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생활의 원리 (잠 15:19-21)
19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20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21 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 하여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
이 시간에 “교회생활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교회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부름 받은 공동체로서 교회는 이 우주에 하나밖에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눈다면 천상교회와 지상교회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 지상교회는 어떤 곳일까요? 지상교회는 하나님께서 지상 성도에게 영적인 쉼과 불신자를 구원하시며 믿음을 가르치고 훈련시켜 장성한 천국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한 곳입니다. 지상에서 가장 귀한 곳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교회생활은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요? 그것을 본문에 비유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19절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여기 “게으른 자”는 사소한 장애나 어려움도 극복하기 싫어하여 일들을 회피하고 변명하며 실제적으로 아무것도 행치 않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왜 가시울타리라 했을까요? 일하는 것이 기쁨이 되어야 하는데 고통으로 느낍니다.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기쁨으로 해야지 고통스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경 개념으로 볼 때 게으름은 악함입니다. 게으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부지런히 섬기세요. 은혜 충만은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것입니다. 천국의 상은 부지런한 자의 것입니다. 롬12:11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교회생활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주일 빠지면 안 됩니다. 각종 예배나 기도나 봉사에 빠져도 안 됩니다. 교회생활은 최소한의 영적활동이기 때문에 이것마저 빠지면 우리의 영적생활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맹수의 공격권에 드는 대상은 어리거나 모임에서 떨어진 동물입니다. 이처럼 교회와 멀어지면 세상이 우리를 잡아먹고 이단이 잡아먹고 내 생각이 이단이 되어 성경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여 그것이 나를 잡아먹고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여기 정직은 게으름의 반대말로 쓰인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정직의 의미를 찾으려면 원문으로 분석하거나 그래도 나오지 않으면 문맥에서 찾아야 합니다. 즉 부지런하면 대로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부지런만 해서는 부족하지만 교회생활은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 만찬에 초대된 것이니 부지런히 참여하여 은혜를 받으면 됩니다.
그리고 “대로니라”(셀룰라)는 '쌓아 올리다.' 곧 단단하게 흙을 돋우어 만든 길이란 의미로 그 길이 탄탄하고 장애가 없이 평탄함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교회생활의 기본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은혜의 대로입니다.
2. 사역자를 인정해야 합니다.
20절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이 말씀 이대로도 귀한 교훈입니다. 이것을 교회생활에다 비추어 말씀해보면 교회에도 믿음의 부모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사람들입니다.
엡4:11-12에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양이 목자장 되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세우신 목자를 떠나서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한다 했는데 어떤 즐거움일까요? 그 의미를 알려면 이 말의 대구인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의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면 됩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존중합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존중을 받으면 그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래서 맞지 않아도 되도록 말대꾸하지 말고요. 틀려도 웃으면서 대해드리세요.
그런데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어미는 영적으로 말하면 교회입니다. 갈4:26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교회는 모성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세운 사역자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살전2:7)다고 말씀합니다. 요한삼서에서 말 한 것처럼 성도들이 말씀 안에서 살 때 그것이 사역자의 최고의 기쁨입니다. 지혜로운 아들처럼 하나님의 종들을 인정할 때 정상적인 교회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세상에 나가서도 잘해야 합니다.
21절 “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 하여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 여기 두 종류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무지한 자와 명철한 자, “무지한 자”(하사르 레브)는 원어상 '마음이 없는 자'로 이성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한 자를 가리킵니다.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믿음 따로 생활 따로, 성경 말씀의 관념 없이 내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반면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한다 했는데 그 길이란 신앙적, 도덕적 삶의 정도(正道)를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성도는 세상에 나가서도 말씀대로 믿음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성도로서 뿐 아니라 사회인으로서 국민으로서 이웃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박쥐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새 나라를 통치하는 독수리와 짐승 나라를 통치하는 사자가 회담을 했답니다. 독수리가 말했습니다. “사자여! 요새 저는 박쥐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내 명령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자기도 새처럼 난다고 혜택을 달라고 억지를 쓰고, 내 명령이 자기에게 손해가 되면 자기는 포유동물이라고 의무를 회피합니다.”
그 말을 듣고 사자도 말했습니다. “그런가요? 박쥐가 우리에게 와서도 그럽니다. 자기에게 유리하면 동물이라고 우기고 불리하면 새라고 우깁니다. 지금 박쥐 때문에 나라 기강이 말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 영구 추방합시다.” 그 뒤로부터 박쥐는 동굴에서 숨어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바로 살고 자기의 의무를 다하며 살아야지 세상 사람들보다 못하면 박쥐처럼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추방당합니다. 그 의무를 다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전도는 성도가 하지만 전도 길을 막는 것도 성도입니다. 동네복음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혹시 나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과 한 멍에는 멜 수 없지만 최대한 좋게 사시기 바랍니다. 손해 볼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예비해놓으셨지 않을까 하면서 양보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끄실 때 엘림 오아시스를 준비해 놓으신 것처럼 광야 같은 세상에 하늘의 오아시스가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를 구주로 믿어 참 교회의 일원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상교회에 대한 사명을 다하고 교회를 통해 베풀어주신 은총을 온전히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