버니, 들어 보시구려."
"예, 말씀하시옵소서. 중전마마."
"대왕께서 승하하셨소!"
연우는 미리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는지 별로 놀라워하질 않는다. 사이를 두지 않고 우 왕후는 발기의 불손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아주버님! 대왕께오서는 왕자가 없으시니 마땅히 대왕의 바로 위의 형인 발기가 어른이 되어 뒤를 이어야 할 것이 아니오?"
"그, 그렇습지요, 마마."
"그러한데도 발기는 나에게 이심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오만무례하게 대하니 이를 어찌했으면 좋겠소? 마땅히 아주버니가 차기 보위를 결정해 주오."
연우는 가슴이 떨렸다. 우 왕후는 지금 자기가 왕이 되어 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연우는 예를 더하여 칼을 들고 고기를 썰었다. 귀한 자리를 들고 온 형수에게 고기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너무 서두른 탓일까, 연우는 잘못하여 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우 왕후는 재빨리 치마끈을 끌러 그 상한 손가락을 싸매 주었다. 상한 손가락을 형수 앞으로 내미는 연우나 그 손가락을 치마끈으로 메어주는 우 왕후의 손은 하나같이 와들와들 떨렸다.
"아주버니, 보위에 오르십시오. 대왕의 유언이라고 청하고 밝은 날 위에 오르면 아무도 흠을 잡으려는 자가 없을게요."
"보위에…….제가……"
"주저하지 마시오, 아주버니. 새 왕이 되셔서 이 몸을 보살펴 주시면 이 몸 또한 아주버님을 하늘같이 모시겠소."
더 주저할 것이 없었다. 연우는 우 왕후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 왕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사이 밤은 무척 깊어 있었다.
"밤이 깊어서 무슨 뜻밖의 일이 일어날까 두려우니 그대는 나를 궁까지 바래다주시오."
"물론입지요, 마마."
연우는 우 왕후를 뒤따르게 하고 궁으로 향했다. 우 왕후는 연우의 곁으로 바짝 다가서서 그의 손을 잡고 궁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우 왕후는 거짓으로 선왕의 유명이라 꾸며 군신으로 하여금 연우를 즉위시켜 왕으로 삼았다. 그러자 과연 예상대로 발기가 크게 노하여 군사를 이끌고 와서 궁성을 포위하며 꾸짖고 나왔다.
"연우야 이놈……. 형이 죽었으면 다음 아우에게 왕위를 맡기는 것이 예의인데 네 놈은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건너뛰어 왕위를 빼앗았으니 큰 죄를 저질렀다. 빨리 나와라, 이놈! 만일 궁 안에서 걸어 나오지 않으면 네 처자에게까지 죽음이 미칠 것이니라."
그러나 연우는 궁성 문을 굳게 다독 사흘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바람에 궁성 밖에 있던 연우의 처자는 발기의 군사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백성들은 포악한 발기보다 연우 편이었다. 발기는 백성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그의 처자를 이끌고 요동으로 달아나 태수 공손도를 잡고 지원을 요청했다.
일이 그렇게 돌아가자 연우도 끝의 동생 계수를 시켜 형 발기를 치도록 명했다.
싸움은 계수의 승리로 끝이 났다.
발기의 시체를 거두어 왕례로써 장사를 지내 준 연우는 발기의 반란으로 죽은 아내, 왕후의 자리를 메워야 했다.
그러나 산상왕 연우는 우 왕후의 몸에서 왕자를 얻지 못하자 궁성 밖에 나가 사냥하는 재미와 골 깊은 사천에 나가 기도하는 일로 소일하다시피 했다.
산상왕 7년 봄, 왕은 꿈을 꾸었다. 하늘은 꿈속에서 그렇게 알려왔다.
"내 너의 소후로 하여금 생남하게 하여 근심이 없도록 하리로다."
왕은 깨어나 군신들에게,
"꿈에 하늘에서 순순히 이 같은 말을 해왔으되 과인에게 소후가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국상 을파소는 오래 전부터 우 왕후의 지나친 욕망과 형제를 섬겨 온 부정한 정절을 못마땅해 하던 참이라,
"하늘의 명함은 가히 헤아릴 수 없사오니 대왕께서는 조금만 이를 기다리소서."
하고 은근히 소후를 맞으라 권하고 나왔다.
산상왕 12년 겨울, 사냥길에서 왕은 멧돼지를 만난 추적하게 되었다. 종자들이 멧돼지를 쫓아 주통촌에 이르렀으나 잡지를 못하고 갈팡대는 사이에 엉뚱하게도 나이 스물쯤 되어 보이는 낭자가 쉽사리 잡아 놓지를 않는가. 왕은 이 말을 듣고 낭자의 집을 미행하여 그 용맹스런 낭자와 하룻밤 인연을 맺는다. 후녀라 일컫는 이 낭자는 왕의 품을 파고들면서,
"대왕의 명령이라 피하지 못하겠사오나 만약 아이가 있게 되면 버리지 마옵소서."
하고 다짐을 받고서야 받아들였다.
우 왕후는 왕이 주통촌의 후녀와 정을 통한 것을 알고 질투심으로 피가 끓었다. 그녀는 몰래 군사를 보내어 후녀를 죽이려 했지만 후녀는 이 소문을 알고 급히 남복으로 바꿔 입고 몸을 피했다.
마침녀 후녀는 왕자를 낳았다. 왕은 들에서 돼지를 만나 인연이 되어 아이를 낳았다. 하여 '교체'라는 이름을 지어 불렀다. 후녀를 소후로 봉한 왕은 이제 늙은 우 왕후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우 왕후의 심사는 날이 갈수록 사나워져서 어린 태자를 해하려 했으나 그 때마다 하늘을 교체 태자편이어서 번번이 실패로 끝나곤 했다.
서기 227년 초여름에 산상왕 연우가 죽고 교체가 왕위에 올랐다. 교체는 우 왕후를 높여 태후로 모셨다. 늙고 쇠잔해진 우 태후는 새 임금 동천왕의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만년을 살아갔으나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부끄러운 과거가 가슴을 울릴 뿐이었다.
동천왕 8년 가을에 우 태후는 마침내 과욕과 부정의 일생을 마쳤는데,
"내가 좋은 행실을 못하고 살았으니 장차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 가 국양(고국천왕)을 뵈리오. 내 죄로 볼진대 거리에다 시신을 버려도 마땅하겠네만 기왕지사 지하에 들어가 눕게 될 몸 산상왕 곁에 묻어 주오."
하고 유언하기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산상왕은 아들 동천왕의 꿈에 나타나서 우 왕후와 함께 눕기를 거부했다. 하는 수 없이 동천왕은 산상왕과 우 왕후 묘소 사이에다 일곱 겹의 소나무를 심어 막아 주었다. 부정과 과욕의 생애는 이처럼 죽어서도 생전의 두 남편과 헤어져 살게 된 셈이니, 살이 있었을 때 우 왕후는 아마 두 남편으로부터 도타운 정을 받지 못한 여인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연우(고구려10대왕 산상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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