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기습작전
박달촌과 수련원 수비를 담당하고 있던, 백 부장 해천은 갈색머리 설태누차의 부친인 설걸우 천 부장에게 박달촌 마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이유로 단단히 문책 問責 당하였다.
수련 기간 동안, 중부의 여동생과 어머니는 한준의 부모들과 함께 옥전에서 배를 타고 대릉하로 떠나고 없었다.
오백 부장들도 상부로부터 별다른 지시가 없자, 박달촌 해천의 군영에 합류했다.
넓은 수련장 터에 임시 막사를 세우고, 그곳에서 군 복무를 하기로 하였고, 거처 하던 집을 적의 기습 방화로 소실 燒失되어 버린 동방 선생과 석늑, 향기는 설걸우 천부장이 관할하고있는 옥전의 본군영 本軍營으로 갔다.
설주란의 아들 위지율 오백 부장도 외삼촌인 설걸우 천부장 본영으로 갔다.
해천 백 부장은 박달촌의 경비를 담당하다 보니, 수련생들의 훈련과정을 틈틈이 보아 왔었다. 해천은 그 혹독한 훈련과정에 내심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군에서 지금까지 훈련받은 것은 동네 애들 장난질이나 다름없었다.
하여, 오백 부장들의 능력이 어느 정도 인지 대충 감은 잡고 있었다.
그러니 누가 무어라 하지 않았어도 스스로 조심하게 되었다.
수련생들의 활용을 원계획대로 한다면 백 부장을 다섯 명 거느려야 하는데,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해천 백 부장이 오백 부장을 네 명이나 수하에 두게 되었다.
해천은 오백 부장을 네 명이나 데리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상당한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백 부장들의 모임이나 회의 때는 득의의 표정을 지으며, 큰 술잔을 높이 쳐들고 좌중을 휘둘려보며 큰소리를 치기도 하였다.
마치, 자신이 천부장이나 된 듯이 호기 豪氣를 부리기도 하였다.
하긴, 군사 수를 제외시키고 직급만 따진다면, 자신의 수하 手下에 오백 부장이 4명이니, 천부장 2명과 비교할 만할 위세다.
그것뿐만 아니라 제1기 탈락생 5명과 지난, 일 년간 체계적인 혹독한 수련을 받은, 제2기생 10명도 같이 있다.
모두 백 부장급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단주 출신의 단씨 형제들도 의료술 醫療術과 더불어 기본적인 무술 실력은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 현재 박달촌에 있는 장정들은 불미스러운 사고로 인하여 일선에 배치할 원계획이 무산된 것이지, 개개인의 실력은 모두 수준급이다.
아니, 수련생으로 발탁된 그 자체가 평균 이상의 체격과 체력 그리고 무술의 기본기를 이미 어느 정도 갖춘 준재 俊才들이 아닌가.
그 준재들이 더구나,
삼 년 동안 당대 무술 최고수로 누구나 인정하는 두 사부를 모시고 혹독한 수련을 받았으니, 이제 그들의 무예 실력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본 목적은 준재들의 기량을 더 연마시켜 일당백의 용장들로 키우고, 나아가서는 일선의 지휘관으로 양성할 계획이었는데, 적의 소규모 기습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는 허술한 약점이 드러나자, 상부에서는 실망감을 느끼고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모른 척 해 버린다.
어쨌거나, 지휘관의 소양 素養 부분은 비록 제대로 이수 履修하지 못하였지만, 개개인의 무용 武勇만큼은 최고치다.
해천은 그래서 적들에게 당한 습격의 보복으로 역 기습 逆 奇襲을 도모 圖謀하고 있었다.
물론 오백 부장들의 능력을 믿고 나온 계획이다.
오백 부장들의 무술 실력은 일당백 一當百까지는 아니더라도, 일 인당 적의 정예병 7, 8명은 충분히 대적할 것 같았다.
신임 백 부장 2명과 탈락한 1기생 3명, 2기 수련생 열 명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일주야 후의 그믐날로 기습 계획을 세웠다.
강 주변에 세작 細作을 풀어 계속 적의 동태를 살핀다.
마침 때가 왔다.
세작의 정보에 의하면 200명이 주둔하던 강 건너 적의 군영에서 이틀 전, 오전에 100명 정도의 무리가 조선하 하류로 이동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강 건너 적진의 병사는 100명 정도뿐이다.
병력의 반이 줄어든 것이다.
야간 기습을 하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
쌍방 간에 같은 인원이라도 몰래 습격하면 성공률은 더 높아진다.
더구나 아군 측은 최정예 병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오백 부장들도 매우 긍정적으로 호응한다.
‘십이지살 선우 사부님의 원수를 빨리 갚아야 하는데’ 마음 속으로 모두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본 진영은 늑대가리와 한준이 병사 20명을 데리고 지키기로 하고, 나머지 100명은 모두 기습 돌격대로 편성하였다.
한준도 이중부와 같이 돌격대로 참가하길 원하였으나, 천남성의 지독한 독기로 인하여 아직도 몸 상태가 완전치 못하다는 이유로,
“군영에 남아, 진지를 지켜라”고 해천이 별도로 군령 軍令을 내렸다.
먼저, 돌격대의 선봉은 이중부와 일 궁 두 장수가 20명을 이끌고, 본대 80명은 해천 백 부장이 팽이와 직접 지휘한다는 계획이다.
