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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감사와 기도
삼하 7:18-29
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19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20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21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22 그런즉 주 여호와여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23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주의 땅을 위하여 두려운 일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백성 앞에서 행하셨사오며
24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25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26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27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28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
29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삼하 7:18-29 / [다윗의 감사기도] 다윗이 나단의 예언을 듣고 성막으로 들어가 법궤 위의 그룹들 위에 앉아 계시는 여호와 앞에 꿇어 앉아 이렇게 기도하였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저와 제 후손을 그토록 귀중하게 생각하시고 저를 이런 자리에까지 높여 주셨으나 제게 무슨 공로가 있습니까? 제게는 그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19) 그런데도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제 더 큰일을 계획하시고 먼 후손들에게까지 좋은 일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20) 그러므로 주님, 제가 더 이상 무슨 말씀을 주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는 저의 은밀한 생각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21) 주께서 저를 먼저 사랑하시어 주님의 일을 하도록 불러 세우셨고, 이재는 주께서 약속하신 일을 모두 그대로 이루어 주실 줄 확신합니다. 22) 나의 주 여호와여! 저는 오직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과 같으신 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들어온 모든 사실이 `주님밖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진리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23) 또 이 세상에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은 족속이 어디에 있습니까? 노예생활에 시달리는 백성을 해방시켜서 자기에게 딸린 백성으로 삼으신 신이 어디에 또 있습니까? 주님은 이런 주님의 백성을 위하여 크고 놀라운 일들을 베풀어 주셔서 주님의 위대한 성호를 온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주께서 이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오늘날까지 보호하시고 그 앞에서는 다른 민족과 다른 신들을 모조리 쫓아내 버리셨습니다. 24) 온 세계의 주인이신 여호와여, 주께서 그토록 놀라운 일들을 베푸시고 이스라엘을 영원히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주께서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25) 그러므로 이제 주께서 저와 제 후손을 위하여 약속해 주신 말씀을 영원히 그대로 이루어 주소서! 26) 그러면 주님의 이름이 어느 시대에나 영원히 찬양받으실 것이며, 세계 만민들도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온 세계의 주인이시다!'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또한 이 종 다윗의 왕조도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영원히 존속할 것입니다. 27) 온 세계의 주인이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여, 주께서 이 종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제가 감히 주께 이런 기도를 드릴 담력을 얻었습니다. 28) 여호와여, 주님은 진실하신 신이시요,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주께서 바로 제게 위대한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29) 그러므로 이제 제가 비오니, 이 종의 왕가에 복을 내려 주셔서 제 후손들이 언제나 끊임없이 제 왕위를 계승하여 다스리게 하소서! 이것은 주께서 약속한 것이니 저의 왕가가 영원히 복받을 줄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다윗이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18-24) 본문 전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종이라는 단어입니다. 총 10번 나옵니다. 다윗은 그만큼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왕이 아닌 종으로서 서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내가 누구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까”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18). 자신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여기까지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주신 은혜도 감사한데 이것을 적게 여기시고 다윗 가문의 먼 미래의 약속까지도 주셨냐고 감사의 기도를 간절히 드리고 있습니다.(19) 20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을 아신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의 속마음은 우리 가문이 사울의 가문처럼 망하지 않을까? 그것이 항상 고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아셔서 자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다윗의 마음이 시원했을까요? 자신의 은밀한 속마음을 다 아시고 딱 맞는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을 느낄 때 감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뜻대로 이 큰 일을 행하셔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해주셨다고 고백합니다(21). 그러면서 22-24절까지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25-29)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약속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25).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어 주셔서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이게 해주시고, 다윗의 집이 견고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26). 하나님이 자신의 귀를 여시고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는 약속을 주셨기에 이 약속을 위해 기도할 마음이 생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7). 그리고 28, 29절에서 역시 말씀대로 이루어 달라고 반복해서 기도합니다.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기도를 했는지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 감사가 충만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면 하나님을 더 찬양하겠다고 합니다. 다윗과 하나님의 관계의 선순환이 계속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선한 마음을 품은 다윗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약속을 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감사하며 약속대로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높여 드립니다.
적 용 : 여러분의 기도에는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있습니까? 성숙한 기도는 감사와 간구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나의 기도에 대하여 나누어 봅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며 그분의 인도를 받을 수 있을까요? 들음에 있어서는 준비된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서 그리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듣는 것에 대한 성경 속 가르침이 매일같이 나의 속사람은 내가 읽고 보고 들은 것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어가고 있으니 성경묵상처럼 귀한 것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으리.
< 설 교 >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
김필곤목사 / 삼하 7:18-29
우리가 계속해서 다윗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다윗의 어떤 부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는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을 다윗이 왕이 되어 평안할 때 성전을 지르려고 했는데 거절당한 장면입니다. 그때 다윗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을 성전건축에 대한 거절을 당했을 때 다윗이 기도한 내용입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다윗은 요즈음 말하면 네 가지 직업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양치는 목동, 사울 왕의 음악 치료사, 군인, 왕이라는 직업을 가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매 순간 삶의 현장으로 기도실로 만든 사람입니다. 아마 성경에 소개된 내용 중에 가장 많이 소개된 것이 다윗의 기도일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사람의 이름은 모두 2,930명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횟수가 기록된 이름은 ‘다윗’으로 1,118번이나 기록이 되었답니다. 성경의 인물 중 가장 많이 다윗의 기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시편에 보면 많은 다윗의 기도 시가 있습니다. 홀로 있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결정하기 어려울 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고통스러울 때 울며 기도했고, 자식에게 배신당할 때도 기도했고, 장인에게 쫓기면서도 때를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죄를 지을 때 죄를 자백하며 기도하였고, 자식이 병들었을 때도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원수들이 대적할 때도, 전쟁터에 나갈 때도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를 통해 인격을 다듬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거절당할 때도 기도했고, 죽을 때까지 기도하며 놀라운 기도 응답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다윗의 마음 중에 하나님께 합한 마음 중의 하나가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다윗의 모든 삶은 기도였고, 모든 축복은 기도의 결과라고 말해도 과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다윗의 기도를 통해 어떤 기도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기도였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어떤 기도이겠습니까?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도입니다.
다윗은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다 아시는데 다윗이 무슨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께 더 기도하겠냐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 기도를 언제 드렸습니까? 1절을 읽어 보십시오. 왕이 되어 궁에서 평안히 살게 할 때입니다. 2절 보십시오. 그 궁이 어떤 궁입니까? 백향목 궁입니다. 저택입니다. 아주 좋은 집에서 살고 있을 때입니다. 그 때 다윗은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자신은 화려한 집에서 사는데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은 초라한 초막에 계신다고 생각하고 좋은 성전을 지어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내가”하겠다는 것입니다. 기특한 생각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무슨 말씀을 해 주십니까? 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하나님께서 계속 강조하는 것이 너가 아니라 “내가” 하겠다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네가 나를 위해” 6절을 보십시오. “내가” 7절 “내가 내 백성” 8절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계속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셨고, 하나님이 하고 있고,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이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건물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면 내가 성전이 되고,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계시면 가정이 성전이 되고, 하나님 내 직장에 계시면 내 직장이 성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한 예배당 건물일지라도 성전이 되지 못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닌 모든 곳에 하나님이 계셨고 백향목 집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라고 말씀합니다. 네가 내 집을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주겠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통해 건축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열정이 있다 보면 내가 무엇인가 하나님께 해 드리는 것으로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얼마나 하나님께 해 드리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인을 보면 “자신이 교회에 나와주는 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하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 대단한 것을 한다며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한 것에 대하여 댓가를 바라고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통제 욕구’를 가집니다. 자신의 힘이면 못할 것이 없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교회를 어떻게 해 보려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 헌신했다고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이 되어 행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다윗이 된 것은 자기 능력이 아닙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나라의 주인도, 우주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LG 경제연구원에서 조직 안에서 암초처럼 숨어 기생하는 불량직원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항상 불만형입니다. 임시 체류형입니다. 현재 몸 담고 있는 회사에는 마음이 없고 더 전망 좋은 직장 자신에게 더 잘 맞는 회사를 발견할 때까지 임시로 다니는 직원이랍니다. 유아독존형입니다. 마찰 회피형이랍니다. 위험부담을 안지 않으려는 직원이랍니다. 좌우충돌형입니다.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스타일의 직원이랍니다. 무임승차형이랍니다. 동료나 부하의 열정과 헌신으로 이뤄낸 결과를 가로채는 직원이랍니다. 홈런 타자형이랍니다. 한방에 끝낸다는 생각으로 잘못된 선택이나 의사 결정을 하는 직원이랍니다. 교회 교인들도 이와 유사한 유형들이 있습니다. 회사나 교회나 문제가 되는 것은 자꾸 자기 뜻을 성취하기 위해 열정을 내기 때문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가진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늘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드립니까? 내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입니까?
다윗은 그 말을 듣고 하나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하는가?”하고 물으면 그 첫 번째 대답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하기 위해서”라고 말해야 정답입니다. 우리 성도님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는 척도는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압니다. 말씀을 통해 보여 주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정해 주신 사명을 그 분량만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성전 짓는 주인공이 아니면 그냥 성전 짓는 준비자로 남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 왕이 되었다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울은 모든 것을 다 하려는 교만 떨다 추락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기도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입니다. 내 뜻 정해놓고 그것을 집요하게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입니다. 기도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기도입니다. 비록 내가 왕일지라도 나의 위치를 정직하게 파악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기도입니다. 다윗의 기도를 보십시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어떻게 호칭하고 있습니까? 18절 "주 여호와여" 19절 "주 여호와여 주께서" 20절 "주 여호와는", "주께" 21절 "주의 말씀을", "주의 뜻대로", 22절 "주는 광대하시니", "주와 같은 이", "주 외에는" 23절 "주의 백성 이스라엘", "주의 명성을", "주의 땅"이라고 말합니다. 29절까지 "주 하나님을 주라고 부른 횟수가 무려 26차례나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호칭하고 있습니까? 종이라는 것입니다. 종이라고 부른 횟수가 무려 11차례나 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지금 다윗은 종이 아닙니다. 40년간 나라를 다스릴 왕입니다. 그러나 그는 통치하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주님이다"라고 말한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리 통치자인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울과 다른 것입니다.
종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인 앞에서 자신을 포기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점점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란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늘 우리는 기도회를 할 때 말씀을 먼저 보고 말씀을 먼저 듣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려는 내 열정과 자기 뜻을 관철하려는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하나님께 쓰임받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백향목 집을 건축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집을 짓도록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기도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기도는 아닙니다. 말씀이 빠지면 사울과 같은 형식만 남는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그는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무당에게 점을 칩니다. 기도로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될 때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만드는 변환장치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결정하기 어려울 때 하나님께 물으면 됩니다. 피하는 방법을 모를 때 하나님께 피하는 방법을 물어보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하면 됩니다. 잠언서 28:9절에 보면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말씀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다윗이 된 것은 누구 때문에 된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해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의 기도를 보십시오. 18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합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자신이 어떤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안 것입니다.
다윗의 일생은 자신의 왕국 건설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래 기도하고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는 일도, 알고 보면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위해 나의 몸과 마음을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 새워 기도하였습니다. 땀이 피가 될 정도로 정성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의 중심 내용이 무엇입니까?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10)”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가심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기도입니다.
자신의 소원이 거절되었는데도 분노하지 않습니다. 자존심 상해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감사합니다. 세 가지를 감사합니다.
첫째는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18). 그는 목축을 하는 가난한 가정의 여덟 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들에서 양을 치던 일개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아버지도 자신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고 선지자 앞에 내놓지 않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한 나라의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둘째, 미래에 축복해 주실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19). 종에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이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그 후손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였습니다.(삼하7:12-13)
셋째, 장래에 일어날 일을 알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20-21).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알아주신 것에 대하여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주었습니다(삼하7:14-15).
감사기도를 한 후 다윗은 또 어떤 기도를 합니까?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세 가지 찬양 기도를 드립니다.
첫째,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찬양했습니다(22).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찬양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찬양했습니다(23).
셋째,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심을 찬양했습니다(24).
시편에 나온 기도를 보면 다윗은 힘들 때나, 도망다닐 때나, 배신당할 때나, 승리할 때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기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얻지 못한 것 때문에 탄식하고 자기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풀어주신 은혜를 보고 감사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 사역을 보며 찬양하여야 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2:9)"으로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는 원망과 불평의 기도보다 감사와 찬양의 기도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늘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찬 마음보다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리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3.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원하는 기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거절당하면 거절에 집착합니다. 거절한 사람의 의도나 뜻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청년 둘이 수도사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갔답니다. 그 때 수도원장이 배추를 거꾸로 심으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은 뿌리가 하늘로 가게 심었고 한 사람은 뿌리가 땅으로 가게 심었답니다. 수도원 원장은 뿌리가 땅으로 가게 심은 사람을 불러 "청년처럼 똑똑한 사람은 혼자서 사십시오. 당신은 선생의 자격은 있을지 모르지만, 제자의 자격은 없습니다."라고 수도원생으로 받아주지 않았답니다.
