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은 언제나 느닷없는 것, 회식 끝내고 헤어진 얼굴을 골목 귀퉁이에서 마주친 듯 쑥스럽고 겸연쩍게 고개를 돌리면, 허리 굽힌 사내가 책갈피 속으로 걸어간다
그는 문장들이 꾸며낸 이야기 속에서 한 생애를 살았고, 그의 말소리가 비바람에 뒤섞인다 천둥번개 굽이치면 커다란 목구멍이 공중에 걸려 있다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4.11.22. -
알고 지내던 시인의 부고는 단순히 동료를 잃는 것 이상의 깊은 상실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저런 행사에서 스쳐 갔던 기억을 떠올리다가 “그가 남긴 문장들”과 마주하게 되면 “진흙 구덩이” 속을 힘겹게 “걸어간 발자국이” 문득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그의 “문장 한복판에” 깊은 슬픔의 “저수지”가 있었음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시인은 갔어도 “글자는 검고 뚜렷”하게 남아 그가 모르는 누군가와 만날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연둣빛 반딧불”로, 어떤 이에게는 위험하고 아름다운 빛을 뿜는 “화경버섯”으로 말입니다.
현실에서의 시인의 삶은 고달팠을지는 몰라도 “문장들이 꾸며낸”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한 생애를” 살았으니 행복했을 거라 위로해보지만, 내면에서 폭풍우처럼 밀려드는 알 수 없는 슬픔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