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도서관 첫 이용자로
새해 이튿날이다. 새벽녘 잠 깨어 전날 다녀온 일출로 ‘여명(黎明)’이란 시조를 남겼다. 몇몇 지기들에게 새벽 강변 풍경 사진과 같이 카톡으로 보냈다. “어둠은 짙을수록 뒤끝이 작렬했다 / 조각달 걸어둔 채 뭇별은 자동 점멸 / 동녘은 붉은 기운이 안단테로 번졌다 // 밝음은 옅을수록 시작이 미미했네 / 철조망 통과하듯 끝끝내 낮은 포복 / 강가는 숨을 죽여서 신세계를 맞았다”
관공서나 회사에서는 한 해 첫날이 시작된 화요일이다. 직장인 출근이나 학생들의 등교 시각 이전에 나도 덩달아 자연학교로 나섰다. 날씨가 포근하고 맑은 날이지만 야외가 아닌 도서관 걸음이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으니 아직 겨울 방학에 들지 않은 등굣길 학생들도 몇 보였다. 원이대로를 건너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지나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으로 향했다.
진입로 노변에는 도서관에서 내건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봄을 기다리는 겨울의 소리’로 빌 게이츠 어록 ‘겨울은 내 머리 위에 있다. 하지만 영원한 봄은 내 마음속에 있다’와 문정희의 ‘겨울 사랑’과 안도현의 ‘우리가 눈발이라면’이란 시가 걸려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정시인 정일근의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이나 ‘신문지 밥상’을 내걸어도 좋을 듯했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새해 도서관 이용자로는 가장 먼저 입실해 2층 열람실로 올라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묵은해가 되는 며칠 전 집으로 빌려 갔던 책 가운데 못다 읽은 책을 꺼내 봤다. 대학에서 상담 심리를 가르쳤던 최광현의 ‘아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였는데 자식도 장성해 떠나보냈고 교단생활도 마감한 처지였지만 지난날을 돌아본 계기로 삼으면서 후학의 관심과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최 교수의 책을 덮고 김욱동이 엮은 ‘내가 사랑한 동양 고전’은 발췌독으로 부분부분 살펴 읽었다. 빌려 읽은 도서를 반납하러 갔더니 수습 직원인지 가슴에 명찰을 단 새내기가 사서의 지도를 받아 업무를 익히는 중이었다. 이어 신간 도서 서가에서 읽을 책을 세 권 골랐다. 한시 해설서와 심리학자가 쓴 책에 이어 노화와 장수 과학에 관한 번역서 ‘역노화’를 뽑아 대출 신청했다.
열람석으로 돌아오니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때였다. 교육단지 도서관은 구내식당이 없어 불편을 겪는다. 매번 컵라면이나 집에서 가져간 삶은 고구마로 간단하게 때운다. 엊그제 함안 가야 장을 함께 둘러 온 문우가 그날 시장 본 명태로 전을 구워 먹을 거라 해 구미를 당겨 접선이 예상된 곳이 떠올랐다. 대출 도서를 챙겨 배낭을 추슬러 둘러메고 열람실에서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일행과 자리를 갖기로 잠정 예상된 용지호수 쉼터로 가는 길에 중앙동 오거리 상가를 지나다가 어묵 포장을 손에 들었다. 한겨울임에도 날씨가 포근해 얼음이 얼지 않은 수면에는 쇠물닭과 고니가 헤엄쳐 놀았다. 호수엔 점심때면 시원한 분수 물줄기가 뿜어 솟구쳐 올랐다. 가랑잎이 쌓인 공원 쉼터 평상에 지기가 구워온 도톰한 명태전과 어묵은 간식을 넘어 한 끼 식사가 되었다.
소박한 차림이지만 셋이 공원 쉼터에서 식도락을 즐기고 곁의 어울림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은 제때 반납할 수 있었다. 장소를 옮겨 인근 아파트 상가 카페로 가서 커피를 들면서 환담을 나누다 일어났다. 두 지기는 문학 단체를 이끄는 공적 일로 세무서에 무슨 용무를 봐야 했다. 나는 오는 주말 집안일로 필요한 인쇄물 출력이 필요해 후배가 근무하는 학교를 방문해 도움을 받았다.
예전 근무지 동료였던 후배는 방학에도 예비 고3을 지도하느라 학교로 출근했다. 후배와 헤어져 짧은 낮이지만 해가 아직 남아 인근 도민의 집 전시관으로 향했다. 우리 고장이 낳은 조각계 거장 김영원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인체 구상 작품에 명성이 있는 조각가는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남기도 했다. 김영원의 조각과 회화 작품을 둘러보고 무학상가 카페로 가 꽃대감을 만났다. 24.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