내 뜻이 거절당하면 대부분 사람은 거절된 그것만 봅니다. 거절하신 분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분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처합니다. 그러나 거절만 크게 보면 안 됩니다. 약속을 크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거절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복음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이 함께 하여 네 이름을 존귀케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9)
둘째, 다윗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집을 짓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11하, 13상)
셋째, 다윗의 왕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견고케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12하, 13하,16)
영원한 왕조를 세우실 분이 누구겠습니까? 솔로몬이겠습니까?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6-7)”
에스겔은 이렇게 예언합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찌라(겔 34:23)”
이 예언은 이렇게 성취됩니다.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눅 1:32)”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가 탄생하여 영원한 왕으로 다스리게 해 주신다는 예언인 것입니다. 그 예언대로 그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셨고 영원한 왕국을 다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직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다윗은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어떤 기도를 드립니까? 세 가지 기도를 드립니다.
첫째,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25).
둘째, 그 약속이 이루어 짐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혀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26)
셋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29).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처해 있습니까? 하나님은 약속합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신명기 31:6)”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과업 앞에 능력이 없어 포기하고 망설이고 있습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힘으로도 못하고 능으로도 못할지라도 성령 충만을 받으면 인생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스가랴 4:6)”
미래의 불확실 앞에서 근심하고 걱정하십니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평안에 대한 약속 붙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고질적인 질병으로 포기하고 낙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야고보서 5:16)”
“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편103:2-5)”
과거의 죄로 말미암아 죄의식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기쁨이 없이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이사야 1:18)”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43:25)”
약속 붙들고 회개하고 기도하여 용서받고 참 자유를 누리는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자식을 보며 불안해 하고 걱정하십니까? 걱정할 시간에 약속 붙들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시37:24-26)”
정죄를 당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는가 불안해하십니까?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4-39)”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기도를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기도의 필요성이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기도원이 텅텅 비어져 가고 있고, 교회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가심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원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어떤 언약을 맺었나요?
조영식목사 / 삼하 7장 18~24절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 다윗과 언약을 맺었습니다(1~17절).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후에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주님이 사람과 언약을 맺는 방법이 두 가지 나옵니다. 하나는 조건부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쌍방적인 언약으로서 내가 언약을 지키는 여부에 따라서 하나님이 복과 저주를 줍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내산에서 율법으로 맺은 언약입니다. 또 하나는 은혜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일방적인 언약을 맺고 조건 없는 복을 줍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십자가에서 맺은 은혜 언약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은 다윗과 어떤 언약을 맺었습니까? 은혜 언약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윗이 하나님과 은혜 언약을 맺은 후에 어떻게 신앙 고백을 했는지 깨닫고 각자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다윗은 하나님과 은혜 언약을 맺은 후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첫째로 은혜 언약을 맺은 후에 겸손하게 더 낮추었습니다. 다윗 왕은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라고 합니다(18절). 다윗은 반어법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크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다윗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이었어도 하나님 앞에서 가장 겸손히 낮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겸손한 마음이 주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만해질수록 주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이 작아지지만, 겸손해질수록 주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을 크게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 왕과 사울 왕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위치가 달라져도 겸손한 마음을 지킬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다윗과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둘 다 겸손한 마음으로 시작해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왕이 되어서 힘을 가질수록 하나님보다 자신의 권력을 더 사랑하여 겸손한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되어서 힘을 가질수록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은혜로 믿고 겸손한 마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윗처럼 고난받을 때도 겸손한 마음을 갖고, 형통할 때도 겸손한 마음이 변치 않아서 항상 주님의 은혜가 넘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여기까지 받은 은혜를 감사했을 때 미래의 은혜까지 약속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하면서 지금까지 받은 주님의 은혜를 감사했습니다(18절). 그리고 그는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고 합니다(19절). 다윗은 여기까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감당하기 버거운데 미래까지 크신 은혜를 약속하신 복에 대하여 감격하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까지 받은 주님의 은혜도 넘쳤지만, 아직 최고의 은혜는 오지 않아서 기다리는 것이 됩니다. 성도들이 아직 최고의 은혜가 오지 않았다고 기다리는 것은 가장 겸손하게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저도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면서 오직 주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최고의 은혜가 오지 안 왔다고 기다리면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오늘도 성도들이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면 감사가 넘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아가면 원망이 넘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살면서 감사가 넘칠수록 미래의 은혜까지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몰라서 원망이 넘칠수록 자신의 믿음까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다윗처럼 여기까지 주님이 주신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할 때 미래의 크신 은혜까지 끌어당기는 약속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여기까지 주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미래의 크신 은혜까지 끌어당기는 약속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는 주님과 어떤 관계로 맺어져 있습니까?
첫째로 주의 말씀과 뜻대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다윗은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21절). 오늘 본문에서 은혜의 언약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정의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언약은 주님의 말씀에서 시작되고 주님의 뜻대로 진행되어서 주님이 모든 큰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의 언약을 맺을수록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사람의 일은 자신의 생각에서 시작되고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어서 자신이 큰 일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업적으로 자신을 높이며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과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남을 탓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불평하는 일이 생겼다면 무엇을 성찰해야 합니까? 우리가 불평하는 일이 생기면 주님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인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주님의 뜻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마음이 상했던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헨리 나웬이 모임에 참석해서 한 자매를 만났는데 교회가 자기 뜻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다니지 않는다는 불평을 들었습니다. 헨리 나웬은 자매에게 당신이 불평하는 일이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예수님과 당신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권면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관계가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은혜의 관계로 맺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구속하신 관계로 맺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주님과 어떤 관계로 맺어져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구속하신 관계로 맺어져 있다고 반복적으로 나옵니다(23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셔서 주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이 이미 최고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을 받았으면 온전히 주님의 소유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하나님께 구속을 받았다고 하면서 주님이 주신 은혜를 내 소유가 된 것처럼 착각하는 이중적인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남의 물건을 빌려다가 오랫동안 사용하다보면 자신의 소유가 된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물건을 되돌려줄 때가 되면 빼앗기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한 마음이 아니라 섭섭한 마음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의 생명도, 자녀도, 건강도, 물질도 자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은혜로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하다보니 어느새 내 소유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속받은 자녀들은 모든 것이 주님께 속하였다는 청지기의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소중한 것들을 인생의 마지막 때가 오면 다시 돌려드리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에 모인 성도들도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서 결산해야 할 때가 다가올 것입니다. 성도들이 조건부의 율법 언약으로 하나님과 계산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이 구속하신 은혜 언약으로 결산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윗의 감사 욥의 감사
노창영목사 / 삼하 7장 18-22절, 욥기 1장 20-22절
서론: 올해 개봉교회의 핵심낱말은 감사입니다. 감사라는 주제를 떠 올릴 때, 기억해야 될 인물이 다윗과 욥입니다. 이 두 사람의 감사는 하나님께서 성경의 표준으로 삼으신 특별한 감사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함께 감사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Ⅰ. 다윗의 감사
A. 이솝우화에 나타난 독수리의 은혜갚은 이야기
이솝(Aesop, BC620~560)우화에는 농부와 독수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늘의 제왕 독수리가 사냥꾼의 덫에 걸려 죽게 되었는데 지나가던 농부가 불쌍히 여겨 독수리를 풀어주었습니다. 어느날 독수리는 지친 농부가 아주 낡은 담벼락 밑에 앉아 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은혜를 갚으려는 독수리는 농부의 밀짚모자를 물고 멀리 날아가므로 농부가 쫓아오게 하였습니다. 모자를 찾은 농부는 자기가 앉았던 자리의 무너진 담벼락을 보고서야 독수리가 은혜 갚은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이솝이 만들어낸 우화입니다. 은혜를 잊지 말고 살자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미학이며, 세상의 교훈입니다.
B. 은혜를 입고도 감사치 않는 사람들
사도바울이 에베소의 후임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쓴 두 번째 편지에 보면, 말세의 고통하는 모습을 19가지로 나열하면서 그중에 하나가 감사치 않는 것입니다(딤후3:2). 지금의 시대는 감사에 대해 무감각하여 고마운 줄 모르고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된 것은 하나님과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된 것임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난주에 나눈 말씀인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입니다. 불변을 상징하는 돌에 감사의 마음을 새긴 것은 기억하고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오래전 미국 미시간호에서 여객선 한 척이 침몰하게 되었고 그 배에 탔던 젊은 수영선수 한 명이 23명을 구조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 미국 L.A에서 토레이(R.A. Torray)목사가 이 사건을 전도에 비유하여 설교하였습니다. 예배 후 백발의 노인이 찾아와 본인이 그 수영선수임을 밝히고는 가장 인상적인 것이 구해준 23명 중에서 아무도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언젠가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자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산타크로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위싱턴의 국립우체국장이 고민하다가 복지가들을 모아 사람을 고용하여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선물과 답장을 보냈습니다. 수십만의 선물과 편지를 받은 아이들중에 감사의 편지와 답장을 보낸 아이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감사하지 않은 현 시대풍조의 한 면입니다.
C. 다윗의 감사(삼하 7:18-22)
다윗은 감사를 아는 사람으로 가장 천한 사람, 이새의 왕따 된 여덟번째 아들로 촌뜨기 목동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사무엘이 기름부은 왕이며, 적군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군대장관이 되어 사울왕의 사위가 되었지만 시기심 많은 사울에게 쫓겨다녔습니다. 늘 하나님을 기억한 다윗은 30세에 헤브론에서 남쪽의 왕이 되고 37세에 북쪽 이스라엘의 왕이 되므로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비천한 자신은 왕이 되어 좋은 왕궁에 있지만 하나님의 법궤는 비가 새는 천막에 있는 것이 마음 아파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귀한 마음을 알지만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려 성전건축을 허락치 않으시고 아들 솔로몬이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축복의 말씀을 들은 다윗이 감사하여 드린 고백이 본문 말씀입니다(18절).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다윗의 겸비한 응답입니다. 다윗은 평생 감사의 마음을 심장에 품고 살았습니다. 다윗은 시편 150편중에서 공식적으로 73편을 표제에 나타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100편이상을 썼다고 봅니다. 그 중에 특별히 감사의 표현이 가득 넘쳐나는 시편은 57, 100, 105, 116, 119, 136편 등이 있습니다. 또한 다윗은 이스라엘을 평정하고 사울의 자손중에 남은 자, 므비보셋을 찾아 은혜를 베풀기로 했습니다. 몰락한 왕국의 후손으로 절뚝발이 므비보셋은 원수인 자신을 왕의 아들처럼 대우하고 전토와 재산을 환원하여 준다는 왕의 말을 듣고 죽은 개같은 자신을 돌아보아주셔서 감사하다는 고백을 했습니다(삼하9:8). 그후에 므비보셋은 압살롬의 반역에 쫓겨난 다윗의 복귀를 기다리면 수염도 자르지 않고 옷도 빨지 않았습니다(삼하19:24). 므비보셋은 구원하여 준 다윗의 은혜를 망각하지 않고 자기겸비와 자기탄식을 하므로 다윗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의 감사의 마음이요, 감사한 자의 자세입니다. 나의 나된 것이 내가 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임을 망각하지 말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돌판에 세기는 심정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감사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Ⅱ. 욥의 감사
A. 랍비 아키바의 감사
우리는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사건과 환경에 쳐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 있든지 우리는 전천후 감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탈무드에 보면 랍비 아키바는 늘 감사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두루마리 성경(토라), 나귀, 수탉, 등잔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날이 어두워져 근처 마을에 들어가려 했지만, 거절을 받아 마을 밖에서 텐트를 치고 감사하고 토라를 읽으려고 등불을 컸는데, 바람이 불어 불이 꺼져 성경을 읽지 못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감사하고 누웠습니다. 얼마 후에는 짐승들의 큰 소리에 나귀와 수탉이 도망을 갔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하고 감사하고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밤에 산적때에 의해 모두 죽고 마을이 폐허가 된 것을 보고 아키바는 자신이 마을에서 잠을 잤어도, 등불에 성경을 계속 읽었어도, 나귀가 도망치지 않았어도, 수탉이 울었어도 나는 산적에게 죽었을 텐데 라며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손해되는 것같은 일이 생길 때, 우리는 감사하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 득과 축복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B. 욥의 감사(욥1:20-22)
욥은 순전하고 악을 떠난 동방의 큰 부자요, 7남 3녀의 가장이며, 하나님을 아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욥에게 두 차례의 재앙이 오는데, 첫째는 소유물(소, 양, 낙타, 10자녀)에 대한 것이며(욥1장) 둘째는 몸(악창, 부인의 저주)에 대한 것입니다(욥2장). 욥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난을 겪은 사람으로, 1차 재앙이 왔을 때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1:21)”라고 감사의 고백을 하였고, 2차 재앙이 왔을 때는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2:10)”라고 하면서 전천후 감사를 하였습니다. 욥기는 많은 사연과 아픔이 지난 후에 해피엔딩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크리스챤은 어떤 상황과 환경이든지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어여야 합니다. 바울은 자족하는 전천후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빌4:11). 미국의 프록터 갬블(P&G) 비누회사에서 어느날 직공의 실수로 많은 물량의 불량품 비누를 만들게 되었고 회사는 망하게 되었지만 항상 감사하는 사장 할레이 프록터는 하나님의 지혜로 불량품을 물에 뜨는 비누(Ivory)로 역발상하여 기적을 만들어 거부가 되었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만들고 재앙을 복으로 바꾸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믿는 기독교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낙심하지 말고 욥처럼 전천후감사를 통해 승리하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감사의 사람이었고 욥은 잘나갈 때 뿐 아니라 가장 힘든 순간에도 감사하므로 승리를 만들어낸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형편이든지 전천후감사로 나갈 때 승리적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로 승리하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의 기도
삼하 7:18-29 / 최윤영목사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의 사람인 다윗은 여러 민족에게 애증의 대상입니다. 다윗의 파란만장한 삶이 남긴 찬란한 업적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업적보다 다윗을 다윗으로 살게 하였던 비밀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이 이를 알려줍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나라를 약속해주시자 다윗이 드린 감사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결코 잊지 않고 살던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기도의 첫 대목에 나옵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 7:18)
다윗은 목축을 하는 집안의 여덟 번째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들대우 조차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이새의 아들 중에 왕을 세우려고 사무엘이 방문하고 아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러나 아버지 이새는 다윗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사무엘이 말합니다.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삼상 16:11)
이새는 다윗을 아들 취급하지 않았던지 중요한 자리에 낄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뿐 만 아닙니다. 형들도 다윗을 천대합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가있는 형들에게 도시락을 갖다 주러 갑니다. 그런데 큰 형 엘리압이 다윗을 보고 말합니다.
