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모두 모여 저녁 식사후, 왠지 어색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는데 이사장이 불렀다.
11. 酒편제
"태후야"
호규가 집중하고 날자도 놀랐다.
"..이제와서까지 비겁하고 싶지 않다. 애비가 잘못했다. 모두 내탓여"
"아배..술 끊으면 목숨끊을 일밖에 안 남는다더니...어디서 사형선고 받었수?"
"널 함부러 대하고 날자라고 마구 부르고..식모보다 더 부려먹고...너까지 술꾼으로 만들어 희희낙낙 같이 마시고...네 마음 아픈 건 조금도 모른체..용서해다우.."
호규가 밖으로 나가려는데..
"아, 아배..생쇼하지마. 아배도 개그가 낙제라고.."
"호구야, 토끼지 말고 너도 들어!!"
이사장이 고함치자 호규가 멈췄다.
"진짜다. 호구가 굳이 깨우쳐주지 않었어두...나도 진작에 알고 있었단다..물론 서편제 유봉이 유언 장면처럼 너는 용서도 했기에 나와 살았것지만..."
"아..아배..나 우는 건 싫어. 울지마..울리지마.."
"호규야! 대체 어케 했기에 아배가 이리 상한 거야? 네가 도대체 뭐랬기에 유언처럼 폼잡는 거냐고.."
호규가 묵묵히 소주 세병을 꺼내고 냄비를 덥히더니..
"모두 내탓이야. 내진단엔 알콜 금단증상같아.."
잔까지 세개 챙겨 술 세병과 같이 날라와 탁자에 늘어놓았다.
"..선생님 아무래도 제가 너무 무리했네요..눈치 조금도 안 줄테니 다시 술 마음껏 드세요...누난 술 좀 줄였음..."
"그래..맞아. 맹세하는데 나 이제부터 너먹는 량 이상은 안먹겠어. 늙은 것도 서러운데 너보다 오래살려면"
"누군! 나도 마찬가지여. 두잔이상은 절대루!"
"암튼 아배..말이 맞아. 나 오래전에 원망 털었었어. 조금 손해같지만..아배가 호귤 스카웃해온 공으로 퉁치는 거야. 아배..이젠 빚없어"
"오오늘이 최고의 날인디 나, 난 와이리 불안허냐..지금 이 장면은 맨끝 라스트에 나와얄 것 같은디..."
"울내랑 똑같지 뭐. 쾅 터트리고 앞으로 식을 일밖에 없는..."
"재..재수 옴붙는 소리! 그럴순 없어. 호규야 난 무조건 널 믿는다"
"...예..노력하지요.."
"조아따! 술은 그날로 미루마..지금 까짓 술이 문제냐"
"호규..아배 술고문하지 말고 네방에 가서 우리끼리 술 마시자"
"...아니 울내가 먼저야. 신방 치를 때 빼먹은 합환주라면 또 모를까"
벙찌는 부녀를 뒤로 하고 당차게 나가는 호규였다.
한동안 말이 없는 이사장과 날자였는데
"아배..호규..아들 삼고 싶지않아? 정말 구엽잖아"
"....태후야..느이 엄마 어디 사는지 알지? 어매가 찬성만 한다면..."
얼굴을 점점 씰룩이던 날자가 소주병을 거칠게 잡아들었다.
아침 하우스안 풍경을 본 호규가 어이가 없어졌다.
빈술병이 여러개 나딩굴고 부녀가 엉키다시피 자고 있기에..
"...몇시간이나 되었다고 정말 신용할 수 없는 알콜중독자들이잖아..."
이내 깬 모양이다. 혀는 안돌아온 건지
"..어..어늘 나먼은 자..자기..가 끼리.."
"나..라면먹는 기계 아니거든요!"
"후..후고..호고야 라먼은 스.수언 가서..사머..."
"그..그놈의 라면!"
"스수원..."
"수원라면이 있다고요? 생전 처음 듣는.."
수원 도시 전경. 평범한 아파트의 어떤 내실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피아노를 비롯한 온갖 악기가 널려있고
술병이 여기저기 나딩구는데 과연 박선생이 팬티 바람으로 비몽사몽 허우적거린다.
"도..도둑.."
현관에 서있던 호규가 한숨을 쉬었다.
"문이나 잠그고 자던지...정말 우리나라 술..문제 많네.."
"쬐..쫓겨난거냐 탈출한거냐 잘됐다 잘했어. 모름지기 전설은 지옥훈련에서 시작되는법. 우리 이제 같이"
"선생님 머리도 유난하네요. 이런 쓰레기장을 지옥이라니..맞는 것 같기도 하고...헷갈리네"
"내 머리가 어때서? 너 지금 내가 대머리라고 놀리!"
"전설 진척이 어찌되어가나 검열왔거든요. 보름이 넘도록 무소식이니 돌연사 안당했나 가보라더군요"
"그그그게...아직......"
"휴우...여기서 이러지 말고 차라리 중간재로 내려오는 게 어때요?"
"..이래뵈도 나 찾는 사람이 안즉 한둘이 아니란다. 시끄러운 세속을 피해서 부득.."
한심해 하는 호규 태도를 보고는
"그동안 내가 놀던 것만은 아니란다! 함 들어봐라.."
피아노 앞에 앉더니 한동안 묵묵수행에 답답해져
"까먹은건가.."
두손으로 갑자기 [ 꽝] 건반을 내려치는 통에 깜짝 놀라는 호규였다. 뒤이어 들릴듯 말듯 띠리리링 에 감전되었는지..
주저앉아...귀를 막고...웅크려 앉는 호규. 머리칼을 움켜쥐고 뭔가 집중...
"...너도 감을 잡은 모양이구나..."
손을 가벼이 젖는 호규.
"너무 짧고...겨우 시작만 했지만.."
"...."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쫌 조용하라잖아요!!"
"놀래라 너 짱구냐? 그 짧은 가락도.."
"..해장해야죠. 저도 아침전이니 나가요"
전주 콩나물 국밥집에서 밥먹는 두사람
"라벨..볼레로는 너무 난데없이 끝나 얼척없달지
허탈해서 사기 당한 느낌이었거든요. 적어도 저는"
소주병을 잡으려는 박상의 손을 허탕치게 만들고
"클라이막스 직후! 전혀 새롭게 재해석. 소화가 되는 식인데..."
"지금 교향곡을 요구하는거냐? 암튼 무슨 야근지 알어쓰니 이리.."
잔에 소주를 따르는 호규
"술을 줄이고 멀리 하면 훨 진도가 빠를건데"
"러시아가 세계 최고 술소비국이라는데 왜겠냐?"
"!...."
"그래 난 술땜에 그렇다치자..술 안먹는 네 가사는 얼마나 진도가 나갔는지 한번 들려줄래?"
그리고는 술을 들이키도록 말이 없는 호규였다.
"...예. 선생님..제가 잘못했습니다."
고개를 돌려 주방쪽에
"어머니 넘 맛있는데 두그릇만 포장해주세요"
포장보따리를 들고 거리를 걷는 호규의 고뇌표정.
'역시 가사가 문제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처럼 단도직빵으로 쑤시고 들어가야되는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