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묘(太師廟)는 안동시 번화가인 북문동에 있습니다
안동시 북문동에 있는 태사묘 전경
[2022년 8월 25일(음:7월 28일. 일출 5시 56분.일몰19시 12분]
중국 산둥 반도 인근의 고기압 영향을 받아.
전국이 대체로 흐리고 구름이 많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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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과 경북 북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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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비슷 하겠습니다
▣...태사묘(太師廟)는 안동시 번화가인
북문동 24-1번지에 5동(棟)의
전통건축양식으로 축조되어 있으며
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태사묘에는 병산전투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물리치고
고려 건국에 크게 공을 세운
오김(吾金)의 시조 김선평(金宣平)과
안동권씨의 시조인 권행(權幸),
안동장씨의 시조인 장길(張吉) 등
삼태사의 위패(位牌)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고려태조 왕건으로 부터 하사받은 유물들.
그리고 이 곳에서는 매년
춘추 중월중 정일
(春秋 仲月中 丁日)에 향사를 거행한다.
삼공신묘는 고려 성종 2년(983년)에
안동부사내(安東府司內)에 창건했으며
삼공신 위판(三功臣 位版)은
부사에서 옮겨 모시다가
강릉태생인 김광철이
중종 37년(1542년) 안동부사로
재임하고 있으면서 처음으로
신위(神位)를 모실 집을 지었다.
그 당시에는 정초, 단오, 추석,
동짓날등 1년에 4번 제사를 지냈으나
1585년 도유사인
송암 권호문의 주창으로 춘추향사,
즉 1년에 봄과 가을에 2번 봉사키로 결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1608년 11월에 유사였던
권중상, 권함, 김태, 장흥효가
삼공신의 위판 신주의 글자를
고쳐 쓰게 하여 권오(權晤)가 ?다.
또한 임진왜란 때는
안금이(安金伊)라는 묘지기가
후손들도 무관심한 삼태사의 위판을
길안면 국란 계곡의
깊은 동굴속으로 정성껏 모셔다가
3년이나 봉안했다.
그러다가 임란이 끝나고
나라가 평안해지자
나라에서 임금님이 그 소식을 듣고
안금이의 뜻이 갸륵하다고 여겨
첨지라는 벼슬을 내렸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지나 그가 죽자
경내의 한귀퉁이에
안묘당(安廟堂)을 지어 봉안해 오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경인란시에는
폭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별유사(別有司) 장봉섭이
삼태사 위판을 성곡동
장씨 광풍정(光風亭)에
이안(移安)하였다가.
익년 8월13일에
능동 안동권씨 재사 보판각으로 이안하고
매년 춘추 향예를 봉행하여 오다가
1953년에
3성 후손이
중건 위원회를 발족하여
후손들의 성금으로
새로 중건하니 묘우 숭보당(崇報堂),
전사청(典祀廳),
동서재(東西齋), 안묘당(安廟堂),
주사(廚舍) 공사(工事)를 마치고
1958년 9월에 삼태사공 위판을
환안봉안(還安奉安)하고
고유(告由)하였다.
그 후 1963년에 보물각(寶物閣),
경모루(景慕樓)도 이어 준공하였다.
중건 후 수 십여년 간에 퇴락으로
삼성후손들이 걱정하여 오던 중
도유사(道有司) 김중한이 입재(入齎)하여
묘우 및 경내 건물 보수관계를
태사묘 관리위원들과 협의하여
관계기관과 절충한 결과
국가 보조금으로
1993년부터 3년에 걸쳐
묘우를 비롯하여
경내건물과 담장을 깨끗이 일신하였다.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에 있는 사당.
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權幸),
안동권씨 시조 권행(초상화)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金宣平),
안동장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을 제향하고 있다.
삼공신묘·안동태사묘라고도 한다.
창건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려 초에 안동부민이
3태사의 업적을 추모하여
사당을 세우고 치제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하며
1561년(명종 16)에 중수하였다.
문헌에 의하면
신라 말엽에 김행이
고창군(古昌郡 : 지금의 안동)을
지키고 있을 때
도포 입고 유건을 쓰고 제사올리는 모습.
후백제왕 견훤(甄萱)이 반란을 일으켜
경주로 쳐들어와 왕을 죽이고
왕비를 능욕하였으므로
고려 태조 왕건이 천인무도한
견훤을 토벌하고자 신라로 내려왔다.
왕건의 군대와 견훤의 군대가
팔공산을 중심으로 대치하고 있을 때
김행이 김선평, 장정필과 상의한 끝에
고려를 도와 신라의 복수를 꾀하였다.
뒤에 왕건이 삼국을 통일한 뒤에
김행의 용기를 칭찬하여
권씨로 개성(改姓)하게 하고
김선평과 장정필을
모두 태사에 봉한 뒤
안동을 부로 승격시키고
사당을 지어
부민이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당시부터 천여 년간 안동권씨 측에서
묘사를 주관하였으나
영조 때 왕명으로
3공신의 자손은 동일한 것이니
3태사의 자손이 공동관리할 것을 명하여
오늘에 이른다.
묘우 안에는 묘정비·보물각·숭보당·
경모루 등이 있어
유물과 유적을 보관하고 있으며
3태사의 자손들이 모여서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또한, 3공신묘는 지방의 사우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고려건축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중수 때에도 제도를 변경하지 않았다....빵긋
3태사 묘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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