“ ...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다윗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 ”(삼상 17:28b-29a)
형제는 그렇다쳐도 부모가 자기 아들을 멸시하는 것은 선 듯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지은 시편을 보면 이해할 만한 단서가 나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다윗에게 부모님은 자신을 버린 사람입니다. 성경 여기저기를 보면 아버지 이새는 아들을 박대하고 있었고 그리고 성경 어디에도 다윗의 어머니에 대한 구절은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를 우리는 역시 다윗의 다른 시편에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추측컨대 다윗은 이새가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에서 출생한 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집안에서 천덕꾸러기로 자란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게는 믿고 의지할 만한 부모도 형제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피해의식에 젖어 살기 쉽습니다. 부모와 가족에 대한 원망, 세상에 대한 분노로 살기 쉽습니다. 이러한 때에 최악의 상황은 그 문제를 마음속에 품고 묵상하며 상처를 키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에게 실수한 사람의 그 잘못보다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독이 퍼지고 내가 받은 상처에 집착하여 속사람의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이것을 성경은 쓴 뿌리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속사람이 쓴 뿌리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히 12:15)
다윗에게는 큰 틈이 있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일생을 부모에 대한 원망과 형제들에 대한 미움 속에 살다가 인생을 낭비할 수 있었고,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안고 본인과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다윗이 붙잡은 것이 하나님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문제와 상처 속에 빠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다신의 억울함과 상처를 토로하며 분을 삭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찾아가 자신의 심정을 쏟아내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 5:1-3)
다윗을 바라볼 때마다 다윗의 어려운 상황, 억울한 환경이 다윗에게 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아무도 의지할 수 없었고, 그 누구도 손잡아주지 않을 때에 다윗은 하나님의 손을 잡을 수 있었고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기가 수월했습니다.
다윗은 평생 주님을 의지하며 다음과 같이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시 27:11-14)
다윗은 언제나 평탄한 길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늘 주의 도를 알기 원했습니다. 이것이 왕이 되기 전의 다윗을 더욱 평탄하게 하였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길은 하나님의 약속만큼 수월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의 기도처럼 주의 도를 따르기를 원했고 하나님은 걸림돌들을 하나하나 치워주셨습니다. 가장 큰 방해물인 사울왕은 블레셋이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울의 죽음을 기뻐 전하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삼하 1:12-14)
자신의 이해관계와는 상관없이 늘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울왕가의 강력한 군대장관 아브넬은 개인적인 원한이 있던 요압이 해결합니다.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나병 환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떨어진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하니라”(삼하 3:28-29)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다윗에게 반기를 들고 사울왕의 왕위를 이어 왕이 된 이스보셋이 암살이 됩니다. 그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들고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에 사람이 내게 알리기를 보라 사울이 죽었다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그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을 그 소식을 전한 갚음으로 삼았거든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청년들에게 명령하매 곧 그들을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에 매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하였더라”(삼하 4:10-12)
이러한 모습은 사울이 속했던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통일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자신에게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살면 살수록, 무엇이라도 하나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하나님의 도를 따르고자 하는 굳은 의지가 있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자신의 삶은 하나님이 이끌어 가신다는 굳은 믿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다 지나고 다윗이 고백했던 것입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 7:18)
이러한 고백 속에 다윗이 분명하게 알게 된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살면 살수록 그는 하나님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즉 주 여호와여 이러므로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삼하 7:22)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사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봅시다. 내가 누구이기에 나를 여기에 이르게 하셨습니까? 모두 주님의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나를 살게 하신 하나님께서 내일도 우리를 지키시고 살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도 다윗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 7:29)
다윗에게 본 받을 점
삼하 7장 18~29절 / 박봉수목사
이스라엘 국기에는 “헥사그램”의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정삼각형 두개가 엇갈려 진 여섯 개의 꼭지 점이 있는 별 같은 문양을 말합니다. 이 문양을 흔히 “다윗의 별”이라 부르고 공식적인 명칭으로는 “마겐 다윗”(Magen David) 즉 다윗의 방패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국가의 상징 문양을 이 마겐 다윗으로 사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방패가 되셔서 그를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기들을 지켜주실 것을 믿는 믿음의 표현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존경하고 흠모해 왔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다윗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메시야로 오셔서 자기들을 이끌어 줄 것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다윗의 생애를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다윗은 비난 받을 만한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한두 가지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삼상 21장을 보면 다윗이 사울을 피해 놉이라는 곳으로 피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거기서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납니다. 이 때 다윗이 자기가 살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서 배고픔을 면하고 골리앗의 칼을 얻게 됩니다. 이 일이 발각되어 놉에 있던 제사장 85인이 죽었고, 그 성의 사람들과 가축들이 도륙을 당했습니다.
삼상 22:22을 보면 다윗이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자기가 살려고 거짓말을 해서 수많은 제사장들을 죽게 했고, 죄 없는 놉 성의 사람들과 가축들을 몰살당하게 했습니다.
다음으로 삼하 11장에 보면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를 위해 전쟁터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부하의 아내를 간음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덥기 위해 그 남편 우리아를 간계를 써서 전쟁터에서 죽게 했습니다.
삼상 11:27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하나님께서도 용납하실 수 없을 정도의 큰 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와 같은 크고 작은 다윗의 실수가 20번 이상 나옵니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실수를 저지른 다윗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행 13:22을 보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하 7:17을 보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내 앞에서 행하기를 네 아비 다윗같이 하여 내가 네게 명한 모든 것을 행하여 내 율례와 규례를 지키면...” 게다가 하나님께서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철저한 인정과 칭찬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흠모하고 존경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국기에 다윗의 방패를 그려 넣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신 것처럼 자기들도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윗과 같은 지도자들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다윗을 이처럼 귀하게 여기신 것일까요? 그렇게 실수도 많고 허물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높이셨을까요? 그 답을 찾으면서 소중한 교훈을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다윗의 인생 여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난관이 그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수많은 대적들의 공격으로 쉴 새 없이 생사의 혈루를 벌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끝내 그 모든 난관을 극복했고 결국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원인은 한 가지였습니다. 그가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아직 어린 소년 시절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 맞서게 되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아직 군대에 차출될 수 없을 정도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이에 비해 골리앗은 무려 키가 3미터에 달하는 거인이고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이었습니다. 게다가 완전무장을 한 골리앗 앞에 고작 물맷돌을 들고 선 다윗은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이 만류했습니다. 이 때 다윗이 이렇게 왕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삼상 17:37) 그리고 조롱하는 골리앗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삼상 17:45-6)
이렇게 다윗은 자기 힘으로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난관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그 난관을 돌파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 10년 넘는 기나긴 도망자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사울의 집요한 추격을 피해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으며 기나긴 도피 생활을 끝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시 13편은 이 기나긴 도피 생활 도중에 자기의 심경을 읊은 노래입니다. 1을 보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끝없이 계속되는 이 도피생활의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5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이렇게 다윗은 절망의 한 복판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소망 중의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믿음으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뒤 정말 할 일이 많았습니다. 우선 주변의 여러 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나라의 국방을 든든히 해야만 했습니다.
다윗은 이런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공통된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삼하 2:1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삼하 5:19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이렇게 다윗은 자기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일을 향해 나아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매사에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이런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은 링컨이라고 합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정든 고향을 떠나 워싱턴으로 가게 됐습니다. 천여명이 그를 배웅하기 위해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링컨은 저들에게 고별 연설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상 저를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면 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도움에 힘입어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있다면 나는 실패할 수 없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고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고 또 선한 일을 위해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모든 것이 잘 될 것에 대해 확신하며 소망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어떤 형편 가운데 놓일 지라도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우선 다윗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늘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시 8:4을 보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시 114:3을 보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여기서 사람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노쉬라는 말입니다.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깨지기 쉽고 약하디 약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인자 또는 인생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담이라는 말입니다. 흙으로 빚어 만들어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토록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을 이렇게 귀하게 돌보시고 이렇게 높이시니 감사하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소중하게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찬양하고 또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추격하는 사울을 살려준 일이 있습니다. 엔게디 동굴 속에 숨어있을 때 사울이 근처 굴에 쉬러 들어왔습니다. 이 때 다윗의 추종자들이 사울을 죽이자고 강하게 추궁할 때 다윗은 가만히 잠자고 있던 사울의 겉옷자락만을 베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삼상 24:6-7)
이 사울 때문에 자기가 십년 동안 이토록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울 때문에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이 사울만 죽이면 자기가 손쉽게 왕도 되고 크게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는 죽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을 죽이는 것을 원치 않으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이고 싶은 자기 마음을 접고 살리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자기의 마음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우리아를 전장 최선봉에 서게 해서 죽게 했습니다. 장례를 치른 뒤에 밧세바를 아예 자기 후궁으로 맞았습니다. 왕이라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삼하 12:10)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짓밟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회개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 시 6:6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감히 자기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고 하나님의 마음을 짓밟았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눈물로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를 생각했습니다. 자기 마음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앞 세웠습니다.
선거철입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선거가 아직 며칠 남았는데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집권 여당이 패배를 자인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있습니다. 원래 선거는 승리할 것처럼 분위기를 띄워야 이길 정당 이길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당이 싹쓸이 하지 않도록만 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선거를 하나마다 결과가 뻔 할 정도로 민심이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왜 선거 사상 초유의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한 마디로 집권 여당이 국민의 마음을 미리 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쥐었다고 자기들 마음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민의 마음이 떠나버린 것입니다. 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늘 국민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귀하게 여기며 그 마음을 따라 일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앞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를 높이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늘 생각하고 따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왜 자기 같은 보잘것 없는 사람을 왕으로 세우셨는지 늘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그 답을 찾았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로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줄을 깨달았으니 이는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진흥하게 하셨음이더라”(대상 14:2) 하나님께서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세우고 강성한 나라로 발전시키라는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소원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이 돼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나라를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 하나의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합니다. 바로 예루살렘을 단지 행정적 정치적 수도가 아니라 영적 수도로 만들고자 한 일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벌인 첫 번째 사업이 법궤를 옮겨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 법궤를 앞 세웠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도 법궤를 앞 세웠습니다. 그리고 여리고를 함락할 때도 법궤를 앞 세웠습니다. 그러니까 법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는 심벌이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나중에 되찾기는 했지만 70년 동안이나 기럇여아림의 한 촌부의 집에 방치되어있었습니다. 다윗이 이제 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여곡절 속에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모셔 들여짐으로써 온 백성들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왜 왕으로 삼으셨는지 늘 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을 늘 마음 속에 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원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그를 높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모두 소원이 있듯이 하나님께서도 소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 주기를 바라시는 소원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소원을 외면한 채 우리의 소원만을 추구하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7:33) 주님의 소원을 앞세우며 사는 사람들 그들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
삼하 7장 18~29절 / 이수영목사
다윗은 자신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이스라엘 족속이 환호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와 준비된 장막 안의 준비된 자리에 두었습니다(삼하6:14-17).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주위의 모든 적들을 무찌르고 왕궁에 평안히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삼하7:1). 두로 왕 히람이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들을 보내 특별히 지어준 궁에서(삼하5:11) 평안히 지내던 다윗은 어느 날 선지자 나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삼하7:2). 다윗 자신은 아름다운 백향목 궁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는 임시 거처인 장막 안에 놔두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나단은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삼하7:3) 했습니다. 왕이 그런 마음이라면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면 될 것 아니냐는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다윗에게 가서 전하라 하셨습니다(삼하7:4).
