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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iR4afN5zxo?si=yZaBQ6iCjgmNr8QU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그래 나도 변했으니까
모두 변해가는 모습에 나도 따라 변하겠지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그래 너도 변했으니까
너의 변해가는 모습에 나도 따라 변한 거야
이리로 가는 걸까 저리로 가는 걸까
어디로 향해 가는 건지 난 알 수 없지만
세월 흘러가면 변해가는 건 어리기 때문이야
그래 그렇게 변해들 가는 건 자기만 아는 이유
2026년 6월 27일 굴산사 가는 길... 출발지 남항진 해변...(09:35)
예부터 동대문 밖 강릉이라는 말이 있다. 동대문 밖을 나가서는 강릉이 가장 살기 좋다는 뜻인데,
강릉은 삶과 문화와 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도시다.
강릉 바우길 6구간 굴산사 가는 길은 남항진해변에서 시작하여
청량동 입구, 중앙시장, 모산봉, 장현저수지를 지나 학산오독 떼기 전수관을 도착하는 코스이다.
소요 시간은 7시간 정도 걸리며, 주요 관광 포인트로는 다양한 먹거리로 유명한 강릉중앙시장,
유네스코가 선정한 인류 문화유산으로 천년의 향기가 깃든 축제 한마당인
강릉단오제를 체험할 수 있는 강릉 단오문화관, 동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모산봉 전망대,
통일신라의 선승인 범일국사가 태어난 굴산사 절터, 연화와 무월랑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정자 월화정이 있다.
만나면 반갑고 좋은 사람들...
母子 등장...
사무국 요원들 도착...(09:40)
남항진동 南項津洞
남항진은 남대천과 섬석천이 만나 바다로 빠지는 곳에 있는 포구로,
옛날 송정에서 한송사(寒松寺), 한송정(寒松亭), 불하산(佛下山)으로 가는 남쪽 길목에 있는 나루라는 뜻에서 생긴 지명이다.
1914년 강릉군 덕방면(德方面) 남항진리가 되었다. 1920년 덕방면과 성남면을 통합한 성덕면의 남항진리가 되었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성덕면과 경포면(鏡浦面)을 병합하여
시로 승격됨에 따라 강릉시 입암동(笠巖洞) 관할의 남항진동이 되었다.
1965년 두산동(斗山洞) 관할이 되었다가, 1988년 성덕동 관할로 바뀌었다.
남항진동에는 여러 자연 마을이 있다. 나루터는 마을 앞에 배를 대는 나루가 있었던 곳이다.
강릉시 남항진동 산 12-2번지에 있는 한송사지는 신라 때의 고찰 한송사가 있었던 곳으로써
황폐된 연대는 기록이 없으나 한송사지에 한송사란 암자가 유지되고 있다.
안목과 남항진을 연결해 주는 인도교 솔바람다리가 2010년 4월 9일 완공되어
바닷바람과 강바람을 함께 쐬며 열대야를 잊기에 최적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또 최고의 먹거리 삼교리동치미막국수가 있어 더위를 식히려는 관광객의 발목을 사로잡는다.
기온은 그리 높지 않으나.. 햇살이 따갑고 습도가 높은 날씨다.
이사님 인사...(09:58)
오늘이 구간지기님 생일이어서.. 모두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레이니어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6구간 지기 레이니어님& 틸리초님
굴산사 가는 길.... 출발...(10:15)
자초들 (紫草-)
강원도 강릉시 청량동 섬석천에 있는 넓은 들.
자초들 (자초아)은 예부터 마을 앞 냇가에 자초풀(지치)이 많이 자라 그 풀이름이 지명으로 되었다.
자초들은 청양이 앞 섬석천 냇가에 있는 들인데, 위쪽에는 섬둘이 있고, 아래쪽엔 남항진이 있고,
앞에는 월호평이 있고, 뒤에는 월대산에서 내려온 줄기가 있다.
자초들에 있는 자초풀[紫草]은 섬석천을 정비하면서 없어졌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석천에 있는 유다리를 건너면 월호평동이 된다.
노란색 백합
아빠와 딸...
엄마와 아들...
