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언제 보아도 좋다.
고향이 산골이라서 그런가?
바다를 보면 이제까지의 모든 잡념도 사라지고 나를 괴롭히던 시름도 잊는다.
이렇게 좋은 바다는 늘 어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나를 부르곤 했다.
그리고 포근히 안아주었다.
언젠가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ㅡ
소주 여러 병을 싣고 시화방조제를 건넜다.
방조제 위를 마구 달리던 내 차가 고인 빗물을 가르며 질주하던 날 ㅡ
핸들을 틀어 바다로 뛰어들까 염세적인 생각이 마구마구 내게 충동질하던 날이었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물안개 자욱한 바다를 보며 가지고 간 소주를 다 마셨다.
울기도 했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술이 깰 때까지 기다린다던 것이 밤을 새우고 말았다.
밤을 새웠다기보다 의식을 잃었다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그리고 다음 날, 안개 걷힌 아침 햇볕에 눈부심으로 깼고 새로운 세상을 맞았다.
그날 아침, 빛났던 하늘빛을 보며 죽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바다는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은혜를 베푼다는 생각을 굳혔다.
죽음이란 극단적인 생각에서 자비로운 바다에 안겼다 돌아왔다.
그리고 바다는 새로운 힘을 주었고, 나는 용기를 내 오늘에 이른 것 같다.
그때 바다에 가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바다 ㅡ
오늘은 그런 바다가 아니다.
낙조가 아름답게 물들고 있다.
그곳에 서있는 한 여인 ㅡ
소무의도를 바라보는 그녀가 거센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말 없이 먼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를 휴대폰에 담았다.
오늘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떠나간다.
그녀는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은 채 바다를 보고 있었다.
핑크빛 머플러가 거센 바람이 나부끼고 있었다.
"당신이 사 준 머플러예요!"
나는 그 머플러가 내가 선물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아까 이곳으로 오는 차 안에서 앞을 바라본 채 한 그녀의 말이었다.
그녀의 가죽 코트에 잘 어울리는 듯했다.
그녀는 이 말을 하려고 그 머플러를 착용했을까?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란 그녀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10여 년을 투석하던 그녀의 남편이 곧 떠날 것이란 말을 했다.
모두 정리하고 그의 고향으로 마지막 여행을 한다고 했다.
"남편 고향으로 갑니다. 아이들도 원하고요!"
이 도시의 모든 것을 정리했다고 했다.
'다시는 보지 못한다!'
'다시?'
'못 본다?'
'내가 잘못 들었나?'
도저히 실감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만남을 마지막으로 나를 정리하려고 만나자고 했다는 말인가?
나는 그녀가 앉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생각하고 방파제 넓은 돌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앉을 생각도 하지 않는 듯한 그녀를 보곤 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게끔 바람이 거셌어도 그녀는 안경을 써서일까?
눈동자는 고정되어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렸다.
그녀가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묻지도 않기로 했다.
그녀는 단호한 결의에 찬 모습과 숙연한 모습이 교차하는 듯했다.
추위가 몰려온다.
앉아 기다리는 것이 서는 것만 못한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경 밑으로 눈물이 흐른다.
낚시하던 사람들이 보든 말든 그녀의 뺨에 입을 맞췄다.
찝찔한 소금맛 눈물이 입술을 적신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안았다.
그녀가 흐느껴 운다.
그녀의 가슴을 으스러지게 안자 소리내어 울고 있다.
낚시꾼들과 방파제를 걷는 사람들이 우리를 비켜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우리의 모습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배려로 보인다.
젊은 사람들 같다면 훼방이라도 놓으려는 사람들의 심뽀이나, 나이 든 사람들이라 비켜주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운다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거나 어색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주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 눈에는 둘 다 검은 옷을 입어 누구의 유골이라도 뿌렸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몹시 추운 듯했다.
작은 몸이 추위에 떨려옴이 느껴진다.
그녀만 추운 게 아니다.
나 역시 바닷바람이 싫어졌다.
그녀에게 그만 내려가자고 말했다.