그 말씀 속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성전 짓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의외로 여겨집니다. 하나님께서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며 높게 평가하신 다윗에게 왜 하나님의 전을 짓는 영광을 허락하지 않으셨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 근동지역의 왕들은 모두 그들의 신들을 위해 거대한 신전을 지었습니다. 만일 다윗 또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다면 하나님이 이방의 우상들처럼 보이고 이스라엘의 신앙이 이방의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어질 위험성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방지하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다른 이방신들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으로 분명히 알아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신앙은 이방족속들의 우상숭배신앙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무한히 뛰어넘어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전 짓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삼하7:12-13에 보면 다윗의 몸에서 날 씨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하게 할 것이라고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셨으며, 실제로 뒷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짓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전을 짓더라도 하나님은 그 성전에 갇혀 계실 하나님이 아니며 성전이 없어도 언제 어디서나 이스라엘과 함께하셨고 또 앞으로도 함께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먼저 확실히 아는 것이 중요함을 가르치려 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다윗이 하나님께 집을 지어드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오히려 다윗에게 집을 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사실입니다. 집이라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성전"을 의미하는 말도 되고 "왕조"를 뜻하는 말도 됩니다. 옛날 근동지역의 왕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들을 영화롭게 하고 그 신들로부터 자기들과 자기들의 왕조들을 위한 복을 보증받기 위해 성전을 세우는 일에 돈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다윗이 성전을 세움으로써 이스라엘의 신앙이 물질로 신의 환심을 사서 복 받으려 하는 이방의 물신숭배신앙으로 변질될 위험과 하나님께서도 이방신들처럼 오해될 소지를 만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성전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역사를 상기시키실 뿐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조를 튼튼히 세워주시리라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전하신 말씀을 들어봅니다. 오늘 본문을 바로 앞서는 5-16절의 말씀입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7:5-16).
나단은 이 모든 말씀을 그가 들은 대로 다윗에게 전했습니다(삼하7:5-16). 오늘 본문은 그것을 전해들은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기도 속에서 그의 신앙의 면모를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은 즉시 하나님께서는 그가 감당할 수 없이 크고 놀라운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그의 첫마디 말이 무엇입니까? 본문 18-19절을 봅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양 치던 목동에 불과하던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다시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만도 감당하기 힘든 은혜인데 그 은혜를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그의 집의 먼 장래 일 즉 다윗 왕조의 미래까지도 책임지시겠다고 약조하시는 하나님의 그 큰 은혜 앞에서 다윗은 말문이 닫힌 것입니다. 19절 끝에서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라고 번역된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말이지만 대체로 "하나님,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다루시는 방법이군요!" 하는 놀라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것을 조금 더 다윗 자신의 경우에 적용시켜 이해하면 "하나님, 어쩌면 저 같은 사람을 이렇게 엄청난 은혜로 대해주십니까? 그래도 되는 법입니까?"라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달리 할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20-21절에서 말합니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은 이방족속들의 거짓 신인 우상들과는 전혀 다르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다시 깨닫습니다. 22절을 봅니다: "그런즉 주 여호와여, 이러므로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그리고 여기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누린 유일한 백성임을 새삼 자각합니다. 23-24절을 또 봅니다: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주의 땅을 위하여 두려운 일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백성 앞에서 행하셨사오며,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그리고 다윗은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적 도리가 무엇인지를 재확인합니다. 25절 이하를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셨사오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여기서 드러나는, 다윗이 그의 신앙을 따라 이해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도리가 무엇입니까?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과 그의 말씀만이 영원한 진리임을 아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기를 원했었지만 성전 이야기는 아예 거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차피 제 아들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실 것이라면 저에게 그 영광을 주시죠. 성전을 지어도 하나님께서 그 성전 안에 계실 하나님이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니 그렇게 하시죠" 하며 조르지 않았습니다. 즉시, 두 말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다윗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이스라엘이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며 그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받기를 구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민족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특별한 은혜를 받아 누렸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은혜를 누린 백성의 도리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너도 나도 크고 웅장하며 화려한 예배당과 교회건물을 경쟁적으로 짓기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집을 지어드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오히려 다윗에게 집을 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사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조를 튼튼히 세워주시리라 약속하신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돌과 백향목으로 성전 하나 세우는 것보다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믿음으로 영원히 굳게 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를 향해서 주는 메시지가 무엇이겠습니까? 웅장하고 화려한 예배당 짓기보다 참된 믿음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하시고 지켜주시며 귀하게 쓰실 교회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지킬 도리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흘리신 대속의 살과 피, 그리고 그를 믿는 믿음으로만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혜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그의 말씀만이 진리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높이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 앞에서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물질적 기복신앙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만을 구하며 누리려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조금 전인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두고 "다윗왕조는 훗날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나뉘었다가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다 망하고 말았는데 그 하나님의 약속이 과연 지켜진 것인가?"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고 있고 영원한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중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신 진정한 이스라엘의 참 왕이시고 그의 나라는 영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찬예식을 통해서 그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고, 주님께 순종과 충성을 다짐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에 익숙하십니까
삼하 7장 18~29절 / 김광일목사
작곡가 웬델 러블리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64세 된 할머니에 대해 자신의 책에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16년 동안 침대에 누워 꼼짝 못했는데 온 몸에 고통이 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웬델 작곡가는 자신의 글에서 이 세상 자기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그렇게 넘치는 감사를 드리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자신에게 허락된 하나님 아버지의 큰 축복을 인해 감사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크게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 할머니는 자신의 엄지손가락에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막대기를 끼워서 차도 마시고 안경도 끼고 밥도 먹고 성경도 읽었다고 합니다. 비록 답답하고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감사하는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어떻게 감사할 수 있나 물어보았더니 그 할머니는 내 죄가 사해졌으므로 평안히 누워 있을 수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으니 감사하고 나를 지켜주시는 한 비록 몸이 불편하긴 해도 전적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감사하고 부르실 때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서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감사나 만족은 한 번에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과 불편한 자리라고 해도 어려운 처지, 환경을 뚫고 나가는 믿음이 있으면 익숙한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익숙하다는 말은 어색하지 않고 몸에 배인다는 뜻입니다. 감사라는 말과 행동이 여러분의 삶 속에 어색하게 느껴지십니까? 신앙인들에게 감사는 몸에 배어야 합니다. 감사에 익숙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보니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표현으로 하나님이 거할 처소, 즉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자신은 왕궁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는 반면, 하나님의 법궤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휘장 가운데 그냥 있었기에 다윗은 하나님께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받은 바 은혜를 생각하니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사에 익숙한 자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처럼 감사에 익숙한 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인생의 주관자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이 평생에 경험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가 그의 인생을 이끌어왔다는 것을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힘든 나날을 살아왔는지를 잘 압니다. 실제로 다윗의 주변에는 그를 죽이려는 무리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모든 위협적인 존재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역경을 통해서 깨닫게 된 사실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생이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운데서 펼쳐진다는 사실입니다.
마리 버기스는 인도 최상류 층 가정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젊은 처녀에게 그보다 더 절망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의 세월의 뛰어넘어 불쌍한 나환자들을 돕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인도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그녀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두 다리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두 날개를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그녀가 두 다리가 있었다면 힌두교를 믿는 인도 최상류층 가정의 딸로서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다리를 잃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두 날개를 얻게되었습니다. 따라서 마리 버기스는 오히려 두 다리를 잃은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요 축복임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 있다할지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상황과 환경을 통하여 선을 이루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인생을 살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만 내게 되면 결국 감사할 줄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생의 주관자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설사 일이 잘 진행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최선을 다할지라도 결국은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감사에 익숙해지는 비결입니다.
둘째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던 반면, 하나님의 뜻은 이와 달랐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이 다른 데 있음을 알게 했습니다. 그것은 다윗 왕 자신이 아닌 그의 아들을 통해서 성전을 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다윗의 심정이 어떠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그 마음에 아들에 대한 시기심이나 혹은 부러움 같은 것이 과연 없었을까요?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받은 바 은혜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성전건축의 일을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계속된다는 사실이 더욱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감사에 익숙한 자의 모습입니다. 감사하는 생활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왜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지 아십니까?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병원에서 청소하시는 분들은 임시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식당 아줌마들을 정식 직원이라고 부러워합니다. 그 식당 아줌마들은 사무원들을 부러워합니다. 더운 여름 에어컨이 있는 깨끗하고 시원한 사무실에서 사무 본다고. 그 사무원들은 비슷한 나이의 간호사들을 부러워합니다. 간호사들은 의사들을 부러워합니다. 의사들은 원목을 부러워합니다. 목사님이 환자들 기도만 해주면 고생은 자기들이 했는데 "목사님 기도 덕분입니다."하니까요. 그 원목 목사님은 개척을 하더라도 내 양이 있어야 한다고 단독 목회를 해야지......하고 개척교회라도 하시는 분들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개척교회 하시는 분들은 만족이 없습니다. 결국 남과 비교하면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비교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주된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열등감입니다. 열등감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을 끝까지 지켜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데서 비롯됩니다. 그렇다면 열등감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이 계획이 있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이 따로 있음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비교하지 않음으로써 열등감을 극복할 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축복이 자녀대에서 계속되기를 얼마만큼이나 바라고 계십니까? 실상 우리들의 삶을 보면 많은 부분에서 우리 자녀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못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내 아들 딸들은 공부를 왜 이리 못합니까?', '왜 내 아들만 직장에서 왜 이리 운도 없는 것입니까?', '왜, 내 아들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사기꾼같은 사람만 만나는 것입니까?' 아마 이렇게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 비교하는 사람치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가 내게 족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감사 훈련을 계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란 무엇입니까? 만약, 감사가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날 때만 내 삶속에 나타난다면 그것은 진정한 감사일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윗은 감사가 뭔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도 그 역경을 이겨나갈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잃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이처럼 감사를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몸에 감사가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에 익숙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한번 들여진 습관은 바뀌기 쉽지 않습니다. 감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감사가 몸에 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윌리엄 보세이라는 사람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기가 겪은 실패와 좌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이 들처럼 불행한 삶을 살 수 없다"며 자신의 가족들에게 "변명은 사절(No Excuse)"라고 써있는 티셔츠를 입게 하였습니다. 그는 가족들이 그 티셔츠를 입고 있는 동안에는 자기 행동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하지 않기로 가족들과 약속했습니다. 또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무의미한 변명을 늘어놓을 경우 식구들 중 누구라도 바로 제지할 수 있도록 정해놓았습니다.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산 윌리엄 보세이의 가족은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일단 가족들은 쉽게 변명하고 핑계를 대는 버릇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또한 푸념이나 불평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복잡하게 설명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실없이 지껄이는 일도 줄고, 더 나아가 올바른 일을 하는 데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윌리엄 보세이는 우수 인재를 발굴 양성하는 '위너스(Winners)' 그룹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보세이의 가족이 이렇게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먼저 가정 안에서 모든 변명과 불평을 하지 않기로 결단하고 이를 위해 숱한 훈련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감사가 몸에 배어 있습니까? 아직 몸에 배어 있지 않다면, 먼저, 불평불만을 여러분의 마음과 입술에서 차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감사할 수 있고 하나님은 이렇게 감사하는 사람의 인생을 놀랍게 변화시키십니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한 헨리 프로스트는 감사의 능력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집으로부터 슬픈 소식을 전해 들은 후 깊은 어두움의 그림자가 내 영혼을 덮었다. 기도를 하여도 그 어두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혼자 견디어 보려고 애를 써 보아도 어두움은 점점 깊어만 갈 뿐이었다. 그런 후 본국의 선교 본부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선교 본부의 벽에 이런 글이 써 있었다. '감사를 연습하십시오.' 나는 그대로 해보았다. 그러자 곧 모든 어두움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다시는 나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 시편 기자의 말이 옳다. '하나님께 감사함이 좋으니이다.'"
혹시 최근에 여러분의 영적 생활에 어두움의 그림자가 밀려오고 있는 것을 느끼십니까? 또는 감당키 어려운 무거운 짐으로 허우적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당신을 위해 해주신 일들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며 당신을 버리지 아니하셨음을 알고 있다고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여러분의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할 때, 그것이 어떠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평안케 하십니다. 안정을 찾게 하십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문제 해결의 방법을 주십니다. 감사하십시오. 그것이 영적인 생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 전부를 성공으로 이끌어 갑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산 제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에는 정말 반 년 동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감사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감사 예물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통해 더 큰 축복의 현장으로 나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축원합니다.
소원이 거절 당했을 때의 자세
삼하 7장 18~29절 / 김필곤목사
다음 이야기의 한 가지 공통점과 다른 점은 무엇이겠습니까?