학동 한옥 펜션 앞에서 잠시 휴식...(10:45)
청량동에 들어서서...(11:07)
청량동 靑良洞
청량동이란 명칭은 청량미가 잘 자라는 청량들이 있어 생겨난 이름이다. 청량동의 옛 이름은 ‘청양이’이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성덕면에 속해 있던 청량동은
두산, 입암, 학동, 병산, 남항진 마을과 함께 합병하여 입암동이 되었다.
1965년에는 입암동 관할이던 법정동인 입암동, 청량동은 행정동을 입암동으로,
법정동인 두산동, 학동, 병산동, 남항진동은 행정동을 두산동으로 하여 각각 분리되었다.
1998년 10월 1일 과소 행정동 통합에 따라 청량동이 속해 있던 입암동과 두산동이 통합되어 성덕동이 되었다.
청량동은 밋밋한 산줄기들로 이어진 고을이고 땅이 비옥하여
곡식을 심으면 잘 자라고 땅이 좋아 소나무가 늘 푸르른 동네이다.
마을 앞(남쪽)으로 늘목재(구정면 구정리)와 칠성산(구정면 어단리)밑에서 흘러온 섬석천이 흐르고,
내 건너 남쪽에는 월호평의 넓은 들과 공군 비행장이 있다. 마을 뒤에는 산줄기가 여러 갈래로 길게 뻗어 내리고 있다.
마을 앞 냇가에는 남쪽 마을인 월호평동으로 가는 ‘유다리’가 있다.
유다리는 ‘율다리’란 말의 준말로 과거에 밤나무로 다리를 만들어 율다리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시멘트 다리로 바뀌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넓은 월호평이 되는데 옛날 정월 대보름에 월호평동 사람들과
이 다리를 먼저 밟기 위해 이 다리에서 횃불싸움을 했다고 한다.
횃불싸움을 마치고 마을 사람들은 이 다리에 모여 나이 숫자만큼 다리를 밟는 다리밟기를 했다.
주요 지명으로는 석밭골, 새우자리, 웃모퉁이, 아랫모퉁이, 자초들(자초아), 유다리, 해남방축 등이 있다.
유다리에서 율곡로까지 철로가 가로지르고 있으며, 주변에 공군 비행장이 접해 있다.
성덕공원에서 잠시 휴식...(11:30)
성덕동 城德洞
강원도 강릉시에 속하는 입암동·병산동·학동·남항진동·두산동·청량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강릉시청의 동남쪽에 있다. 동쪽은 바다, 서쪽은 노암동, 남쪽은 강동면 상시동리와 하시동리, 북쪽은 남대천과 접해 있다.
또한 항공 교통의 요지인 공항이 자리 잡고 있는 강릉시의 관문 지역이다.
‘성덕(城德)’은 1920년에 성남면(城南面)과 덕방면(德方面)이 합쳐져서 생긴 이름이다.
1955년 9월 1일에 강릉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성덕면에 속해 있던 입암·청량·두산·학동·병산·남항진 마을이 합병하여 입암동이 되었다.
1965년에 입암동 관할 법정동인 입암, 청량동은 행정동을 입암동으로,
입암동 관할 법정동인 두산, 학동, 병산, 남항진동은 행정동을 두산동으로 각각 분리하였다.
성덕동(城德洞)은 과소 행정동 통합에 따라 1998년 10월 1일에 강릉시 조례로
입암동·병산동·학동·남항진동·두산동·청량동을 합쳐 만든 행정동이다.
누군가를 노리고 있는 테라...
지영 팀장
하곤님, 울트라님
틸리초님 , 경주 팀장님
오렌지 색 양철 지붕...'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가 생각났다.
너~ 단풍이냐?...
노암터널을 지나면서...(11:57)
노암 터널
입암동에서 시작해 중앙시장 월화 거리까지 이어지는
강릉의 숨은 명소로 예전에는 실제로 기차가 드나들던 길목이었으나
KTX 철로가 신설되면서 원래의 기능을 잃고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지금은 한국 3대 트레킹코스로 손꼽히는 강릉 바우길에 속한다.
터널 안에는 오래전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하며,
터널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노암 터널은 6.25의 아픔이 기억되는 피학살 현장이다
강릉시 노암동에 위치한 이곳은 6.25 당시 반공 인사 100여 명이
북한 공산도당에 의하여 비참하게 집단 학살당한 원통한 현장이다
1985년 6월 25일 한국방송공사가 희생된 영령들을 추도하고
피 흘림 없는 조국 통일을 기원하며 삼가 이곳에 비를 세웠다
월화정月花亭
연화부인(蓮花夫人)과 무월랑(無月郞)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연못 구지(舊址)에 있는 누각.
