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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금강시조 원문보기 글쓴이: 석야 웅순
『금강 시조』 동인 시대를 열며
신 웅 순 (시조시인‧평론가‧서예가, 중부대교수)
1. 들어가며
강임구, 권기택, 김영남, 김응순, 백승수, 송영자, 신웅순, 장중식, 정연복, 조경순, 채동선, 최순호가 금강의 새물길을 열었다.
전북 장수군 뜬봉샘에서 시작한 금강은 진안 용담을 거쳐 대전, 공주, 부여, 서천 그 천리길을 흘러 황해 바다에 이르고 있다. 예로부터 비단 같이 아름다워 이름을 금강이라 했다. 이 금강에 대전 시민대학 학생들이 배 한 척을 마련했다. 여기에 먼저 12명의 동인이 승선, 첫깃발을 올렸다.
대전‧충청도에는 60년대에 『청자』, 70년대에 『차령』이라는 시조 동인이 있었다. 이 동인은 대전의 현『한밭시조』,『가람문학』 시조의 산실이었다. 이 두 동인은 80년 대에 그 소임을 다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전‧충청도의 시조 동인의 출현은 늦은 감이 있으나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시대의 요청인지 모른다.
대전의『한밭시조』,『가람문학』은 지역의 대표성을 띠고 있는 공식적인 시조 시인 협회이다. 문학 활동이란 협회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생각, 같은 이념을 가진 동인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는 그 시대, 그 지역의 특수성이 존재해 새로운 문학의 물길을 열기도 하고 새로운 문학의 흐름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임을 안고 출발한 것이 대전의 『금강시조』동인이다.
금강시조는 필자의 대전 시민대학 ‘시조 창작, 그 풍류와 멋’이라는 인문학 강의의 학생들에 의해 출발, 주도되었다. 여기에는 수필가도 있고 시인도 있고 서예가, 문인화가, 시조 명인도 있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인 시조를 배우고자 열정 하나로 모인 사람들이다. 여기에 중앙일보 신춘문예 출신 백승수, 충청일보 신춘 문예 출신 조경순과 제 1회 역동문학상 수상자 장중식이 함께 승선했다. 이 시조 시인들은 충청이 고향이거나 대전에서 오랫동안 거주해온 충청도의 중견 시조 시인들이다.
2. 시인, 작품의 주변들
강임구 시인은 대전 시민대학 강좌 ‘시조창작, 그 풍류와 멋’ 반장으로 궂은 모든 일들을 심부름하고 반의 의사를 모아 결정하는 으뜸 일꾼이다. 시조 낭송가이며 시조를 유난히 사랑하는 학생으로 생활 속에서 글감을 찾고 하찮은 것이라도 시조로 만들어내는, 열정이 대단한 분이다.
얼굴이 어디인지
속살만 들어낸 채
발인지 가슴인지
똑같은 검은 색깔
눈망울
마주치려고
조심스레 살핀다.
-강임구의「접혀진 신문」전문
시적 화자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신문을 읽고 있다. 다 검은 색깔이니 발인지 가슴인지 알 수 없다. 눈망울을 마주치려해도 그럴 수가 없다. 조심스럽게 살펴볼 뿐이다. 바쁜 일상의 군상을 보는 것 같다.
‘검은 색’은 믿지 못하는 현시대의 슬픈 군상을 상징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힐끔힐끔 처다보는 것이 아닌가. 시대의 아픈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소월 정연복은 수필가이다. 오래 전에 필자의 시조 강의를 들었던 그 인연으로 필자와 다시 만났다. 소월은 꽁트나 단편 소설에 관심이 많아 호흡이 길고 자신이나 세계에 대한 눈이 날카롭다.
