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돈부리'는 한번도 보지도 먹지도 못한 이가 횡설수설하는 돈부리 100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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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은 맛집 시대에 아직까지 '돈부리'를 먹어보지도 못했다는게 부끄럽기^^조차 하다.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규동과 함께 '돈부리'라는 요리를 듣게 되었는데,
이름이 낯설어서 일본문화 개방과 함께 요즘에사 보편화된 걸로만 짐작했다.
그게 아니었다.
195,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돈부리'는 우동과 함께 '흔한' 요리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그시절에도 지금처럼 오야코 돈부리, 니쿠 돈부리, 우나기 돈부리라고 불렸다.
그런데 그 시절 돈부리는 왜 사라졌고, 똑같은 일본 요리가 다시 새롭게 들어오게 되었을까?
그리고 돈부리를 '덮밥'이라고도 하는데,
황교익의 말처럼 덮밥은 돈부리의 번역어에 불과할까? '불고기'처럼 되살려 낸 한국어일까?
그리고 야키니쿠와 돈부리 중 어느 말이 빨라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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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전후 옥동국민학교에 근무하던 선생님의 사진첩에서의 사진이다. (더 보시려면)
이 사진은 속리산 법주사 주변에 있는 '서울식당' 입구에서 찍은 것인데,
글자가 흐릿하지만 좌측 입간판에 관심을 두어보자.
우동, 돈부리, ㅁㅁㅁ 그리고 보끔밥으로 보인다.
저시절 사람들에게 일본식 돈부리가 '요리' 명칭으로 통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제 시대만 해도 지금 우리가 중국집에서 짜장과 짬뽕을 배달시켜 먹듯이,
돈부리와 우동을 배달까지 시켜서 먹기도 했던 값싸고 익숙한 도시 음식으로 보인다.
전쟁 중 인천이라고 추정하는 사진 한장을 보자. 삼흥(三興)식당이 눈에 띤다.
입구에 있는 간판은 냉면이라는 큰 글씨 좌측에 계란탕, 볶음밥이라고 읽힌다.
지붕에 있는 간판에는 대중식사. 주류 일체라고 하면서
우측에는 '떡국, 장국밥'이 있어 한식이
좌측에는 우동, 불고기, 그리고 돈부리라는 일본식 음식이 적혀 있다.
그러니까 일본이 패망하고 난 다음에도
'우동'과 함께 '돈부리'라는 왜식 명칭이 계속 씌였다.
반면에 역시 왜식인 '야키니쿠'는 이미 '불고기'가 대중들에게 널리 수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야키니쿠,돈부리 그리고 벤또 중 어느것이 언제쯤 사라졌는지를,
아마추어 수준에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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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순화작업에 있어서 가장 '보수적'인 한글학회가 1949년 왜색 간판을 우리말로 바꾸자 했는데,
보시다시피,
돈부리 오뎅 우동 소바 스시 사시미 돈카스 벤또 다꾸앙 등등 다 있는데 '야키니쿠'는 없다.
식당의 간판은 국어'운동'단체가 아니라, 대중의 취향에 편승한다는 점에서 볼때,
불과 몇년전일제 때도 대중들은 야키니쿠보다 불고기를 더 선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다.
즉 황교익이 주장하듯, 불고기가 야키니쿠의 번안이건 아니건 간에,
대중들은 이미 불고기를 '우리말'로 선택했다는 거다.
위의 1952,3년 전쟁중 인천의 식당 간판이 이를 증명한다.
한편, 조선어학회 출신의 원로 국어학자 김윤경은 1965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처음에는 생소하고 듣기 어색했지만 ‘벤또’ 대신에 ‘도시락’이, ‘돔부리’ 대신에 ‘덮밥’이,
‘야키니쿠’ 대신에 ‘불고기’라는 말이 성공한 것은 얼마나 좋은 예냐”고 말한다.
'불고기'는 60년대가 아니라 4,50년대에도 이미 야키니쿠를 이기고 있다고 보여지고,
진작부터 있던 고유어 도시락 역시 최현배가 발굴하여 벤또를 대체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돔부리와 덮밥 관계는?
덮밥 역시 돔부리에 우선해 있던 고유어를 발굴일까?
나는 번역어 또는 번안어에 불과하다고 본다.
물론 덮밥은 덮개, 덧신, 접칼 등과 같은 한국어 조어방식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때부터 있던 요리라고 볼 수는 없다.
위의 인천 간판에 보듯 돈부리와 또다른 요리, 볶음밥이 있다.