연화부인과 관련된 설화로 인하여 연화정(蓮花亭)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예전에는 명주각(溟州閣)이라고도 하였다.
월화정은 강릉 남대천 가에 있던 연화봉(蓮花峯) 옛 자리에 있었으며,
신라 때 연화부인(蓮花夫人)이 물고기를 길렀는데,
그 물고기가 김무월랑(金無月郞)에게 편지를 전해 주었다는 옛 자취가 있으므로
이에 그 후손들이 양어지(養魚池) 바위 위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정자를 지었다.
1930년 강릉김 씨 종인들이 무월랑과 연화부인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곳을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신축하였는데,
영동선 철도 부설로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명주성 내로 이건 하였다가 1961년에 철거되었다.
2004년 옛터 인근에 관리사 1동과 함께 월화정을 복원하였다.
월화정은 강릉김 씨 대종회에서 소유와 관리를 하고 있다.
월화교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위해 잠시 이별...
6월 / 이외수
바람 부는 날 은백양나무 숲으로 가면
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
주름살이 깊어가는 지천명(知天命)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그러나 주소를 몰라 보낼 수 없습니다.
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남대천 南大川
강원도 강릉시 중심지로 흐르는 내.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화실산(大花實山)[1,010m]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왕산·성산·구정 등 3면의 경계부에서, 역시 왕산면에서 발원하는 지류를 합친 뒤,
성산면과 구정면의 경계를 북동류하고, 강릉 시역(市域)에 들어와서 동북동으로 유로를 바꿔
강릉 시가지 남쪽을 거쳐 하구부에서 섬석천(剡石川)을 남안(南岸)으로 받아들이면서 동해로 흘러들어 간다.
길이 32.86㎞, 유역면적 258.65㎢이다.
남대천은 강릉대도호부의 관아 앞(남쪽)으로 흐르는 큰 내여서 생긴 이름이다.
예전에는 경포호 하구로 흘렀으나 지금은 하평에서 동해 바다로 흐르는데 강을 직선화하여 물의 흐름이 빠르다.
상류의 산지에서는 좁은 곡저평지(谷底平地)를 대상(帶狀)으로 형성하고,
하류의 해안에서는 영동(嶺東) 해안평야 중 가장 넓은 평야의 하나로 꼽히는 유역평야를 형성하여
영동 제일의 도시 강릉시를 발달시키고 있다.
남대천은 강릉의 서쪽지역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강릉의 중심부를 지나기 때문에
남쪽지역과 북쪽지역의 교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그래서 남대천을 중심으로 남북을 잇는 도로가 생겼는데, 영동고속도로, 동해대로, 7번 국도, 영동선 등이 있다.
남대천 상류에는 오봉저수지가 있고, 하류에는 죽도봉이 있고,죽도봉이 있는 앞목과 남쪽 남항진을 잇는 솔바람 다리가 있다.
예전에는 영동선 외 4개의 교량이 있었으나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다리가 많이 늘어났다.
남대천 주위에는 금선정, 연어대, 방구정, 영귀암, 삼포암, 이구산, 상임경당, 하임경당,
월화정, 와룡암, 서출지, 연화담 등의 정자와 명소가 있다.
식사 후... 단오 공원에서 바우님들을 기다리면서...(12:56)
단오공원 端午公園
세계 무형 유산 걸작 단오제의 상징 공간으로 조성한 시민 공원.
2005년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 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정되면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무형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에 강릉시는 단오제의 세계 무형 유산 걸작의 상징성을 담아내고
평소에는 시민들의 여가와 휴식을 위한 녹지 공원으로,
단오제기간 중에는 축제, 휴게, 놀이, 문화 활동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단오 문화관 앞 구(舊) 노암 공설 운동장 공터를 단오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총 8,290㎡ 부지에 잔디 광장 3,300㎡, 도심 숲, 벤치와 쉼터, 산책로, 이벤트 광장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었고, 강릉의 대표 수종인 소나무와 배롱나무 등
20여 종의 교목과 관목을 심어 자연 생태 학습장을 조성하였다.