97년 애완동물을 기르는 전자게임기인 다마고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였습니다. 김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다섯 살짜리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가 아침부터 어머니에게 다마고치를 사달라고 졸랐답니다. 어머니는 교육상 좋지 않아 거절하였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아이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건물 5층 옥상에 올라가 투신을 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 자매가 결혼하기 위해 선을 보았답니다. 중매쟁이가 사진을 달라고 해서 서로 사진을 교환했는데 남자가 사진만 보고 거절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한 처녀는 "맞대면도 하지 않고 선을 거절하는 것은 실례"라며 남자의 집을 매일 방문하다가 그것도 분이 풀이지 않자 1년 동안 16,333회의 무언 전화를 해 복수를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해리포터를 지은 조앤 K 롤링이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재혼한 분입니다. 어머니는 15세 때에 급성 다발성 경화증 돌아가셨습니다. 포르투칼에서 영어교사를 하던 중 한 남자를 만나 첫아이를 낳았지만 그 아이는 유산하였습니다. 둘째를 낳았지만 딸이 4개월 되던 때 이혼을 당했습니다. 그는 그 딸과 함께 자신의 나라에 왔습니다. 해리포터라는 작품을 썼습니다. 무명의 작가입니다. 생활보호대상자입니다. 쥐들이 찍찍 울어대며 어둠침침한 집에서 살아야 합니다. 12개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안고 도전하였습니다. 결국 해리포터라는 작품이 세상에 나왔고 날개돋친 듯 팔려 성경과‘마오쩌둥(毛澤東) 어록’다음으로 많이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세계 최고의 갑부 작가가 되었습니다.
세가지 이야기의 공동점은 거절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차이점은 처리 방법이 다릅니다.
살다보면 우리는 어떤 일에 거절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절당할 때 대처하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우리는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감정적으로 처리하는 자세입니다. 앞의 두 예에서 보는 것과 같습니다. 감정적으로 처리하여 결국 자신도 망치고 타인에게도 해를 끼치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 자세는 이성적으로 처리하는 자세입니다. 조앤 롤링과 같은 경우입니다. 냉정하게 사리를 분별하여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위대하다고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절을 당할 때 이성적으로 대처한 사람들입니다. 감정적인 사람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러나 거절당했을 때 이것보다 한 차원 높은 대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적인 대처방법입니다. 소원이 거절 당했을 때 모든 것을 신앙적인 자세로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 대표적인 사람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울을 통해 자신이 왕이 되는 소원이 거절당합니다. 그 때 그는 어떻게 합니까? 감정적으로 사울을 죽입니까? 무려 15년 이상 도망다니면서도 한 번도 사울을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죽일 기회가 있는데도 죽이지 않습니다. 아들이 반역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여기 대표적인 사건이 하나 나와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니며 지긋지긋한 고생을 하다가 이제 왕이 되었습니다. 자신은 화려한 궁전을 짖고 사는데 하나님의 성전이 너무나 초라한 것입니다. 불레셋에 빼앗겼던 법궤를 찾아 오기는 했는데 아직도 텐트 속에 법궤가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람같으면 이제 대통령이 되었으니 잘먹고 한 번 잘 살아 보자라고 생각하며 부귀 영화를 누리며 살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젊었을 때 얼마나 고생을 하였습니까? 전쟁터에서 사선을 넘어야 했습니다. 궁권에서 인생을 더 즐기기 위해 새 집도 짓고 최고급 승용차도 사고 골프 회원권도 4개 마련하고 가난할 때 만났던 사람들 무시하며 온갖 거드름을 피우며 허세를 부릴만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은 달랐습니다. 자신의 좋은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법궤가 초라한 장막에 있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관심을 가집니다. 내 집은 이렇게 좋은데 우리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곳이 너무나 초라하여 성전을 지을 결심을 합니다(2,3).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소원을 거절합니다. 참 기특하기는 하지만 그는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사람이었습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성전을 짓기에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평강의 왕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은 성전 짓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소원을 거절하였습니다(12,13). 이 때 다윗이 취한 자세를 보십시오.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를 보게 됩니다.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이 성전짓기를 거절 당했을 때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이 기도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소원이 거절 당했을 때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교훈받을 수 있습니다.
1. 자신의 소원이 거절당한 것만 보며 자기 중심적 감정처리를 하지말고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18-21).
사람이 거절 당하면 일반적으로 감정적으로 처리합니다. 그 감정적인 처리 방법은 대부분 두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거절당하여 자존심이 상했다고 생각하여 상대에게 폭력을 가해 보복하는 것입니다. 그 보복은 언어 폭력도 될 수 있고 험담과 중상모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자학하는 것입니다. 포기하고 좌절합니다. 심하면 자살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감정 처리에 미숙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많은 시편을 기록할 정도로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지만 절제 못하는 감정의 홍수로 자신과 타인을 감정싸움의 진흙땅으로 끌고 가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18-21절까지 나타난 그의 기도의 내용을 보십시오.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지금 거절 당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고상한 감정은 감사입니다. 감사만큼 사람의 감정을 풍요롭고 평안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랑의 감정이 좋은 것 같지만 사랑의 감정도 고뇌가 따르고 아픔이 따릅니다. 그러나 감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세 가지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1)다윗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1)여기 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18). 다윗은 법궤가 법궤가 있는 곳에 가서 앉아 감사를 드립니다. 목축을 하는 가난한 가정의 여덟 번째 막내 아들로 태어나서 들에서 양을 치던 일개 목동이었던 사람입니다. 아버지도 자신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고 선지자 앞에 내 놓지 않던 자입니다. 그런데 한 나라의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2) 미래에 축복해 주실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19). 하나님이 성전 짓는 것을 거절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흡족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그 후손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삼하7:12-13절을 보십시오.
(3) 장래에 일어날 일을 알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20-21).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알아 주신 것에 대하여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연약함도 진실함도 믿음도 알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장래 있을 큰 일을 알려 주었습니다.(삼하7:14-15)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2)우리는 어떠한 거절을 당해도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말고 주신 은혜를 보며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지금 몸이 아파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사업의 소원, 자녀의 소원, 교회에 대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거절은 아닙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이루어질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하나님이 말씀한 것처럼 우리와 우리의 후손은 복은 받은 사람이고 결국 미래는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온 과거를 보면 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것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459장 1절)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459장 2절)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 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쟎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459장 3절)"
2. 거절을 당할 때 포기하지 말고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며 찬송하며 나아가야 합니다.(22-24)
거절을 당하면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면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소설‘로빈슨 크루소’를 쓴 대니얼 디포는 처음부터 훌륭한 작가로 인정받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20번 거절당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21번째 출판사를 찾아가 마침내‘로빈슨 크루소’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리처드 바크의 유명한 소설 ‘갈매기의 꿈’도 12번 출판 거절을 당했다고 합니다. 존 그레시라는 영국 탐정소설 작가는 무려 743번이나 출판을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543권에 달하는 탐정소설을 출간했다고 합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집념을 가지면 이런 일들을 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모든 일, 내 인생의 모든 일을 하신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거절할 때는 우리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태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23절을 읽어 보시시 바랍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거절 당할 때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찬양을 드립니다.
1)다윗은 자신의 소원이 거절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2절부터 24절까지 그 찬양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찬양했습니다(22).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찬양합니다.
(2)하나님의 구속하심을 찬양했습니다(23).
(3)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심을 찬양했습니다(24).
2)우리는 어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은다고 탄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신 위대한 일을 보며 찬송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나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요나를 위해 하나님은 니느웨로 보내는 것입니다. 바울이 질병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그 소원이 거절 되었습니다. 그것 역시 바울을 위해서입니다. 네 은혜가 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까지 이루어지면 교만하여 넘어지기 때문에 그 소원만큼은 거절하였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우리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2:9)"으로 불렀습니다. 얻지 못한 작은 것보며 탄식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보고 찬양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님은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23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애굽에서의 해방될 때를 보십시오.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가 목도한 바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신 10:21)"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될 때를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 126:1-3)"
당시는 몰라 원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하시는 분
이십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일입니다. 말씀도 우리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0:13)"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 (신 6:24)"
그러므로 우리는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1)"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노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고전 7:35)"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주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가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스물 세 살의 잘 생긴 청년 조슈아 해리스는 미국에서 기독교 부문 베스트셀러에 연일 1위를 달리는 『NO 데이팅(I kissed Dating Goodbye)』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 책을 쓰게 된 것은 자신의 사랑하는 애인 켈리와 헤어졌을 때였습니다. 그때 나이 열 일곱 살이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연애란 이렇게 끝나야만 하는 건가?" 기분이 침체되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울부짖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위해 예비하신 최선의 것을 갖고 싶어요! 이보다 나은 것을 주세요!" 그 후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방식은 아니었다. 지난 4년 동안 나는 하나님께서 연애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꾸려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달라지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새로운 생활 습관과 태도를 갖기 원하셨던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 하나님 독생자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주 내 모든 죄를 구속하였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찬40장 3절)
3. 거절의 소리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소리에 초점을 맞추고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 합니다.(25-29절)
거절 당하면 거절의 소리가 인생을 지배해 버리면 그 인생은 망치고 맙니다. 그것에 집착하게 되면 죄를 낳게 되고 그 죄는 자신을 파멸시키고 사망에 이르게 만들어 버립니다. 거절당했을 때는 약속붙들고 기도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세같이 위대한 사람의 기도도 하나님은 거절한 때가 있습니다. 신명기 3장 23-28을 보십시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거절했습니다. 모세는 그것 때문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약속 붙들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갔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거절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약속 붙들었습니다. 다윗의 생애에 다시는 그것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성전을 짓는 재료를 준비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약속을 붙듭니다.
1)다윗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간절이 기도했습니다.
(1)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25).
(2)그 약속이 이루어 짐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혀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26)
(3)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29).
2)우리도 거절 당했을 때 거절에만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소리에 초점을 맞추고 그 약속이 이루어 질 것을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는 소원을 거절할 때 거절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정성을 가상하게 보고 더 많은 축복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더 많은 것으로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이룰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 가정 내 마음대로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도 마음대로 못하고 내 몸 건강하나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 주어야 만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시 127: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보다 하나님 나라 일을 우선시하는 그를 향하여 약속을 해 주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다윗의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평안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후손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다윗의 후손들이 그 나라를 이어서 다스리도록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을 듣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약속의 말씀을 확신하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까 기도하면 맨날 내집, 내자식, 내 건강, 내 사업과 같은 철없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에 대하여는 관심을 갖지 않고 내 것 생각하며 기도하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건국 대학교 교수인 유태영 박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머슴입니다. 8남매 중 여섯째 아들입니다. 너무 가난하여 형제들 가운데 초등학교에 다닌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만 겨우 초등학교를 들어갔습니다. 5학년 때 마을에 교회가 들어 왔습니다. 그때부터 교회에 다니며 새벽기도를 하루도 안 빠지고 13년을 다녔다고 합니다. 새벽에 나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소꼴을 먹이고 토끼를 기르면서 혼자 계속 공부를 하였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구두닦이를 합니다. 잘 곳이 없습니다. 아무곳에나 자다가 새벽 종소리가 울리면 새벽기도를 나갔다고 합니다. 그는 구두닦이 하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외국 유학에 대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한국의 농촌이 이렇게 어려운데 나는 한국 농촌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 지상에서 농촌이 제일 잘 되어 있는 덴마크에 가서 공부를 하게 해 달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덴마크의 국왕이 감동을 받아서 유학을 시켜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 한푼 없이 유학을 했답니다. 비행기 값도 보내어 주었답니다.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농촌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농업이 잘 발달된 이스라엘 가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다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동양인 최초로 이스라엘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에 와서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농촌을 살리는데 쓰임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잠 24: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8-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약속 붙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기적적인 일들이 우리 앞에 이루어 질 것입니다. 약5:17에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기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 년 유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종의 집이 복을 받게 하소서
삼하 7장 25~29절, 눅 10:3-6 / 이성희목사
최근 미국의 아마존 닷 컴에서 비소설 부문 베스트 셀러가 된 브루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작은 책이지만 영감이 풍성한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은 주로 복에 대한 얘기와 기도에 관한 얘기를 적고 있습니다. 이런 책이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미국인들도 복을 좋아하고 기도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정말로 하나님은 당신이 요청하지 않아서 주지 못하는 그래서 당신이 요청하기만을 기다리는 엄청난 복을 소유하고 계신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고 엄청난 복의 소유자이신데 요청하는 사람이 없어서 주지 못하는 복이 그렇게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복을 구하는 사람을 찾고 계시는데 복을 구하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복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본래적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은 우리가 드리는 최고의 예배입니다. 복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입니다. 우리는 구해야 하고 하나님은 주셔야 합니다. 이것이 복에 대한 쌍방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려고 준비하고 기다리시는데 우리가 구하지 못하여 얻지 못한다면 이 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민족은 복의 민족입니다. 복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민족보다 더 큽니다. 제가 어릴 때는 수(壽)자와 복(福)자를 많이 보았습니다. 이불에도 수복이라고 써놓았고, 베개에도 수복이라고 써놓았고, 옷에도 수복이라고 써놓았고, 그릇에도 수복이라고 써놓았고 심지어 숟가락에도 수복이라고 써놓았습니다. 어디에나 수복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수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7장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다윗이 나단을 통하여 성전 건축의 뜻을 하나님께 전합니다. 하나님은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언약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짓겠다고 하는 다윗에게 무한한 기쁨을 표시하십니다. 이에 다윗은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다윗의 기도입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기도문에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라고 합니다. 복은 좋은 것입니다. 누구나 받기를 원합니다.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어떠한가를 살펴봅니다.
