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 1,1-10; 루카 11,47-54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로마에서 활동하시기 전에 먼저 안티오키아 교회를 지도하셨다고 전해지는데요, 이냐시오 성인은 베드로 사도의 뒤를 이어 안티오키아의 두 번째 주교님이셨습니다. 안티오키아는 오늘날 튀르키예의 안타키아라고 불리는 도시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활동하시다가, 서기 107년,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어 콜로세움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로마로 압송되어 가시던 도중 여러 교회에 일곱 통의 편지를 써 보내셨는데, 그중 마지막 편지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것으로, 당신이 로마에 도착하면 당신의 순교를 막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신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당신이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이라며, 당신이 순교할 때 바로 ‘그리스도의 성체’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1독서에서 에페소서의 말씀을 들었는데요, 오늘부터 시작하여 10월 31일까지 계속해서 에페소서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에페소서는 바오로 사도께서 직접 쓰신 편지는 아니고, 바오로 사도께서 돌아가신 뒤 15년 혹은 20년 뒤에, 콜로새서와 로마서, 그리고 코린토 1서의 내용에 통달해 있는 바오로 사도의 어느 제자가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 1독서는 장엄한 음악의 서주와도 같은 에페소서의 도입부인데요, 3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은 성무일도에서 매주 월요일, 그리고 성모님, 사도들, 목자들, 동정녀 축일 저녁기도에서 바치게 됩니다.
에페소서 1장 4절에서 14절까지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신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긴 문장입니다. 편의상 번역할 때는 여러 개의 문장으로 쪼개어 번역하는데요, 4절에서 6절까지는 성부의 구원 계획에 대해, 7절에서 10절까지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졌음에 대해, 그리고 11절에서 14절까지는 성령을 통한 상속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우선 하느님 아버지께서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다고 선언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는데,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 교사들에게 삼종 세트 꾸짖음 선물을 주셨는데요, 율법 교사들에게 주시는 삼종 세트 두 개가 더 남아 있습니다. 하나는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라 말씀하시며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고 하시는데요, 아벨은 창세기에 나오는 카인의 동생으로서, 첫 번째 살인의 피해자입니다. 즈카르야는 역대기 하권에 등장하는 예언자인데, 요아스 왕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성경은 우리 성경과 순서가 달라서 역대기가 마지막 성경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까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예언자의 피를 일컬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살해한 조상들에 이어, 그들은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이시자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마저 살해할 것입니다.
율법 교사들의 세 번째 잘못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는 이들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배었던 모태와 당신께 젖을 먹인 가슴이 행복합니다.”라는 어느 여인의 외침에 대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 교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이 역할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수행하지만, 특히 사제, 신학자, 교리교사들은 그것을 주된 임무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제가 사제로서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성찰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만물이 하나가 될 때까지, 하느님 말씀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선포는 자신의 고난 한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를 본받는 실천으로 완성됩니다.
이냐시오 성인께서 로마인들에게 보내신 편지의 일부를 들어보시겠습니다.
“형제들이여, 나를 잊어 버리십시오. … 내가 여러분에게 도착했을 때는 나를 믿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쓰는 말을 믿으십시오. … 나의 지상적인 모든 욕망은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물질을 사랑하기 위한 불은 내 안에 더 없습니다. … 내가 수난을 당한다면 여러분이 나에게 호의를 보인 것이고 수난에서 제외된다면 여러분이 나를 미워한 것입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메놀로기온(바실리오 2세 황제를 위해 제작된 성인 달력)에 수록된 기원 후 1000년 경의 그림.
출처: Ignatius of Antioch - Ignatius of Antioch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