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진달래
강 문 석
‘오~잉, 백두산 진달래라고? 말도 안 돼!’ 누구나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글 제목이지만 봄이면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나는 백두산이 있다. 바로 남녘 땅 김해에 소재한 백두산이다.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작은 땅덩어리인데도 백두산은 이처럼 둘이나 된다. 산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북녘 땅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뻗어 남녘 땅 백두산까지 연결되었다고 그럴듯하게 꾸며대지만 사실은 아니다. 산맥이름은 대부분 강 이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낙남정맥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정맥으로 양강도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끝나는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남강의 진주와 하동 사천 사이로 이어진다.
낙남정맥 동쪽으로는 마산과 창원 등지의 높고 낮은 산이 연결되다가 김해 분성산에서 끝나고 만다. 그러니 분성산과 떨어진 김해 백두산은 낙남정맥과는 관련을 지을 수가 없다. 산경표에도 낙남정맥은 나오지 않고 산자분수령으로 해석해도 그렇다. 그럼 낙동정맥은 어떠한가. 김해 백두산 정상에서 낙동강 너머로 빤히 바라보이는 금정산은 낙동정맥에 속한다. 낙동정맥은 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정맥으로 전 국토의 근골을 이룬 백두대간의 태백산 줄기 구봉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울산 가지산과 부산 금정산을 거쳐 다대포 몰운대의 낙동강 동쪽 하구에서 끝난다. 김해 백두산은 대동면 예안리·괴정리·초정리에 걸쳐 있다.
북서쪽 신어산에서 산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북쪽으로는 동신어산, 남동쪽으로 백두산으로 이어진다. 백두산은 낙동강 주변에 위치하여 동쪽으로는 부산대구고속도로와 지방도가 지난다.《조선지지자료》엔 백두산이 하동면 초정리에 있는 산으로 나온다.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낙동강으로 따져 상류가 ‘상동’이라면 하류는 ‘하동’이다. 그런데도 이곳 사람들은 상동을 향해 “우리가 왜 당신들 아래란 말이냐?”라면서 들고 일어나 ‘하동’을 ‘대동’으로 바꿨다니 그제나 이제나 지명에 대한 욕심은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백두산 이름에 관한 또 다른 기록도 있긴 하다.《한국지명총람》에는 백두산의 이칭으로 방산舫山을 수록하였다.
백두산 지명과 관련해 대홍수 때 산이 100마碼 정도 남아 유래했다는 설과 산경표 상의 끝점인 백두산에 대칭되는 시작점이 되는 산이라 이름이 그렇게 유래했다는 설이 있긴 하나 모두 아득한 옛 이야기다. 사는 곳 아파트에선 백두산이 가깝지만 동신어산이 가리고 있어 바로 보이지는 않는다. 내일은 백두산을 가자고 아내에게 말해놓고 나면 변덕 많은 봄 날씨가 미세먼지나 비를 몰고 와 방해를 놓곤 했다. 서재에서 바라다보며 가늠하기론 1km도 채 안 돼 보인다. 흐르는 낙동강만 아니었으면 홀로 걸어서라도 다녀왔을 백두산을 두고 속앓이를 했다. 하루하루 미루는 나를 백두산 진달래꽃이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코로나사태로 집콕이란 말까지 생겨나면서 사람들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던 때였지만 서둘러 집을 나섰다. 백두산 등산로는 초등학교 담을 끼고 시작된다. 신학기가 되었지만 코로나로 휴업 중인 학교는 적막했고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만개한 벚꽃은 햇살에 화사하게 눈부셨다. 등에 땀이 밸 정도로 경사진 산길을 오르자 길가로 무덤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야트막하게 남쪽을 향한 언덕배기여서 풍수지리상 명당에 들었을 것 같았다. 산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이처럼 많은데 등산로를 오르내리는 사람을 만나긴 어려웠다. 그때 진돗개를 앞세운 여인이 산책에서 돌아오는지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햐~아, 그놈 잘생겼다!” 여인은 내가 진돗개를 칭찬하는 말에 마음이 열렸던지 마스크를 얼른 턱밑으로 내리며 반색을 한다. 난 그게 고마워서 내가 알고 있는 진돗개 칭찬을 주저리주저리 읊어댔다. 오래 전 대전으로 팔려갔던 진돗개가 도망쳐 나와 진도까지 살던 집을 찾아간 이야기로부터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진돗개들 멧돼지 사냥장면과 진도대교 양쪽에 조각상으로 우뚝 올라선 진돗개 한 쌍까지…. “네, 맞아요. 얘는 우리가 말하는 거 다 알아들어요.” 아니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다니? 녀석은 바로 밑 원명사 절을 내려다보는 척 하다가 내가 주머니에서 꺼내는 폰을 의식하곤 고개를 살짝 카메라 쪽으로 돌려주었다.
