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월 22일 금요일, 평소처럼 새벽 3시에 일어나 2시간 수련을 하고, 5시에 수련장에 나와 7시까지 국선도를 한 뒤, 정확히 10시에 김해 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요가총회가 열리는 니가타현까지 가는 직항편이 없어 후쿠오카 공항에 내려, 일본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고 니가타 공항에 내리자, 저녁 8시였다.
초저녁을 막 지났을 뿐인데 버스도 택시도 보이지 않고 사위는 캄캄했다. 개구리 소리와 이름 모를 밤새 소리, 그리고 멀리 검은 숲속에서 큰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5월이지만, 나는 가와바타 야쓰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의 첫 장면이 떠올랐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소설 설국(雪國)의 주인공이 긴 터널을 빠져나와 도착한 곳이 바로 니가타현인데, 지금 내 앞에는 밤의 밑바닥까지 하얗게 뒤덮은 눈 대신 캄캄한 어둠과 아무도 보이지 않는 적막뿐이었다. 한국처럼 콜택시를 부를 수도 없고, 시내의 호텔까지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다시 후회가 밀려 왔다. 수행하러 인도에 가는 것도 아닌데 가까운 일본에, 그것도 별로 배울 것도 없어 보이는 요가연구총회에 꼬박 하루나 걸려 올 필요가 있었을까. 돈과 시간의 낭비가 아닐까.
인구 210만명에 일본에서 15번째라기에 부산과 비슷하려니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한적한 시골 분위기에 당황했다. 조급하게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그렇지, 이럴 땐 그냥 신(神)에게 맡기자, 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맡기자 순식간에 마음이 편해졌다. 이래서 늘 새벽에 일어나 힘든 수련을 하는 거다. 박티요가Bhakti Yoga는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멀리 바람에 날리는 검은 숲의 나무들을 보고 있을 때, 이웃집 토토로 영화에 불쑥 나타난 토토로 버스처럼 그 검은 숲에서 갑자기 차 한 대가 불쑥 나타나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와 섰다. 내 헌신에 곧바로 응답한 神이 보낸 택시였다.
신(神)도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았다. 담배를 많이 피는 기사분인 듯 택시 안은 담배 냄새로 절어 있었다. 그러고보니 호텔도 만석이라 금연룸을 예약할 수 없었다. 꼬박 3일 동안 담배 냄새로 절은 좁은 호텔 방에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나 이번에도 신은 내 고통의 패키지에 많은 기적을 준비해 두셨다.
1일차 마지막 시간에 명함을 교환하는 행사에 참석했는데 갑자기 나보고 한마디를 하라고 해서 마이크를 잡은 나는 서툰 일본어로 오나카가 이빠이 데스, 라고 했다. 진심이었다. 총회의 프로그램은 너무나 알찼고 발표의 내용도 좋았고 무엇보다 귀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주제발표가 열리는 메인 홀에는 500명 좌석이 모자라 뒤에 간이의자까지 깔았다. 메인 홀 밖에는 접수대를 비롯해 발마사지, 건강 음료, 과자, 기념품, 책, 건강양말체험, 차, 커피, 등 다양한 부스가 30여개 열렸다.
이번 니가타 총회의 주제는 트라우마였다. 첫 번째 대회장인 이마이 요스케 병동장이 나섰다. 그는 이틀 동안 늘 선량하게 웃으며 상대방을 기분 좋게 했다. 2011년 3월의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 달 만에 고립무원의 현장에서 개최된 트라우마 케어, 심각한 재해에 직면한 인간의 프리즈(얼어붙는) 현상, 교감신경의 한계치 도달, 부교감 신경의 셧아웃 됨으로 인한 얼어붙음, 트라우마의 회피로 인한 PTSD 증후군, 전쟁으로 인한 사회 전체적인 트라우마 현상, 등, 1967년생인 그의 약력은 의사이자 수행자이고, 구세군 같은 분이었다.
두 번째 기조강연은 기무라 케이신 학회 대표께서 맡았는데, 2019년 코로나로 인한 WHO의 요청으로 기준 책정에 참가하고 2026년에 제정된 요가 테라피 기준의 의미를 설명했다. 특히,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이 이틀에 걸쳐 일어났을 때 현장에서 겪었던 요법사들의 체험과 히밀라야의 수행자들이 강력한 충격과 재난을 극복하고 자신의 성장기회로 전환시키는 수천년간 전승된 히말라야 요가 수행자의 행법 등에 대해 소개했다.
세 번째 초대강연은 미야지 나오코씨가 맡았다. 의사이자 교수인 그녀는 많은 책을 썼는데, 2025년에 《오늘도 견뎌온 당신에게》라는 책을 한국어로 출판했다. 그녀는 일본 히토츠바시 대학원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트라우마와 젠더, 인간의 상처를 연구해온 트라우마 심리학의 권위자로 상처받은 마음의 언어화를 시도해 온 독보적인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랜 임상 경험과 날카로운 사회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개인의 고통이 어떻게 사회적 맥락에서 생성되고 반복되는지를 분석하며, 트라우마를 단순한 개인적 질병이 아닌 사회 전체의 감수성 회복의 문제로 확장시켰으며, 나아가 상처 입은 마음이 사회적 침묵 속에 갇히는 과정을 조명하며, “회복은 고통을 다시 말할 수 있을 때 시작된다”는 윤리적 메시지를 던져 주목받았다, 등등, 한마디로 대단한 사람이다. 이틀간 행사장에서 오다가다 만날 때마다 그녀는 내게 자신감과 여유가 넘치는 인사를 건넸다. 아침요가를 할 때는 1시간 동안 내 뒤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의 책을 읽고 꼭 메일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아마 내일쯤 책이 도착할 것이다.
이어진 초대강연자로 임상심리사인 호키 라쿠 히로시 교수는 30년간 다양한 트라우마의 반응과 명상, 심리요법 등을 통해 트라우마에 접근하는 방법과 융 심리학, 양자역학, 사마타와 비파사나 명상 등을 통한 접근법을 소개했다. 그는 미얀마에서 단기출가 하는 등 수행자이자 학자였다. 그와는 개인적인 교류를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내가 너무 바빴던 것 같다.
첫째날 마지막 순서인 명함을 교환하는 행사에 참석해 나는 그 동안 배운 일본어로 한마디 했다.
오나카가 이빠이 데스.
실제로 저녁이 가까운 시간인데도 배가 불렀다. 그리고 두피도 약간 부어 있었다.
그러나, 진짜 하이라이트는 둘째날 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