첫째,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종이란 말을 반복합니다. 자신의 신분이 종인 것은 반복되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종 된 것만 해도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다윗은 본문 5절 가운데 종이란 단어를 8번 사용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종이었습니다.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에 드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종은 개인적 자유가 없는 자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지배된 자를 말합니다. 자유시간이나 개인적 삶이 없이 항상 일에 시달리는 자(forever on duty)를 말합니다. 종은 자신의 소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타인의 소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을 종이라 자처합니다. 다윗이 그랬고, 바울이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는 여종이 있었습니다. 하갈입니다. 하갈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잉태하게 되자 아기를 낳지 못한 자신의 여종을 업신여겼습니다. 이 일로 사라와 하갈은 갈등을 가지게 되고 하갈은 임신한 몸으로 멀리 도망을 갑니다. 하갈은 큰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법으로는 몸종이 아기를 가지면 그 아기는 자동적으로 여주인의 아기가 됩니다. 자신이 아기를 가졌지만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뱃속의 아기가 자신의 아기가 아니라 사라의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종의 소유는 다 주인의 소유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면 우리의 소유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많이 줘도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창고를 옮기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종에게 아무리 많이 줘도 손해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종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반면을 자신을 종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소유가 자신의 것입니다. 많이 주면 줄수록 자신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것이 아닌데 하나님이 많이 주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종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중요한 자의식이며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역대상 17:27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이제 주께서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두시기를 기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하니라" 자신이 종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복 받는 조건입니다. 종이라고 아는 그 자체가 복입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은 신실한 종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후손을 주시겠다고 했을 때에 아브라함은 거절했습니다. 엘리에셀이 자신의 상속자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태어나고 장가들 때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에게 이삭의 부인이 될 며느리 감을 데리고 오게 합니다. 이삭이 없으면 자신이 상속자입니다. 이삭이 못 돼야 자신이 잘 됩니다. 이삭의 불행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런데도 이 종은 아브라함의 뜻대로 리브가를 데리고 와서 이삭의 집을 번성하게 합니다. 그는 창세기 24:34에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라고 합니다. 자신을 잘 아는 것이 복이며 이런 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종인지, 주인인지 분별하지 못하여 멸망을 당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사악한 농부의 비유'라고 이름지어진 비유가 있습니다. 주인의 농사를 대신 지어주던 농부가 추수철이 되어 주인이 보낸 일꾼들을 다 죽이고, 아들까지 상속자란 이유로 죽였습니다. 이 농부들은 자신이 주인인지 농부인지 혼돈하고 있습니다. 종이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혼돈하는 것 자체가 나쁜 일입니다. 이들을 '사악한 농부'라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신분을 혼돈하면 사악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타락한 천사들이 하나님같이 되려고 꾀하다 사탄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창조자인지 피조물인지 혼돈하는 일은 사악한 일입니다. 그 마음이 이미 화이며,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복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은 또한 무익한 종의 비유를 통하여 신실한 종을 소개합니다. 이 종은 밭에서 부지런히 일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주인의 식사시간이 되었지만 주인은 함께 식사하자고 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식사하는 동안 수종들고 뒤에 먹으라고 합니다. 이 종은 이 일을 다 행한 후에 말하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고 합니다. 종의 신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종입니다. 이런 종이 복을 받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무익함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생애 중 절반은 잠자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우리의 시간의 10분의 1만을 바친다. 그러고도 우리의 선행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 동안에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나는 두 시간 말타고, 세 시간 식사하고, 네 시간 하는 일 없이 보낸다. 아하, 하나님이여, 이 무익한 종을 정죄하지 마소서". 이 자세가 이미 마음의 복입니다. 그 마음은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줘도 손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 간수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에게는 아무리 많이 줘도 아깝지 않습니다. 어느 종과 주인이 시베리아 벌판을 썰매를 타고 여행합니다. 어둑어둑한 날에 험준한 산길을 따라갑니다. 갑자기 숲 속에서 이리떼들이 몰려 왔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렸지만 이리 떼들은 점점 썰매 가까이 다가옵니다. 얼마 후가 되면 둘 다 이리의 밥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안 종은 썰매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이리들은 이 종에게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었습니다. 이 참에 주인은 멀리 도망하여 무사하였습니다. 훗날 주인은 그 종을 위하여 비석을 세워주며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런 충성스런 종이 되어 복이 떠나지 않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복을 받는 이유는 주님 앞에 영원히 있기 위함입니다.
다윗이 복을 받겠다고 하는 이유를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라고 합니다. 복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자신이 잘되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복을 가지고 자랑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소비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복을 주셨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실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에는 "진정으로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구할 때 기적의 흔적들이 우리의 삶 속에 부산물로 남게 된다"고 합니다. 복을 받은 사람은 무엇인가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 흔적은 우리의 얼굴에, 몸에 삶에 나타납니다. 그 흔적은 주님 앞에 있는 우리의 삶의 자세입니다. 자세를 보면 복을 받은 사람인가를 알게 됩니다. 어거스틴의 삶의 구호 가운데는 '하나님의 어전에서'(coram deo)라는 말이 있습니다. 늘 하나님의 어전에 사는 경건한 모습을 잃지 않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어전에서 하나님을 대하듯 세상을 사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얼굴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지 않는 자들은 복을 받습니다.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소원입니다. 그 생각이 복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모세의 글이나 기도에 '주의 목전에서 은총'이란 말이 많이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33:13에는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라고 합니다. 모세는 주의 목전에서 은총을 간구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목전에 있기를 원했고, 목전에서 살기를 원했고, 목전에서 은총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전은 곧 복입니다. 반면에 사사기에는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구약성경 전체에 이 말이 14번 나오는데 그 중에 7번이 사사기에 나옵니다. 사사기 2:11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이방신을 섬깁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의 손에 붙이셔서 고통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들이 다시 회개할 때에 하나님은 구원하십니다. 이런 구원과 멸망의 반복이 사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면 근심과 고난이 몰려옵니다. 시편 30:7에는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비취면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십니다. 시편 31:16에는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합니다. 마치 해가 가리워지면 밤이 되고 어두워지며 추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해가 뜨면 낮이 되고 밝아지고 더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주의 얼굴을 피하여 숨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춰야 복을 받습니다. 주님 앞에 항상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이고 이것이 은혜입니다. 복을 받으려는 이유는 우리가 잘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주의 앞에 있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주 앞에 있으면서 주의 얼굴을 뵙는 것은 큰 복입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셋째, 복을 받는 조건은 주의 은혜입니다.
은혜로 복을 받습니다. 복 받는 조건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어떤 다른 조건 때문에 복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외에 없습니다. 노아 당시에는 모든 사람의 생각이 항상 악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악한데 의로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전통적으로 5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서"에는 5복을 수(壽), 부(富), 귀(貴) 강녕(康寧, 자손중다(子孫衆多), 이 다섯을 얘기합니다. 상류층이 말하는 5복입니다. 반면에 "통속편"에는 5복을 부, 수, 강녕, 고종명(考終命), 유호덕(攸好德)이라고 합니다. 고종명이란 죽을 때 조용히 고통 없이 죽는 것을 말하며, 유호덕이란 덕을 좋아하고 베푼다는 뜻입니다. 통속편의 5복은 서민들의 복입니다. '걸리버 여행기'라는 소설을 아실 것입니다. 영국작가 조나단 스위프트가 쓴 풍자소설입니다. 총 4권으로 되어 있는 1726년 간행된 소설입니다. 주인공 걸리버가 항해 중에 난파하여, 소인국, 거인국, 하늘을 나는 섬나라, 말(馬)의 나라에서 기이한 경험을 한다는 동화같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당시의 영국을 풍자한 소설입니다. 걸리버가 소인국에 갔을 때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달걀 깨는 법 때문에 발단된 전쟁은 죽기살기로 싸웁니다. 대국적 보면 웃기는 일로 싸운다는 풍자입니다. 다시 거인국에 갔습니다. 거인들의 장난에 걸리버는 목숨을 잃을 뻔합니다. 거인이 기침 만해도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귀족들과 부자들의 장난에 가난한 자들은 목숨을 잃는다는 풍자입니다. 다시 하늘을 나는 섬나라로 갔습니다. 불사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죽지 않습니다. 죽지 않지만 늙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늙어 고생하면서도 죽지 않는 나라인 것입니다. 당시 영국의 최고선은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것입니다. 적당한 때 죽는 것이 복이란 풍자입니다. 마지막으로 말 나라에 갔습니다. 말 나라에서는 문명의 존재가 말입니다. 이 나라는 물질적, 현실적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완전한 행복이 있는 이성적 학문만 최고의 목표로 하는 사회입니다. 물질에 대한 비판과 은혜와 덕을 베풀라는 풍자입니다. 걸리버여행기에서는 고종명과 유호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5복이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도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건강수명에 대한 기사가 났습니다. 전체 평균수명에서 질병 부상으로 고통받은 기간을 제외한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기간입니다. 세계에서 건강수명이 가장 긴 나라가 일본인데 73.8세입니다. 한국은 66세이고 미국이 67.2세입니다.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별로 높지 못한 것은 돈이 건강수명을 높여주는 것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계획입니다. 부, 수, 강녕, 고종명, 유호덕, 이 모두가 알고 보면 내 힘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에서는 "성경적인 의미에서 복이란 말은 사람의 힘으로 얻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은혜를 뜻한다"라고 합니다. 성경의 복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론 한국인은 샤마니즘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샤마니즘의 특징은 현실성, 기복성, 의존성이라고 합니다. 샤마니즘이 기복성이 있다고 하여 기복은 샤마니즘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복적이 되는 것은 거부합니다. 우리는 복을 받기 위하여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의 결과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기복적은 아니지만 기복은 해야 합니다. 우리 연동교회의 교우들의 많은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다윗의 기도처럼 우리 연동교회 교우들이 주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종이 받는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종의 가정들이 하나님의 풍성하신 복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풍성한 복으로 한 주간의 삶을 복스럽게 살기를 바랍니다.
기도할 마음을 주옵소서
삼하 7장 25~29절 / 김영대목사
어느 날 성도님 한분이 저에게 면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분은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간절히 기도할 수 있을까요?” 잠시 있다가 저는 그 분에게 되물었습니다. “성도님은 스스로를 보시기에 지금 간절히 살고 계십니까?” 저의 질문을 받은 성도님은 한참 뒤에 “아뇨! 뭐가 뭔지 정리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시면 먼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겠다는 하나님을 향한 삶의 목표를 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싶어 하고, 능력 있는 기도 생활을 하고 싶어 하지만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기도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목표를 이루어 드리기 위해 자신을 드리겠다는 헌신의 다짐이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순종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자신의 뜻에 굴복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철야를 한다든지, 금식을 하는 것도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절제하고, 끊고 하나님의 뜻에 더 철저히 순종하고 복종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시위하여 마침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기도는 전인격적인 영적 활동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우리의 삶이 반영되고, 하나님 아버지의 원하시는 바가 자신을 통하여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기본이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도가 진정으로 응답되는 능력있는 기도는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품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뜻을 이루시지만 무조건 열심히 간구하는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스스로를 바친 사람을 통하여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고 하신 말씀도 바로 이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행 13장 22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는 말씀을 들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왜 이런 말씀을 들었을까요? 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을까요? 그의 마음 씀씀이가 아름다워서, 하나님 중심적이어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다고 한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다윗과 같은 사람을 찾습니다. 그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럼, 다윗의 어떤 면이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을까요?
첫째로, 그는 평안할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삼하 7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하나님께서 주변의 모든 대적들을 무찔러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궁에 평안히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가 마음에 무엇을 생각합니까?
