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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finished Portrait - 오형근 사진집
오형근 지음 / 한미사진미술관 / 2010년 4월
평점 :
찾아 읽는 사진책 137
사진작가는 어디에 있는가
― Unfinished Portrait
오형근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펴냄,2010.4.9./6만 원
사진작가는 어디에 있을까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어느 자리에 있는가요. 국회의사당에서 정치꾼 모습을 찍는 사진기자는 어느메쯤 서서 사진을 찍을까요. 경기장에서 운동선수 모습을 담는 사진기자는 어디로 가서 사진을 찍는가요.
골목을 찍거나 도시를 찍거나 시골을 찍거나 숲을 찍거나 바다를 찍는 이들은 어느 만큼 가까이 다가서며 사진을 찍을까요. 이웃을 찍거나 동무를 찍거나 살붙이를 찍거나 낯선 나그네를 찍는 이들은 서로 어느 만큼 살가이 사귀거나 지낸 다음 사진을 찍는가요.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은 어느 자리에 있는가요. 영화를 찍을 때에, 연극을 할 적에, 만화를 그릴 때에, 저마다 어느메쯤 서서 일을 할까요.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는 언제나 아이 곁에 있습니다. 눈으로 살필 수 있는 거리만큼만 떨어질 뿐, 아이도 어버이도 서로 멀리 있지 않습니다. 구슬땀 흘리며 노는 아이들은 서로 살내음 땀내음 숨소리 고스란히 느낄 만큼 가까이 얼크러져 놉니다.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몸이 닿고 손을 잡으며 어깨를 겯습니다. 흙을 일구는 일꾼은 손에서 발에서 몸에서 흙내음이 납니다. 언제나 흙에서 살아갑니다. 일터도 흙으로 이루어진 들이요, 삶터도 흙으로 지은 집입니다. 하루 내내 흙하고 어울립니다. 버스나 택시를 모는 일꾼은 하루 내내 버스나 택시에서 살지요. 고기를 잡는 고기잡이는 하루 내내 짠내 고기내 받아들이며 살아요. 밥짓는 일꾼 손에서 칼자루와 수저가 떨어질 틈 없습니다.
사진작가한테서는 언제나 필름내음(또는 디지털파일내음이라 해야 할 텐데, 디지털파일에도 냄새가 있겠지요)이 풍겨야지 싶습니다. 사진작가 손에는 늘 사진기가 있어야지 싶습니다. 사진을 찍는 작가는 스스로 사진으로 찍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머물거나 살거나 이웃하겠지요.
숲을 찍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숲에 머뭅니다. 숲내음 풍깁니다. 멧골을 찍거나 시골을 찍는 사람이라면 멧골이나 시골에서 오래 머뭅니다. 멧골내음이나 시골내음 풍겨요. 모델을 찍는 사람도 이와 똑같아요. 모델하고 하루 내내 어울려 스튜디오에서 땀방울 쏟습니다. 모델내음 풍길 테지요. 골목을 사진으로 담자면, 저잣거리를 사진으로 옮기자면, 정치판이나 사회운동 흐름을 사진으로 찍자면, 운동경기를 사진으로 싣자면, 저마다 이녁 ‘사진자리’를 찾아서 오래도록 머물거나 지켜보아야 합니다. 골목내음 풍기고, 저잣거리내음 풍기며, 정치꾼내음이나 운동선수내음 물씬 풍깁니다.
오형근 님이 빚은 사진책 《Unfinished Portrait》(한미사진미술관,2010)를 생각합니다. 한국말 아닌 영어로 책이름 붙입니다. 책이름이 뜻하듯, 오형근 님 스스로 어떤 자리에 서는가를 보여주는 ‘사진말’이 되고 ‘사진자리’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Unfinished Portrait”는 한국말일까요? 영어일까요? 무슨 뜻일까요? 사진작가 오형근 님은 스스로 어떤 뜻으로 이러한 이름을 붙였을까요?
‘끝나지 않은’ 모습인가요. ‘마무리되지 않은’ 모습인가요. 한자말로 ‘미완성(未完成)’이라 하면 될까요. 그런데, 한자말 ‘미완성’은 한국말로 “덜 된”을 뜻합니다. 그러면 ‘덜 된’ 모습인가요. 또는 다른 한자말로 ‘중간인(中間人)’이라 하면 어울릴까요. 그런데, 한자말 ‘중간인’은 국어사전에 없어요. 다만, 한자말 ‘중간’은 한국말로 “이쪽도 저쪽도 아닌 사이”를 가리켜요.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습인가요.
한국말도 영어도 아니라 할 “Unfinished Portrait”는 그야말로 온갖 말마디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아마,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읽고 느끼겠지요. 똑같은 한국말이라 하더라도 ‘끝나지 않은’이라 말할 때하고 ‘마무리되지 않은’이라 말할 때에는 뜻과 느낌이 사뭇 달라요. 또는 ‘끝맺지 못한’이라 할 수 있고 ‘마무리하지 않은’이라 할 수 있어요, 말끝 하나 살며시 바꿀 뿐인데, 이때에도 뜻과 느낌이 참 다릅니다.
때로는 ‘설익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푸름이(청소년)’라 할 수 있어요. 어느 사람은 ‘징검다리’라 할 수 있겠지요. 아직 무르익지 않았대서 ‘설익은’ 모습입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밝고 푸른 빛이라 해서 ‘푸름이(청소년)’ 모습입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넘어서는) 이야기라 해서 ‘징검다리’ 모습입니다.
사진작가 오형근 님은 무슨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 어떤 이야기를 스스로 빚고 싶었을까 궁금합니다. 오형근 님 스스로 어떤 사진자리를 찾으려 하는지 궁금합니다. 오형근 님이 일구어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사진말은 어떤 무늬와 결로 빛나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이 읽기 나름’이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말하기 나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진 한 장 이렇게 읽’지만, 사진작가는 ‘사진 한 장 저렇게 말’합니다. 사진작가는 ‘사진 한 장 저렇게 찍었다 말하’는데, 사람들은 그런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 한 장 이렇게 읽고 지나가’곤 합니다. 그럴밖에 없는 까닭이, 사진책 《Unfinished Portrait》에 나오는 사람들을 다른 사진작가나 여느 사람이 사진 한 장으로 담는다 할 때에 어떤 모습이 나오겠어요? 다 다른 모습이 나오겠지요. 다 다른 삶을 비추고, 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사진책 《Unfinished Portrait》란 오형근 님이 살아온 모습이요, 오형근 님이 생각하는 사랑이며, 오형근 님이 나아가는 생각입니다. 이태원에서 저 사람을 만났기에 ‘저 사람’을 보여주지 않아요. ‘저 사람을 빗대어 사진작가 넋을 보여줍’니다. 아줌마를 찍었기에 ‘아줌마’를 보여주지 않아요. ‘아줌마를 불러서 사진작가 삶을 밝힙’니다. 학교옷 차려입은 가시내를 찍었으니 ‘여고생’을 보여주지 않아요. ‘여고생 모습에 비추어 사진작가 사랑이 어떠한가’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사진은 잘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다큐사진일 때에만 사진이 아닙니다. 사람 얼굴을 찍었기에 초상사진(얼굴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는 따로 없으며, 한국을 말하는 사진 또한 딱히 없습니다. 사진은 모두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진은 모두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사랑을 꿈꾸며 서로 어깨동무하고픈 이야기 한 자락입니다. 바라보는 자리와 생각하는 자리와 사랑하는 자리와 꿈꾸는 자리가 살포시 만나 사진 한 장 태어납니다. 4346.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