단오공원은 단오제의 주요 행사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평소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 선용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수시로 열리는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단오 공원을 지나 오후 발걸음 출발...(13:32)
6월의 시 / 김남조
어쩌면 촉촉이 내리는 비가
이리도 감미로운가
어쩌면 사방에 우거진 초록이
이리도 싱싱한가
눈을 뜨면 보이는 것마다
눈부신 생명의 빛
6월의 지상은
신의 축복으로 가득 차 있네
나 또한 한 그루 나무가 되어
푸른 하늘을 우러르며
이 아름다운 계절을
온몸으로 찬미하고 싶어라
엄청난 높이(105m) 공포(?)의 모산봉 오르기 직전...(13:57)
모산봉 母山峰
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에 있는 산봉우리.
모산봉은 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을 품고 있는 이 마을 최고봉으로, 높이는 105m이다.
모산봉은 강릉의 안산으로 불리는 명산이다.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겨 ‘밥봉’이라고도 하고,
볏짚을 쌓아 놓은 것 같다는 뜻의 ‘노적봉’으로도 불린다. 또 인재가 많이 배출된다 하여 ‘문필봉’으로도 불린다.
모산봉은 2005년 강남동 향우회 등 지역 단체들이 복원 운동에 나서 현재 봉두의 높이가 105m로 높아졌다.
임영지(臨瀛誌)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중종 때 강릉부사 한 급(韓汲)이
강릉 지역에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것을 막고자 하여 이 지역 명산인 모산봉의 봉두를 인위적으로 낮추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에 근거해 옛 정기를 되찾고자 지역 주민들이 복원운동을 벌인 것이다.
강릉 남대천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강릉을 떠받혀주는 네 개의 기둥산 중 하나이다
모산봉은 어머니의 품 같이 포근하고 아늑하다고 해서 그리 부른다고 한다.
봉우리 생김새가 노적가리 같다 하여 노적봉이라 하기도 하고,
고봉으로 담은 밥그릇 같다고 밥봉이라고도 하며,
강릉에 인재가 많이 난다고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강릉에는 네 기둥산(四柱山)이 강릉을 떠 받치고 있어 강릉은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왔고,
이 네 개의 기둥산은 강릉을 중심으로 마름모꼴로 버티고 있으면서 터를 단단하게 다진 것이다,
남대천을 기준으로 하여 남쪽에 2개, 북쪽 2개를 합해서 네 개의 기둥산이 있다.
먼저 유천동에 있는 땅재봉은 옛날 이 봉에 당을 지어놓고 당재를 올렸다고
당재봉이라 하다가, 나중에는 땅재봉으로 되었다고 하며,
저동에 있는 시루봉은 생김새가 시루처럼 생겼다고 시루봉이라 하고,
두산동의 월대산은 초저녁 보름달이 떴을 때 동헌(東軒)인 칠사당에서 이 달을 바라보면
마치 산 위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월대산이라고 한다.
모산봉은 강릉의 부와 명예를 동시에 떠 받쳐주는 봉우리로 인식했기 때문에
강릉의 안산이 되고, 그러므로 모산봉을 보고 집을 지으면 잘 살 수 있다고 한다.
모산봉 정상에서 잠시 휴식...(14:08)
성냥팔이 소녀.... 수정초님..
지고지산님
탐사대장님
장현 저수지 도착...(14:46)
장현저수지 長峴貯水池
강원도 강릉시 장현동에 있는 저수지.
장현저수지(長峴貯水地)는 장현동에 있는 저수지로 구정면 여찬리, 내곡동, 장현동에 걸쳐 있는데
저수지 주위에는 송파정, 장안성, 왕고개, 장안재, 진재 등이 있다.
장현저수지로 들어오는 물줄기는 늘목재(구정면 구정리와 왕산면 도마리 사이에 있는 고개)
밑에서 흘러 구정리와 여찬리를 지나 온 물이다. 이 물은 저수지를 지나 신석동, 월호평동으로 흘러간다.
한국 농어촌 공사 강원 지역 본부 강릉 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장현저수지는 관개 개선과 지목 변환 목적으로 1941년 11월에 착공하여 1947년 9월에 완공하였다.
