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시장 찬바람
서울 아파트 시장의 거래 절벽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본격적인 가격 조정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시세보다 가격이 낮은 경매 시장마저 유찰 사례만 잇따르고 있다.
◇경매 낙찰률 급감
법원경매 정보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9월 기준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서 진행된 아파트 경매 366건 중 낙찰된 것은 110건에 그쳤다. 낙찰률이 30.1%에 불과하다. 작년 낙찰률은 월평균 69.6% 수준이었는데. 올 들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보통 경매는 시세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인기 지역 아파트가 경매로 나오면 경쟁이 치열했는데, 요즘은 이마저 외면받는 상황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낙찰률은 20%에 불과했다. 9월 67건의 경매가 진행됐는데, 이 중 15건만 낙찰된 것이다. 10건 중 8건 꼴로 주인을 못 찾았다. 코로나 확산으로 법원 휴정이 잦았던 2020년 3월(10%)을 제외하고 지지옥션이 조사를 시작한 2001년 이래 역대 최저치다.
아파트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도 시세를 크게 밑돌고 있다. 지난달 경매에서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89.70%로 올 들어 처음 90%선 밑으로 떨어졌다. 감정가보다 10% 이상 낮은 가격에야 경매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이 역시 2020년 3월(83.30%) 이후 최저다.
◇대장 아파트 경매도 주인 못찾아
통상 감정평가액은 시세보다 10% 정도 낮다. 작년만 해도 낙찰가는 감정평가액보다 훨씬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강남권 아파트는 ‘없어서 못 사는’ 상품이었다. 예를 들어 작년 6월 경매로 나왔던 도곡렉슬 84㎡는 감정가 22억3500만원보다 7억원 높은 29억4899만9000원에 낙찰됐고, 대치동 한보미도맨션(128㎡)은 감정가(29억3000만원)보다 25% 비싼 36억6122만7000원에 낙찰됐다.
하지만 요즘엔 감정가 보다 낮은 낙찰가가 줄을 잇고 있다. 실제 사례를 보면 최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84㎡(이하 전용면적) 30층 매물이 경매로 나왔지만, 참여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 매물의 감정평가액은 23억1000만원으로, 동일 면적 27층의 올해 5월 실거래가(27억5000만원)보다 4억원 넘게 낮았다. 그런데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유찰됐다.
또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 99㎡는 직전 실거래가보다 2억원 정도 낮은 30억3000만원에 경매가 진행됐는데 유찰됐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가 시세보다 수억 원 싸게 나왔는데도 팔리지 않는다는 건 현금 부자들도 부동산 시장을 암울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금리 급등이 주요 원인
경매 시장 상황이 올해 급변한 것은 한국은행의 ‘빅 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금리 인상에 영향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작년 8월 금리 인상을 시작해, 이달까지 총 6차례 금리를 올렸다.
이렇게 금리가 오르면서 매수세가 급격히 위축된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27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9.8을 기록했다. 수도권 매매수급지수가 90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19년8월 12일(89.6) 이후 처음이다.
매매수급지수는 부동산원이 회원 중개업소 설문과 인터넷 매물 건수 등을 분석해 산출한 것이다. 100을 기준으로 숫자가 작아질수록 매수자가 매도자보다 적다는 뜻이다. 서울(87.0)은 8주 연속 매매수급지수가 하락했고, 전국(92.6) 기준으로도 6주 연속 내림세다.
5월 초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1년 유예 조치 시행 이후 서울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매물은 늘었지만, 금리 인상 등 여파로 집을 사려는 사람은 거의 사라지면서 매매수급지수가 내려가고 있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르면 무리하게 대출을 일으킨 사람들이 주택 처분에 나서면서 시장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전문가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7~8%에 육박하는데, 추가 금리 인상이 예고된 상황”이라며 “당분간 누구도 선뜻 매수에 나서기 어려워 거래 침체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