이중부는 향기의 백부 伯父인 십칠 선생으로부터 선물 받았던, 애지중지 愛之重之하며 아끼던 단창을 들고 기습대 奇襲隊를 지휘하였다.
야간 기습에는 신속함이 중요하므로 장창보다는 단창이 소지하기에 편리하였다.
이윽고
그믐날, 자정이
지나자 강을 건넌 이중부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수련 동기생 일궁과
먼저 적의 군영 한가운데 가장 큰 막사를 목표물로
정하여 쳐들어갔다. 뒤에는 돌격대 20명이 빠르게 따라오고 있었다.
돌격대의 반은 장창을 소지하고, 반은 휴대에 편리한 장검과 비상용 단검만 착용하고,
가볍게 검은 경장 차림으로 출전했다. 선봉 先鋒에 선 돌격대 20명은
재빠르게 적의 진영을 우회 통과하여, 적의 지휘소로
보이는진영중 가장 큰 막사로 진입하여 앞에
졸고 있는 초병 2명을 장창으로 가볍게
처리하고, 장검으로 막사의 출입문
위쪽을 자르고 기세 사납게
안으로 돌진 突進
하였다.
그런데,
막사 안이 텅 비어 있다.
아무도 없다.
마른 갈대만이 막사 중앙에 사람 키 높이만큼 쌓여있다.
그러고 보니 막사를 지켜야 할 초병도 늙은 죄수 같았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부터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너무 쉽게 적의 본진을 들이친 것이었다.
‘아차’
“속았다, 적의 계략이다. 빨리 후퇴하라”
이중부가 뒤쪽 아군을 돌아보며, 고함을 치지만 선봉대 20명 중, 이미 막사 안으로 반 이상이 들어온 상태다.
몸을 되돌려 보지만 아군들 때문에 나가지를 못한다.
갑자기 사방이 환하게 대낮처럼 밝아지더니, 불화살이 사방에서 빗발친다.
막사를 두른 천에는 기름을 먹어놓았는지 불길이 삽시간에 사방으로 확 번진다.
입구 통로는 아군으로 인하여 뒤죽박죽으로 막혀버렸다.
시커먼 매캐한 연기가 막사 안을 채워간다.
이중부는 뒤 따르던 부하들에게 크게 고함을 지른다.
“모두 코를 막고 숨을 쉬지 마라”
적의 화살을 염두에 두고, 막사의 먼저 불붙은 곳 반대 쪽을 숨을 참아가며, 불타는 열기에 얼굴이 타는 고통을 견디며, 칼로 열십자 (十) 형태로 겨우 베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바깥은 더 심각한 아수라 阿修羅 장이다.
화살을 맞은 아군 대부분이 쓰러져있다.
중부도 오른쪽 어깨에 화살 한 대를 스쳐 맞았다.
상황이 다급하다 보니 아픔을 자각할 틈도 없다.
얼른 왼손으로 화살을 뽑고는 불빛을 피해, 어두운 곳을 향하여 내달려간다.
막사 안까지 따라 들어온 병사 들은 다행히 중부를 따라 뒤좇아 나와, 거나마 큰 부상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자, 막사 바깥의 병사들이 사격 목표물이 되어버렸고, 게르 안으로 진입하였던 선봉 돌격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이제 화살은 방향을 돌려, 돌격대 본대 本隊을 향해 무자비하게 쏘아대고 있었다.
적군의 매복 병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
세작들의 보고가 잘못되었음을 통감한다.
중과부적 衆寡不敵이다.
이를 감지한 이중부는 집중 공격을 받는 아군 본대를 포기하고, 어두운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한다.
일궁과 칠, 팔 명의 병사도 이중부를 뒤따른다.
도중에 앞을 가로막는 적병 세 명과 뒤이어 나타난 초병 두 명을 일 궁과 합세하여 장검으로 베고, 강의 상류 쪽으로 계속 뛰어갔다.
박달촌과는 반대 방향이다.
도주병들은 지금 방향이 문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 急先務다.
평지는 위험하므로 무조건 높은 산을 향해 마구 뛰었다.
다행히 그믐밤이라 막사 주위의 불빛만 벗어나니 어두워 아무것도 안 보인다.
도망자에겐 유리하게 작용한다.
적 진영은 기습 병들의 비명만 요란하다.
어둠 속에서 넘어지고 뒹굴면서 밤새워 도망간다.
큰 산봉우리 10여 개는 지나온 것 같다.
동이 트는 아침 무렵, 산 정상 부근에 다다르니 큰 성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뒤따르는 아군도 5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부상을 입었다.
일궁도 허벅지에 화살을 맞아 제대로 걷기가 힘들다.
더 가고 싶어도 체력이 고갈되었고 또, 높은 성벽 때문에 갈 수가 없다.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밤새 거친 산을 타느라 지쳐, 높은 성벽을 넘기에는 무리다.
다행히 추격병의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일단 성벽 아래 자리를 잡고 쉬기로 하였다.
토성 土城 벽을 바람막이 삼아 주위의 낙엽과 마른 갈대를 긁어모아 자리를 마련하였다.
부상병들은 상처 입은 곳은 대충 지혈하고 칡덩굴로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