백두산이란 이름 덕분인지 이곳은 바로 옆 동신어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등산로를 잘 꾸며 놓아 산이 호강을 하고 있었다. 등산로라기보다 명품 산책로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가야왕도 김해는 인구기준 경남 2위 기초단체로 부자도시이다. 그렇지만 백두산은 시가지에서 동쪽 끝에 붙어 면사무소와 초등학교는 있지만 부락이나 아파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등산로엔 테마길 3개와 체육공원 심지어 에어컨설비까지 갖추어 놓았다. 전후사정을 잘 몰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하나의 도시에서 편익시설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바로 옆 동신어산은 심한 소외감을 갖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산에다 돈을 퍼부은 기초단체가 스토리텔링을 빠트릴 리 있겠는가. 3개의 테마길 중 ‘가야의길’은 김수로왕 탄생설화가 깃든 구지봉을 비롯해 가야유적과 흘러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러고 얼마 가지 않아 누리길이라는 설명이 붙은 안내판이 나타나는데 가야신화가 상세하게 그 안에 들어있었다. 또한 ‘명상의길’에선 숲과 흙, 자연과 역사를 이어주는 길을 명상하듯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평화로워진다는 친절한 안내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편백의길’은 음이온이 풍부한 편백나무 숲이 피로에 지친 심신에 활력을 되찾게 해준다고 했다.
정상 300m 아래 6형제소나무는 한 뿌리에서 여섯 가지가 난 소나무를 상표 등록해 놓았다니 놀랍다. 6개 가지는 구지봉에 내려진 황금알에서 깨어난 6명의 사내아이가 6가야의 왕이 됐다는 가야건국신화를 연상시킨다하여 6형제소나무라고 불린다는 것. 단지 구지봉과 6형제소나무가 모두 김해에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처럼 근거도 없는 상상력을 더해 홍보물로 이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이며 속보이는 짓인가 싶다. 비단 김해만의 일은 아니지만 정부에서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육형제소나무 고개는 신어산과 장척산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기도하다.
백두산은 높이가 352.9m밖에 안 된다고 얕볼 수 있지만 해발 10m부터 시작되어 다른 산에 비해선 땀깨나 흘려야 정상을 밟을 수 있다. 3월 말 오른 백두산 정상엔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가 우리 앞에 찾아온 봄을 찬미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백두산 정상에 오르면 계절에 관계없이 낮은 산 아래로 펼쳐지는 비경에 놀라게 될 것 같았다. 육각정 뒤쪽으론 낙남정맥 줄기가 모습을 드러내고 멀리 가까이 출렁이는 파도처럼 굽이굽이 이어지는 연봉들이 한 눈에 조망된다. 가물가물 아지랑이 속 봄 햇살에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 물결도 은빛으로 반짝인다.
남으로는 김해평야를 지나 승학산과 멀리 가덕도 연대봉까지 보이고 북으로는 천성산과 영취산 신불산 시살등 염수봉까지 이어진다. 동으로는 금정산 능선과 백양산이 지척으로 가깝고 서쪽으론 신어산과 장척산이 팔을 뻗으면 손에 닿을 듯하다. 정상표지를 넣어 부부가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어 초소근무자인 산지기에게 촬영을 부탁했더니 한마디로 거절했다. 산을 오르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을 그가 일깨워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유로 거부했지만 화장실 가느라 일어섰을 때 그는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고 있었다. 불편한 다리로 정상까지 오르내리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산 정상에 붙은 ‘백두산 찬가’엔 앞에서 지적한 낙남정맥 오류가 빠지지 않았다. “한반도는 태고의 천기와 지령이 합일해 이룬 복된 땅, 호랑이 형세로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지세는 만방에 드높고 가슴에 담은 웅혼한 기개는 백두산으로 우뚝 솟아 백두대간에 흐른다. 장백정간과 열세 개의 정맥으로 이어져 방방곡곡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은 백두정기가 서린 곳이 바로 여기 낙남정맥의 종단 백두산이다.” 실루엣으로 모습을 드러낸 진달래 군락 뒤 ‘백두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리나라 시詩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소월의 <진달래꽃> 때문일 것이다.
작년 만추 끝자락에 북녘 백두산에서 맞았던 눈 폭풍도 벌써 추억 속 풍경이 되고 말았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름철만 오를 수 있었던 북녘 백두산이 세상이 좋아지는 바람에 이제 사시사철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침묵하는 백두산 천지는 여름이 아니고서는 세계에서 몰린 사진가들에게 조바심만 안겨주고 있을 것 같다. 비록 지금은 코로나사태로 비상이 걸렸지만 기화요초 지천인 남녘과는 달리 양강도와 중국에 걸쳐있는 북녘 백두산은 지금도 동면에 빠진 채 무심한 세월만 죽이고 있을 터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 앞에 펼쳐진 봄을 한껏 찬미하는 남녘 백두산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