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oz, Louis Hector 베를리오즈 (1803.12.11~1869.3.8)
프랑스의 작곡가. 남프랑스의 라코트생앙드레 출생. 17세 때까지 가정에서 일반교육을 받고, 그 후 파리에서 글루크의 오페라에 매혹되어 작곡가가 되고자, 르 쉬르에게 사사하였다. 1826년 파리음악원에 입학, 작곡법과 푸가를 공부하고 30년 로마상 콩쿠르의 대상으로 로마에 유학하였다. 그 사이 파리를 방문한 영국 셰익스피어극단의 여배우 해리에트 스미드슨을 짝사랑하여 《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1830)을 작곡하게 되었다.
그리고 위고, 리스트, 쇼팽, 힐러, 넬바르, 뒤마(부친) 등과 교유하는 한편, 34년부터는 자작의 연주회와 작곡 등으로 정력 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이 시기의 작품에는 독주 비올라에 이탈리아의 추억을 상기시킨 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롤드:Harold en Italie》(34) 《레퀴엠:Requiem》(37), 오페라 《벤베누 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38), 그리고 독창과 합창이 곁든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 엣:Romeo et Juliette》(39) 등이 있다. 그러나 38년 《벤베누토 첼리니》의 상연 실패로 후반 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게 되었다.
파리에서 자작의 활동무대를 잃은 그는, 42년부터 국외로 나가 연주여행을 하게 되었다. 곧 1842~43년에는 독일 각지에서 연주를 하면서, 서곡 《로마의 사육제 Le Carnaval romain》(43)를 작곡하였으며, 《근대의 악기법과 관현악법》(44)이라 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그러다가 1845~46년의 프라하·부다페스트에서의 연주여행이 성공하자, 이에 힘입어 귀국 후 《파우스트의 겁벌(劫罰) La Damnation de Faust》(46)을 완성, 초연하였으나 이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18 47년 러시아와 영국에서 장기 체류할 예정으로 건너갔으나 이듬해 일어난 프랑스혁명(2월혁명)이 걱정되어 귀국하였으며 그의 《회상록》은 이 무렵 영국에서 착수되었다.
50년에는 ‘필하모닉협회’를 결성하여 혁명 후의 파리에서 적극적인 연주활 동을 추진하였지만, 이 역시 이듬해에 좌절되어 다시 국외 연주여행을 떠났다. 1854년 3부작 오 라토리오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L’Enfance du Christ》이 비로소 파리에서 성공을 거두고, 이듬해 49년에는 완성 이후 연주장소를 얻지 못하였던 대작 《테 데움:Te Deum》이 만국박 람회 개막을 축하하여 연주되었으며, 56년에는 프랑스 아카데미회원으로 선출됨으로써 마침내 그는 생활의 안정을 얻었다.
만년에는 2부작 오페라 《트로이 사람:Les Troyens》의 작곡에 열중하였으나, 이 작품을 상연할 기회는 좀처럼 얻을 수 없었으며, 63년 제2부 《카르타고의 트로이 사람:Les Troyens a Carthage》만이 상연되었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희극 《베아 트리스와 베네딕트:B럂trice et B럑럅ict》(62)가 있다. 다년간에 걸친 연주여행은1867∼68년의 러시아 연주회를 끝으로 종지부를 찍고, 지병의 악화로 69년 3월 8일 파리에서 고뇌에 찼던 일 생을 마쳤다.
베를리오즈가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프랑스에서 유일한 교향 곡 작곡가이었으며 ‘표제음악’이라는 새로운 극적인 관현악곡 스타일을 창시한 데 있다. 그리고 이 음악과 더불어 그의 새로운 ‘관현악법’은 이후의 많은 작곡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문장에도 뛰어나 바그너와 더불어 명문가로 명성이 높으며, 자서전 《회상록》은 음악가가 쓴 전기문학 분야에서 걸작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