그 다음 2절을 보십시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어려울 때의 마음과 평안할 때의 마음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간구하다가 평안해지면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감사한 마음을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어려울 때에도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평안해 졌을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 잊지 않고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왕궁에 평안히 있을 때, 자기는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궤는 텐트 가운데 있는 것이 못내 걸렸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그래서 3절에 보면 나단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이 말은 나단이 감동해서 한 말입니다. 나단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오늘 목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목사의 마음이 어떨 때 가장 기쁩니까? 성도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 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면서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기회 있는 대로 감사하면서 사는 모습을 볼 때 목사의 마음은 한없이 기쁜 것입니다. 특별히 목사를 찾아 와서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는지 그것을 의논할 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무엇인가 하고 싶어 하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무언가 하고자 하는 마음을 볼 때, 목사의 마음은 한없이 기뻐지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 바로 옆 교회인 뉴욕 중부교회에서 목회하시던 이철 목사님, 지금은 홍정길 목사님의 후임으로 남서울교회의 목사님으로 계신데 그분의 미국 초창기 목회 경험입니다. 저희 애들이 여름에 썸머스쿨을 그 교회로 다녀서 제가 목사인줄을 알고 지내다 들은 얘기입니다. 목사님이 처음 교회를 개척하실 때 얼마동안 교회가 자체 건물 없이 고가도로 밑의 한 건물에 세를 들어 예배당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장소가 협소하기도 했지만 밖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설교를 하다가도 중단해야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큰 트럭이 소리를 내면서 달릴 때는 마이크를 대고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별히 아이들 교육 환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그 때 한 성도님이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새 집을 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축하한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그 성도님은 집을 산 것이 축하 받을 일이 아니라 죄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무엇이 죄송하냐고 했더니, 지금 교회는 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모이고 있는데 자기는 좋은 집을 사서 이사하게 되었으니 죄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안 되는 경위를 설명하고는 헌금봉투를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헌금 겉봉에는 ‘감사헌금’이라고 쓰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죄송헌금’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그분이 집을 산 금액의 1/4에 해당하는 상당한 금액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성도님의 말을 듣고 이 ‘죄송헌금’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헌금의 액수보다 헌금에 담긴 성도의 아름다운 마음 때문에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 성도가 있었기에 그 교회는 다리 밑 셋집을 청산하고 크고 아름다운 교회당을 사서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온 교회 성도들이 있는 것 다 바쳐서 정말 힘겹도록 건물을 마련하고 지금은 그 건물이 비좁도록 크게 부흥해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고 ‘죄송헌금’의 주인공은 존경받는 장로님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지금 다윗의 마음이 그런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울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도 모든 일이 잘 되고 평안 할 때는 하나님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인데, 다윗은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입니까? 그런 다윗을 만난 나단 선지자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나단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꿈마을엘림교회 성도들이 다 이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하나님을 잘 의지하지만, 또한 형통하고 평안할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평안한 삶 속에서 안주하며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즐기다가 자기 인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이 만큼 복을 누리게 되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일이 형통하고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으니 이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가난하고 바쁠 때는 마음은 있었지만 할 수 없었던 것을 이제 해보자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그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나 개인적인 일보다 하나님의 일, 먼저 내 이익과 즐거움 보다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발전에 더 관심을 가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자기의 뜻이 거절 되었을 때도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아름다운 마음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더 아름다운 것은 그의 마음 중심에서 나온 그의 청, 곧 성전을 지어드리겠다는 그의 소원이 거절되었을 때에 보여준 그의 마음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실상 다윗의 그러한 마음을 읽으시고 매우 흡족해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위해서 집을 짓겠다고? 좋다. 그러나 너는 손에 피가 많은 사람이야. 전쟁에서 너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그 피 묻은 손을 가지고 내 거룩한 성전을 지을 수는 없어. 그 대신 네 아들이 짓도록 해 주마.
하나님이 다윗의 청을 거절하신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얼마나 실망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을 돌렸습니다.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자기가 뜻 한대로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재원과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지 않을 때 아멘으로 순종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순종, 이것이 다윗의 아름다운 마음이었습니다. 20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다윗은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어도 더 크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했습니다.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특별한 계획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사람이 자기 뜻대로 일이 잘될 때에는 신이 나서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감사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일이 안 되거나 자기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을 때는 돌아서기 쉽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이 이를 막으시고 나의 아름다운 생각과 뜻을 받아주지 않는 것 같은 때에 자칫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신경질을 부리고, 하나님 앞에 불평과 불만을 쏟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때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 찬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자신의 뜻과 다른 하나님의 뜻을 높이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마음과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꿈마을엘림교회 성도들이 모두 이런 마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던 다윗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종들을 가까이 하며 성도들을 잘 섬기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풍성한 은혜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에게도 그런 축복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의 청은 안 들어 주셨지만 그런 그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셔서 그를 마음껏 축복해 주셨습니다.
8절 이하를 보십시오. 8절 이하 16절까지가 하나님이 나단을 통해 다윗을 축복하신 말씀인데, 한 마디로 하나님이 ‘다윗의 집을 세워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27절). 할렐루야! 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자하는 마음을 먹었더니 하나님은 다윗의 집을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와 같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 집을 잘 세운다 한들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것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는 진실 된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해 주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약속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은 그 약속을 듣자마자 너무 흥분한 나머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여호와 앞'이란 하나님의 궤가 있는 텐트를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 앞에 나아가 앉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감격에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그 기도가 18절에서부터 29절까지 이어집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면 기도할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27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 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자마자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불 같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집을 세워주시겠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는가? 지금 당장 하나님 앞에 달려가 감사드리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꼭 내 집을 세워 주시옵소서’하고 기도드리자.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강한 충동을 느낀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마음이 하나님께로 달려가는 기도를 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여러분 자신을 위해 주신 약속의 말씀을 찾아내십시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다윗에게 주신 이 말씀이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와 닿는다면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을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펴놓고 조용히 읽다보면 하나님은 어떤 말씀을 통해서든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준비하신 축복의 약속을 듣게 하고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 약속을 받기만 하면 기도하고 싶은 감동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밀어닥치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약속을 듣는 것이 이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약속의 말씀을 받으면 그 다음부터는 기도하고 싶은 충동이 절로 생깁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얼마나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25-6절을 보십시오. 자기 집을 세워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그가 얼마나 담대하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28-9절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자신만만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도 이런 기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기만 하면 우리도 이렇게 자신 있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네 집을 세워주겠다는 약속”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까? 네 가지 구체적인 약속을 주셨습니다.
첫째로, 그의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9절에 그랬지요.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실제로 다윗의 이름은 신구약을 통 털어서 880절에 1000번 이상이나 불리우는 귀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말할 때에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오늘 우리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하나님 잘 섬기면 이런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름이 존귀케 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그 땅에 평안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실제로 이후 다윗의 시대에는 전쟁이 없었습니다. 사방이 평안했습니다. 그의 나라를 넘보는 외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나중 그의 아들 대에까지 이르는 것을 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 우리들의 가정도 이렇게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사업을 넘보는 세력이 없고, 우리를 해칠 세력이 없는 그런 참으로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그 자식을 그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해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또 14절부터 16절을 보십시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의 자식을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케 해 주시는데, 혹시 그들이 죄를 범할지라도 그들을 징계해서라도 그들을 돌아오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폐함을 입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몸에서 낳은 아들을 통해서 결국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는 축복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결코 하나님께 버림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채찍을 맞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사슬 가운데 사는 축복이 우리 자녀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자녀 시대에 교회가 더 아름답게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꿈마을엘림교회는 우리 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의 대에 가서는 더욱 번창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의 시대에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지 못하였으나, 솔로몬이 지은 것처럼 우리 자녀 대에 더욱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종의 집이 복을 받게 하소서
삼하 7장 25~29절 / 최건호목사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 7:29)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역사가 기록돼있는 책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사무엘상·하 이 여섯 권의 성경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이 다윗왕의 기록을 기록하고 있는데 다윗 왕은 구약 성서에 나타난 모든 왕들 가운데 가장 주목 받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왕이었습니다. 다윗왕은 이스라엘의 선한 왕의 모델이요 기준이 되는 왕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속하는 메시아의 계보를 시작한 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마 1:1). 이런 다윗왕의 기도문 가운데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중요한 축복의 기도가 들어있습니다. 오늘 이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우리 교회에 소속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윗 왕과 같은 축복의 기도를 나누어야겠습니다. 다윗왕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첫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종의 집을 축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할 것을 기도했습니다(삼하 7:26). 야고보서 4장 3절을 보면 “너희들이 다투고 싸우고 힘써도 얻지 못함은 하나님께 올바로 구하지 아니함이요 너희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구해도 못 얻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하지 않는 것도 불신앙이고 잘못 구하는 것도 인간의 정욕과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왕의 기도는 사사로운 욕심이나 자기 영광 그리고 자기욕망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는 기도였습니다. 사무엘하 7장 8~16절에는 다윗의 언약이라고 하는 하나님께서 다윗 왕을 위하여 나단선지자에게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다윗은 이 언약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나님께 구하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시는 일이 되게 하여 주실 것을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좋은 것으로 허락하신 하나님께 종의 집에 복을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삼하 7:27). 이 기도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다윗 자신뿐만 아니라 다윗의 집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후대들이 잘 받아들이고 잘 지켜서 그들의 미래가 복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집이라고 하는 말은 상징적으로 그 의미를 확대 해석 한다면 나라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미래를 향한 그리고 우리들의 후대와 우리들의 나라의 장래를 위한 기도가 이 성전에서 다윗처럼 이루어져야겠습니다. 이 기도가 여러분과 우리 충무교회의 성도들의 기도가 돼서 우리 충무교회가 이 땅에 주님 오시는 날까지 영원토록 복된 교회로 남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해달라고 그랬습니다(삼하 7:29). 이 기도는 메시야의 왕통을 이어가고 온 세계 만민에게 이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영생의 복음을 전하는 무한하고 영원한 축복을 기도하는 상징적인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는 비록 잠깐 살다가는 짧은 인생, 그리고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이지만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드릴 때 하나님 앞에 다윗과 같이 사랑과 은혜와 구원을 받은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약속과 말씀이 변하지 않고 이루어진다고 하는 확신을 가진 미래와 장래와 영원을 향한 기도입니다. 이 축복에 대한 모든 성도들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은 자신의 집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길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손들이 흥황한 나라가 되고 축복을 계승하여 메시야의 나라가 돼서 영원히 번영하기를 기도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다윗과 같이 영원한 영광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시기를 축복하며, 하나님의 세우신 이 교회도 영원한 복된 기관, 구원의 기관, 은총의 기관이 되도록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이성희목사 / 삼하 7:27~29, 고후 6:1~2
어느 미국 선교사가 한글은 가장 우수한 체계적 언어라고 하였습니다. 그 선교사는 한글은 가장 배우기 힘든 언어라고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에 어느 선교사님이 한국에 와서 한글을 배워 겨우 말도 하고 설교도 하였습니다. 어느 겨울 날 교인이 기도하는데 마지막에 “주님 이름으로 비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선교사님은 문을 열어 보이면서 “아닙니다. 눈 옵니다”라고 했답니다. 실제로 어느 초기 감리교 선교사는 축도할 때에 처음 단어가 혼돈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방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라고 축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세요. “시방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시방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합니다.
대강절 4째 주일입니다. 기다림이 계속되는 계절입니다. 다음 주일은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은혜의 오심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율법주의의 치료법이 될 수 있는 “은혜”라고 불리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구약은 율법주의 시대입니다. 이제는 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시대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은혜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14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을 요한은 영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충만하신 은혜로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2:40에는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은혜의 오심이며 예수님이 오심으로 은혜가 그 위에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은혜를 선포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은혜를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은혜입니다. 찬송가에도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은혜 외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은 은혜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가장 힘들고 괴로운 시기였지만 가장 은혜로운 시기였습니다.
로마서 11:5에는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고 합니다. 로마서 11:6에는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은혜입니다. 누가복음 4:19에는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라고 이사야 61:2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은혜는 낮은 곳에 고인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낮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은혜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낮추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은혜라는 단어는 성경에 275회 나타나는 단어입니다. 은혜를 다시 생각하면서 오시는 은혜를 맛보고 은혜의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지금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때입니다.
성경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라고 합니다. 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라고 합니다. ‘지금’이 언제입니까? 은혜 받은 그 때가 언제입니까? 언제나 항상 은혜의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로 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강과 같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강과 같이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언제나 은혜는 현재적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을 느낄 때, 하나님을 바랄 때 이 때가 은혜의 때입니다. 여러분이 고통당할 때가 있습니까? 가장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을 바라보시면 이 때가 은혜의 때입니다. 여러분이 행복하십니까? 가장 행복할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면 이 때가 은혜의 때입니다.
시편 77:7에서 시인은 환난 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지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복음성가 가사처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고 하십니다. 성경도 “세상의 아비는 버릴찌라도 나는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은혜를 사모하는 시간이 됩시다. 지금이 은혜의 때입니다. 나폴레온 힐은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을 보세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난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마태는 세관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 미루지 아니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에 먼저 아버지를 장사하게 해 달라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그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은혜의 때입니다. 미룰 일이 아닙니다.
라즈니쉬는 “과거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라.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라. 단지 현재에 살라. 그러면 모든 과거와 모든 미래도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에 은혜 받겠다”, “또 다른 은혜의 날이 있다”, “다음에 믿어보겠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 안 됩니다. 오늘 말고 또 다른 은혜의 날이 없습니다. 오늘이 은혜를 받을 날입니다.