2002년 태풍 루사 때 제방이 40m가량 붕괴되어 돌과 흙으로 다시 쌓았다.
2002년 12월 모두 71억 1400만 원의 사업비가 투자돼 저수지 복구공사가 시작됐고,
2004년 12월 지금의 현대적인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환경부의 스마트 그린도시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돼 생태복원사업이 이루어진 강릉 장현저수지
시는 지난 2020년 스마트 그린도시 공모에 선정되자 사업비 36억여 원을 들여
장현동 462번지 일대 저수지 둘레 1.91㎞에 생태복원 사업을 실시했다.
시는 농어촌공사에 공사를 위탁해 온실가스 감축과 수질개선 등을 위한
생태습지 2개소와 녹조 방지장치 3개소, 수질정화여울 1개소, 접촉산화수로 135m를 조성했다.
특히 저수지 둘레를 자연친화적으로 조성, 주민들의 운동코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인도교를 설치해 연결하는 등 친수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
이쁜 척(?) 하는 여인네들...
국땅님... 표정이 왜 저러지?
송파정 松波亭
강릉최씨 종중 입지계에서 선조 추모와 문중 회합의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세운 정자.
강릉시 장현동 장현저수지 근처의 송현(松峴)에 있다.
강릉최씨 판서공(判書公) 입지계의 최사광(崔斯廣)과 춘헌공(春軒公) 최수(崔洙)의 묘소 인근이다.
1946년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누정이 있는 장현동은 동원군(東原君) 최씨 세거지이다.
이곳 세거지에 장현저수지가 만들어져 그 풍광이 항주의 서호와 같았다.
춘추 묘제 시 선조 추모의 장을 만들기 위해 송파정을 건립하였다.
[금석문]
‘송파정(松波亭)’이란 현액과 ‘풍속영귀(風俗詠歸)’란 대자 현액을 비롯해서
송파정건임사록(松波亭建任司錄, 119×27㎝),
1948년 후손 소헌(紹軒) 최건중(崔坤重)이 쓴 송파정기(松波亭記, 120×35㎝),
1948년 성산(醒汕) 최봉중(崔鳳重)이 찬(撰)한 상량문(上樑文, 118.5×35㎝) 등 13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저수지 데크 길을 걸어간다...
저수지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마루금...
왕고개 근처에 있는 왕현산 성지...(15:36)
왕현산성지 王峴山城址
학산리 고분군은 장현저수지 남쪽의 구릉지대에 위치하며, 현재 도굴된 고분들이 방치되어 있다.
1963년 10월 삼국시대 대부호 1점, 장경호 1점, 대부배 1점, 이부고배 2점, 무개고배 1점,
병 1점, 고배개 3점이 출토되어 현재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왕현산성지(王峴山城址)[강릉시 구정면 학산 1리는 일명 장안성이라고도 하며
구정면사무소에서 동으로 약 700m 지점에 위치하는
왕고개의 북쪽 구릉(60m)의 남쪽 경사면에 발달된 작은 골짜기를 둘러싼 반원형의 토석혼축성이다.
이곳에서는 성의 북서, 남동쪽에 전개된 완사면 일대를 조망하기 쉽다.
성벽과 주변의 비고는 20m 정도이나 북쪽의 외측은 급사면을 이룬다.
수성암계통의 변성암으로 축조되었고, 석재는 북벽아래의 구정천변의 돌들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성의 둘레는 500m 정도이고 전형적인 북고남저(北高南低) 형의 지세에
남쪽에 건물지로 보이는 평탄지와 그 바깥쪽에 우물지가 분포한다.
성의 토축부와 외부 경사면에서 본성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신라 토기편과 청동기시대의 민무늬 토기편 약간이 수집되었는데,
이는 이곳에 본래 매장되어 있던 유구라 당시 성 축조시에 교란되어 원위치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항상 그 자리에서 반겨 주는 거리의 악사
보호수( 保護樹)
국가나 지자체에서 보호하고 있는 중요한 나무. 일반적으로 수령이 오래되거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나무들이 속한다.
마을의 입구나 관아. 면소재지등의 앞에 있는 정자나무나, 제사나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서낭나무와 당산나무는 일반적으로 오래됐기 때문에 보호수인 경우가 많다.
나무가 고사하면 해제되는 경우도 있다.
