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성야 - 가해
①창세기 1,1-2,2 ③탈출기 14,15-15,1 ⑤이사 55,1-11
⑦에제키엘 36,16-17ㄱ.18-28 ①신약 : 로마 6,3-11 복음: 마태 28,1-10
2023. 4. 8. (토)
주제 : 부활이 실현된 날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그 일이 우리의 삶에는 어떻게 가능하겠는지를 묻고 대답을 찾는 날, 부활대축일입니다. 40일의 사순절을 길게 지내고, 이틀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짧게 기억하고 기념한 다음, 우리는 오늘 토요일 밤에 부활을 얘기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부활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현상을 보면 우리가 부활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부활에 관해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세상의 삶에서 내가 일찍이 부활을 만난 적이 없으니, ‘나는 부활을 모른다(!)’고 말할까요? 아니면 내가 신앙인으로 살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통하여 기대하는 바를 부활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겠습니까?
지난 목요일 밤에 기념한 히브리인들의 파스카식사에 그 시작을 둔 성찬례로부터 히브리인들의 삶에 적용된 것이 하느님의 구원을 생각하게 하는 일이었고, 그 구원은 훗날 우리의 삶에 부활이 되었지만, 히브리인들과 같은 일을 현실에서 우리가 반복하지는 않는 사람이니 다른 민족의 처지에서는 부활을 설명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부활은 우리의 삶이나 우리의 피부에 가까이와 닿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이외에 그 어떤 종교도 부활을 말하는 신앙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활을 알아듣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일찍이 부활에 관해 말한 종교도 없고 그 어려운 내용을 현실에서 일어난 일로 설명하는 종교와 신앙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원리이고 믿음인, 부활(復活)을 바르게 알아듣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이루신 일입니다. 사람들의 사이에 실현된 부활을 우리가 읽는 성경에는 루카복음에 나오는 ‘나인에 살던 과부의 아들이 살아난 일’이나 요한복음에 나오는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라자로가 다시 살아난 얘기’는 자기의 힘으로써 이룬 일이 아니라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부활의 특징을 말하지는 못할 내용입니다.
부활은 세상에 살던 존재가 숨이 멈추고 삶이 끝났다고 판정한 후에, 하느님의 힘이 그 사람을 다시 찾아오시어 그 사람에게 생명이 계속되는 일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신앙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창세기독서에 들은 내용은, 하느님의 창조가 우리의 세상에 다시 실현되는 일이 될 것이고, 이 부활은 히브리백성이 이집트땅에서 노예살이를 통하여 준비되었다가 가나안땅으로 향하기 전, 빠스카제사로 징벌의 천사에게서 구원을 입고 갈대바다를 건너는 일로 현실이 될 일로 다가옵니다.
부활은 우리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통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생명에 일치할 때 완성되는 일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삶에서 만드는 여러 가지의 죄와 허물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털어내고 새로운 마음과 생각을 가질 때, 우리의 삶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일찍이 부활에 관해서 수차례나 들었을 세 여인은 부활이 일어난 현장에서 예수님은 부활하셨다고 천사들이 전하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지만, 그녀들은 부활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알았거나 믿던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눈으로 본 것도 아니고, 행동을 보고서 이해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믿음의 내용으로만 부활을 들은 것이 우리의 처지인데, 올바르게 대하게 해주시라고 간절히 청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