지난 여름에 우리가 묵었던 민박집의 불이 켜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격정에서 벗어난 그녀가 처음 보는 것처럼 말했다.
민박집 밑으로 물이 빠져 드러난 갯벌에 얹힌 배를 보고 신기한 듯 묻는다.
"왜 배가 땅위에 있어요?"
언제 흐느껴 울었냐는 듯이 조금은 어린 아이처럼 순진무구해 보였다.
"썰물이면 배가 땅에 있고, 밀물일 때는 떠!"
물이 언제 들어오느냐고 묻는다.
가끔 바다에 오기는 해도 물때를 알지 못한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배가 물에 뜨면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떠나가고 싶어요!"
방파제에서 민박집 방향으로 나가는 좁은 길을 걸으며 땅을 보며 말하고 있었다.
도로가 평탄치 않았다.
그녀는 손이 시리다며 내 코트 안으로 손을 넣었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작은 손을 주머니 안에서 녹여준다.
"올해를 넘기지 못한데요! 요즘 부쩍 몸이 많이 붓고 아프다고 하네요!"
"그동안 이틀에 한 번 혼자 투석을 다녔는데, 이젠 부축하지 않으면 못 가요!"
"고향은 투석할 수 있는 병원이 없어요! 투석을 일주일만 안 해도 죽을 수 있다네요!"
그래서 이곳에서 떠날 때는 죽으려고 가는 듯한 말로 들렸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 ㅡ
그녀는 십 년 넘도록 투병생활을 하는 남편에게 멀어져 있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던 그녀를 만났다.
언제나 명랑하던 그녀에게 그런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어느 날, 그녀에게 불려나가 주점에서 만났다.
그녀는 작심하고 온 듯이 술을 들이켰다.
함께 술을 마신 회수가 몇 번 됐으나 그날 같은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나는 그런 경험이 많다.
여자들이 술 취하려고 의식적으로 마시는 날은 내가 경계 모드로 들어간다.
여자는 평소의 의도를 술을 핑계로 어떤 행위를 시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술 취한 그녀가 감추었던 은밀한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자기의 치부일 듯한 이야기였어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조금만 귀가가 늦으면 언어폭행은 물론 손찌검도 있었다는 말을 했다.
남편이 늦은 귀가를 나무라며 폭행을 했다 하면 '의처증'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병 중 하나가 '의처증'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더구나 아내는 신뢰로부터 한평생을 함께 갈 인연인 것이다.
불신 가득한 마음 속에서 아름다운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두 아이만 아니면 죽으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도 했다.
여인은 술이 취하면 쉽게 허물어진다.
술이 취해서 무너졌다기보다, 긴 세월 속에 폭언과 폭행에 의해 자기 스스로 무너져내린 것이다.
부부였어도 한순간 폭발한 증오로 멀어지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
그녀가 그랬다.
아이들 생각해서 마지막 여행에 동참한다고..!!
오늘 아침,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토요일 떠난다고!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사를 간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토요일은 이삿짐을 싸는지 그녀 집을 가볼까?
아니다.
못 갈 것 같다.
떠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용기가 없다.
아마도 나는 그녀와 며칠 전 소무의도를 바라보던 선착장 방파제에서 바다를 보고 있을지 모르겠다.
바다는 언제나 나를 포근히 안아주며 안식을 주었으니까!!
그녀는 떠나가도 반드시 돌아올 것이란 믿음이 있다.
인연이라는 것은 맺어지기도 어렵지만, 끊어지기도 어려우니까!
사랑도 그렇다.
쉽사리 잊혀지고 끊어질 것이라면 사랑이라 불리지 않는다.
첫댓글 신춘문예에 응모하세요.단편부문에...
돌아옴이 확신이니
잠시 이별인거네요~
단편소설 분위기 재밋었어요 ㅎ
정들고 헤어짐은 언제나 있어왔지요
우연이 인연이 되고 인연이 필연이 되고
하지만 그냥 흐지부지 끝나는 인연이 더 많은게 세상사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아픈 사랑을 하셨네요
그 아픔도 훗날 아련한 추억이 될수도 있지요
건승 을 빕니다