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옥보(洪沃輔 1709~1772)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계심(啓心), 호는 유첨당(有添堂)이고 충주 출신이다.
현조(玄祖)는 대사헌 홍이상(洪履祥) 고조부는 남원부사 홍탁(洪𩆸), 증조부는 양성현감 홍주천(洪柱天), 조부는 판돈녕부사 홍만조(洪萬朝), 부는 홍문관교리 홍중휴(洪重休)이고 어머니는 목사 엄찬일(嚴纘一)의 따님이다.
1740년 경신(庚申) 증광시(增廣試)에 3등으로 진사가 되었고, 음직으로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익위솔( 翊衛率), 청하현감을 지냈다. 홍옥보가 1765년 청하현감(淸河縣監)을 지낸 후 귀향하면서 충주 연원역(連原驛) 서쪽 금릉리(金陵里)에 있는 아버지 교리공(校理公) 중휴(重休)의 묘소를 성묘(省墓)하고 하담(荷潭)을 지나다가 그 산수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하강지상(荷江之上) 사휴봉(四休峰)에 정자를 짓고 정자이름을 ‘사휴정(四休亭)’이라 하였으며 스스로 ‘사 휴거사(四休居士)’라 칭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옥보가 죽자 하담(荷潭)의 구릉, 즉 지금의 모현정 기슭에 장사지냈다. 사휴정(四休亭)은 청하공(淸河公) 홍옥보가 1765년 청하현감(淸河縣監)을 지내고 귀향 후 1772년 사망 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홍옥보의 시문집인 『유첨당고(有添堂稿)』는 2권 2책으로 필사본이다. 권두에 자서(自序)인 몽각재시서(夢覺齋詩序)와 몽각재폐추서(夢覺齋㢢帚序)가 있고, 이내정(李乃貞)이 1706년(숙종 32)에 쓴 몽각재시고 후(夢覺齋詩稿後)가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 1에 서(序) 4편, 발(跋) 1편, 시 263수, 제문 2편, 권 2에 시 321수, 서(序) 4편, 기(記) 1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정리되지 않은 초고본이다. ‘청하읍지도서(淸河邑誌圖序)’는 청하현감으로 있을 때 『청하읍지』를 간행하고 쓴 글이다. 발간 동기와 경위를 설명하고 지방의 사료가 됨을 강조하였다. 그 밖에 ‘만성관 상량문(蔓城館上梁文)’ ‘사 휴정기(四休亭記)’등이 있다.
청하현은 현재 포항시 청하면, 송라면 일대이다
-예성문화연구회 어경선 선생 글 옮김-
정약용의 글에 사휴정이 자주 등장하는데 사휴(四休)는 네 가지 만족하는 일로 첫째 소박한 음식에 만족하는 일, 둘째 해진 것을 깁고 찬 것을 막아서 따뜻하면 쉬는 일, 셋째 과하면 쉬는 일, 넷째 탐내지 아니하고 샘내지 아니하며 늙으면 쉬는 일을 말한다.
청하공(淸河公)묘소를 이장하려는 생각도 했지만 사휴정과 관련된 인물이라서 사초 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묘지 안내판은 역사가의 고증을 통하여 후일 세워야겠다.
2025년 3월11일 우선 봉분과 제절 부분만 사초를 마치고 간단한 주과포로 고사를 올렸다.
금가면에 거주하는 족손(族孫) 기황 씨가 두 번씩 왕래하여 고사를 함께 지냈다.
3월 19일 인부를 동원하여 사성과 순전 부분이 유실되지 않도록 마무리 공사를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