보호수 중에서 특히 가치가 있는 나무는 시도자연유산이나 시도기념물, 궁극적으로는 천연기념물로 승격지정되고는 한다.
보호수는 산림청 관할이지만, 기념물급부터는 국가유산청 관할로 넘어가는데,
나무가 담고 있는 역사적 가치와 생물학적 희소성을 국가유산으로서 인정했기 때문이다.
모두 자두를 따 먹기에 바쁘다.(제법 맛있었다)
굴산사지 옆을 지나간다..
江陵掘山寺址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신라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존속한 굴산사의 터.
신라 말기에는 지금의 학산(鶴山)이 굴산(掘山)이었으므로 굴산사라 하였다.
범일(梵日)의 명성을 들은 명주도독(溟州都督) 김공(金公)이 범일에게
명주 땅에서 법(法)을 펴줄 것을 요청하자 범일은 나이 40세에 굴산사를 창건하였다.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597번지 일원으로 학산천과 북쪽에 나란히 이어진 능선과의 사이에 형성된 평지에 해당된다.
구정면 소재지에서 왕고개를 지나 학산 1리에서 우회하여 대성사 방향으로 가다가
학산 2리의 「강릉학산오독 떼기」 전수회관이 있는 지역이다.
850년(신라 문성왕 12)에 창건되어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전성기 때에는 수천의 승려들이 기거할 정도로 15만 평 규모의 웅장한 사찰이었다.
절집의 반경이 300여m에 이르고 수도하는 승려만 2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이때 쌀 씻은 뜬 물이 섬석천을 지나 남항진 앞바다까지 흘렀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 훼철되었지만 지금도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당간지주(幢竿支柱)[보물 제86호]와
부도(浮屠)[보물 제85호], 그리고 석불입상(石佛立像)[지방문화재자료 제43호]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당간지주는 일석식(一石式)의 거대한 석재 지주(石材支柱)인데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지주 중의 하나이다.
지주에 걸맞은 강경(强勁)한 수법은 통일신라의 작품다운 웅대한 조형미를 보여 준다.
[의의와 평가]
범일이 창건한 굴산선문(掘山禪門)은 신라 말기와 고려를 거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일맥(一脈)을 형성하면서 수많은 고승을 배출하였다.
특히 오늘날 한국 불교의 정통이라 할 수 있는 조계종(曹溪宗)의 창시자인
불일(佛日) 스님과 보조(普照) 스님은 범일의 법손(法孫)이다.
따라서 굴산종(掘山宗)은 현대 한국 불교의 전통을 지탱해 온 정신적 지주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오독떼기 전수관 앞에서 굴산사 가는 길... 발걸음을 마무리한다....(16:14)
'함께'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걸어온 바우님들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레이니어님 다시 한번 生辰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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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금 일찍 가서 바다를 보고 싶었었는데
어찌어찌 하다가 그 바다를 놓치고
걷자님 사진으로 바다를 봅니다~
맞엉~
기온이 높지 않다고 했는데
우와~~땀이~
힘들어서 중간에 접을까 싶었지만
모 함께 하다보니 끝까지 가게 되더라구요~
걷자님
반가웠고,감사합니다~^^
걷기에 지루하다 싶은 시간
걷자님의 신박한 장비 음향에 잠시의 감상시간 좋았구요,
남교리,서북능,희운각,공룡능,황철봉,미시령으로 다녀오신
설악의 이야기에 경이와 넘사벽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후기가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미처 시선이 머물지 못했던 주변과 상황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시간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후기 작성 감사드립니다.~~^^
오랫만에 함께 걸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아빠와 딸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김시습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답사여행이 이번엔 부여 무량사였습니다
무량사에 낙화암, 고란사까지 돌아 보는 동안 어찌나 땀이 흐르던지요,, ㅠ
강릉 날씨를 검색하니 전국에서 기온이 제일 낮아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사진에 담긴 바우님들의 얼굴이
그날 날씨를 짐작케 합니다
더운 날씨에도 변함없는 후기에 감사한 마음
마구 마구 보냅니다~❤️❤️❤️ 😍🙆♀️
수고 많으셨습니다~걷자님
^^
늘 그러하듯 걷자님의 포스팅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새로이 배워서 알게됩니다. 쭈욱 건강하고 행복한 걸음과 산행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생일 축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