즉 조선인들의 식습관을 염두에 두어보면, 볶는다고 하면 밥과 재료를 한꺼번에 모조리 볶아 내지,
계란이나 고기만 딸랑 볶아서 맨밥에 얹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볶음밥을 즐길 만큼 기름이 많았을까 싶다.
결정적인 물증은 또 있다.
네이버 뉴스 라이버러리를 보면 덥밥 또는 덮밥이라는 용어는 일제 때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위의 동아일보 1925년 기사를 보면,
'돈부리'를 '일본 계란 비빔밥 담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돈부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곤혹스러워 하고 있고, 결국 '비빔밥'류로 번역하고 있다!!!
결론은 해방 후 한글학회 측에서 새로운 우리말 '덮밥'을 만들어 내어 명명한거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돈부리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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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정부는 요식업세 메뉴 등에서 강력행정조치를 하였다. 이런 조치는 지속적이었을 것이다.
우동을 밀국수로, 돈부리를 덮밥으로, 오뎅을 꼬치로, 돈까스를 포크스틱으로 .....
그시절 식당을 얼마나 달달 볶았을지, 우리는 유신 정부 스타일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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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나기 전에 상황은 변한걸로 보인다.
우동과 오뎅은 그대로 살아 남았지만, 돈부리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그 까닭은 우동과 오뎅은 우리말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돈부리는 딱 왜색말인 듯해서일 것이다.
니쿠 돈부리는 제육덮밥으로 바뀐 건 알겠지만, 인기 많았던 오야코 돈부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오무라이스가 그것일까?
실제 요리가 어떻게 변형되고 도시에서 살아남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로부터 또다시 20년이 지나기 전에. 아마 DJ정부때의 일본문화 수입과 궤를 같이 했을까.
일본 본토에서 다시 '돈부리'가 수입된다.
한국화한 제육덮밥과 오징어, 낙지 덮밥은 덮밥으로 불리워도
새로 등장한 돈부리는 덮밥으로 부르지 않는 걸로 보인다.
왜냐하면 돈부리는 덮밥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파게티가 밀국수가 아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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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이병기가 1949년 10월에 발표한 '유행과 습관'에는
8.15 이후 일정의 잔행을 없애려고 국어정화운동을 꾀하였건마는 아직도 우동, 오야코 돈부리, 스시 는 고사하고 일어를 그냥 쓰는 이도 있다. 이건 무슨 까닭인가 사람은 새것을 좋아하고 낡은 것을 싫어하기도 하며, 낡은 것을 좋아하고 새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아래는 같은시기 돈부리와 관련하여 벌어진 치열한 언론플레이^^를 살펴보자.
1949년 한글학회의 발표가 있자, 서울대 이숭녕 박사는 '신조어의 강요'라는 말로 불만을 표한다.
국립대교수라서일까 논조가 애매모호한데,
베스트 셀러 '첫사랑'의 저자 박계주는 신랄하다. 지금 읽어도 시의성이 읽어 일독할만하다
백성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는지, 1955년 치안국에서 다시 왜색명칭안 통일을 발표한다.
그러자 동아일보에서는 '본래 한국말에 있었다면 또 모르거니와,
우동은 칼국수가 아니고 돈부리는 덮밥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이미 우동과 돈부리는 한국말이 되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6,7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인은 '우동'은 살리고, '돈부리'는 포기하기에 이르른다.
네이버 뉴스 라이버러리를 검색해보면, 8,90년대에 돈부리 또는 돔부리라는 용어는 없다.
다만 언론과 달리 시중에서는 그렇게 불리웠을 가능성은 없지 않겠다.
지금은 어떨까?
지금은 '돈부'만 넣어도 돈부리가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시민대중은 지난 백여년동안 일본에서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였는데,
우동과 오뎅은 우리말로 인정하고, 돈부리는 외국어인 일본말로 되돌려 놓았다고 해야겠다.
이상 '돈부리'라는 명칭의 얼기설기 100년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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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삼흥(三興)의 '삼'은 천지인이 아닐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주 흔한 걸 보면, 일본식 명칭으로 보이며 그들은 '산코'라고 읽게 된다. 일본의 유명한 미츠비시가 역시 삼릉(三菱)이고, 전자회사인 산요가 삼양(三洋)이다. 1931년 서울에서 세운 유명한 출판사 '삼중당'에도 삼이 있고, 또다른 출판사 '삼성당'도 일본의 '산세이도'라고 불리고 있다. 1936년 이병철이 세운 삼성은 일본말로 미츠비씨와 비슷하고 1924년 김연수가 세운 삼양사와 1963년 세운 삼양라면 역시 일본말로 '산요'이다. 아이스크림 만들든 삼강사와도 있다. 이중에 혹시라도 일본식 명명방식을 흉내낸건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