한자락 바람같이
떠나가는 그대에게
멀리서 돌아오는 너를 반기려 해도
나의 관절 마디마디에 부는 바람이 더욱 시려워
차라리 비오지 않아도 세차게 불어대는 강바람에 몸을 맡긴다
먹고사는 모든 것을 죄같이 여기는 세상에서
이름조차 잊어버린 들꽃으로 피어난다는 것은
피죽조차 못 먹고 조석으로 불어대는 피죽바람이 되는 것이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떠돌다 오는 이방인이여
쓸쓸한 목숨 두고 한이나 비애를 말하지 마라
내가 세상을 향해 가시를 품은 이유는
단지 절실한 목숨하나 지키기 위함이다
아무렇게나 품었다가 내어주는 까닭모를 그리움은
명지바람같이 부드러운 마음 밭을 일구고 싶어서이다
능수버들이 봄바람을 끼고 호들갑을 떨 때마다
뻔뻔스레 돌아서서 마른손 문지르며 문구멍으로 달아나서
제 갈길 모르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왜바람이 되는 그대
지금은
어느 모처에
바람 같은 지문을 남기는지
-정연복의「바람의 지문」전문
이 장시조는 애증이 빚어낸 누군가에 대한 화자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삶 자체가 절실한데 거기에 청자는 바람이라는 지문을 남기고 간 것이다. ‘바람’으로 상징된 ‘그대’는 바로 화자의 애증의 대상이다. 중장에서 그러한 사설들을 촘촘하게 엮어내고 있다. 강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으나 때로는 피죽 바람으로 때로는 명지바람, 왜바람으로 불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그대는 바람의 지문을 남기고 갔다. 자신과 그대를 들여다보는 눈이 예각화되어 있어 독자로 하여금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못다 한 그리움이 곤히 잠든 치마폭에
안쓰러운 눈 비비며 볼을 대는 내 사랑아
한 송이
꽃 올려놓고
흔적만을 더듬는다
은밀한
꿈 하나는
내 안에만 있는 섬
먼 하늘 허망한 꿈 날고 또 날아가도
밤마다
별무리로 뜨는
전설 같은 그 내음
목 놓아 불러보는 멍이 든 그리움
차갑게 식어가는
바람 길만 내어준다
모질게
꺾고 꺾이어도
다시 돋는 내 사랑아
- 채동선의 「사부곡」전문
일생을 해로했던 아내의 부재가 이리도 절절할 수 있을까. 사연이야 어떻든 차갑게 식어가는 바람길만 내어주는 그리움이 아프기까지 하다. 한송이꽃 올려놓고 흔적없는 흔적을 만져보는 안타까운 사랑이 이쯤에 와서는 할 말을 잃는다. 목놓아 불러보는 멍이 든 그리움. 그렇게 꺾이고 꺾이어도 다시 돋는 화자의 사랑은 애처롭기짝이 없다. 그리움과 아픔 사이에서 토해내는 화자의 설움이 독자로 하여금 울먹이게 한다.
이 시인은 원자력 연구소에서 퇴임한 후 국궁에 열정을 바치고 있는 국궁 마니아이기도 하다. 시조창작과 시조창을 하고 싶어 수강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미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또한 수필가로서도 일가를 이룬 분이다. 최근에 수필집도 상재했다.
가언 김영남 시인은 회사 경영인이며 서예가이다. 필자에게서 서예를 배운지가 8.9년이나 되었다. 지금은 대전미협 서예부문 서예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가 시조를 써볼 것을 권해서 처음 시작한 것이 이 정도이다. 김시인은 무엇이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고야마는 하고자 하는 일에 올인하는 열정적인 학생이다.
당신이
가꾼 뜰에
바람이 와 머물면
따스한
햇살 한자락
남몰래 지고와서
아니다
먼 별빛 밤새
남몰래 끌고 왔지
-김영남의 「아버지 1」전문
이 시인은 섬세한 감성과 서정적 톤을 갖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회사를 당신이 가꾼 뜰로 표현했다. 그 뜰에 바람 한 점 머문다고 했다. 이 바람은 그만이 아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그 무엇일 것이다. 따스한 햇살 한자락 남몰래 지고 온 것이 아니라 먼 별빛을 밤새 남몰래 끌고 온 것이다. 왜 시인은 그렇게 말을 바꾸었을까. 따스한 햇살 한 자락보다 먼 별빛이 더욱 절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효산 최순호 시인은 공주 갑사 아랫마을에서 살고 있다. 수필가로 등단했으나 시조를 쓰고 싶어 시민대학을 찾았다. 또한 시조 낭송가이기도 하다. 2013년 올해 겨울호 창조문학에 시조시인으로 추천되었다.
황매화 망울지면 아슴한 정 피어나고
후미진 골짝마다 잔설에도 피가 돌아
오색 깃 딱따구리는 굽은 고목 두드린다
철쭉꽃 불을 질러 타오르는 산이더라
세월은 물소리 따라 열고 닫고 한다는데
금매미 울음소리만 주렁주렁 열려있다
쪼개진 석류처럼 밝은 단풍 환한 골짝
낙엽은 흙 이불로 시간을 재우는데
종소리 떨어진 터에 숨어 사는 갑사더라
꽃잎 한 장 그늘까지 다 거두어 돌아간 후
고요도 숨죽였나 기척 하나 없는 밤
침묵은 설법 하나로 내 가슴을 어른다
- 최순호의「갑사의 사계」전문
효산은 연세가 많으나 탁월한 감각을 천부적으로 갖고 있었던 같다. 시조를 쓰지 않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젊은 꽃시절보다 황혼의 노을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효산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실타래를 풀어내는 솜씨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갑사의 사계 산수를 붓으로 풀어낸 비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사하촌에 산 덕분일까. 자연의 사계가 준 아름다운 선물일까. ‘종소리 떨어진 터에 숨어사는 갑사더라’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 ‘세월은 물소리 따라 열고 닫고 한다는데’,‘꽃잎 한 장 그늘까지 거두어 돌아간 후’도 명구이다. 그의 서정의 세계가 어디까지 갈지 기대해본다.
김응순은 30여년을 일해오던 미장원을 접고 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얼마나 공부를 하고 싶었으면 그리했을까 싶다. 하고 싶었던 공부가 이제야 터져나온 것 같다. 반장을 보좌하면서 살림을 담당하고 있는 총무로 무엇이든 챙겨주는 학생들의 누이 같은 존재이다.