절대 내일이 있다고 장담하지 마십시오.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아침 안개 같은 존재라고 합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인생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미식축구 팀 ‘포티나이너스’ 감독 스티브 마리우치는 “나는 시계를 차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순간이 지금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이야 말로 행동할 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현재적 은혜만 해도 족합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입니다. 고린도전서 12:9에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풍족합니다. 지금이 가장 풍족한 때입니다.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가 그렇습니다. 오늘의 은혜를 오늘에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는 558장입니다. 이 중에 은혜란 단어가 들어간 찬송이 163장입니다. 은혜란 말이 이렇게 많고 소중합니다.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주의 은혜 풍족하여 넘치고도 넘친다” 등 참 많습니다.
둘째,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고 합니다.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은혜는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심은 구원하기기 위함입니다. 구원이 없는 은혜는 허구입니다.
누가복음 2:30에서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나니”라고 합니다. 할아버지 시므온이 성전에서 예수님을 보고 구원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을 보내주신 일입니다. 예수님을 보았다는 것은 구원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곧 구원입니다.
유대인은 10계명을 받았고 소중히 여깁니다. 10계명을 613개의 작은 계명으로 나누었습니다. 최초로 율법을 작게 분류한 사람은 중세 시대 유대의 저명한 랍비이며 사상가였던 마이모니데스(Maimonides)였습니다. 그는 모세 오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긍정인 형태의 적극적인 법 248개와 부정적 형태의 소극적인 법 365개로 나누었습니다. 248이란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부분의 총합입니다. 365는 1년을 뜻합니다.
이제는 율법이 아닌 은혜의 시대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은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율법이 아닙니다. 율법이 변하여 은혜가 되었습니다. 죽음이 변하여 생명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8-9에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합니다. 이 성경구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율법적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어느 책에 보니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바시니아가 어딘지 모르지만 옛날 영국 식민지 같아요. 알바시니아에 영국인이 방문했습니다. 영국 사람과 현지인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영국인은 혐의 없이 억울하게 체포되어 막달라 굴에 투옥되었습니다. 6개월이 지난 후에 영국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영국은 알바시니아에 석방을 요청했지만 알바시니아 왕 데오도르는 거절했습니다. 영국은 두 번째 다시 요청했지만 거절하자 무력행사를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군함과 영국군이 알바시니아를 향해 갔습니다. 영국군인이 막달라 감옥을 습격하여 영국인을 석방하였습니다. 영국군은 환성을 지르며 돌아왔습니다. 귀국하면서 원정에 소요된 경비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한 사람 영국인을 구출하는데 든 돈이 25만 달러에 해당되었습니다. 이렇게 값비싸게 한 사람을 위하여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본회퍼는 ‘제자도의 대가’에서 “십자가가 사라진 은혜를 값싼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비싼 대가를 지불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비싼 대가를 주고 산 사람들입니다.
맑고 순순한 마음 혹은 믿음이 충만한 마음이 있어야만 기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은혜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은혜로 당당히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저와 가까이 지내는 어느 목사님은 군에 복무할 때에 카투사로 복무했다고 합니다. 부대에서 집에 올 때에 여러 번 헬리콥터를 타고 왔다고 합니다. 사실은 누구나 탈 수 있는데 알지 못하여 못타고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병사들이 목사님의 빽으로 타려고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진 권리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은혜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구원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것을 알지 못하고 은혜 없이, 구원받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에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합니다. 은혜로 구원 받아 내가 되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수고합니다. 행위는 은혜에 뒤따라오는 은혜의 대가입니다.
결론
스탠리 투기 윌리엄스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흑인인 이 사람은 1971년에 로스앤젤레스의 악명 높은 갱단 ‘크립스(Crips)’를 조직하였습니다. 1979년 2월에 편의점 직원을 등 뒤에서 총으로 살해하였습니다. 그 해 3월에는 모텔에서 대만계 가족 3명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가 26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폭력조직을 반대하고 어린이 서적을 발간한 공으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5년 연속으로 올랐습니다. 제시 잭슨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구명운동에 참가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며칠 전인 12월 13일 산 퀜틴 교도소에서 약물주입으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주지사인 아놀드 슈워츠네거도 고민 끝에 집행을 결정했을 것입니다.
죄를 지은 것은 사실입니다. 죄만 보면 사형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는 참회하고 교도소에서 줄곧 선행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많은 사람들의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사형이 집행된 것입니다. 은혜는 용서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용서하지 못합니다. 법이 은혜보다 앞서면 사형을 집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 율법으로는 죽을 수밖에 없지만 은혜로 용서받고 죄 없음이라는 선고를 받게 된 것입니다.
1829년 미국의 조지 윌슨이란 자는 우체국 강도였습니다. 그는 강도 살인죄로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사면장을 써주었지만 윌슨은 죽겠다고 고집하며 사면을 거부하였습니다.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사형시킬 수도, 안 시킬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잭슨 대통령도 당혹하였습니다. 미연방대법원장이었던 존 마샬은 최종판결을 내렸습니다. “사면이란 한 장의 종이일 뿐이다. 그 종이의 가치는 전적으로 관계된 사람의 수락여부에 달려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자가 사면을 거절한 것은 전례가 드물지만 거절했다면 결코 사면이 아니다”. 은혜도 거부하면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는 거부하는 순간 죽음입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면 죽음뿐입니다. 은혜를 거부하지 말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받읍시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풍족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신 성탄을 거부하지 말고 우리의 마음에 탄생하시게 영접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에 영접하셔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영접하셔야 합니다.
은혜를 잘 받아 다음 주일에 은혜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약속하신 대로 복을 받아 누리게 하소서
삼하 7:18-29 / 더온누리교회
그 날 밤에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나라와 왕위에 대한 약속을 들은 다윗이 성전건축계획을 철회한다. 또한 나단 선지자에게서 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감사의 고백과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간구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주 여호와여”라는 말을 8회나 반복하고 “주의 종”, “종의 집”이라는 표현도 10회 언급하고 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결정과 그 뜻에 순종하려는 것임을 짐작케 한다.*만약 다윗이 당시 고대 사회의 왕들이 일반적으로 여기던 왕궁과 신전의 규모가 통치력과 비례하는 풍조에 더 마음이 있었다면 이와같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복종하는 모습은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세상풍조에 걸맞지 않는 하나님의 뜻이 확인될 때 과연 나도 이렇게 단순하게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다윗이 놀라운 통치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유혹, 즉 자신이 높아지려는 것에 사울은 철저히 실패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능력으로 높아지려는 유혹은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감사히 받는다. 하나님께서 약속 하셨으니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자신의 20여년이 넘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시간이 그 증거였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오늘날 다윗처럼 현실에서 내가 꿈꾸고 바라는 것과 다른 곤란함과 어려움의 시간을 통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약속해 주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신뢰하며 믿음의 인내를 다져야 할 것이다. 나의 열심으로 속히 빠져 나가려는 것 보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충분히 다듬어지는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다윗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말씀을 듣고 어떻게 구제척으로 반응했나? 이 반응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나의 삶의 길에서 말씀의 약속이 깨달이 질 때마다 동일한 자세와 태도로 주님 앞에 서야 겠다.
1. 감사(18-21절)먼저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감사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주 하나님, 내가 누구이며 또 내 집안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나를 이러한 자리에까지 오르게 해주셨습니까?”(새번역_18절) 과거로 부터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표현이다. “내가 누구이고 집안이 무엇인데 나를 이러한 자리에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결코 지금의 자리에서 현재의 삶을 누릴 수 없다는 표현이다. 요즘 나의 마음에 늘 떠나지 않는 고백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내가 무엇이건데….더 나아가 지금도 충분한데 먼 장래의 일까지 약속해 주시다니 감히 감당할 수 있는 은혜이겠냐고 감동한다. “주 하나님,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것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기시고, 주님의 종의 집안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 이것이 어찌 주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일상적인 방법이겠습니까?”(새번역_19절)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토를 달지 않는다. 자신의 바램대로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집을 세워 주시겠다는(11-12절) 놀라운 약속에 그저 감사하고 감동할 뿐이다.*감사는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할 때 고백할 수 있다. 자신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기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계획과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믿음으로 의지하고 진심으로 기대하며 이루어질 것을 바라볼 때 감사의 탄성이 터진다.
2.고백(22-24절)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감격하며 감사한 다윗은 이와같은 일을 준비하시고 행하셔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다. 주님같이 위대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고(22절)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처럼 복받은 민족이 없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직접 애굽에서 구해 내시고 주의 백성 삼아서 하나님의 이름의 명성을 드러내셨다고 고백한다(23절). 이렇게 영원히 자기 백성 삼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다고 감격해 한다(24절).
*다윗의 고백은 이스라엘의 역사였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사사시대를 거처 사울의 시대를 지나 자신이 왕이 된 지금, 다윗은 그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또렷하게 알고 고백한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고백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하신 일이 무엇이며, 지금 나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주저하지 않고 고백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들려 주어야 하지 않을까!
*단지 개인적으로 응답받은 것만이 아닌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을 바라보며 그 이름을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길에 확신을 더하여 줄 것이다.
3.간구(25-29절)감사와 고백의 탄성을 하나님께 드린 다윗은 이에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적극적으로 구한다.먼저 약속하여 주신 말씀이 영원히 변하지 않게 하여 주시는(25절) 것을 통해 사람들이 “역시 하나님 이시다” 라고 외칠 수 있도록 자신과 자신의 집을 튼튼하게 세워 주실 것을 간구한다(26절).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여 주신 것을 근거로(27절) 또 약속을 지키시는 참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약속이기에(28절) “그러므로 이제 주님의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셔서, 나의 자손이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대를 잇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하나님, 주님께서 직접 그렇게 약속하여 주셨으니, 주님의 종의 집안이 영원토록, 주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받게 해주십시오.”(새번역_29절)이 간구를 드리는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순수한지 여실히 드러난다. 다윗의 신앙자세는 “주 여호와” 앞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구한다. 주 여호와 앞에서 기뻐하고 탄식하기도 한다. 이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 아니고 무엇일까?나는? 다윗은 분명히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가 기록한 방대한 시편들이 이를 증명한다.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성전 건축에 대한 마음이 들고 이를 구체적으로 나단 선지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속에 다윗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다. 나단도 역시 이 문제를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동의했다. 그런데 이 성전 건축 회의가 기도가 된 것은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나타나신 것 때문이었다.
*놀랍지 않는가? 다윗과 나단이 기도하여 응받하시면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응답하시고 다윗이 감사와 고백과 간구의 기도를 드린 것이다. 다윗은 본문의 아주 긴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왔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다윗이 기도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인도하신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먼저 응답해 주시고 나로 기도하게 하신다. 놀라우신 하나님이시다.
*또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거할 성전을 짓겠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다윗이 하나님의 전을 지을 필요 없고 대신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고 하셨다. 또 “네 집과 네 나라가”라고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집은 눈에 보이는 다윗의 왕궁과 같은 집이 아니다. 처음에는 건축물의 의미로 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지만, “집안, 가속, 가문”의 뜻으로 확대하여 적용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영원히 보전해 주시겠다는 것은 다윗의 가문, 혈통, 계보를 통해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의 계보”를 가리킨다.
*다윗이 살아있는 동안 그의 가문이 영원할 것이다 라고 만 이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을 통해 오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그 예수를 믿는 모든 자가 구원 받는 일을 “영원히” 이루어지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다윗 언약의 핵심이다.
*다윗의 가문을 영원히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문을 통해 오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에게 누구에게나 영원한 구원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이다.*이렇게 원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뜻은 이해하지 못했을 지라도 지금까지 자신에게 행하여 주신 구원의 놀라운 일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다윗의 모습을 본 받아야 한다.
*특히 다윗의 기도의 모습 중에서 “주님께서 주님의 종과 이 종의 집안에 약속하여 주신 말씀이….(새번역_25절)”, “주님께서 몸소 이 계시를 이 종에게 주시고 ‘내가 너의 집안을 세우겠다!’하고 말씀하여 주셨으므로…(새번역_27절)” 라고 간구한다.*약속하여 주신 말씀으로, 말씀하여 주셨으니… “주님께서 직접 그렇게 약속하여 주셨으니, 주님의 종의 집안이 영원토록, 주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받게 해 주십시오(새번역_29절)” 라고 간구했다.
*다윗처럼 기도하고 있을까? 대부분 내가 원하는 것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이 기도의 능력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다윗이 분명하게 보여준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복을 받게 해주십시오”라는 자세가 곧 올바른 간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내가 기도로 구하여 받기를 원하는 목록을 작성하기 보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나에게 약속하여 주시는 것,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여 사모하게 하시는 “바로 그 말씀”을 기다려야 한다.*약속하신 바로 그 말씀대로 지금 복 내려 달라고 순수하게 구할 수 있는 삶이기를 간절히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