그는 시조를 택했다. 시조를 공부하면서 그 풍류와 멋에 푹 빠져있다. 천여년을 흘러온 시조가 김응순의 가슴에서 잠시 멎어 물컹한 시조를 생산해내고 있다. 이보다 더 좋고 신나는 늦바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한걸음
또 한걸음
가까이 다가서면
시민대학
시조 교실
웃음꽃이 피어난다
첫사랑
님을 보는 듯
늦정에 빠져든다
바람결
사이사이
고요히 스며들어
밤하늘
별빛인 듯
그리운 산빛인 듯
늦가을
여윈 가슴에
살찐 별로 돋는다
- 김응순의 「늦가을에」전문
김응순의 시조의 결은 곱고 섬세하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 적당한 긴장감이 있어 짜임새가 돋보여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늦가을 여윈 가슴에 살찐 별로 돋는다’고 하였다. 그 별빛은 영롱하고 빛나는 명품 다아아반지 같은 것일 것이다. 간간이 눈부신 시재가 돋보인다.
송영자는 맨 나중에 승선했다. 문학소녀였다고 한다. 주부로 계시다 문학이 너무나 하고 싶어 시조를 선택했다고 한다. 문학에서 삶의 출구를 찾았다고 진지하게 술회하고 있다.
아픈 만큼 고운 물로 위로하는 손길이
푸르른 여름 가득 꽃물들인 가을산
내 마음 상처진 곳에 그대 자취 채우소서
햇살 머문 자리마다 토실토실 살 오르고
바람이 머물다간 열매 가득 고운 빛깔
지난날 아름다운 꿈 고이 접어 보냅니다
- 송영자의 「가을산」
시조를 쓴지 몇 달 되지 않은 초보로서 이 정도면 그의 시재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송영자의 시조는 일반 사람들과는 그 정신 세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의 시세계는 이차원적이다. 언어를 휘두르는 솜씨가 장인 수준이다. 그가 시조를 쓰지 않았다면 어찌했을까 싶다. ‘ 내마음 상처진 곳에 그대 자취를 채워달라’는 그의 기원은 예사롭지가 않다. ‘지난날 아름다운 꿈 고이 접어 보내는’ 가을산은 바로 시적 화자인 자신일지 모른다. 시조가 그녀 삶의 출구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초강 권기택은 오래 전에 등단한 중견 시인이다. 출판사를 하고 있으며 필자의 학부 제자이기도 하다. 시를 쓰고 있지만 오래 전부터 시조를 사랑하고 있는 시조 마니아이다.
술 산다는 전화에
옷 걸치고 나가면서
산다는 게
술 한 잔 걸치는 일이려니
살려고
아웅다웅하다가
술이 되어버린
-권기택의 「산다」전문
초강의 시조는 시가 일상생활 그 자체이다. 그는 일상을 조각하며 사는 시인이다. 짧으면서도 무엇인가를 생각케하는 경귀 같은 그런 시인이다. 사물 하나를 보고서도 인생과 결부시키지 않을 수 없는 그 어떤 매력이 그에게는 있다.
술을 산다는 말에 옷을 걸치고 나가면서 산다는 것이 술 한 잔 걸치는 것이려니 했는데 살려고 아웅다웅하다가 술이 되어버린다는 아주 짧은 경구 같은 시조이다. 거기에는 생각해보아야할 많은 삶의 숙제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매력있는 시인이다.
3. 나오며
시조 시인 조경순, 장중식, 백승수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세 시조 시인은 한국의 중견 시조시인들이다. 나름대로 자신의 시조세계를 구축해온 시인들로써 여기에서 논하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별도의 작품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동인, 금강시조가 출발했다. 그들은 참으로 좋은 시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대전 ‧충청도는 예로부터 선비 고을이다. 시조는 선비들이 향유한 고급 예술이다.
대전 ‧충청도는 금강 시조 동인이다
금강시조 동인은 시조의 정체성이다
금강 시조의 명제에 맞게 ‘시조의 그 깊은 풍류와 멋’을 영원히 이어나갈 것이다.
우리나라 현시조의 물줄기를 보라.
시조인지 시인지 알 수 없는 국적 없는 시조들이 얼마나 많은가. 소우주, 3장 6구 12음보에 무엇을 담지 못하겠는가. 우리의 그릇을 깨고 싶다면 차라리 자유시를 써라. 그릇이 작다고 생각하면 능력 없음을 탓해라.
금강 시조는 시‧서‧화‧가‧무‧금에 이르기까지 그 유장한 멋을 3장 6구 12음보에 실어 유장하게 저어갈 것이다.
금강시조 동인의 첫출발을 축하한다. 무궁한 발전을 빈다.
첫댓글 금강시조에서도 원할한 활동을 하고 계신 모습이 훤히 보입니다.
금강시조의 동인 출발을 축하드리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